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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누군가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면... (마 8:5-13) -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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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면... (마 8:5-13)

마태복음 8장과 9장을 가리켜서 우리는 능력의 장이다 그렇게 부릅니다. 8장과 9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10가지의 치유기사와 기적의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나병이 치유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한 백부장의 자기의 중풍병걸린 종을 위해서 주님앞에 나와 간구함으로 치료함을 입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워있을 때 예수님이 오셔서 그를 깨끗게 하십니다. 가다라지방에 귀신들린 사람 2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게 됩니다. 또 침상에 누여진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의해서 예수님께 인도되었는데 또 그들이 건강을 회복합니다. 

또 그 외에도 우리가 잘아는 12년동안 혈루병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대면 내 병이 나을 것 같은 믿음이 있어서 그 일을 실행했더니 혈루의 근원이 마르고 병이 나은 그런 기사도 있습니다. 또 두 맹인이 눈을 뜨게 된 이야기, 회당장의 딸이 죽었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기도하심으로 그를 죽음의 자리에서 건져내신 이야기, 그것만이 아닙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데 풍랑이 밀려와서 제자들이 당황해 할 때에 예수님이 일어나셔서 풍랑을 향해 명령하시니 풍랑이 잔잔케 된 기적도 8장과 9장에 걸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시간날대 8장과 9장을 집중적으로 읽어보면 예수님은 이래서 하나님이시구나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확신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다양한 치유사건 기적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가 얻는 한가지 결론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한 사람도 실망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가봤더니 너무 실망스럽더라 그런일을 경험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 찾아왔다가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왔다가 다 고침받고 갔지 아니 죽었던 사람도 다시 살아났지 죽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사기 당하거나 속은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믿고 갔다가 사기를 당하거나 속임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즘 부산의 어떤 저축은행은 고객들의 돈을 많이 끌어모아서 자기 친인척들에게 부정대출을 해줘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저축을 했던 분들이 그 돈의 얼마나 찾을 수 있을까. 법적으로는 5천만원까지만 보호가 되지 5천만원 이상은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3억을 저축했다 어디서 보상을 받습니까. 보상을 못받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고양이 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앞에 나와서 실망을 경험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희망을 발견하고 문제가 해결받고 병이 고침받고 그리고 참된 소망으로 나아가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앞에 나오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주님앞에 인도해낼수 있다면 그 일은 너무나 귀한 사역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한 백부장이 예수님께 나와서 간절히 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종이 하인이 병들어서 그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앞에 나왔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그는 예수님께 감동을 드린 사람이였습니다. 오늘 그는 자기의 앓고 있는 중풍병 환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오지않았지만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면 내 하인의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홀로 예수님께 나와서 간구했고 그 문제가 해결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칭찬받은 백부장, 오늘 예수님을 감동시킨 백부장의 믿음은 대체 어떤 믿음일까. 

먼저 그는 자신을 초월한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자신을 초월하는 믿음의 사람,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을 초월한 믿음이란 무엇일까. 5절 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사람은 자기 중심을 탈피한다는게 참 어렵습니다. 자기를 초월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왜?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사회를 가리켜서 미제너레이션세대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하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편해야 되고 자기가 잘되야 되고 내가 행복해야 되고, 남이 다 행복해도 내가 불편하면 안되는 겁니다. 내가 만족스러워야 합니다. 이기주의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거기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누구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습니까. 자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 하인의 문제입니다.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지금 앓아 누워 있습니다. 그는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께 오늘 간구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이야기 했습니까.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그는 지금 누워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인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럴 수 있습니까? 그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출석해도 자기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 가득차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지극히 작은자에게 한것이 내게 한 것이라.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의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나누는 것입니다. 양은 상받을 사람들이고 염소는 심판받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때에 내게 마실것을 주었어. 내가 감옥에 있을때 나를 찾아왔지. 그러니까 상받을 사람들이 양쪽에 선 사람들이 언제 우리가 그렇게 했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묻습니다. 너희가 지극히 작은 자, 고통받은 지극히 작은자에게 한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다시말하면 너희는 너희자신을 초월해서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어려움을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것이 백부장의 칭찬받는 요인입니다. 

