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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번성의 축복을 얻는 길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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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의 축복을 얻는 길 (창세기 17장 1-14절)


< 사탄의 인본주의를 주의하라 >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고 복을 주시면서 제일 먼저 하신 명령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이었다(창 1:28). 하나님의 제일 소원은 ‘사람의 생육과 번성’이지만 사탄의 제일 소원은 ‘사람의 생육과 번성을 막는 것’이다. 사탄은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살도록 인본주의를 내세운다. 그 사탄의 인본주의는 사람을 위하는 사상 같지만 사람의 생육과 번성을 막고 인류의 명줄을 끊으려는 사탄의 도구다.

 역사상 사탄이 인류의 명줄을 끊으려고 가장 애용한 도구는 전쟁이었다. 특히 20세기 이후에는 2번의 세계대전에 이어 6.25 전쟁까지 40년간 3번의 대 전쟁을 일으키고 사탄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야 인류의 명줄을 제대로 끊겠구나.” 그러나 전쟁 후 한국을 비롯해서 수많은 국가들이 베이비붐 현상으로 인구가 더 급속히 늘어났다. 그때 사탄은 전략 미스로 인한 큰 트라우마를 겪고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제 최적의 마지막 기회가 올 때까지는 세계대전으로 인류의 명줄을 끊으려고 쉽게 시도하지 말자.”

 그때부터 인류의 번성을 막으려는 사탄의 전략은 더 다양해지고 교묘해졌다. 그래서 이단 교주를 통해 영혼과 물질을 빼앗아 정상 교회까지 불신하게 하는 전략과 돈을 벌어준다면서 사람을 다단계 사슬로 묶는 사람 장사로 교인을 시험 들게 하는 전략 등을 사용했다. 특히 사탄의 인본주의를 내세워 사람을 위하는 척 하면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서 인류의 번성을 교묘하게 막았다. 전쟁으로 인류의 명줄을 끊지 못하자 사상으로 미혹해 인류의 명줄을 끊으려는 전략을 실행했는데 지금 그 전략이 상당히 먹히고 있다.

 사탄의 인본주의가 내세우는 주장을 보면 하나같이 인류의 번성을 막고 인류의 명줄을 끊으려는 전략이다. 첫째, 사탄의 인본주의는 자살을 옹호한다. “네 운명은 네가 주장해. 죽으면 끝이야.”라고 하면서 자살을 방조하다 못해 촉진시킨다. 그래서 안락사도 권하고 안락사 합법화 데모를 벌인다. 더 나아가 사탄은 인본적인 믿음으로 “자살해도 천국에 갈 수 있어.”라고 하면서 자살과 안락사를 인류의 명줄 끊는 전략으로 활용한다.

 둘째, 사탄의 인본주의는 낙태의 합법화를 주장한다. 태아 생명권보다 여성 인권이 중요하고 여성이 스스로 어머니가 될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낙태를 ‘생명을 끊는 것’이 아닌 ‘분만 전에 태아를 모체에서 분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내 몸, 내 인생, 내 선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결국 사탄의 인본주의는 ‘사람을 위하는 사상’이 아닌 ‘자기를 위하는 사상’으로서 낙태 주장도 사탄이 인권을 내세워 인류의 개체수가 느는 번성을 막아 인류의 명줄을 끊으려는 전략이다.

 셋째, 사탄의 인본주의는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인다. 그래서 “사형수의 아픔과 상처와 고통을 보듬어주라. 사형수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한다. 언뜻 보면 사형제 폐지 주장은 사람을 살리자는 말이니까 인류의 명줄 끊기 전략과 모순된 것 같다. 그러나 사형제가 없다면 살인이 담대해지면서 훨씬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결국 더 많은 사람을 죽여 인류의 개체수를 줄이고 인류의 명줄을 끊기 위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성경은 사형제를 인정한다. 그러면 성경보다 인본주의 사상이 더 사랑이 있는 것 같고 사람을 적절한 때에 죽게 하시는 하나님보다 인본주의 사상가가 더 사랑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탄의 이미지 트릭에 속지 말라. <월간새벽기도> 독자 중 감사편지를 보내온 사형수들도 있다. 어떤 사형수는 사형제 찬성 주장에 시험에 들겠지만 회개한 사형수는 시험에 들기보다 오히려 “제가 죽어도 마땅해요.”라고 할 것이다. 사형제 폐지론은 인권을 수호하는 사상 같지만 살인이 쉬워지는 풍조를 퍼뜨려 인류의 명줄을 끊으려는 사탄의 인본주의다.

