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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론에서 나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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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12월 30일

설교 이익환 목사

예레미야 7 바벨론에서 나오라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7]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 [8] 바벨론이 갑자기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말미암아 울라 그 상처를 위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9]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 [10] 여호와께서 우리 공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렘51:6-10)

 

2017년 우리가 함께 드리는 마지막 예배다. 작년 이맘 때만 해도 새해를 예측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러나 우리의 예측을 너머 일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해가 갈수록 다음 해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며 믿음으로 따라가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오늘 우리는 성경의 두 도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는 바벨론이고 하나는 시온성, 즉 예루살렘이다. 성경 역사를 간략히 말하면 이 두 도시 사이에서 벌어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역사로만 끝나지 않는다.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예외없이 이 두 도성 사이에서 살고 있다. 어느 공간에 속해 있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바벨론이란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사람은 누굴까? 성경은 그가 니므롯이라고 말한다. 창 10:8-10,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세기는 시날 땅의 바벨에서 그의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노아의 증손자였다.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던 함의 아들 구스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니므롯은 ‘세상에 첫 용사’라는 별칭이 있다. 용사는 히브리어로 ‘기보르’인데 이는 폭력으로 통치하는 자를 의미한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다고 표현되는데, 칼빈은 여호와 앞에서가 ‘against God’이란 뜻이라고 주석했다. 즉 니므롯은 하나님과 대항하여 맞섰던 폭군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대항한 가장 극명한 사건은 바벨탑 건설이다. 창 11:1-3,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시날평지는 니므롯이 건설하기 시작한 도시들이 있었던 곳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로 뭉쳐 흩어짐을 면하자고 말한 것이다. 바벨론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힘의 규합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의 중심에 니므롯이 있었음이 충분히 예상되는 것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렇게 기록했다. “[니므롯은] 하나님께서 다시 땅을 홍수에 잠기게 하려 하실 경우 복수를 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는 물이 미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탑을 쌓아서 조상들의 멸망에 대해 복수하려 하였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노예살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니므롯]의 이 충고에 열심히 따랐으며, 그래서 그들은 탑 건축에 착수했고 ··· 그 탑은 그 누구의 예상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건축되어 올라갔다.”—「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I, 114, 115 (iv, 2, 3).

 

하나님께 대적하여 벌어지는 인류의 반역에 대해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셨다. 창 11:6-9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이처럼 바벨론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한 힘의 규합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사건 이후 새로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셔야 했다. 그래서 주목하신 것이 아브라함이다. 그가 태어난 지역은 니므롯이 정복한 땅 갈대아 우르지역이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있었고, 우상숭배로 가득한 도시, 바벨론 한 복판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이다. 바벨론을 등지고 가나안을 향해 떠났던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을 예루살렘 한 산에서 번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한다. 예루살렘은 바벨론과 달리 한 사람의 온전한 순종이 있었던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성경에 처음 나오는 바벨론과 예루살렘 이야기다.

 

성경에서 두번 째로 등장하는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이 이룬 신바벨론 제국이다. 느부갓네살은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격퇴함으로 바벨론 제국을 형성한다. 그가 제국의 왕이 되어 바벨탑을 다시 세운다. 그는 높이와 너비 90미터에 이르는 바벨탑을 건설하고 그 위에 마르둑, 즉 니므롯 신전을 건축한다. 다시 한번 바벨론은 힘의 규합과 우상숭배가 일어나는 중심지가 된다. 그리고 이 바벨론 제국에 절하지 않으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죽임을 당해야 했다. 모든 사람이 그 힘 앞에 절하였던 바벨론제국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한 예배와 기도를 쉬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주목하셨다. 다니엘과 세 친구였다. 그들은 죽음으로 위협하는 바벨론 왕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 3:17-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제국과 맞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 바벨론 제국도 다스리시고 결국은 심판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다.

 

사실 바벨론 제국은 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역사에 등장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의 갑작스런 파멸을 예언한다. 렘 51:6-8,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끊어짐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복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7]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 [8] 바벨론이 갑자기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말미암아 울라 그 상처를 위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힘의 정점에 있던 제국의 몰락을 예언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현실 역사 너머에 작동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신뢰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라고 말한다.