그래서 그런의미에서 오늘 장로님이 임직하시는 분이 계십니다만 교회의 리더십, 교회의 지도자들, 교회의 제직들은 자기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더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리더십입니다. 

성경에 어떤 말이 있습니까. 너희는 기뻐하는 자와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함께 슬퍼하라고 그랬습니다. 무슨이야기입니까? 여러분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쉽습니까? 그런분 많이 봤습니다. 어떤분은 좋은 일이 있어서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먹으면서 자기자랑을 조금 했습니다. 그랬더니 다 외면합니다. 다른 소리만 합니다. 왕따시키는 겁니다. 너혼자 기뻐해라 우리는 너와 상관없다. 

어떤 사람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누군가와 이 아픔을 나누고 싶은데 그 사람앞에서 다 다른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행갔다온 이야기하고 즐거웠던 이야기하고 피자먹은 이야기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아픔을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교회의 모습이라면 아니 우리의 모습이라면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기뻐하는자와 함께 기뻐하라. 슬퍼하는자와 함께 슬퍼하라. 그래서 기쁨은 함께 나누면 그 기쁨이 배가 되는 줄 믿습니다. 슬픔도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이 백부장은 하인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자기 가족처럼 여겼습니다. 그 당시 하인이라는 것, 종이라는 것은 물건과 똑같았습니다. 인격이 없습니다. 물건에 인격이 없듯이 하인들은 물건과 똑같습니다. 쓰다가 낡으면 싫증나면 갔다가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남한테 팔아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병든 하인 뭐에 씁니까. 가져다 버려야지. 그러나 이 사람은 그를 자기의 가족처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를 한 인격체로 한 생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앞에 나와서 무릎꿇어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여 제 하인이 몹시 병들어서 고통당하고 있나이다 괴로워하고 있나이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눌 때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을 축복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보십시오. 고통받는 이웃을 향해서 관심을 가지고 자기를 초월해서 그 아픔에 동참할 때 그는 성경에 기록된 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라는 여인, 자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서 위로하기 위해서 자기 옥합을 깨뜨렸을 때 결국 오랫동안 기념하는 한 여인의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1790년 영국의 한 사람이 재봉기계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공장에서 미싱하는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825년 프랑스 시몽이라는 사람이 재봉기계에 대해서 특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 공장에서만 사용되었지 가정에서는 실용화되기 이전이였습니다. 

