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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이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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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눅13:22-35

 

문이 닫히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얻으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문은 자아와 죄악을 버려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자기의 주장과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자아와 죄를 버리지 않으면 들어가고자 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구원의 문은 좁을 뿐만 아니라 언제까지나 열려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 문이 닫힐 때가 오는데, 한 번 닫히면 다시는 열리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구원의 문은 완전히 닫히게 되며, 더 이상 구원받을 기회가 없게 됩니다. 문이 열려 있을 때 힘을 다해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이 닫힌 후에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는 자들에게 주인이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25절)


밖에 있는 자들은 주님과의 인연을 내세우며 문을 열어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26절)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습니다. “저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27절)

 

구원의 조건

거절당한 자들은 주님과의 인연을 내세우며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주님께서 가르치실 때 직접 들었으며, 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실 때 그것을 직접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은 그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구원받는 데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으려면 주님께서 ‘내가 너를 안다’라고 말씀해주셔야만 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의미합니다.


마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큰일을 한다 해도 다 불법입니다. 그 모든 것은 구원받은 데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구원의 조건은 참된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는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말씀과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힘씁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만나주시고 풍성하고 친밀한 교제를 허락해주십니다.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는 이런 성도를 기쁘게 맞이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참여할 사람들


유대인들의 이상과 소망은 메시아 왕국에서 그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조상들과 함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조와 선지자들은 그 잔치 자리에 있을 것이나, 유대인들은 거기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28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배척하고 자기들의 생각을 고집했으며,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만족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고 천국 잔치에서 쫓겨나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대신 그 잔치 자리에는 온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와서 앉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29-30절) 본래 이방인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로서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함으로써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역전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역전은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으리라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수십 년 동안 교회에 출석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을 줄 아는 성도가 있습니까? 예수 믿는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열심히 봉사했기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이런 것들은 정말 복되고 귀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순종하지 않고 있다면, 그날 천국 잔치에 앉지 못할 것입니다. 그 자리는 진실된 믿음으로 살아온 다른 사람들이 와서 앉게 될 것입니다.


아직 구원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아무리 인생을 죄 가운데서 낭비해버린 사람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순종하면 얼마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참되게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역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헤롯의 위협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부하면서 구원을 자신했던 유대인들에게 그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매우 불쾌해하며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헤롯이 죽이려 하니 이곳에서 피하시라고 말했습니다.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31절)


헤롯은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분봉왕 헤롯 안디바를 가리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책망하는 세례 요한을 죽였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헤롯의 영지를 지나고 계셨는데, 그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이 말은 예수님을 위한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헤롯을 빌미로 예수님을 위협하며 그곳에서 떠나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주님의 말씀을 듣기 않겠다는 거부의 태도를 나타낸 것이기도 했습니다.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주님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32절) 예수님께서는 협박과 속임수로 예수님을 그의 영지에서 쫓아내려는 헤롯의 교활함과 간사함을 아시고 그를 ‘여우’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위협을 받으셨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분명히 알고 계셨으며,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헤롯이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조금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셔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33절) 헤롯이 아무리 예수님을 죽이려 해도,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죽으시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시며 병을 고치시면서 말씀을 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롯의 위협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조금도 흔들림 없이 사명을 감당하시며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온전히 돌보시며 지켜주실 것입니다. 어떤 엄청난 어려움과 문제가 닥쳐온다 해도, 하나님 아버지의 보호 아래서 안전할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기 전까지는 어떤 위협과 반대가 있어도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실 것을 확고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예루살렘에 도착하시게 될 것이며, 거기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속사역을 완수하시게 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34절)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예루살렘에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죄악을 책망하며 심판을 경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아들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외식과 교만과 죄악에 빠져있는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많은 이적을 행하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라는 구절은 예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시고 사랑을 쏟으셨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갈수록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했으며,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끝까지 주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배반한 예루살렘을 향하여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35절) 예루살렘은 더 이상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향하여 ‘너희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본래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눅2:49) 그러나 이제 그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 아버지의 집,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황폐하여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남왕국 유다가 멸망을 당할 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에 의하여 처참하게 파괴되고 약탈당하고 불살라졌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이 이방인들에게 유린당하고 파괴될 수 있었을까요? 에스겔 선지자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겔10:4)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겔10:18) 하나님 백성이 범죄하고 끝까지 돌이키지 않자,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이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유린을 당하고 파괴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더 이상 ‘내 아버지의 집’이라 부르지 않으시고, ‘너희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참혹한 멸망이 닥치게 될 것이며, 성전도 처참하게 무너지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백성이었던 그들이 끝까지 죄에서 돌이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죽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

AD 66년

로마 총독 플로루스가 체납된 속주세 대신 예루살렘 성전의 보물창고에서 17달란트의 금화를 몰수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킴 / 총독 플로루스 폭동을 강경 진압

유대인들의 폭동은 로마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으로 발전

시리아 총독 케스티우스가 로마 제12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했으나 예루살렘 공략실패

로마 군단 후퇴 / 유대인들의 로마군 습격 / 6천여 명의 로마군 전사

 

67년 봄

로마 장군 베스파시우스 제5군단, 제10군단, 제15군단 등 정예 3개 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격

총병력 6만 명 / 로마 황제 네로가 죽은 후 혼란이 계속됨

 

69년 9월 베스파시우스 로마 황제로 추대됨

그의 아들 티투스가 제5군단, 제10군단, 제15군단에 제12군단을 추가해 4개 군단을 이끌고 예루살렘 공략

 

70년 봄

4개 군단이 티투스의 지휘 아래 예루살렘 성벽 앞에 진을 침

5개월의 격전 끝에 70년 9월 예루살렘 함락

사망자 110만 명, 포로 9만 7천 명

 

예루살렘 함락 뒤 헤로디온, 마카이로스, 마사다 등 3개 요세에서 유대인들이 저항

헤로디온, 마카이오스는 곧 함락되고 맛사다에서 3년 동안 저항하다 결국 모두 자결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포위되어 있는 동안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실제로 자신의 젖먹이 아기를 먹은 여자도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은 약탈당하고 불에 태워졌다.

예루살렘과 그 지역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유대인 대부분은 죽었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혀갔다. 

약 200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예루살렘은 철저히 멸망하였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예루살렘은 AD 70년에 이처럼 비참하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비참한 멸망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이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크고 무서운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최후의 영원한 심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누구든지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말씀을 거역하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기회인지 모릅니다.


마지막 심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닥칠 것입니다. 마지막 심판 날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힘을 다해 순종하십시오. 그리하여 마지막 심판 날에 큰 구원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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