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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아오고 돌아오라

  • 이상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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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고 돌아오라

아가 6:11~13                                                                                       

2018. 6. 24 오전


본문은 단순해 보이나 실은 성경의 가장 어려운 구절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아가서 강해설교를 신나게 해왔는데 복병을 만났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특히 13절에 “돌아오고 돌아오라”는 말씀이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래서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여인이 남자의 극찬을 들은 후에 호도밭으로 직접 내려가서 남자를 만납니다. 이제 위기를 끝내고 하나가 된 관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11절)


앞에서 남자는 여자를 더할 수 없을 정도의 언어로 극구 찬양하였습니다. 이런 칭찬을 들은 여인은 호도 동산으로 갔습니다. 풀들이 피어났는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포도나무에 순이 돋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석류나무 꽃이 피었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골짜기로 내려갔다고 하였는데 원어에는 건천, 시내로 되어 있습니다. 물이 매일 흐르는 곳이 강입니다. 비가 왔을 때에만 흐르는 곳이 건천이고 시내입니다. 비가 왔습니다. 흡족한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면 시내, 건천 주변은 생기를 되찾게 됩니다. 물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죽었던 땅이 살아납니다. 초목이 살아납니다. 순이 돋아납니다. 포도나무가 순을 냅니다. 석류가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것을 확인하려고 그 곳으로 갔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이 익어간다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이제 짙은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백성들의 사이로 수레를 타고 들어갔습니다. 이제 술람미는 한 남자를 섬기는 한 여인의 모습에서 한 차원 승화된 모습니다. 백성들의 생활 상태를 살피러 간 것입니다. 포도나무 순이나 석류나무 꽃은 모두 봄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계절적인 봄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의 축복의 봄을 보러 나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백성들을 살피러 나간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사명으로 일하고 있는 술람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산업입니다. 포도 농사가 백성들의 생계를 좌우하였습니다. 그들의 경제생활을 살피는 술람미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니까 사랑을 받게 됩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사랑하여야 합니다. 술람미가 나타나기만 하면 백성들은 환호하며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아내가 1,000명이었지만 다른 아내들은 이 정도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직 술람미뿐이었습니다. 술람미는 지극히 백성들을 살폈기 때문입니다.


술람미는 ‘역설의 사람’ 이었습니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여자가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가장 낮은 계급의 여인이 가장 고귀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가서는 모두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역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글 큰 사전에서 역설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자체의 주장이나 이론을 스스로 거역하는 논설’ 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얼른 보기에는 모순같이 보이나 사실은 모순이 아닌 이론,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역설가’입니다. 역설가란 역설적 이론을 많이 붙이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술람미는 역설의 여인입니다. 최하가 최고로 바뀐 여인입니다.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12


번역이 조금은 묘연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게 번역되었습니다. 다시 번역하면 이런 말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열정이 나를 존귀한 자와 함께 마차 위에 두었습니다.”


또는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당황하였습니다. 당신은 나를 존귀한 자와 함께 수레에 두셨습니다.”


부지중에 라는 말은 자기도 모르게 존귀한 자와 함께 한 수레를 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존귀한 자는 남자입니다. 여인은 얼떨결에 그렇게 존귀한 남자와 한 수레를 타고 있는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면 그리스도와 함께 존귀한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술람미는 ‘내 귀한 백성의 수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레가 귀하다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술람미를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술람미가 백성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역설입니다. 먼저 주어야 나중에 받을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그들 사이에 들어온 술람미 수레를 보고 술람미를 환영하였습니다. 자기 사랑은 자기가 지니고 있습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13절


누가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일까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여자들의 외침이라는 해석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랑 솔로몬의 부름이라는 해석입니다. 둘 다일 수 있습니다. 이제 술람미는 모두에게 영웅이요,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겸손하고 충성된 사람은 꼭 좋은 결실을 맺게 됩니다. 탈무드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진실과 기름은 뜬다”


남자는 여인을 술람미 여자라고 부르며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제 다른 곳을 보지 말고 자기에게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랑하는 여인을 술람미 여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몇 가지 해석이 따르고 있습니다.


우선 술람미는 지명이라는 것입니다. 술람미는 술람, 즉 수넴의 다른 말입니다. 수넴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술람미는 어원이 ‘쉘로모’ 입니다. 이는 ‘솔로몬의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술람미는 온전히 솔로몬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이 있습니다. 술람미는 완벽함을 뜻하는 술램 sulam이라고 하는 해석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완벽한 여인이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인을 완전한 여인으로 부르는 호칭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입니다.


이런 해석이 있습니다. 술람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

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나에게로 돌아오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

“예언을 들은 곳으로 돌아오라.”


너무나 보고 싶어 하는 신랑 솔로몬의 호소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13절


백성들이 모두 술람미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사모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솔로몬이 하는 말입니다.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처럼 술랍미를 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하나임은 야곱이 에서와 천사를 만났던 곳입니다. '마하나임 춤'은 춤 이름이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의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귀향 중 천사 무리를 만난 곳(창 32:1,2)이 마하나임입니다.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천사들이 절대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백성들이 술람미 여자를 그렇게 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믿음이 간다는 행복한 고백입니다. 아가서는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왕 같은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주님이 높여 주기 때문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제 못할 것이 없는 이가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하면 그렇게 신비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헤어졌던 신랑과 신부가 재회하는 감격은 어떠할까요? 여기 재회의 감격에 담긴 사랑의 3 가지 감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사랑은 보고 싶은 감정입니다(11절).


골짜기 호도나무 숲에 나타난 보고 싶은 것들의 상징을 살펴보세요. 새로 돋아난 초목은 새로운 사랑(새 신자)을 꿈꾸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포도와 석류(4:3)는 사랑하는 사람(성도)을 나타내고 순이 나고 꽃이 피는 것은 사랑의 열매(신앙의 성장)를 상징합니다.


사랑은 호두처럼 오묘합니다. 호두의 겉껍질만 안다면 호두는 그저 무덤덤한 식물의 열매에 불과합니다. 사랑과 신앙은 그 알맹이를 알 때 오묘합니다. 사람은 호두 속 그 알맹이를 알고 싶어 합니다. 사랑도 그와 유사합니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 사랑이 깊어지기를 바라듯 하나님은 우리의 깊은 영적 성장을 보고 싶어 합니다. 사랑은 서로 간 사랑의 성숙을 보고 싶어 하는 감정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성숙을 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2. 사랑은 그리워 돌아가고 싶은 감정입니다(12-13).


사랑은 그리운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술람미 여자에게 돌아오라고 간청합니다.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사랑, 고향을 그리는 마음, 부모가 자식을 그리는 마음, 천국을 그리는 마음은 모두 사랑입니다.


13절은 술람미 여인을 보고 싶어 돌아오라는 외침입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 여인을 보고 싶어 합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늘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합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싶어 합니다. 썩어질 세상이 아니라 참된 본향을 사모하는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3. 사랑은 자랑하고 싶은 감정입니다(13절).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춤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술람미의 마하나임 춤을 모두 보기를 기대합니다. 마하나임은 갓 지파 성읍으로 춤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춤 솜씨를 자랑하고 싶어 견디지를 못하는 모습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마귀를 앞에 두고도 사랑스런 욥의 믿음을 자랑하였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성도는 사랑하는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 성도는 우리 주님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저의 자랑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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