 

결국 바벨론은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멸망한다. 그 마지막 장면이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다. 단5:1-4, “벨사살 왕이 그의 귀족 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그 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2]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의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3] 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4] 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그들은 성전 기명으로 술을 따라 마셨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신을 찬양했다. 힘의 정점에 있을 때 그들의 교만은 극에 달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조롱하며 우습게 여긴 것이다.

 

그 때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자를 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벨사살 왕은 그것을 보고 무릎이 서로 부딪힐 정도로 떤다. 결국 왕은 다니엘을 불러 그 글자를 해석하게 한다. 단 5:26-28, “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 그날 밤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게 된다.

 

예레미냐 선지자는 바벨론의 멸망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심이 시온으로 향할 것을 촉구했다. 렘 51:10, “여호와께서 우리 공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그리고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고 권면했다. 렘 51:50, 칼을 피한 자들이여 멈추지 말고 걸어가라 먼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칠 때까지 예루살렘을 마음에 품으라고 권한다. 그리고 포로생활이 끝나면 시온에 돌아와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자고 촉구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심판의 도구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70년만에 그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이것이 성경에 두번 째로 나오는 바벨론과 예루살렘 이야기다.

 

성경에서 세번째로 등장하는 바벨론은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계 18:2-3,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바벨론은 땅의 왕들이 더불어 음행하고 상인들이 치부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또 다시 정치, 경제, 종교 세력의 힘의 규합이 일어나는 곳이 된다. 계 13: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들이 형성한 시스템에 절하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우상숭배와 힘의 중심지가 된다.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 바벨론은 이미 망하여 사라진 제국이었다. 그렇다면 계시록이 말하는 바벨론은 어디일까? 일차적으로는 당시 황제숭배와 그것에 절하지 않는 자들은 순교를 당해야 했던 로마제국이다. 계시록에서 바벨론으로 상징되어 불리던 로마는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온 인류의 죄를 사하는 구속역사로 바꾸셨다. 로마는 또한 AD 70년 성전을 파괴하고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복음이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퍼져가는 복음의 역사로 바꾸셨다. ‘로마’라는 제국의 실체 바벨론은  멸망했지만 복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성경에 세번째로 나오는 바벨론과 예루살렘 이야기다.

 

그러나 계시록에 나오는 바벨론은 단지 역사상으로 끝난 로마제국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벨론이란 말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최후 세력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벨론은 영적인 의미로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적그리스도적인 세상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바벨론과 예루살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네번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에 의하면 바벨론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이 세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하나의 영적 실체인 것이다. 바벨론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너만의 바벨탑을 쌓으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세력을 모아 그 힘 아래 들어오라고 한다. 그 힘에 절하면 성공을 보장해 주겠다고 말한다. 우리는 계시록에서 외치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계 18:4-5,“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바벨론은 계시록에서 음녀로 표현되는데, 음녀의 반대는 신부다. 바벨론 문화 속에서 우리는 신부의 정체성을 붙잡아야 한다. 주님의 신부는 예수님과 깊은 언약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자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다.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 바벨론 음녀의 세력을 이기는 자다. 너도 나도 힘을 추구하고, 힘있는 자에게 줄 서는 시대에 아무 힘 없는 자처럼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 세상 제국의 힘에 위협 당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바벨론의 힘에 눈깜짝하지 않고 변함없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을 주목하신다. 하나님께만 무릎 꿇는 사람, 주님만을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예배와 선포를 통해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신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시키려하나 결국 주님의 심판을 통해 멸망하는 것이 성경의 결론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어린 양을 따라갔던 주님의 신부들이 장차 새예루살렘에서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 성경의 마지막 그림이다.

 

결국 성경의 역사는 바벨에서 반역한 인류의 역사를 예루살렘에서 돌이키는 역사다. 이 세상에서 바벨론은 지금 내 눈 앞에서 거대하게 돌아가고 있기에 너무도 커 보일 것이다. 반면 하나님은 잘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 나라는 너무도 작아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지금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 너머 작동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주목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역사는 보이는 제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진행되어 왔다. 바라기는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눈에 보이는 바벨론에 마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주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2018년 새해에도 이 땅에서 변함없이 어린 양되신 주님을 따라가는 신부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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