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 5:13)

첨부 1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마 5:13)

‘노블레스 오블리제(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블레스’라는 말은 ‘귀족, 사회지도층’이라는 말입니다. ‘오블리제’라는 말은 책임과 도덕적인 의무를 말합니다. 즉 사회지도층의 도덕적인 책임의무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혜택을 받은 자들, 특권 계층의 솔선수범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씨 조선 500년 역사 중, 명문가 이야기 가운데 경주의 최 부자집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부불삼대’라고 해서 부자는 삼대를 가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 집안은 9대동안 진사로 지내고 12대를 만석을 한 집안으로 유명합니다. 

여러분 12대를 만석을 했다는 것은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하면 근 400년을 부자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조 500년 가운데 400년을 부자로 살았다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은 아닙니다. 아마 전쟁이나 이런 어려움이 없었더라면 이 집은 더 오랫동안 지속됐을 것입니다. 이 부잣집도 그냥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주 최 부자집의 가훈이 6가지인데 이 집의 가훈을 소개하겠습니다. 

1)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 
진사는 양반의 최소한의 자격 요건입니다. 가진 자가 권력까지 가지면 안 된다는 것. 권력을 가지고 남을 돕는 일을 하든지 소유를 가지고 남을 돕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만석이상 불리지 말라.’ 
재산불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 부자집은 자기들의 생각을 넘으면 사회에 환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최 부자집의 돈이 늘어나기를 바랬습니다. 보통은 부자집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데, 이 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3)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1년에 3천석의 수입 중, 1천석은 집안일을 위해 쓰고 또 1천석은 나그네 대접하는데 쓰고 남은 1천석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썼다고 합니다. 

4) ‘흉년에는 논을 사지 말라.’ 
흉년에 헐값으로 땅을 사서 가난한 사람의 그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 버는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5)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사치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6)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내 식구, 내 집이 아니라 100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400년의 역사를 만석꾼집안으로 살아왔던 경주 최 부자집의 성공 비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나 혼자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잘 되고, 나 때문에 남이 잘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봅니다.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서 몇 가지의 질문을 떠올려 봅니다.

1.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항상 ‘그리스도인인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왕족입니다. 다시 말하면 로얄 패밀리입니다. 한번 따라하시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로얄 패밀리다. 아멘.

왕족이 잘 해야죠. 왕족이 잘하면 나라가 잘 되고,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에 1000만 명 정도의 이 로얄 패밀리인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하나님의 로얄 패밀리라고 해서 세상에서 특권을 갖고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죄 많고 문제 많은 이 세상 속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어가 관계를 갖고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노블레스’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다 제 역할을 한다면, 이 사회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을 생각해 봅니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 ‘신성클럽(Holy Club)\'을 조직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원주민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완전히 소모되고 탈진합니다. ’내가 내 열심으로 지금까지 일했으나 이제는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고민하다가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그 배 안에서 풍랑이 일어 파선의 위기에 무서워 떨고 있는데, 배 밑창에서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찬송을 부르며 뜨겁게 기도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가 영국에 돌아와서 고민하며 헤매이던 어느 날, 웨슬리는 그 날짜와 시간까지 기억합니다. 1738년 5월 24일 밤 9시 15분 전, 런던의 올더스게잇 거리의 한 작은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했다가, 인도자가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을 때 성령 체험을 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웨슬리를 덮어 버렸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그 웨슬리 한 사람으로 인해 영국 사회가 바뀌었습니다. 오늘이 감리교회의 ’웨슬리회심기념주일‘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로얄 패밀리입니다. 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명을 띠고 사는 사람입니다.


2. 세상의 소금이란 무엇인가? 

소금의 역할은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소금은 부패를 방지합니다.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소금으로 부패를 막는 것을 잘 했습니다. 바닷가에서는 싱싱한 생선을 먹을 수 있지만 내륙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냉장고도 없고, 빠른 운송수단도 없었기에 생선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때에 소금으로 절여서 보관과 운송을 하였던 것입니다. 안동의 간 고등어 같은 것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소금은 맛을 내게 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 맛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 맛을 주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려울 수도, 쉬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설렁탕’이 있습니다. 사전에는 소머리, 발, 무릎, 도가니, 내장을 푹 끓여서 만든 국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밥을 말고 파, 후춧가루를 넣어서 먹는 것이 설렁탕입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설렁탕을 주면 의례껏 소금을 조금 넣습니다. 넣지 않으면 싱거워서 맛이 없습니다. 소금을 넣어야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넣으면 짜서 못 먹습니다. 사람들은 ‘맛없다’ 해놓고서는 소금을 조금 넣고서는 ‘소금 맛있다’고 하지 않고 ‘설렁탕 맛있다’고 합니다. 

