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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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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16.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군병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적으로부터 영토와 국민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기에 국민은 군병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군병들은 전쟁 시에는 국민을 사랑하여 목숨을 걸고 전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국토를 지켜야할 군병들이 만약 무기를 들고 백성을 향하여 강폭 하여 빼앗는다면 적군과 강도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그 말이지요.

 

그리고 국민들의 생활수준과 군병들의 생활수준이 즉 의식주 문제에 큰 차이를 빚는다면 이것은 안 될 일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요? 국민들은 잘 먹고 마시고 잘 사는데 군인들 의식주 해결이 너무 못 먹는다면 그 어떻게 지켜요? 지킬 수 없잖아요? 안 된다 그 말이요. 안 된다. 군병들이 받는 요는, 월급 말이지요. 요는 국민으로부터 주어집니다. 일반적으로 말이요. 일반적 차원으로 군인들 먹고 마시고 의식주 해결이 잘되도록 세금도 많이 내고 그래야 돼요. 군인을 배 굶겨놓고 고생하도록 만들면 그건 안 되지요. 목숨을 걸고 지키는 건데.

 

그리고 인간이 존재하는 한 군인은 항상 필요해요. 항상 필요해요. 일반적으로도. 군인을 없애버리면 그건 끝나는 거요. 나라 빼앗기고 그건 죽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성경의 영적 원칙을 생각하면서 일반적으로도 군인들 감축해야 된다고 하는 그런데 나서지 말아요. 싸우는 군대는 항상 필요해요. 영적 이치적인 면에서 기독교 신앙사상은 항상 이게 싸움이 들어있는 건데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싸움이 들어있는 건데 그 면에 대한 강한 군대를 키워야 되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는 전부 다 군인이라면 군인이고. 영적 군인이라면. 왜냐하면 진리에 무장이란 말이요. 우리교회 교인이면서 무장을 안 한다면 자기 스스로 도태되는 수밖에 없어요. 학교에서 학교 다니면서 다 실력으로 이렇게 공부를 서로 앞서 나가는데 자기는 공부 안 하고 그냥 왔다 갔다 한다면 이건 도태되는 거요. 예수 믿는 것도 똑같은 정신이 들어있어요. 일 년 다니고 이 년 다니고 십 년 다니면 그만큼 성장이 돼 있어야 되고, 처음 오는 신자들을 가르칠 수 있어야 되고 구역예배도 인도할 줄 알아야 되고 하는 그게 다 들어가는 거요.

 

교회 다니면서 난 아무 것도 못 해그러면서 아무 것도 안 하면 뭐요? 다른 면으로도 봉사를 또 할 줄 알아야지. 다른 면도 아무 것도 없고, 전혀 아무 것도 없다면 만날 하나님 불러서 만날 도와달라 그런다면 이거 뭐요? 그건 그럴 수 없다. 성도의 자세는 그런 게 아니다 그 말이요. 성도의 신앙의 정복적인 개척적인 그 기질이 신앙의 영적인 기질이 일반생활 면에서도 개척이고 정복이고 들어가는 거란 말이요. 그러다 보면 부자도 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 가난하게 되기도 하고. 하지만 가난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며 부잔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 말이요. 주위 환경에 늘 민감해가지고 늘 눌려 살고. 그건 안 된다. 자기에게 맡겨진 환경을 어찌하든지 회사든 어디든 자기 일인 줄 알고 얼마든지 해 나갈 수 있어야 된다. 만날 명령이나 받고 못 하네 잘 하네. 들어가라 거니 나가거니이거 어디 쓰겠냐? 믿는 사람이 그건 안 된다. 하기 싫으면 나가는 거고. 사장 잡고 싸우지 마라. 사장 잡고 싸우면 네가 별 수 있냐?

 

군병들의 받는 요는 국민으로부터 주어집니다. 군병들이 받는 요를 족하게 여기는 것이 쉽겠느냐 받는 요가 적다고 받는 돈이 적다고 폭력을 써서 빼앗는 것이 더 쉽겠느냐? 어느 것이 쉽겠어요?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인데 사람 죽이는 것이 쉽겠어요 살리는 것이 쉽겠어요? 살리는 게 어렵지요? 죽여 버리는 게 쉽고. 못 살리더라도 죽이는 것이 참 어렵습니까? 어떻게 사람을 만날 죽여요. 사람 죽이기 시작하면 그 사람 미쳐버려요. 미치게 돼 있어요. 정신이 헷가닥 하게 되는 거요. 그래서 우리가 전쟁터에 가서 사람 많이 죽인 사람들 생활을 바로 못하게 돼 있어요. 그런 게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라도 남 미워하고 시기질투하고 하지마라. 네가 귀신이 들려진다. 네가 큰일 난다. 네가. 그걸 알아야 돼요. 사랑은 자꾸 불어납니까? 미움도 자꾸 불어납니까? 어느 게 좋아요?

