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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부주일] 아내와 남편 (엡 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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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남편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33) 

I. 본문해설 

오늘 읽은 성경은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쓴 편지이며, 이 본문은 가정의 대의가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정과 교회에 관한 풍부한 교훈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다가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교회와 가정이 하나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II. 가정과 교회, 그리스도 

하나님이 세우신 두 개의 기관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과 교회입니다. 만약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교회와 가정은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부터 교회의 역할은 훨씬 더 중요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중생하고 회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가정은 원칙적으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이룸으로 한 가정이 성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부이기 전에 교회의 한 형제요 자매이며 부부의 결합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맺어진 생명적인 관계가 먼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먼저 아내들에게 명령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한 것같이 너희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쳤고, 나아가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는 남편을 경외하라고까지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이용해서 남편은 아내를 수하에 복종시키려고 하며, 아내는 이 구절을 토대로 남편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하나님이 그런 뜻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아내에게 주신 명령은, 아주 뿌리 깊은 여성의 성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부터 여성의 피 속에는 남성을 자신의 질서에 복종시키고 싶어 하는 지배욕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성에 의해 가정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경고로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정도에 있어서 무한한 것이고 시간에 있어서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내의 편을 들어주거나 기를 세워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남편의 성품과 관계가 있습니다. 남성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한 여성에게 모든 것을 쏟아 붓지만 가정을 이루게 되면 마음이 가정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밖으로 퍼져 나가 세상을 개척하고 통치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본래 하나님이 가정의 질서를 위해 남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성은 결혼하기 전까지 분산되어 있다가 후에는 남편과 가정 속으로 마음이 집중됩니다. 죄의 영향이 아니라면, 남녀의 각각 다른 성향은 하나는 구심력으로 다른 하나는 원심력으로 작용을 하면서 질서로운 가정과 세계의 관계를 가꾸어 갈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면서 남성들은 밖으로 나가려는 자연적인 습성 속에 아내를 멸시하는 죄된 성향과 끝까지 사랑하지 않으려는 무법한 사랑없음의 성향들이 그를 지배하게 되는데서 모든 문제가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런 남성의 성품을 아셨기에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를 주심 같이 끝까지 무한히 사랑하도록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두운 밤에 바다에 배를 띄우고 북극성을 바라보고 항해를 하라고 분부를 받았다면, 불타는 북극성에 도착하라는 뜻이 아니라 북극성 쪽으로 자리하고 있는 항구에 안전하게 도달하라는 것입니다. 방향을 지시해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지표적인 교훈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남편에게 복종한 후 내 복종은 충분했다고 말할 수 없도록, 누구든지 아내를 사랑한 후 이 정도면 나는 그 계명을 충분히 성취했다고 말할 수 없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완전한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의 유비로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III. 부부 관계의 기초 

A. 인격적 사랑 

부부관계는 인격적인 사랑을 기초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부부 사이의 사랑을 측량할 때 그 기준을 연애하는 시절의 솟구쳐 오르는 그런 분출하는 감정을 기준으로 사랑이 식고 뜨거워졌음을 평가합니다. 이런 사랑은 인격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랑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결혼 생활 속에서 계속 되어야 좋은 그런 종류의 감정 체계가 아닙니다. 

톨스토이는 ‘결혼의 행복’이라는 자신의 책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나이에 따라서 그 사랑을 표현하는 양식은 각각 다르다. 불행은 자기의 나이에 맞지 않는 방식의 사랑의 표현을 요구하고 기대할 때 불행이 일어나게 된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세월이 흘러 부부가 함께 늙어가는 이 모든 과정에서 서로의 사랑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확인하는 방법들을 배우고 기술들을 익혀 나가는 것은 실제적으로 지혜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따르지 않는 사랑은 인격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격적인 사랑이란 상대방과 자신 모두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책임 있고 독립된 실존이라고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히 여기면서 자신의 선택과 사랑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함께 하나님을 알아가는 관계가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입니다. 

B. 무한한 사랑과 질서 

청교도들은 결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격동하는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서로를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소중한 존재로 인정하고 같은 신앙의 길을 추구하는 동지애로서 부부의 사랑을 가꾸어 가는 것이 참된 결혼 생활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결혼의 절대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진리가 먼저이고 결혼이 두 번째였습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있는 곳에 비로소 진리를 함께 나누며 걸어갈 신앙의 동지가 있고 거기에 바로 남편과 아내의 항구적인 결합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인격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인격적인 사랑을 통해서 무한한 사랑과 질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추게 되면 일평생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복종하지 않고 살아왔던 아내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남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이 비추고 예수 하시는 일이 기억될 때에 그는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사랑의 좌표축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질서로부터 이탈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즉각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을 회개하게 되고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주님의 사랑에 미치지 못했음을 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각 남편과 아내는 참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오고 그것이 곧 진정한 아내와 남편의 자리이며 그것이 바로 성화를 통해서 우리를 도달하게 하시고자 하는 참 사람의 자리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를 주시고 또 가정을 주십니다. 

C. 사랑, 은혜의 비밀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빛을 받으며 우리가 사랑의 질서에서 멀어진 것을 깨닫고 뉘우치는 바로 그때 배우자도 함께 회개를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은 회개하는 아내의 신앙을 이용할 수도 있고, 아내는 뉘우치는 남편의 회개를 다시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 바로 은혜의 비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아름다움을 남편과 아내에게서 발견했다고 칩시다. 

과연 우리 가운데 그 무한한 아름다움을 자신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한 인간에게 끊임없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까요?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력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전가된 아름다움인데 이 아름다움을 상대방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이 그 생명적인 관계를 통해 흘려보내는 하나님 자신의 아름다움과 은혜의 분량이 무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하나님이 아무리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셔도 인식하는 사람이 그것을 아름답다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게 되면 그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이런 사랑을 지속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은혜는 사랑의 감화입니다. 은혜는 언제나 우리에게 사랑을 결과로 남겨놓습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의지를 선하게 바꾸어 놓아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한 것과는 정반대로 갚을 수 있도록 선하게 우리의 의지를 변화시켜 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후에도 아마 남녀를 각각 독신으로 살아가게 하셨더라면 하나님을 덜 의존했을텐데, 악과 가시가 가득한 두 인간을 만나서 부대끼며 살게 하시는 동안에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랑인지를 배우게 하시고 자신 안에는 이 인간을 만족시킬 사랑이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혼하기 전까지는 주님을 의지하지 않던 사람들이 결혼하고 나서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되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IV. 결론 

언젠가 청년들이 모여 나에게 결혼에 대해 질문했을 때 너무 큰 기대를 가지지 말고 쿨한 마음을 가지고 결혼을 해라 그러면 천천히 뜨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기대를 갖는다면 쉽게 식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열렬히 연애하다가 결혼한 사람들이 많이 깨뜨려지는 이유가 그런 사랑에 대한 정의를 잘못 내리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는 아내와 남편을 배우자로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함께 둘이 손잡고, 우리 둘이 손 잡을 때 수십만 볼트의 전기는 안 흐르고, 연애할 때처럼 격동하는 감정의 마그마 같은 분출은 없어도 여기서 주님을 함께 알아가고 이름을 불러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들로서 함께 그리스도 앞에 각자 아주 소중한 영혼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 서로 존중하며 남이 가지 않는 그 신앙의 길을, 부부의 길을, 남편과 아내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정의 근본이 되는 것이고, 바로 그런 부모 아래에서 정말 개념을 가진 제대로 된 인간이 태어나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이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기도하면서 이런 길을 걷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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