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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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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7-12)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풀려난 뒤 자신이 세운 소아시아 교회들을 두루 방문하던 중 골로새를 방문하고 이어 에베소를 방문하였으며 그 곳에서 빌립보에서 온 디모데와 합류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에베소에는 초대교회의 양대 이단인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와 영지주의의 거센 위협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두어 그 같은 문제들에 대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후 빌립보교회를 방문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마게도냐 지역으로 간 바울은 볼일을 마친 후 에베소로 돌아가 디모데를 만나려 했지만 지연이 되자 서신을 보내 젊은 목회자로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에베소 교회의 여러 문제들을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본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딤전 3:14-16)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유대주의적 율법주의 - 예수 그리스도를 구약에서 예언 한 메시야로 믿긴 하면서도 구원은 믿음으로가 아니라 구약의 모세 율법을 문자적으로 준수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주장함

영지주의 - 헬라철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영혼만을 중시하고 육체를 경시하여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금욕주의를, 다른 한편으로는 육체적 쾌락주의를 부르짖으며 또 그리스도의 신성은 인정하되 인성은 인정하지 않음

한 사람 인격, 개성, 취미, 특징, 그리고 직업 등에 따라 그 사람의 별명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쓴 디모데에게 사도바울이 붙인 별명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신분의식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로 인정받고 영원한나라를 상속받은 귀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분명한 자아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야한다는 사명의식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일에 골몰하며 열심을 다하여 자기중심의 생활이 아닌 하나님중심의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감격으로 인하여 섬기며 봉사하고 복된 소식을 전할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과 구별된 삶과 성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진 불신자의 교훈들을 멀리하여 모든 욕심을  피하고 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피하여 이것들에서 성별되어야 합니다.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 이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지녀야 할 삶의 덕목이며 방향입니다.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우고 죄와 싸우고 미혹하는 악한 영들과 세상과 자신의 본성과 싸워 십자가를 바라보며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른 것은,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 과연 어떤 삶을 사는 것이 합당한가를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칭호는 구약시대에는 주로 하나님께  높이 쓰임  받던 인물들에게  붙여졌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 
(신 33:1)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다윗 
(대하 8:14) “솔로몬이 또 그의 아버지 다윗의 규례를 따라 제사장들의 반열을 정하여 섬기게 하고 레위 사람들에게도 그 직분을 맡겨 매일의 일과대로 찬송하며 제사장들 앞에서 수종들게 하며 또 문지기들에게 그 반열을 따라 각 문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전에 이렇게 명령하였음이라”
익명의 선지자 

(삼상 2: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선지자 사무엘 
(삼상 9:6-7) “그가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하는지라 사울이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하니”

결국 성도들은 인간이 보기에는 하찮은 존재 같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이요 택하신 족속이며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놀라운 칭호를 부여받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죄의 노예로 전략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또 특별히 소명 받은 자로서 사역해가면서 일상 속에서 가져야할 삶의 태도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삶의 태도는 또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 속에서 구별된 우리 "모든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이 지녀야할 삶의 자세들이 무엇인가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전절에서 돈과 교만을 피하라고 명하였고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딤전 6: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하나님의 사람들은 피해야 할 것이 매우 많습니다. 세상에서 달아나는 것은 때로 비겁자의 표시로 상징됩니다. 그러나 달아남이 지혜요 승리의 수단인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피하라는 말은 그런 것들에서 "너 자신을 물러가게 하라"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 교훈과 모든 불경건한 행위에 대항하여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구별해야 합니다.  무엇을 피해야 합니까?

1) 청년의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딤후 2:22)

(딤후 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여기서 정욕이란 헬라어로 ‘에피뒤미아’(έπιθυμία)로서 ‘강한 육적 욕망’ 또는 ‘성적 욕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청년의 정욕‘이란 무절제한 성적 욕구(롬 1:24 / 계8:14) 뿐 아니라 끊임없는 권력에 대한 욕구(갈 5:16, 24 / 벧후 2:10, 18) 또는 물질에 대한 소유욕(딤전 6:9)을 의미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려 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세상적인 정욕과 욕망들을 차마 내려놓지 못한다면 결코 그 이름이 우리의 호칭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
2)돈을 사랑함을 피해야 합니다. 

