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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린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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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11월 11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도행전 강해13  열린 사도행전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행 28:30-31)

 

사도행전 21장부터 마지막장인 28장까지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잡혀서 로마의 감옥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자유를 빼앗겼지만 바울이 그 상황속에서도 얼마나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4년이 넘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여정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바울은 자신이 잡힐 것을 알고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바울의 예루살렘행에는 이방교회의 대표들이 동행했다. 행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이들은 바울이 이방세계에서 맺은 영적 열매였다. 그리고 이들의 손에는 여러 이방교회에서 거둔 구제헌금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어려운 형편에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 헌금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 사이에 깊은 유대관계가 생겨나길 바랬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난 유대인 군중들이었다. 그들은 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을 통해 바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듣는다. 바울의 과거는 그가 이방세계 각처에서 유대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하여 가르쳤던 자라는 것이다. 바울의 현재는 그가 지금 헬라인을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거룩한 곳을 더렵혔다는 것이다. 군중들 중에는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 시내에 있음을 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소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 바울이 그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온 백성이 달려와 바울을 잡았고 그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로마 천부장이 달려오지 않았으면 바울은 군중들에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바울은 천부장의 허락하에 군중들을 향하여 자신의 간증을 한다. 그러나 성난 군중들은 그의 간증을 도중에 중단시킨다.

 

다음날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성난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그 수장인 대제사장 아나니아였다. 사도 바울은 이전에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는데 앞장 섰던 사람이었다. 그것도 대제사장을 통해 정식으로 그 권한을 위임받고 활동했던 그였다. 그랬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뒤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공회와 대제사장의 입장에서 볼 때 바울은 변절자였다. 그들에게는 변절자 바울을 처단하기에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공회가 소집되었고 바울은 공회 앞에서 입을 연다. 행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여기까지 듣고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불끈해서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고 명한다.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바울이 대응한다. 행 23:3,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바울은 기죽지 않고 대응한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 사람은 대제사장이라고 말하자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줄 몰랐다고 말한다. 바울이 단수가 높았던 것 같다. 바울은 공회 회원들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고 일부는 바리새인인 것을 알았다. 사두개인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바리새인은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행 23:6,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바울의 이 말에 공회 재판이 어떻게 되었을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재판장이 소란해졌다. 일부 바리새인중에는 바울 편을 드는 사람들도 생겼다. 재판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된다.

 

그날 밤 주님이 바울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셨다. 행 23:11,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바울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을 다시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음 날 유대인들이 당을 지으며 맹세한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 바울은 이 사실을 그의 생질을 통해 전해 듣고, 자신에 대한 암살 계획이 있음을 천부장에게 알린다. 결국 바울은 로마 총독이 있는 가이사랴로 호송된다. 헤롯 아켈라오의 실정 이후 AD 6세기부터 로마제국은 직접 총독을 파견하여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렸다. 그리하여 헤롯대왕이 화려하게 건설했던 가이사랴는 로마 총독의 관저와 행정부서로 사용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본디오 빌라도는 AD 26년에서 36년까지 제 5대 총독이었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이 가이사랴에서 발견되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벨릭스와 베스도는 각각 12대, 13대 총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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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도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바울을 호송하는데는 보병 이백 명, 기병 칠십 명, 창병 이백 명이 동원되었다. 바울이 로마시민이었기에 로마총독부는 바울을 보호해야만 했다. 그리고 바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는 당시 로마총독의 큰 숙제였다. 바울은 결국 가이사랴 헤롯 궁전의 한 처소에 갇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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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 헤롯 궁전터

 

바울이 가이사랴로 호송된지 5일 만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변호사 더둘로를 대동하여 가이사랴로 온다. 그리고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한다. 대제사장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까지 직접 110km를 달려온 것이다. 바울을 향한 증오심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바울은 청문회장으로 끌려나온다. 가이사랴에 가면 ‘place of hearing’이라는 청문회 홀이 있다. 여기서 변호사 더둘로의 기소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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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of Hearing