소금은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것입니다. 작은 일. 알아주지도 않는 일. ‘뭐 그거 한다고 세상 별스럽게 변할 거냐’, 그런 것도 아닌 아주 작은 일,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그런 것이 소금의 일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고 해도 소금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맛이 다릅니다. 소금이 안 들어가는 음식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불고기든, 갈비이든, 된장찌개이든 모든 음식에는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난다는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작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3.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 - 여러분 소금이 맛을 잃는 경우를 보셨어요? 우리는 쉽게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우리나라는 소금을 바닷물에서 얻습니다. 바닷물 모아가지고 수분을 증발시키고 소금을 채취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시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는 산에서 소금을 채취합니다. 우리가 산에서 금을 채취하듯이 말입니다. 소금돌을 캐가지고 그중에 소금을 따로 캐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머지는 버리는 데 미쳐 소금으로 깨지지 않은 것들은 흙과 돌멩이와 같이 밖에 버려지는 것입니다. 밭에 버리면 소금기 때문에 농사가 안되니까 길에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맛을 잃은 소금이 밖에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힌다는 것입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 사람들에게 밟힌다는 것은 슬픈 일이죠?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이, 교회가 ‘맛을 잃어서 사람에게 밟힌다?’, 여러분, 그런 일이 있잖아요. 있단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똑같다.”, 는 말을 넘어서서, “예수 믿는 것들이 더해.” ... - 또 소금이라는 것은 음식에 던져 지면 맛을 내지만, 가만히 자기 자리에 그냥 있으면 무슨 맛을 냅니까? 짠맛밖에는 안납니다. 짠돌이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예수님께서 ‘소금이 되라’고 하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 앞에 보면 예수님께서 팔복을 얘기하시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 

아무리 들어봐도 그 복을 다 받아 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별 큰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 이것은 세상에 맛을 내라는 얘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을 통해 세상에 기쁨과 소망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썩어지고 부패할 수밖에 없는, 죄로 인하여 타락하고, 악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부패를 방지하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90% 헌신한 백 명의 사람보다 100% 헌신한 열 사람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오늘날 교회가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헌신된 사람들이 없어서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가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해야 할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헬렌 로스비어라는 여자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엄격한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장로이신 아버지 밑에서 아주 근엄한 경건훈련을 받고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대로 항상 한 가지를 묻고 모든 일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Is this worth?(이게 가치 있는 일일까?)”, 나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헬렌 선교사님은 나중에 대학에 가서 가장 가치 있어 보이는 의학을 공부했고, 선교사로 자원하여 아프리카의 콩고, 그 중에서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 한가운데 들어가서 거기 사는 부락민들과 특별히 아동들을 위해 자기 삶을 바치겠노라고 그리로 떠났습니다. 이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었기에 독신의 길을 걸으며 이 자리로 갔습니다. 10년간 그곳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했을 때가 1960년대입니다. 그때 콩고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콩고를 지배했던 정권과 함께 모든 백인들을 몰아내는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났습니다. 백인들은 그 나라에 남아 있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목숨의 위협이 있었기에 백인들이 콩고를 빠져나가고 있을 때 헬렌 로즈비어 선교사님은 또 물었습니다. “내가 10여 년 동안 내 청춘을 바쳐서 이곳에 병원을 세웠는데, 지금 혁명 때문에 내가 이 자리를 뜬다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가치 있는 일인가?‘, 선교사님은 ’아니다‘는 결론을 내리고 남아 있기로 결단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병원으로 자칭 혁명군이 들이닥칩니다. 병원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헬렌 선교사님을 끌고 나와 옷을 벗기고 나무에 묶은 후 집단 성폭행을 합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어떤 자가 선교사님의 사무실에 찾아들어가서 선교사님의 지난 10년 동안 그곳 아이들의 희귀병들을 고치면서 그때 그때 발견한 의학적 사실들을 적어 놓은 의무일지, 정말 생명과도 같은 그 일지를 가지고 나와서 한 장씩 한 장씩 찢어서 불 태웠습니다. 

