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물질주의를 잘 극복하라

  • 이한규 목사
  • 483
  • 0

물질주의를 잘 극복하라 (창세기 19장 12-22절)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라 >

 소돔의 악행을 본 천사들은 소돔을 멸하기로 작정하고 롯에게 가족들과 함께 그곳을 빨리 떠나라고 했다(12-13절). 그 말을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자 사위들은 롯의 얘기를 농담으로 여겼다(14절). 사위들의 냉소로 머뭇거릴 때 마침 동이 텄다. 천사는 롯을 재촉해서 빨리 아내와 두 딸을 이끌고 소돔에서 멸망하지 않도록 떠나라고 했다(15절). 그래도 롯이 지체하자 롯의 손과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성 밖으로 이끌면서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해 멸망을 면하라고 했다(16-17절).

 그때 롯이 천사들에게 요청했다. “내 주여!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지 마소서. 산에까지 갈 수 없습니다. 재앙을 만나 죽을 것 같습니다. 저 작은 성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으니까 그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결국 천사들은 그 작은 성으로 피하게 했는데 그 작은 성이 소알 성이었다(22절). 창세기 13장 10절을 보면 소알은 롯이 아브라함과 헤어지면서 땅을 선택할 때 눈에 좋게 보였던 땅이었다. 롯이 산으로 가기보다 소돔의 축소판 같은 소알 성으로 가겠다고 한 것은 그가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사람들이 죽어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물질과 땅과 화려한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가진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소돔이나 소알이 상징하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잘 버리지 않으면 그것이 결국 내 인생과 가족과 내가 속한 공동체를 태워버릴 것이다. 정당한 땀의 대가로 물질을 추구해도 물질주의에 빠지지는 말라.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는 줄 알라(갈 6:14).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라. 삽지가 외에 다른 것을 자랑하는 삶은 사랑이 없는 삶이다. 십자가의 의미를 알면 세상 자랑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십자가를 지면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고 자랑과 인정이 없어도 평안하게 살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자랑거리가 많았지만 예수님을 알면서 자기 자랑거리를 배설물로 여겼다. 배설물은 버릴수록 시원하다. 십자가를 지고 물질주의를 잘 극복할 때 십자가의 놀라운 능력과 축복을 체험할 것이다.

< 물질주의를 잘 극복하라라 >

 신앙생활에서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왜 중요한가? 첫째,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감사는 사람됨과 성도됨을 높이고 더 큰 감사를 낳는다. 둘째, 거룩한 공동체에 힘을 보태주는 책임감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셋째,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실한 드나베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보상을 예비하기 때문이다. 넷째, 드림을 통해 탐욕을 극복하는 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물질주의를 극복해야 인생의 의미와 보람과 행복도 커진다. 물질을 외면하지 않고 잘 선용하려고 추구하면서도 물질주의를 잘 극복하는 삶은 성도의 평생 과제가 되어야 한다. 사람에게 선한 변화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런 변화를 이루려면 구체적으로 어디선가 선한 변화의 동력을 얻어야 한다. 그 동력을 만드는 데 실제적으로 큰 보탬이 되는 삶이 ‘드나베의 삶’의 실천을 통해 물질주의를 극복하는 삶이다.

 혼자 챙기기에 급급하면 채워지지 않고 헐떡임만 심해진다. 영혼을 물질로 채우려고 하면 허무감만 커진다. 영혼의 바다는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진다.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상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물질을 사람의 마음을 얻고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도구로 잘 사용하라. 참된 믿음을 통해 물질주의를 깨라. 왜 현대 형통 신학이 위험한가? 물질주의를 깨기보다 오히려 조장하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이 가시적인 축복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그래도 가시적인 축복을 믿음의 주된 목표로 삼지 말고 참된 믿음으로 저절로 따라오게 하라. 그러면 원하는 것을 이루거나 얻지 못해도 낙심과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더 많이 가지는 것에 있다는 아론의 종교에 미혹되지 말고 더 많이 나누는 것에 있다는 바른 기독교를 추구하라. 정당하게 많은 것을 가지려는 노력도 궁극적으로 더 많이 나누기 위한 것이다. 물질주의를 잘 극복해야 참된 축복과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삭제

"물질주의를 잘 극복하라"

이 게시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