그런데 1851년 아이작 메리크싱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미국사람인데 몸이 아파서 누워서 생활합니다. 가장이 생활을 책임지지 못하니까 아내가 생활을 책임져야 합니다. 아내는 매일 삯바느질을 해서 그걸 가지고 연명을 합니다. 그러니 밤 늦게까지 촛불앞에서 삯바느질을 하고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아내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까 아내의 고통을 줄일 수 있을까 하고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재봉을 가정용으로 개발하는 것을 발명해 냅니다. 가족용 재봉틀 미싱을 발명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상품화했는데 그것이 날개돗힌듯 팔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유명한 발명가가 되고 자기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를 다 해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이든 누구든 고통받는 사람에게 집중할 때 거기에 바로 나도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지만 예수님은 그를 귀하게 여기셔서 그를 축복하십니다. 내가 이만한 믿음을 유대민족에게서 본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초월한 믿음, 그리고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또한 이 백부장은 공간을 초월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7절 8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너무나 기특해서 세상에 이렇게 지체높은 백부장이 적어도 백명의 로마군사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자기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내게 나오다니 이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정말 인격이 뛰어난 사람이구나. 예수님은 감동받으셨습니다. 그러면 내가 너희집에가서 그 하인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더니 주여 그리하지마옵소서. 제가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여기서 말씀만 하옵시면 제 하인의 병이 나을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는 군인인지라 내 밑에도 부하가 있어서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데 여기서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믿음에 또한번 놀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만약에 자녀가 외국에 나가 있다면 염려합니다. 또 군에 입대해 있다면 늘 걱정으로 때로는 우리가 잠을 이루지 못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거리를 초월해서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기계시지만 저기있는 하인을 향해서 말씀하실 때 그것이 역사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또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멀리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도 바로 옆에 있는 것과 동일하게 역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우리가 손을 얹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 아프리카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의 능력인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공간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능력이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오늘 바로 백부장의 믿음이 이래서 놀라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놀랍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사람에게서 이만한 믿음을 본적이 없다고 예수님은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오늘 백부장은 민족과 성별을 초월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자기는 이방인이지만 유대인인 젊은 예수앞에 나와서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자기 하인이 자기와 같은 동족이라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전쟁의 포로였든지 유대인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자기와 성별이 다른 그 하인을 위해서 그는 민족을 초월해서 나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색깔을 좋아합니다. 자기 피부샐깔을 좋아합니다. 같은 피부를 만나면 반갑습니다. 그러나 다른 색깔을 만나면 별로 수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뭔가 거리감이 있고 차별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글로벌한 사람입니다. 그가 어떤 민족이든 어떤 성별을 가졌든 어떤 인종이든 그걸 따지지 않습니다. 그는 그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가복음 7장에 이 백부장에 대한 소개가 또하나 소개되는데 거기서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그 지역의 교회지도자들 장로들이 예수님께 와서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주기를 간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유대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이 사람은 유대인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준 사람입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뭐가 아쉬워서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어주겠습니까. 그는 민족을 초월했던 사람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더 위대한 것입니다. 그는 로마의 장교로서 어느 일정한 기간동안 유대에 근무하고 있으면서 유대인들을 위해서 자기의 병든 하인을 위해서 놀라운 선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직장에 있든지 어느 지역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우린 누군가에게 선을 베풀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베풀수 있는 선은 뭘까요. 병든 사람을 병원으로 안내해 주는 것, 그것도 좋은 선행이겠죠. 굶주린 자를 먹이는 것, 낙심한 자를 위로하는 것, 그거 다 선행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은 뭘까요. 내가 내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선을 베푼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은 뭘까 그를 그 영혼을 예수께로 인도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아무리 그를 먹이고 그를 위로해주고 입혔어도 그 영혼이 마지막에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가 심판받을 존재라면 무엇이 위대한 것입니까. 그러나 마지막에에 그 영혼마저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선일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니까 우리는 그가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선한일을 위해서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창조하셨을까 우리가 선한일을 위해서 쓰임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선한 목적을 위해서 쓰임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알기전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이였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보니까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예수믿기전에는 우리도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의 보혈로 인해 생명이 들어오고 우리는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도 그 영혼이 죽어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죽어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그를 예수께로 인도해서 그가 생명의 삶 소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일생에 백부장과 같은 선행을 베풀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일생에 누군가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고 그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위대한 일이겠습니까. 

언젠가 한번 TV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시베리아에 살고있는 툰트라족속을 향한 다큐멘터리가 소개되는 것을 봤습니다. 툰트라 족속들은 영하 60도의 그런 추위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순록과 함께 생활하고 그리고 순록에 썰매를 매달아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툰트라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법칙이 있다고 합니다. 툰트라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많은 눈이 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난당하기도 하고 위기에 처할 수도 있고 또 썰매를 타고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조난을 당한 사람을 보면 그가 원수든 적이든 누구든 구해주는 것이 툰트라의 법칙입니다. 위험을 당한 사람은 반드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절대로 냉정하게 내보내는법이 없다고 합니다. 적어도 누군가가 찾아오면 4일간은 먹이고 입히고 책임지는 것이 툰트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법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강도만나서 사탄의 꽤임가운데 죽어가는 영혼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들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다가가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바로 그의 미래는 그가 예수를 아느냐 모르느냐로 결정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부유한 사람이라고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는 영원히 죽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주님앞에 나가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오늘 백부장과 같은 믿음의 사람, 그런 인격의 사람, 그런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전도의 기회, 놓치지 마십시오. 주위에 잃어버린 영혼들, 하나님을 떠난 영혼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영혼들, 다시가서 손을 잡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이끌어 내십시오. 그들을 부둥켜 안고 기도하십시오. 오늘 백부장처럼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중병에서 그를 구원했듯이 우리 이웃의 영혼의 죽음에서 건져내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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