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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살아 돌아온 21명이 왜 비난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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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

요즈음 아프간 사태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졌다. 탈레반은 아프간에 봉사하러 갔던 스물세 명의 한국인들을 인질로 납치해서 6주간 토굴과 오두막집에 가두어 놓았다. 그 중 두 명은 죽이고 나머지는 계속 가두어 두면서 몸이 아파도 약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두 명을 먼저 풀어준 뒤 남은 열아홉 명을 풀어 주면서 거액의 몸값을 챙겼다는 소문도 있다. 이들을 풀어 주며 탈레반 대변인은 이번 납치 사건의 성과가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 사건을 통해서 살아 돌아온 스물한 명은 마치 강도에게 실컷 얻어맞은 뒤에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숨죽여 울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이것이 너무 딱하다. 이들을 보고 느낀 것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제일 먼저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들은 천인공로 할 일을 저지른 탈레반이다. 그런데 왜 피해자들인 피랍자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가?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피랍자들을 욕하는 대신 격려해야 하고 위로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들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감히 주장한다. 물론 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청년들이 많아야 한국이 복을 받는다고 감히 주장한다.

예를 들어보자. 강도가 많이 출몰하는 어떤 동네에 너무 가난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 청년이 그들을 도우러 가려하자 아버지는 위험하다고 말렸다. 이 청년은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 몰래 갔다가 그만 강도에게 붙잡혀 흠씬 얻어맞고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그에게 ‘아버지 말을 안 듣더니 꼴좋다’고 비난해야 하는가. 근시안적으로만 보고 그를 꾸짖고 자꾸 종아리를 때린다면 그는 스스로 결심하면서 매정한 인간으로 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 청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런 따뜻한 행동을 격려하고 칭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는 계속해서 선을 행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때 사회가 따뜻해지고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들이 칭찬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 지역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갔다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그들은 몸과 행동으로 증명한 것이다.

둘째, 그들의 봉사는 물질적 희생을 동반한 봉사였다. 입으로만의 봉사가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고 회사에서 휴가를 얻어서 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을 욕하려면 수백만 원의 금전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남을 도와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남을 돕기는커녕 비난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희생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셋째, 그들은 장기간 토굴 생활의 악조건 속에서 총을 들이대며 개종을 강요하는 위협을 이겼을 뿐만 아니라 개종하면 풀어 준다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과 신앙을 지켰다는 것이다. 쉽게 변절하고 상황에 따라 지조가 흔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넷째, 이들은 잠시도 더 머물고 싶지 않았을 그 토굴 생활의 고통에도 석방을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움을 보였다.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 누가 그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희생적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는 서로 먼저 석방되기 위해 다툼을 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이들은 역사의 빚을 갚고자 한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쇄국정책으로 대동강에 온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워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서양 선교사들을 칼로 목 베어 죽였다. 목민심서에 보면 성경을 소유하거나 읽었던 사람들까지 모두 찾아 처형했다. 탈레반보다 더욱 가혹하게 기독교를 핍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 선교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처절하게 폐허가 되었을 때에 달려와서 옥수수빵과 우유, 의류를 나눠 주었고 여성들과 평민들과 천민들에게도 글을 가르쳐 주었다. 또 신앙과 신기술, 새로운 가치관들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랑의 빚을 갚을 만큼 우리는 복을 받았고 성숙해졌다. 이제는 다른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봉사를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자랑거리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이러한 이들로 인해 6·25의 잿더미 속에서 단기간 내에 세계 굴지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고 이제 남을 돕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이다.

물론 이번 아프간 사건과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법에서 금한 것을 어기면서 다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저질러진 일을 탓하며 봉사단에 대한 비난만 일삼고 있다면 탈레반의 납치 행위에 당위성을 주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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