 

법을 지킨다는 것은 인간 자기와 모두를 위해서입니다. 신앙사상 면에서도 법을 지킨다는 그 속에는 자타의 이룰구원이 들어있습니다. 이루어진 구원이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안 지켰다는 말이기도 해요. 여기에는, 법을 안 지키면 형벌이 따라요. 일반적으로도 법 안 지키면 형벌이 따라요. 하나님의 법 안 지키면 형벌이 따라요. 돈을 사랑함이 모든 법질서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해하게 되는 겁니다.

 

세례를 받고 싶으냐?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거지요. 세례요한은. 세례 받는 각오가 있어야 하는 거지요. 각오 결심 없이 세례 받으면 안 되지요. 세례를 받으러 온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이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백성이고 하니까 세례를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법대로 살겠다고 하는 자세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15-16: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당시에 백성을 억울하게 만드는 불의한 자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더 모세 같은 메시아가 지팡이 들고 나타나서 좋은 세상을 만들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때마침 세례요한이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권위 있는 워낙 강한 발언을 하니까 사람들은 마음에 저 자가 혹시 오실 그이가 아닌가? 메시아가 아닌가?’ 모두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기가 메시아 그리스도가 아니고 내 뒤에 오시는 그 이가 그리스도라고 강하게 가르친 겁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이 물세례는 교회에서 다 받았지요? 물세례는 다 받습니다. 회중 앞에. ‘아이고, 저 사람도 이제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고 이제 각오를 하는구나그래서 , 우리교인이다. 믿는 백성이구나그렇게 생각을 하고 교제를 갖는 거지요.

 

물세례는 씻는 거. 무엇을 씻는 것이냐?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살던 것을 썩고 불타지고 진동되고 바람에 날려갈 것을 소원 목적하고 살던 것을 그 목적적인 생각을 요단강물에 다 씻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향하신 그 소원을 목적하고 살겠다고 지식적 양심적으로 하나님 앞에 각오와 결심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을 등지고 광야로 나와서 요단강 흐르는 물에서 세례를 받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흐르는 물에 씻어버리면 다시 안 돌아오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각오를 했냐? 그 생각을 다시 가져오지 마라. 다시 품지 마라.’ 그래서 흐르는 물에서 씻는다 그 말이요.

 

우리도 그럴까? 흐르는 물이 아니고 그릇에 깨끗한 물로 하니까 죄가 안 씻기는 건지 도로 죄짓고 도로 죄짓고 그러는 모양이요. 그러니까 흐르는 물로 우리도 갈까? 그래야 죄는 안 짓겠지요?

 

그 세상생각 그 양심을 씻은 물은 흘러서 사해바다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사해바다로 흘러 들어가 버렸어. 죄를 씻은 물은 죽음의 바다로 사망계로 가버렸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 말이요. 교회에서 하는 의식인 세례 속에는 그런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의미를 가진 세례를 다 받았느냐 그 말이요. 세례를 받긴 받았는데 그런 뜻이 들어있는 그 세례를 자기가 받았느냐 그 말이요. 교인이니까 그냥 받았고 자꾸 받으라고 그러니까 받았고. 그렇지요?

 

뜻을 알고 이 뜻이 담긴 물세례를 받으면 순서적으로 그 다음에는 성령과 불세례를 받게 됩니다. 의식세례 속에 뜻이 담긴 그 세례를 그 말이요. 받으면 순서적으로 성령과 불세례를 받게 된다. 성령의 세례는 진리로 생명의 말씀으로 성령의 열매의 사람으로. , 하나님 성품의 사람으로 진리진실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성령의 세례는 진리 깨달음으로 온단 말이요. 물세례도 안 받았는데 세상생각을 하나님 앞에 다 씻지도 않았는데 성령님이 진리말씀을 가지고 역사하느냐? 그건 안 한다 그 말이요.

