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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진짜 외래 종교(용재생각4)<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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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니 5월 19일이 석가탄신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서양 외래 종교지만 불교는 전통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박현은 <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라는 저서에서 외래종교
인 불교 때문에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이 가지고 있는 평등과 진취성이 사라지
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가 유입된 시기는 삼국시대인데,

<그 당시 삼국이 가장 먼저 발전 시켜내려고 한 것은 삼국의 뿌리가 되는 고조
선의 하늘 사상과 하늘 숭배 문화였다.> (박현)

<사기>의 주에 단군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치우를 <하늘의 아들> 즉 천자라
고 기록하고 있고, 삼국을 비롯한 그 이전의 모든 국가에서 제천행사를 매년 열
고 있었던 것을 볼 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전통 사상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 왕검의 정치구호로 알려진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홍익인간)와 <세상에서 진리(하늘의 이치)를 구현해 낸
다>(재세이화)로 압축되는데, 삼국시대 전반기까지의 부족 연맹체로서 가지
고 있는 지방분권적이고 진취적인 기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인간의 근본 이상과 일치하는 뛰어난 사상
을 갖추고 있었지만, 왕족을 비롯한 소수층은 자신들의 권력독점 욕망을 실현
시키기 위해 무언가 다른 사상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박현)

즉, 중앙집권적인 왕권강화를 위해 전통사상을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삼성출판사의 한국사상전서 1권인 <한국의 불교사상>을 보면

<고구려 승려들의 모든 노력의 결실을 외지에서 거두게 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라고 저자가 한탄하고 있다.
고조선을 그대로 계승한데다 여러 민족의 연맹체인 고구려에서는 끝내 불교가
흡수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보장왕 때의 연개소문은 불교 대신에 도교를 장려하였지만, 끝내 실패하
고 말았다.
반면에 백제는 처음부터 온조와 비류를 중심으로 한 고구려계의 이주민이 주변
을 정복하면서 세운 나라였기 때문에 쉽게 불교가 받아들여져, 화려하고 정제
된 예술을 보여주었지만, 알맹이를 잃어버린 껍데기만 그럴듯한 나라로 전락하
고 말았다.

<고구려가 외래사상을 둘러싸고 지나치게 대립, 갈등했다면 백제는 지나치게
외래사상에 의존하려고 하였다.> (박현)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은 그들의 문화적 허약함 때문이었다.>(박현)

신라 역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족연맹체로 시작한 나라였기 때문에 불교
가 쉽게 들어올 수 없었고, 공인된 후에는 전통사상에 흡수되는 모습을 보였
다.
<삼국사기>에 남아있는 최치원의 문장 하나가 신라의 그러한 자세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신의 도가 있는데 그 이름을 풍류라고 한다. 그 도의 연원은 선
가의 사적에 잘 밝혀져 있으며 사실상 세 가지 사상(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원
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신라의 성장 역시 그들의 강력한 문화적 주체성 때문이었다.>(박현)
<하지만 신라는 통일 후 백제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박현)

박현은 신라의 통일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이 신라의 자세를 칭찬
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끝가지 우상숭배를 거부한 고구려에 후한 점수를 주
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고구려는 우리가 흔히 발해라고 알고 있는 해동성국, 대진국으
로 다시 태어난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본래 하나님을 섬기던 민족이었다.
<홍수 이 후>와 <동방>의 저자이자 창조사학회 부회장인 김성일은 <한민족
기원대탐사>라는 책을 통해 우리 민족이 본래 아라랏 산을 넘어 동방으로 이주
한 민족임을 밝히고 있다.
(무궁화를 한영사전에서 찾아보면 영어로 The Roses Of Sharon, 즉 샤론의
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선(禪)을 아주 중요시 한다.
<환단고기>등을 보면 본래 고조선은 세습이나 무력으로 단군의 지위가 물려지
지 않았고, 선(禪)을 통한 사람이 단군, 즉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 한
자를 살펴보면 참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보일 시(示)자를 가만히 보면 一 위에는 하나이지만 一 아래로 세 가지 모습으
로 나타나는 것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그 옆에 말씀(曰)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오면 바로 신(神), 즉 하나님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示)과 더불어 새벽(早)에 대화(口 口)를 나누는 모습이 바로 선
(禪)인 것이다.
그리고 단(單)자는 '혼자, 외롭다'라는 뜻인데 그 순간에도 누군가 함께 있어
둘(口 口)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선의 본래 의미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니 불교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
럼 혼자 산 속의 동굴 속에서 벽보고 앉아서 마음을 비우는 그런 것이 아닌 것
이다.
즉,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고, 그렇게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
이 단군의 지위에 오른다는 이야기인데, 바로 구약의 족장 시대와 사사시대의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그러한 선(禪)의 모습은 또한 마가복음 1장 35절의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이기
도 하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
시더니....>

까마득한 옛날, 고조선 시대로부터 하나님을 섬겼던 우리 민족에게는 불교야말
로 외래 종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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