(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돈 속에 일만 가지의 악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악의 근저(近抵)에는 돈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돈을 악과 관련시키는 것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우상 숭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기보다는 우상숭배 그 자체입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인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골 3:5)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상숭배의 본질은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가장 높으신 분에 의해 피조 된 피조물을 가장 높으신 분의 자리에까지 높이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돈에 대한 사랑과 혼돈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뿐   만 아니라 인간 상호간의 관계까지 파괴해버립니다. 돈에 대한 사랑은 인간과 인간 사이를 부정직하게 만들며 아주 가벼운 것들도 자신에게 유익하다면 서슴지 않고 갈취하게 하며 무지와 교만과 속이는 일에 빠지도록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죄인줄 알면서도 계속적으로 돈에 대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영향 아래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실패 속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돈은 결코 우리를 안전하게 할 수  없으며 재난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돈 자체는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 속에 모든 악의 싹이 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돈을 탐욕하는 것을 통하여 악에 인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근심, 공포, 악의, 속임, 압제, 시기, 뇌물, 위증, 분쟁 등 온갖 악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3)죄악된 일을 피해야 합니다(엡5:3)

(엡 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바울은 모든 멸망의 요인들이 될 만한 것들을 피하라고 하면서 단순한 권고가 아닌 꼭 지켜야 할 명령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그 어떠한 죄악과도 타협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합니다.


2.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것에 이어 따라야 할 것(디오케, 즉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의와 경건을 따라야 합니다.

여기서의 ‘의’는 율법적인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구원의 의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인해 저를 믿고 그 공로를 힘입어 법적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사건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력을 늘 상고해야 하며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늘 가슴 속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에 닮아가는 경건에 힘쓰는 것이 의인된 우리가 마땅히 걸어가야 할 방향인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을 따라야 합니다.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깨달은 가운데 죽을 때 까지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순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되 죽기까지 하며 또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합니다.
인내는 어떠한 역경과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거나 굴하지 않고 온전히 믿음을 지키며 신앙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며 온유는 그리스도의 성품 가운데 하나로써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항상 사람들을 대하되 그들을 이해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가 가신 골고다를 걸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순례자는 마음의 번민과 고통과 갈등 속에 방황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불평하며 십자가의 고통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도피하려 할 때가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했듯이 이 시간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성장이 따르지 않는 분리는 고립되고 맙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 인내와 온유 등이 자라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여섯 가지 덕목이 우리 안에서 자랄 때 우리는 비로써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교제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는 믿음도 선한 싸움도 하나로써 중대함을 보여주며 믿음을 위해서 싸우는 싸움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한 싸움일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 때문에, 믿음을 통하여, 믿음을 위해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싸운다’의 헬라어 ‘아고니조마이’는 시간 따위를 ‘보낸다’ ‘허비한다'의 ‘아고’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즉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은 믿음을 위해서 자기의 생애를 전적으로 소비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또한 ‘싸우라’(아곤)의 문자적 의미는 "상을 얻기 위해 경쟁하라"인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상급을 받기 위하여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체의 정욕을 죽이고 모든 불의와 맞서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이 수행하는 싸움은 선한싸움, 즉 영적싸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이렇게 선한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얻기 위해 디모데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도 이와 같은 일로 인하여 불러 주신 줄 저는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혈기를 부리며 감정을 폭발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마련해 두신 영원한 상을 위해서 사단이 제공하는 모든 불의 즉 이단, 거짓교훈, 정욕, 시기, 음란, 악한분노 등과 싸우며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실로 인간의 삶 자체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과 육의 싸움을 하며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 즉  영적 싸움을 경주합니다(엡 6:12)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면 영적 선한 싸움의 대상은 무엇입니까

1)자기 자신입니다 - 자신을 극복할 수 있는 자만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으며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2)마귀입니다 -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인류를 타락 시킨 이래 아직도 타락시킬 대상들을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마귀를 기도로써 대적해야 합니다.

3)죄입니다 -  죄는 멸망성이 있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방해 합니다. 로마서 6:23절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기 위하여 반드시 죄와 싸워 이겨야 하겠습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예수님의 능력 안에 있어야 합니다.


4. "영생을 취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값진 것은 재산이나 건강이 아니라 내세에 대한 확실한 보증인 영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생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자에게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주시는 선물이지 결코 인간이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영생을 취하라고 말하는 것은 영생을 보장 받은 자로서 마땅한 삶을 살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실컷 수고해놓고 영생을 얻지 못하면 정말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취하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얻거나 소유한다는 의미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영생을 견고하게 붙잡고 누리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싸워서 얻고 그 얻은 영생을 누리고 즐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명령을 지켜야한다"고 1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신앙적 열심과 순수성이 한 순간에 그쳐서는 안되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즉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까지 열심과 순수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삶에 대한 판단은 마지막 날에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특권적 신분을 각성시키고 거룩한 사명을 일깨워주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한 증거를 설파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마음의 귀를 기울여 이 부르심을 들으며 항상 새로워지는 성도들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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