 

그런데 성령의 세례 여기서 진리말씀으로 성령의 영감의 감화로 자기가 안 만들어지면 그 다음에는 고통의 불세례가 따른다. 사건이란 말이요. 고통의 불세례가 따른다. 그러니까 사건으로 고통을 주어서 속의 것을 회개하게 만드는 거죠. 이제 정신이 바로 돌아가게.

 

그 우리가 다 경험하는 거지만 물세례는 받았지만 진리이치로 성령의 영감으로 잘되지를 않으니까, 여기서 모든 삶의 지혜를 얻고 적진 속으로 뛰어들듯이 말씀으로 이렇게 죽자 사자 나가야 되겠는데, 죽으면 죽으리라로. 일상생활도 모든 살림살이도 그렇게 나가야 되겠는데 그게 그렇지 않다 그 말이요. 예수 믿기 전의 그 마음 그대로 갖고. 그러니 불세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제 네가 예수 믿는 거냐? 세례 받았느냐? 마음도 정신도 안 고쳤구나. 맞아라. 안 되겠다. 이제.’ 하나님의 참 사람으로 안 만들어지면 고통은 면할 길은 없다.

 

근데 문제는 정신 사상적으로 소원 목적적으로 세례요한과 같은 광야에 사는 종을 만나야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지 악한 거짓 종들을 만난다거나 진리진실의 사람으로 안 만들어진다면 하나님의 도끼에 찍힌다거나 불같은 고통의 세례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래가지고 어떻게 살까?

 

우리가 가만히 보면 참 그 정말 불우한 건지 참 기가 막힌 사람을 볼 수가 있어요. 이게 얘기를 꾸민다면 사실 있을 수 있는 일이고. 태어날 때부터 말하자면 엄마가 도망을 가버리고 누가 주워다가 자기 새끼 아니라고 또 고아원에 맡기고, 고아원에서 맨 싸움질이나 배우고 학교 가도 그저 부모 없다고 그러고 놀림 받고 공부도 못하고. 이게 남자의 경우보다도 여자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나이 들어서 이제 또 시집을 가야지. 시집가는 게 이게 제 멋대로 가는 거지요. 사람을 볼 줄 아나요? 모르지? 그러니 살다가 또 쫓겨나오지요. 또 쫓겨 나와서 또 유혹받아서 또 살다가 또 헤어지지요. 그러다 보니 얻어맞기도 하고 돈 조금 번 것 홀딱 빼앗기기도 하고.

 

이걸 가만 보면 사람이 한 마디로 깨닫지 못해가지고 강퍅하고 모진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 속에 막 시달려가지고. 그런 사람들 간혹 볼 수 있어요. 정말 그건 일반적으로 참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요. 그게. 왜냐하면 못 배운 상태에서 환경에서 사람의 마음이 모나게 비딱하게 가버렸으니까. 그러니까 말을 하면 아주 상스러운 욕도 막 나오고 그래요. 그런 사람들 가만 보면 사람이 나쁘다. 악하다이렇게 붙이기가 참 힘들어요. 오히려 참 불쌍하고 측은하다. , 그런 느낌을 갖게 돼요. 그런 사람 내가 만난 적도 있어요. 참 그 불쌍하고 측은한 사람이 참 많아요.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 가만히 보면 어떻게 해서 교회가가지고 이상한 교회 들어가서 만날 안수 받고 만날 복 복하면서 집문서 다 갖고 주고 털리고 안수 받는다 하면서 몸까지 다 빼앗기고 가난하게 되니 이제 믿음 없다. 축복 못 받는다그러며 쫓겨나가고. 그러면 이 교회밖에 없냐?’ 하며 또 딴 교회가면 반가이 맞아줄 것 같아요? 그 교회 가서도 또 그러고. 그러니까 아이고, 이제 예수도 안 믿으련다. 교회 놈들 하나도 믿을 것 없다. 예수도 안 믿으련다.’ 자기가 당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 없으니까. 그것도 가만 보면 참 어찌 이 지경이 됐나? 참 불쌍해요.

 

처음에 들어갈 때 옳은 교회 만나가지고 잘 자라면 아무렴 예수 바로 믿는 믿음에서 자기 갈 길이 나가게 돼 있어요. 원리가 그래요. 삶의 원리가 그래요. 그런데 보면 그 원리를 모르고 그냥 제 마음대로 그러니 어디 가서 신용을 얻고 누가 그를 인정해 줄 것이냐? 참 불쌍하고 처절한 사람이구나. 예수 믿는다는 걸 똑바로 알란 말이요. 자기가 구체적으로 생각을 하고.