헬렌 선교사님이 콩고로 선교사역 떠나온 후 처음으로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Is this worth?”, ”하나님, 제가 이곳에서 이름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힘과 사랑을 다 바쳐서 살았는데, 이 무지하고 짐승 같은 자들의 손에 이렇게 개 취급 받는 게 과연 합당합니까? 이러한 수치와 모욕을 받는 게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이게 정말 가지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선교사님을 향해 확실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지금까지 잘못된 질문을 던졌구나. 질문을 잘못 던졌어. 너는 지금까지 ‘Is this worth?(이것이 가치 있는 일입니까?)' 라고 물었는데 네가 진짜 던졌어야 할 질문은 ’Are you worth?(하나님 당신은 가치 있는 분이십니까?)'였다. ‘제가 하는 이 일이 가치 있습니까?’하고 묻기 보다는 ‘너의 하나님, 너의 구세주 되는 내가 너의 수난과 모욕, 수치에도 불구하고 과연 소중히 여김받아야 하는 하나님인지, 그래도 내가 너에게 합당한 하나님인지’ 물었어야 했다.” 

이 음성을 듣고 헬렌 선교사님은 하나님을 향해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맞습니다. 주님, 주님은 여전히 합당하시고 소중하신 분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면, 창조주 하나님이 벌거벗고 우리 눈 앞에서 모든 모욕과 수치를 당하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면, 내가 주님을 위해 고난받아도 주님은 합당하고 소중하며, 우리의 존경과 흠모를 받을 가치가 있는 분입니다. 

헬렌 선교사님은 자신의 시련과 역경 가운데 참된 보배가 되시는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인가?‘,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그에 앞서서 ’주님은 나에게 가치 있는 분인가?‘ 질문해야 합니다. 

제가 교회 일을 할 때, ‘주님 이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까?’, ‘이것이 가치 있는 일입니까?’ 묻습니다. - 선교사를 파송하려 할 때, ‘이것이 가치 있는 일입니까?’... ‘Of course, 물론이다.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 그래서 파송하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자녀가 선교사가 되는 것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예”, “그러면 제게 보내십시오. 저와 저희 학교에서 가르치겠습니다” ..,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한 이후, 선교센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선교사가 능력이 있어서 다른 선교사들은 몇 년 씩 걸리는 선교사 비자도 11일 만에 받고, 또 그곳 현지에 이미 3천 평의 부지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선교센터를 짓겠다고 합니다. 건축비가 2억 여 원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거 우리가 꼭 지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안 지어도 하나님이 짓겠다고 하시면 지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 ‘우리가 짓는 것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일인가?’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이것 지어놓으면 필리핀 현지인들에게 매우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교육사업, 긍휼과 구제 사역, 선교와 예배 공동체, 폭 넓은 선교를 위한 구심점, 등). 그리고 우리 교회 이름으로 해외에 선교센터를 갖게 되어서 우리가 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또 제천에 사는 사람으로 아이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글로벌한, 세계적인 안목을 갖게 하는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건축으로 인하여 빚도 많은데 이것을 굳이 해야 되느냐는 반대도 만만치 않은 것을 잘 압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헌금을 해라, 반대하는 사람은 헌금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 목적으로 하는 헌금을 누가 반대하겠느냐?’, 그래서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헌금을 하고 그것이 얼마가 되었든지 바로 기공식을 갖고 삽을 뜨려고 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목사가 이렇게 헌금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부담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가 나의 부담입니다. 목사부터 솔선해서 헌금해야 하는데, 그냥 몇 만 원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좀 부담가게 해야지?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부담없이 헌금하면 우리에게 별 부담을 갖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좀 부담스럽게 헌금을 합니다. 추수감사헌금은 이제까지 평생, 부담스럽게 헌금을 했습니다. 빚지면서도 헌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은 저에게 부담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고, 또 특별한 일, 가족에게 닥친 질병 같은 일에도 희한하게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부담갖기 싫으신 분들은 부담없이 하시기 바랍니다. 반대하시는 분들은 ...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가치 있는 분이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소금의 역할입니다. 나와 내 가족, 내 공동체, 내 교회가 하나님께 가치 있는 일로 영광을 돌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소금과 같이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진정한 축복을 체험케 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