 넷째, 사탄의 인본주의는 여성주의 운동을 악용한다. 여권 신장을 위한 건전한 여성주의는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극단적 여성주의는 그 목적이 인권 신장보다 남녀가 서로 증오하게 해서 결합과 번성을 막아 인류의 명줄을 끊는 사탄의 전략으로 악용되고 있다. 그 사상은 서로 사랑하고 섬기라는 말은 ‘꼰대의 말씀’이란 딱지를 붙여 폄하한다. 그 사상 추종자들은 유명한 여성주의 혹은 남성주의 웹사이트를 활동무대로 삼아 입에 담기 힘든 거친 말을 쏟아낸다. 그처럼 성 극단주의로 영혼을 훔치는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지 말라.

 한 아빠가 딸을 이성을 존중하며 아끼도록 지혜롭게 길렀다. 그 아빠가 가부장적이어서가 아니라 아들에게도 똑같이 이성을 존중하며 아끼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그 딸이 대학에 갔는데 동아리 선배가 자유와 인권을 내세워 이성에 대한 증오를 품게 해서 그 아빠는 너무 속상했다. 남녀를 떠나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와 사랑과 섬김을 교육해야지 자유와 인권을 내세워 이성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을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상황을 용납하면 그것은 사탄의 술책에 넘어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기본 바탕에서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라. 믿음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과의 좋은 만남을 사모하라. 무책임한 선배가 “네 하고 싶은 대로 해. 무조건 부모 말을 따르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라고 코치하면 그 말을 멋지게 여기고 따르지 말라. 인생 코칭은 좋은 사람에게서 잘 받으라. 아무에게나 자기 영혼과 마음을 열면 사탄의 인본주의에 빠져 영혼의 자유를 얻기보다 오히려 잃고 번성의 축복도 잃고 결국 불행해진다.

 다섯째, 사탄의 인본주의는 동성애를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동성애와 성 극단주의는 관련이 깊다. 성 극단주의를 통해 이성을 비하하고 적개심을 가지게 하면 애정 대상으로 이성을 찾기보다 동성을 찾기 때문이다. 동성애의 쾌락은 이성애의 쾌락보다 훨씬 강도가 크다. 그처럼 동성관계를 통한 강도 높은 일탈적인 쾌락을 제공하면서 아이를 못 낳게 하는 사탄의 동성애 전략은 현대 사회에서 인류의 명줄을 끊는 효과적인 최첨단 전략이 되었다.

 여섯째, 사탄의 인본주의는 차이까지 차별로 여기게 만든다. 어디든지 차이는 있다. 천국에도 있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했다. 차이는 다채로움을 통한 아름다움의 원천이고 다양함을 통한 풍성함의 원천이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는 정당한 차이까지 열등감과 상처와 비교의식을 자극해 차별로 인식하게 만드는 사탄의 인본주의에 넘어가지 말라.

 어느 주일에 20대 청년과 50대 장년이 교회에 처음 왔다. 그런데 목사님이 20대 청년은 무관심한 것 같고 50대 장년만 환대하는 것 같았다. 그때 한 교인이 겉모습만 보고 목사가 사람을 차별한다고 시험에 들었다. 차별받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만 앞서서 내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쉽게 시험에 드는 것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휴머니즘 같지만 그것은 좋은 휴머니즘이 아니라 자기 의다.

 목회자는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세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청년에게는 청년의 환대가 아버지뻘인 목회자의 환대보다 나을 수 있다. 그래서 목회자가 20대 청년이 아닌 50대 장년과 교제하는데 그것을 차별로 여기고 시험에 들면 사탄에 미혹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사실상 그 주일에 목회자가 환대한 50대 장년은 오래 전부터 목회자의 말씀에 깊은 은혜를 받고 크게 헌신해왔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은밀하게 헌신하다가 목회자에게 직접 감사하고 싶다고 처음 찾아왔기에 그를 특별히 환대하는 것은 감사를 아는 태도지 차별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런 이면의 스토리도 모르고 겉모습만 보고 “목사님이 청년과 장년을 차별해?”라고 단정하고 시험에 든다면 지나친 자기 의다. 겉모습만 보고 차이를 차별로 단정한 후 “차별받는 사람을 위해 이 한 몸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는 희생까지 감수하리라.”고 하는 것은 사탄의 인본주의에 미혹되는 어리석은 태도다. 그처럼 사탄의 인본주의에 미혹되면 어디서든지 신실하게 순종하고 충성하지 못해서 수시로 시험 들다가 번성의 축복을 놓친다.