행 24:3-4,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완전 아부의 말이었다. 당시 벨릭스는 잔인한 폭군이었다. 당시 유대 전역에서 일어나는 시위를 무자비하게 폭력으로 다스렸다. 따라서 더둘로 변호사의 말은 총독을 기분좋게 해서 재판을 유리하게 진행하기 위한 아첨이었다. 더둘로는 바울을 ‘전염병 같은 자,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바울을 고발했다. 이어 진행된 바울의 변론 과정에서 벨릭스 총독은 바울이 유대 민족을 구제할 적지 않은 양의 헌금을 가지고 온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의 증언은 더둘로의 고발보다 훨씬 사실 정황이 분명한 것이었다. 그러나 벨릭스는 재판을 연기한다. 벨릭스는 바울에게서 돈을 얻어낼 것을 바라며 개인적으로 바울을 불러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바울을 구류해 둔다. 그리고 이 사안은 처리되지 못한 채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다. 그러던 중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들의 시위를 잘못 다스린 것 때문에 문책을 받아 로마로 소환된다. 그리고 AD 59년 베스도가 다음 총독으로 부임한다. 부임한지 삼일 뒤 베스도는 인사차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새로 부임하면서 유대지도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때 대제사장과 유대인 중에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다시 고소한다. 2년이 흘렀건만 바울에 대한 적개심이 여전했던 것이다. 그들은 바울을 가이사랴가 아닌 예루살렘에서 재판하도록 베스도에게 요청했다. 그것은 그들이 길에서 매복하여 바울을 암살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베스도 총독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가이사랴로 돌아와 바울을 다시 재판자리, place of hearing hall로 불러낸다. 그리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심문을 받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바울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상소하겠다고 선포한다. 당시 로마 시민은 부당한 판결에서 보호받기 위해 가이사에게 직접 상소를 요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벨릭스 총독은 바울의 죄목을 정하지 못하고 그를 로마에 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침 부임 인사차 자신을 방문한 갈릴리 분봉왕 아그립바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의뢰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또 다시 재판자리, place of hearing hall로 불려 나온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명할 기회를 갖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변화됐는지, 그리고 자신이 받은 사명이 무엇인지 왕 앞에서 간증했다.

 

행 26:16-18,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한 바울은 증인으로서의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눈을 뜨게 하여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또한 사탄의 권세 아래 살아가는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죄사함을 받고 믿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얻게 하는 사명이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 역시 세상 사람들을 향해 가져야 할 사명인 것이다. 우리 역시 이 일에 증인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 10:17-18,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예언은 바울의 삶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부활의 증인이라는 죄목으로 공회 앞에 서야 했고, 총독과 임금 앞에 서서 변론해야 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예수님은 이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바울은 당시 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 그들이 대제사장이건, 로마 총독이건, 왕이건,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울은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 한 분을 두려워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마 10:32-33, 39,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바울은 다섯번 재판을 받으며 그 때마다 목숨을 연명하려고 피해가지 않았다. 오히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당당히 증거했다. 그런 바울에게 아그립바 왕이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하는도다”라고 말한다. 그 때 바울은 이렇게 답변한다. 행 26:29,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그는 비록 갇힌 몸이었지만 그 영혼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다. 이 당당한 선포 앞에 오히려 세상 임금과 권세자들이 초라해보였다.

 

이후 바울은 로마로 호송된다. AD 60년 경의 일이다. 그리하여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는 주님의 예언이 이루어진다.  바울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사람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한다. 행 28: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성경은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한다. 바울은 이렇게 2년 동안 로마의 셋집에서 복음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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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참수교회 내 바울 참수 장면 조각

 

전해지는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2년 정도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서바나 선교를 다녀온다. 그러나 그는 AD 64년 네로 황제의 기독교 핍박 때 다시 체포되어 수감된다. 그리고 AD 67년경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한다. 사도행전은 그러한 내용을 담지 않고 이렇게 기록을 마감한다. 행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성경학자들은 사도행전의 이 마지막을 ‘열린 결말’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끝나지만 사도행전 29장의 역사는 예수님의 증인들인 우리가 써내려가야 할 역사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그리고 로마에서 죄수로 갇혀있었다. 그러나 바울의 믿음, 바울의 복음은 갇히지 않았다. 바울은 죽을 때까지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듣고 변화된 사람들은 로마제국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은 그가 죽은지 250여년 만에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데오도시우스 황제 때인 AD 381년에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다. 이후 로마는 1000년 동안 기독교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중심지가 된다. 이후 복음은 독일에서, 영국에서, 미국에서 꽃피게 된다. 그리고 다시 복음은 아시아로 전해서 한국에서, 중국에서 꽃피우고 있다. 이제 복음은 중동을 지나 복음이 처음 시작된 이스라엘에서 꽃 피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욥바교회는 이스라엘의 관문도시인 텔아비브에서 복음이 밀려올 그날을 준비하며 예배공동체로 서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의 마지막 편지에서 디모데에게 이런 고백을 남긴다. 딤후 4:1-8,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세상이 더욱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 시대는 자신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메세지를 따르며,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는 시대이다. 시대가 그럴 수록 복음은 세상에 거친 메세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복음의 증인은 고난을 받으며 고독한 경주를 할 수밖에 없다.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한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한 인간이 남길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바울처럼 세상과 사람 앞에서 두려움없이 진리를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까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열린 사도행전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증인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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