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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창조적인 소수가 되라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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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소수가 되라 (요한복음 19장 38-39절)


<고백하는 믿음을 가지라 >      

 예수님을 장사한 두 주인공은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지만 그 믿음을 속에서 삭였다. 자신들의 높은 지위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국회의원 신분인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로서 예수님을 인정했지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구세주로 공개적으로 영접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지위가 높아지고 더 대우받고 싶어 하는 정치적인 본능이 있다. 그런 본능을 이기고 지위가 높을수록 더 겸손해지고 낮아져야 지위가 신앙을 방해하지 않는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도 정치적인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지위 때문에 예수님을 드러내 영접하지 못하고 예수님이 죽은 후에야 예수님을 만나러 왔기에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지 못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 초대교회 때는 입술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면 죽음이 따랐기에 입술의 시인은 참된 믿음과 구원의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구원을 얻는다니까 쉽게 입술로 시인하는 잘못된 경우도 있다. 입술로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는 것에는 자기의 죄인 됨을 철저히 고백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낮아짐이 전제되지 않고는 높아짐이 있을 수 없다. 자기를 끝장내는 고백이 있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역사가 있다. 어둠의 새벽을 통과해야 광명한 새 날을 맞이한다. 깊어진 체험이 있어야 높아질 준비가 되고 이 땅의 막다른 길을 절감해야 하늘 문이 열린다. 결국 믿음의 고백에는 회개의 고백이 늘 전제되어야 한다. 회개를 자신을 비울 때 채워짐의 역사가 있다. 비움은 비극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때 사람 앞에서 높아지는 길이 열린다. 남을 위해 나를 낮출 때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넘치게 된다. 잘난 모습을 하면 하나님 앞에서 못나게 보이고 못난 부분을 겸손히 고백하면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보인다. 입술의 고백이 구원과 축복을 얻기 위한 겉치레의 고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철저히 낮아짐의 고백 후에는 그 고백대로 살아내려는 치열한 마음을 수반시킬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신다.

< 창조적인 소수가 되라 >

 왜 신앙 공개를 꺼렸던 그들이 신앙 공개를 하게 되었는가? 아마 십자가상에서 하신 예수님의 7마디의 말씀이 그들의 믿음을 깊게 했을 것이다. 결국 그 믿음이 명예와 권력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게 함으로 믿음의 커밍아웃을 하게 했을 것이다. 믿음이 자라면 자기 신앙을 공개하는 영적인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 신앙을 공개하면 행동에 불편이 생기지만 그래도 용기 있게 신앙을 공개해야 조금이라도 더 변화되고 믿음의 확신도 커질 것이다.

 신앙생활이 진실하게 되는 순간은 신앙을 공개할 때부터다. 그러나 믿음의 고백에 따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소수의 삶이 없다면 인생의 후반전이 복되게 펼쳐지지 않는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지위는 높았지만 성경에는 더 이상 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다른 성도와의 교제도 완전히 끊어졌다. 대신에 성경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없고 부족한 사람들의 이름을 주로 증거하고 있다. 그처럼 아무리 부족한 존재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선두에 서서 창조적인 소수의 길을 가면 역전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어느 공동체든지 뒤에 등장하는 사람보다 앞서 어려움을 맞이했던 사람이 훨씬 복된 존재다. 전쟁 중일 때는 뒤에 숨어 있다가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나타나면 공동체로부터 존중받는 존재가 될 수 없다. 진리가 박해를 당할 때 조용히 뒷짐 지고 있다가 박해가 다 지난 후에 안정된 길로만 가려고 하지 말라. 공동체에서 앞설 줄 알아야 그 공동체로부터 오래 기억된 존재가 된다.

 앞서는 자가 될 때 교제의 은총도 주어지고 축복의 은총도 주어진다.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인맥도 중요하다. 꿈과 비전을 혼자만의 힘으로는 성취할 수 없고 영적인 인맥이 필요하다. 언제 영적인 인맥을 얻고 참된 후원자와 동역자를 얻는가? 어려울 때 동참하는 사람이 참된 영적인 인맥을 얻는다. 어디서든지 큰 역사 후에 나타나는 ‘다수의 무리’가 되지 말고 큰 역사 전에 동참하는 ‘소수의 제자’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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