 

어느 교회를 가든, 날라리 교회든 구복주의 교회든 그런 교회에서 신임을 얻으면 그 나름대로 보조를 같이 할 것 아니냐 그 말이요. 좋게 말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건 안 되는 일이지만. 어느 교회를 가든 그 교회가 하나님의 집이고 자기 집이 아니냐? 양다리 떡 걸쳐놓고 그러면 누구 가랑이가 찢어져요? 목사 가랑이가 찢어져요? 왜 그런 신앙생활을 하냐? 돌아다니면서 아이고, 여기만 제일인가?’ 그래? 그러면 다 가 봐요.

 

난 우리교회만 오라는 거 아니요. 다 돌아보고 돌아보고 돌아보다가 좋은데 있으면 거기서 몸담고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 받고 하나님의 사랑받고 자기 길이 열려 나가야지. 그게 옳은 거예요. 왔다 갔다 이게 들쑥날쑥 해놓으면 아무데도 신임 못 얻어요. 학교도 그러면 이게 외톨박이가 되지요? 회사도 그러면 이게 월급이 올라갑니까? 신용 못 받아요. 그게 인격자의 세계라. 그게 인간의 세계라. 예수 믿는 걸 제 멋대로 생각을 말아요. 아예 안 다니려면 아예 세상에 속해버리든지. 사실 속하면 안 되지요. 내 하는 말이 그렇지 적지 말아요. 허허허. 이런 거는 적는 게 아니요.

 

사람이 규모가 있어야 된다 그 말이요. 규모가 있어야 된다. 사람이 물 위에 기름이 둥둥 뜨듯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어디를 가도 그렇다. 무슨 일을 해도 그렇다. 사람 사는 걸 그렇게 살면 안 되고 예수 믿는 것도 그렇게 믿으면 안 된단 말이요. 어디를 가든 인류세상에 소속은 다 돼 있어요. 안 믿느냐?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 소속이 돼 있고, 믿느냐? 믿는 사람 소속이에요. 장로교 감리교 이게 다 소속이에요. 근데 아무데도 안 속하고 이것도 안 속하고 저것도 안 속하고 그럼 뭐가 되겠어요?

 

, 이 마루 닦는 걸레도 마루 쪽으로 소속이 돼 있어요. 행주도 그릇 쪽으로 소속이 돼 있어요. 만약의 경우 행주를 들고 마루를 닦는다든지 발을 닦는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리고 이 말이 나왔으니 행주를 걸레처럼 만들어놓지 말아요. 행주는 날마다 삶고 햇빛에 널고 그래요. 균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자칫 잘못하면 남의 집에 가서 실수하기 쉬워요. ‘행주인가 걸레인가잘 물어보고 애들 오줌을 닦든지 그래요. 반드시 물어보고. 나는 수건 걸린 거 딱 보고 내 수건보다 조금 깨끗하니까 그걸로 얼굴을 닦아요. 그런데 가만 보면 그게 발 닦은 수건이야.

 

참 교회 옳은 진리진실의 종을 만난다거나 그런 교회를 만나면 참 복이다. 경험자들의 얘기요. 이건. 성경을 우리가 보면 그렇고. 여기 봉천동 할매 여기 계시지만 지금 할매 연세가 어떻게 돼요? 할매가 지금 칠십이요? 내가 칠십인데? 친구네. 갑장? 나 갑장 안 해. 누가 더 젊었어요? 누가 더 젊은 것 같아요? 참 가만 보면 신앙의 세계로 보면 피해를 너무 당했구나. 피해를 너무 당했구나. 속고 속이고. 그러니까 신앙의 세계서는 눈이 어두우면 몰라요. 전혀 모르는 거요. ,

 

감리교에서 돌아온 분들도 평신도도 있고 이제 권사도 있고 목사도 있지만 가만 보면 너무 속았다. 너무 이게 모르고, 말하자면 충성봉사하면서 죄만 짓고 살았구나. 이거. 저는 그런 면으로 생각하면 아주 그냥 너무 원통해요. 그런 원통성이 본인들 속에서 있어야 되겠는데 그걸 본 내가 원통해서 못 견디겠는데 본인들은 널널해요. 나는 그걸 보면서 속에서 그냥 불이 붙는 거예요. 원수 좀 갚아라. 원수. 할머니, 원수 갚으려면 어떻게 할 거요? 막 영감 붙잡아다 두들겨 패고 싶지? 분명히 그럴 거라고. 원수 갚으려면 사랑해야지. 말이 그렇지만 사랑도 안 하면서 저러지. 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것도 젊었을 때 해야지 원 다 늙어 빠져서. 그 보면 상당히 어려운 지경에 빠져있는 그런 가정들 가만 보면 한 쪽 말만 들어서는 안 돼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여기. 반드시 이유가 있다.