 사람을 외모나 소유로 차별하면 잘못이지만 헌신하는 사람에게 심은 대로 거두게 하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의와 감사를 아는 삶이다. 사탄은 의와 감사를 아는 삶까지 차별로 인식시키는 미혹의 천재다. 사탄의 인본주의에 미혹되지 말라. 사탄의 인본주의가 겉으로는 따뜻하게 보이고 의로운 척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결코 좋은 사상이 아니다.

 사탄의 인본주의는 인류의 명줄을 끊으려고 교묘하게 인권을 내세운 사상이다. 사탄이 내민 독 묻은 인본주의의 사과를 주의하라. 나를 위해주는 척 하고 속 시원하게 해주는 말이 공동체와 사회 시스템을 깨뜨리고 결국 나 자신을 깨뜨릴 때도 많다. 코칭도 잘 받고 멘토도 잘 두라. 사탄의 인본주의는 이단만큼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인류를 위한 사상이 아닌 자기 본위의 사상으로서 오히려 인류를 근절하려는 사탄의 도구임을 잊지 말라.

< 번성의 축복을 얻는 길 >

 본문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두신 번성의 언약이 나온다(2절). 언약의 수혜자로서 아브라함처럼 번성의 축복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1절). 그 말씀은 하나님께 완벽한 행동을 보이라는 말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뜻을 내포한다. 첫째,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두려움을 가지고 영성 자랑을 삼가라는 말이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죄와 허물에 대해 회개를 잘하라는 말이다. 셋째, 지금보다 조금 더 성숙해지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를 따라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기를 힘쓰면 번성의 축복을 얻을 것이다.

 둘째, 이름을 바꾸라(2-5절). 하나님이 ‘큰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이라고 바꾸게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란 이름이 운수대통의 이름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름을 바꾸라는 말은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 중심적으로 바꾸라는 뜻도 있다. 야곱, 베드로, 바울 등은 이름을 바꾸면서 그들의 전 존재를 하나님께 바쳤다. 이름을 바꾼 것 자체보다 이름을 바꾸면서 하나님 중심적으로 삶을 바꾼 것이 번성의 씨앗이 된 것이다.

 셋째,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라(7-9절). 언약은 하나님도 지키시지만 사람도 지키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을 잘 믿어도 문제와 시련은 수시로 찾아온다. 그래도 사랑과 언약의 하나님이 합력해 선을 이루심을 굳게 믿고 하나님과 교회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앞에 다짐했던 약속을 힘써 지키라. 사람은 포기해도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포기하지 말고 꿈과 비전도 포기하지 마라.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고 시련 중에도 인내하고 나아가면 번성의 때가 찾아온다.
 
 넷째, 할례를 받으라(10-11절). 구약시대의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흔적을 몸에 남기는 의식이고 신약시대의 세례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었음을 뜻하는 의식이다. 그래서 신약 성도에게 “할례를 받으라.”는 말씀은 “자기 껍질을 벗기라.”는 개념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자기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다. 자기를 깨뜨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교회생활의 행복도 맛볼 수 없다. 십자가의 삶이 세상 사람에게 어리석은 삶이지만 성도에게는 대 자유를 가져다주는 구원의 능력이다.

 살다 보면 큰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상처의 흔적을 지닌 채 몇 십 년을 살아간다. 그럴 필요가 없다. 과거의 상처를 잘 떨치면 하나님은 반드시 새로운 더 좋은 기회와 만남을 허락하신다. 그 기회와 만남을 번성의 축복으로 연결시키려면 자기를 깨뜨리고 십자가를 지고 자기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 자기를 깨뜨리지 않고 ‘자기’라는 껍질에 갇혀 있으면 자기 속에 내제된 소중한 덕과 자질이 표출될 수 없다. 십자가의 믿음으로 자기의 껍질을 깰 때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면서 대 자유도 얻고 번성의 축복도 얻는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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