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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 목사의 개척교회 탈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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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구 목사 (공덕동 우리교회)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오히려 일을 더 많이 만들어서 했죠.”

우리교회 박석구 목사의 ‘개척교회 탈출기’ 제1계명이다. 그의 뚝심있는 목회 경험담은 개척 교회에서 한 단계 성장하기를 원하는 많은 일선 목회자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박 목사는 타고난 워커홀릭(workaholic)이다. 부교역자 시절부터 맡겨진 일에만 안주하지 않고 레크레이션 강사로 섬겼다. 지난 1990년 처음 개척을 시작한 이후에는 일부러 돈이 많이 드는 행사들을 계획하고, 지역주민들과의 접촉을 늘리고자 애썼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교회는 조금씩 성장해 갔고, 신대방 지하실에서 시작한 교회는 7년만에 봉천동에 있는 지상 건물로 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 재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어려운 교회 형편에 성도들은 딱한 사정을 하소연하며 교회에서 돈을 빌려갔고, 돈을 빌린 성도들은 도망가기 일쑤였다. 빌려준 돈만 해도 3억은 족히 될 것이라고 박 목사는 말했다. 결국 박 목사는 목사의 직분으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돈이 없다고 교회 문을 닫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박 목사는 1년간 전국을 다니면서 꽃배달을 한 적도 있었고,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기도 했다. 울면서 했다고 한다.

개척을 하면서 힘들었던 일은 셀 수 없었다. 피아노를 옮기다 피아노에 깔려 다친 적도 있었고, 더운 여름에 교회 종탑을 세우다 열사병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가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없으면 소극적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힘들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인내하고 가면 하나님께서 역전시켜 주십니다.”

실제로 박 목사는 ‘역전’을 많이 체험했다. 건물 주인의 핍박으로 월세에서 전세로 성전을 옮겼고, 한 성도의 배신은 교회 건물을 구입하게 했으며, 한 집사의 이중플레이는 교회 건축을 시작하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박 목사는 하도 약이 오르고 괴로워서 화병까지 생겼지만, 아픔을 통한 성숙과 발전을 깨닫게 됐다.

박 목사는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또 도움의 손길만을 바라봐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개척교회에는 성도들이 부담돼서 등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박 목사는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지 말고 희생하려는 자세가 필요하죠.” 목회자가 먼저 그러한 자세를 보여야 성도들이 따라오지 않겠냐는 뜻이었다.

박 목사는 개척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으로 먼저 베푸는 것에 익숙하다. 식사 시간이면 자리에 없는 성도들까지 불러서 밥을 사는 것은 예삿일이고, 명절이 되면 모든 성도들에게 선물을 돌린다. 토요일이면 성도들에게 문자를 한 통씩 넣어 주일예배 참석을 독려한다. “성도들과 화목하려면 제가 손해봐야죠.”

지역 주민들에게도 계속해서 베풀었다. 5월에는 지역 노인들에게 온천 관광을 시켜주고, 교회에서 매주 푸드뱅크를 통해 야채를 나눠주고 있다. IMF 때는 교회 사정도 힘들어졌지만 오히려 용산역으로 나가서 노숙자들에게 밥퍼 사역을 했다. 이런 교회가 성전을 건축한다는데 지역 주민들이 반대할 리가 없다. ‘먼저 베풀라’, ‘지역과 함께 호흡하라’가 개척교회 탈출기 제2계명쯤 되는 셈이다.

날이 갈수록 성도들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목회 현장, 박 목사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금은 건물이 전도한다고 하잖아요? 교회에 대한 주인정신이 많이 사라졌어요. 기쁜 일도 힘든 일도 같이하면서 가다 보면 이길 수 있는데 말이죠.” ‘내 교회’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있다고 박 목사는 말했다. “하지만 내 교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목회자의 역할이죠. 그러려면 일거리를 만들고, 꾸준히 성도들과 부대끼고, 재산도 섞고, 덕을 끼치는 수밖에 없어요.”

목회자와 성도들에게는 일정한 구별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성도들이 목회자를 어려워하게 되면, 속에 있는 얘기들은 할 수 없게 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가르칠 것은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고 박 목사는 말했다. 부교역자들에게도 그러한 것들을 강조하며, 성도들에게 절대 아부하지 말라고 말한다. 실제로 박 목사는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절대 반팔을 입지 않는 어떤 면에서 ‘고지식한’ 목회자다. “성도들과 가까이해야 하지만 무서울 때는 무서워야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교회 전경.

그래서 박 목사는 교회에서 주력하고 있는 중국에 선교를 갈 때면 꼭 성도들을 데려간다. ‘목회자로서 풀어지지 않기 위해서’란다. 또 절대 호텔에서 숙식하지 않고 성도들을 고생시켜서 여행이 아닌 선교가 되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또 박 목사가 시무하는 우리교회는 지킬 것이 많다. 우선 주일성수가 철저하다. 주일성수가 되지 않으면 중직에도 임명하지 않는다. 주일에는 하루종일 예배가 있어 오히려 평일보다 힘든 일정이고, 매일 밤 9시 기도회, 매달 특별새벽기도회와 분기별 정오기도회 등 스파르타식 신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박 목사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복지센터를 건립하는 것이 꿈이다. 거기에 고아원과 양로원 등을 두고 무료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복지센터에는 기독교 대안학교도 세워 지역 주민들과 함께 숨쉬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개척교회 탈출에는 무엇보다도 ‘꿈’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이대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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