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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우리들이 오해하는 몇 가지 그중 하나...<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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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디엔가는 참된 진리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며, 헤매이고 방황하던 시절. 그 숱한 날들을 지나 주님을 만난 지 어느새 십년 세월이 되어갑니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한 탓에 여러가지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그 경험들이 신앙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쓰리고 아픈 기억들로 가득찬 실패(?)로 점철된 경험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여러가지 일들과 이유들로 힘들어하는 지체들을 보면서 오늘은 왠지 하소연이라도 하는듯한 기분이 듭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말입니다.

우리는 삶의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크게 오해하는 몇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이렇게 말하면 저는 뭘 잘 아는 것처럼, 잘난척한다고 생각하실 분이 혹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정도의 오해나 시선을 두려워하지도 신경쓰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것들은 제 소관이 아닌 까닭에 제가 신경을 안 쓰겠습니다. 편하게 나누고 싶다는 뜻입니다.)

언제이던가 신앙생활을 막 시작했던 무렵 "발자욱" 이라고 하는 (...설명안해도 아실겁니다.주님이 우리를 업고 건넜다는 이야기...) 이야기를 해 주던 후배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참 깊은 감동을 받았던 의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오류가 발견되더군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과연 우리의 삶의 어려운 순간 순간마다, 우리와 고통을 함께 하신다는 의미일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 보았더랬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슬픔을 보시며 함께 슬퍼하시고, 우리가 아파할때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순간에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그것을 바라보고 계실까?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이미 생각해보신 분들도 계실테지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하나님의 편에서(하나님중심) 생각하지 못하고, 인간중심(이기적)으로 생각하는 인본주의가 낳은 또 하나의 하나님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의 뜻은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거나 겪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팽겨쳐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그 모든 일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그 말이 그 말 같지만 깊이 한번 생각해 주시길...)
우리가 고통 당할 때 그 고통이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우리가 슬픔 당할 때의 그 슬픔의 출처가 어디일까요?
우리 삶의 모든 경우와 때에 그 이유와 원인이 어디일까요?
바로 하나님께로부터입니다.
우리의 실패도, 고통도, 쓰라린 이별의 아픔도, 그 모든 슬픔의 눈물도 모두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말씀은 고통이건 슬픔이건 기쁨이건  그것이 무엇이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아닐거라구요?
그렇다면 제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를 몇 가지 나열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하나님은 전능자이십니다.
-우리가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고통스러워해야 할 만큼 무능하지 않습니다.(저 같으면 그 고통을 없애버리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자의 고통이나 슬픔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면서 마음만 아파한다면 그게 무슨 얼어죽을 사랑입니까?(자유의지를 존중해 주는 것이라구요. 웃기지좀 말라하세요)

우리가 당하는 그 모든 순간을 그저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신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강한 부정이자 도전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습니다(이건 제 주장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첫째(순서는 임의로 붙였을 뿐...)로 절대적 주권성입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 어떤 이유도 그 분의 뜻이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둘째로 절대적 신실성입니다.
-절대적 전능자시라고 해서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룰(공의)대로 그 계획과 약속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변덕도 없이 이루십니다.
셋째로 영원성입니다.
-설명이 필요 없죠
넷째로 자비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사랑이나 자비심이 아닙니다.
다섯째로 전능성이십니다
-모든 계획과 약속을 뜻대로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분이 원칙도 없이 계획도 없이, 인간의 희.노.애.락에 따라 좌우지되며 인간의 감성처럼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바라본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슬픔이, 고통이, 이별이, 병듬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하나님이 우리와 백퍼센트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의 순간도, 슬픔의 시간도, 쓰라린 실패의 순간도 바로 이 이유때무에 괜찮은 것이며,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것이잖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실패입니다.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아래에 옥합을 깨는 이님의 '얼마짜리입니까' 를 읽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마음이 아프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님의 삶이기에 기쁘고 다행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경험의 한 부분입니다. 아픔과 고통의 경험이 많을수록 천국에서 하나님께 대한 찬양거리가 많아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패와 고통과 어려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진정 복있는 자의 특권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이 고통이나 슬픔을 괴로와하는 법입니다. 그 고통이나 슬픔의 출처를 모르니 답답하고 괴로울수밖에 없겠지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옥합을 깨는 이님(개인적인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과 같은 분들이 겪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분으로 말미암은 일이 아니라 그 들 개인적인 이유때문에 겪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도대체 뭐 하는 양반입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의 삶을 제 멋대로 살게 방관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사랑에 대해서 오해하지 마십시요. 사리판단도 못하는 자녀들을 제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남의 새끼라면 몰라도) 사람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러실리는 더 더욱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죄를 짓게도 하시고, 실패도 하게 하시고, 고통도 주시고...) 하실리가 없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감히 말씀드리지만 만구 지들<그렇게 생각하는자 들> 생각일뿐입니다.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이 보기에 좋은 일만 하시는 반쪽자리 반능자가 아니라 전능자이십니다. 반쪽짜리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드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전 화가 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패의 원인이, 고통의 원인이, 슬픔의 원인이 하나님께로부터가 아니라면...
우리의 삶의 모습이 우리의 행위여하와 선택여부에 달린 것이라면 지금 성공의 모습(물론 일시적인...)을 하고 계신 분들은 뭐가 그리 잘 나고 자격이 있어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일까요?(자신 있습니까...하나님앞에서 당당히 어깨를 펼...)

우리의 육신은 너무나 연약하기에
다가오는 순간 순간의 삶의 모습이 힘겨울때도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 훈련의 강도는 알아서 그 목적에 맞게 조절하게 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만...
주제를 벗어난 듯해 보입니다만... 뭐 토론하는 것이 아니지만...
주제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에 대한 오해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모습은 0.000000...퍼센트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바르게 분별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겠지요. 그노력마저도 하게 해 주십니다만)

쓰다보니 넘 길어졌군요.
우리에게 오는 고통도, 슬픔도, 그 어떤 쓰라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기에 견딜 수 있는게 아니라, 그 분에 의지하여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 분께서도 고통스럽게 바라보고 계시는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 당신이 주시는 선물자체입니다. 그래서 받아들일수 있는 것입니다. 힘들어죽겠으니 견딜힘을 달라고 조를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죽이던지 살리던지 하나님뜻대로 될 것을 믿기에 그 어떤 환란 가운데에서 평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 함께 하신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죽음도 유익함이라고 감히 우리들은 말하지 않습니까? 바고 그 죽음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믿고 사랑하는 그 분이 하시는 일이기에 웃으면서 죽을 수 있는(사실 죽는게 아니죠 육신의 장막을 벗어던지고 하나님께로 이사가는 것이죠..할렐루야!) 것이 아닙니까? 그 분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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