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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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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1)  
2014-03-02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Ⅰ. 본문해설

 
한 사람의 내면세계와 그의 실제적인 삶을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그 둘의 완전한 통합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화평하게 하는 자는 세상 속에서 평화를 이루기에 앞서 자기 안에 평화가 이루어진 사람이다.


Ⅱ. “화평하게 하는 자”


“화평하게 하는 자”란 누구일까? 희랍어 성경을 보면 “평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본래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만 있는 평화를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셔서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안정되고 조화롭게 살아가게 하셨다. 그러나 죄가 들어와 이 평화는 모두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평화를 증진하거나 퇴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에게 주셨다.


A. 평화란 무엇인가?
예수님 시대 많은 로마 사람들은 전쟁과 다툼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생각하였고 유대교 전통을 따르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푸신 특별한 언약에 따라 다윗 왕국의 재현을 떠올렸다. 그리고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그들은 평화를 다른 사람들과 분쟁이 없는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도주의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평화에 해당하는 ‘에이레네’라는 희랍어 단어의 히브리어 동치어가 바로 ‘샬롬’이다. ‘샬롬’은 하나님과의 평화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조화롭고 평안한 관계를 의미한다. 정신과 영혼뿐 아니라 육체의 상태와 사회적 관계, 이웃들과의 관계, 물질의 넉넉함까지를 포괄하는 전 방위적 개념의 온전함이다.


하나님께서 인류, 교회, 가정을 지으실 때 의도하신 모습, 하나님 안에 있는 관념이 바로 샬롬한 모습이다. 샬롬한 인류, 샬롬한 나라, 샬롬한 가정은 자신 속에 샬롬이 이루어진 사람들에 의해 추구된다.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인해 이루어진 진정한 평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만이 그런 평화가 이웃의 마음속과 나의 가정, 교회, 이 세계 속에서 실현되기를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B. 평화 실현의 영역
평화가 실현되어야 할 영역은 제일 먼저 자신의 마음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놀라운 내면의 질서 속에서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도록 지으셨다. 지성의 분명한 판단 속에서 감정을 느끼고 그에 따라 의지를 행사하도록 지으신 것이다. 그러나 죄가 들어와 이 질서가 깨어졌고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좋고 싫음의 감정이 앞서서 판단을 합리화하고 감정에 따라 행동하게 되었다.


자신과의 평화는 내면의 온전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과 관계의 평화를 이룰 때 가능해진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던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전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과의 화목을 선물로 주신다. 그 선물을 받으면 우리는 용서라는 커다란 감격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 죄에 대한 관념을 갖게 된다. 그때 아가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서 까리따스의 사랑이 넘치게 되고 하나님과 하나님 때문에 사랑해야할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온전한 질서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일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좇는 헌신, 믿음, 순종의 생활이 요구된다.


Ⅲ. 평화-천국의 질서


일주일에 한 번 예배에 나오는 것만으로 저절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죄, 평화가 깨어진 것에 대해 회개하고 뉘우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 그 평화를 회복해야만 앞으로 일주일도 평화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과의 평화가 수립된 사람은 두 개의 지평 속에서 평화를 구현하며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첫째 교회와 가정이고 둘째 이 세상 전부이다. 교회와 가정 속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소비의 삶을 살아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평화가 그들 속에서도 누려지도록 헌신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는 수많은 장벽들이 집단을 만들고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이것을 철폐하며 부정하며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용기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는 문제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북한의 굶주림, 이 모든 것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고 우리의 책임이다. 이 모든 평화를 이루는 일중 가장 우선 되어야 할 일은 복음 전파이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복음에 의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세상 모든 이웃을 향해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는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 하나님과의 평화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Ⅳ. 결론
그리스도인들은 순간을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허망하고 허탄한 일에 우리를 소비하는 일을 멈추고 세상의 소비와 향락과 사치와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평안을 찾는 일들을 그치고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 나 사이의 평화를 토대로 교회와 모든 세계 속에서 이런 평화가 이루어질 지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헌신할 때 놀라운 평화와 사랑을 이루는 도구로 살아가게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장 복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573.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2)  
2014-03-0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Ⅰ. 본문해설

아가폐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님이 자신을 사랑한 것은 본받아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까리따스(지순애至純愛)의 마음이 생긴다. 이 마음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고자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평화는 단지 다툼이나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천국 질서가 사람들의 마음과 관계 속에서 실현된 상태이다. 즉, 하나님과의 평화를 바탕으로 내면의 평화를 누린 사람들이 그 평화를 사람들 사이에 수립하는 것이다.


Ⅱ. 평화: 천국의 질서


A. 세상나라: 자기 사랑의 투쟁

하나님은 당신을 닮은 사람을 만드셨다. 지성은 하나님을 잘 아는 존재로, 감정은 그 지성에 복종하고 의지는 이 지식과 감정에 순응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며 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었다. 이 평화는 단순히 불화와 다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랑의 힘을 가진 평화였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하였다. 죄가 들어옴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는 깨졌고 사람들, 자연과의 관계도 부서져서 인간은 자기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가 되었다.


세상은 각자가 자기를 주인 삼은 나라이다.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깃발을 들고 다른 사람을 복종시킨 역사가 세상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자신의 힘으로 복종시키면서 이루어진 다툼없는 상황은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아니다. 진정한 평화가 되려면 다툼만 없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이해가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B. 하나님 나라: 신적 사랑의 질서

이에 비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신적 사랑의 질서이다. 사랑의 질서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움직이는 나라가 세상 나라이고 하나님의 사랑, 하나의 질서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 질서 안에서의 안식이 바로 평화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십자가의 복음으로 회심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질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만큼 인간에게 자기를 주인 삼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욕망은 뼈 속 깊이 박힌 특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미 이 땅에 이루어졌으나 완전히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 나라의 지배가 서로 갈등을 일으키며 한 역사 안에서 공존하다. 그러나 종말에는 이 세상 나라는 파멸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평화에도 불구하고 이 평화를 훼손하려는 죄의 세력이 우리 안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사람은 이것도 감사의 제목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자기 안에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때문이고 그 이루어진 나라가 자기 안의 죄로 인하여 무너지지 않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은혜를 주셔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간절히 붙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난한 마음이 되고 애통하는 심령이 되어 불결한 영혼을 정결케 하는 은혜를 간절히 기대한다.


Ⅲ.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됨


A.“하나님의 아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에 관한 사항이 아닌 한 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평화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평화를 위해서 희생을 치르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불이익을 받더라도 기꺼이 그 길을 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의 인격적인 특징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희생함으로 평화의 도구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는 것이다.


히브리어에는 형용사가 매우 부족하여 다른 명사와 연계하여 형용사로 사용된 어법이 발달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소유된 아들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더 풍부한 그림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은 첫째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의미이다(빌 4:9). 즉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했기 때문에 나의 생각이나 말, 행동과 언어가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한다는 말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킨다(눅 20:36). 신자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자신의 존재로 드러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현세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됨을 말한다.


B. “일컬음을 받으리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희랍어 ‘부르다’의 미래형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은 ‘당신의 아들로 인정받게 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하는 말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법적 상속권이 있는 아들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 영광에 동참할 것이라는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주겠다는 약속이다.


Ⅳ. 결론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른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훌륭하게 섬긴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격과 삶으로써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자신의 존재를 통해 세상에 보여주는 사람은 그가 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미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셔서 우리와 하나님의 살롬을 회복하셨다. 이 평화를 이웃에게 보여주는 신자들이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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