 

, 우리 진리입장에서는 상대만 보지 말고 자기의 부족성을 낱낱이 생각하고 깨달아야 돼요. 그러기 전에는 참 힘들겠다. 말하자면 알지를 못해서 미련해서 당하고만 산 이 원통한 걸 상대에서 찾지 말고 그 원통성을 자기에게서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해결점을 찾고 이래야지. 참 예.

 

우리가 이 세례요한을 만나 후 기독교 종교계를 보게 되면 일반 교계적으로 보면 그 흐름이 나타난 일의 양이나 무슨 장기자랑을 가지고 사람들은 그리스도처럼 알아주는 일을 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사람에게 역사하심을 볼 수 있더라. 거짓 종들은 자기 장기자랑이지만 우리 주님은 성령과 불로 역사를 하는 거다. 그리고 참 종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기 위한 물세례의 작업만 할 뿐입니다. 이 성령과 불세례를 받아지게끔 그만큼 근접되게 물세례의 작업만 할 뿐이다. 따름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를 향한 각오와 결심을 가지게 할 때에 그 다음은 성령과 불세례가 오는 거다.

 

밖에서 집안으로 들어가려면 제일 첫 순서가 뭐요? 대문 열고 들어가서 신발 벗고. 그렇지요? 신발 벗고 그 다음에 옷 벗고 목욕하고 알몸으로 씻고 옷 갈아입고. 그 있잖아요. , 그 일반적인 순서가 그렇듯이 하나님의 집에도 신앙의 세계서도 그런 이치가 들어있다. 말하자면 완전히 하나님의 본질로서 인격적 성품적 변화가 되는 겁니다.

 

거짓 종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주는 기초작업이 아니고 그건 없고 완전히 세상화로 만들어놓는 겁니다. 이 마귀수법이요. 그리고 자기의 이력자랑 자기의 업적자랑으로 그리스도처럼 행세를 하는 겁니다. 목사가 자기 이력 업적 자랑을 하고 그 다음에 교인들로 그리스도처럼 보이게 해서, 말하자면 교주처럼 보이게 해서 그렇다 그 말이요. 그게 어디 신앙이겠느냐?

 

우리가 세례요한을 보면서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부터 세상을 의지 않고 광야에 살면서, 광야에 산다고 하는 것은 광야사상, 하나님의 말씀을 잡는 것. 광야사상을 가진 자에게 세례를 주더라. 세례 받으려면 광야로 나가야 되니까. , 그러니까 광야사상을 가진 자에게 세례를 주더라. 두 번째는 자기는 광야사상에 살지 않고 세상이라는 로마정신을 가지고 자기 세상을 사는 자가 또 있구나. 세 번째. 예수이름을 빙자하여 자기 세상을 키우는 자가 있구나. 교회를 보면 그게 다 보이는 거지요. 네 번째. 하나님의 온전한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진리이치와 상관없이 예수이름으로 물질축복 중심을 강조하고 충성봉사를 가르치는 자가 있구나.

 

다섯 번째.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되는 것과 관계없이 하나의 종교사업을 크게 하라고 가르치는 자가 있구나. 그 다음 여섯 번째. 이방종교적인 사상인줄 모르고 은둔주의 신비주의로 사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이 많구나. 신비주의자들 식으로 들어가게 되면 여기는 구원성장은 없고 인간 멸종이 되기 싶습니다. 근데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통치하고 지배하라그게 들어있어요. 우리는 극기주의 안 됩니다 인간 멸종돼요. 구원성장 있느냐? 없어요.

 

, 한 마디로 교회의 교훈이 하나님의 온전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면 전부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단정을 내려야 된다.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그건 신앙이 아니다 그 말이요. 옳은 진리이치로 바르게 깨닫고 자기 다스려 나가고 자기 주위를 다스리고. 이게 왕권이에요. 참 실력 있는 사람이요. 그렇게 나가야지 만날 세상이 무서워서 그저 만날 또 피해만 당하고. 지혜를 못 써가지고.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다. 진리이치의 신앙은 정복이에요. 정복.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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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이상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을 창조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진리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분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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