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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혼으로 이끄신 하나님 (창 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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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으로 이끄신 하나님 (창 2:24-25)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이런 복은 남자 혼자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반드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다. 

에덴동산은 너무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다. 따라서 아담은 살아가는데, 어떤 부족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아담은 자기를 돕는, 배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 에덴동산의 식물들만 봤기에, 암수의 세계가 있음을 인식하기 못했다. 

그러나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줄 때, 암수 한 쌍으로 되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아담은 자기만,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혼자 있는 아담을 돕는 배필, 여자를 만들어 주셨다.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실 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한 후에, 살로 대신 채우셨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들고, 만드신 여자를, 아담에게 이끌어오셨다. 아담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여자를 만들어 주신 일을 알았다. 아담이 죽을 때 아내가 태어나고, 그의 가정이 행복해진다. 

그래서 아담은, 자기를 위해 돕는 배필로 만들어주신 여자를 보며, 짧은 사랑의 시를 하나 지었다. (23)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고 했다. 이로서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은, 온전히 끝을 맺었다.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의 상태가 되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들고, 그 두 사람을 짝지어, 부부가 되도록, 친히 결혼을 주관하셨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따라, 사람은 생육하며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수 있게 되었다. 

1. 결혼의 정의(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다. (마19: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님은 (창1:27) 말씀과 (창2:24) 말씀을 함께 인용하셨다. 이때 예수님은 (창2:24) 말씀을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밝히셨다. 

하나님은 결혼을 어떻게 정의하셨는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일을, 결혼이라고 하셨다. 이는 결혼으로 이끄신 하나님이, 직접 내리신 정의다. (말3:6上)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바뀌는 분이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내리신, 결혼에 대한 정의도,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없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해서, 한 몸을 이루는 일이다. 따라서 두 남자가 연합하거나, 두 여자가 연합한다고 해서, 결혼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 세상 법은 그것을 결혼으로 인정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결혼으로 간주하지 아니하신다. 생각해 보라. 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는가? 왜 하나님이,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짝을 지어서, 부부가 되게 하셨는가? 생육하여 번성하며 땅에 충만 하라고,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 

그런데 두 남자가 연합하거나, 두 여자가 연합한다고 해서 충만할 수 있는가? 동성연합은 결단코 충만하게 만들 수가 없다. 이는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일 뿐이다. (전7:29)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전도서기자의 말씀은, 결혼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본시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해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죄로 인해서 타락하자, 그 결과로 남녀 사이에는, 이런저런 온당치 못한 관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창세기에 나타난, 몇 가지 실례를 들어보자. 

(창4장)에서 라멕은 아다와 씰라, 두 여자를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 하나님이 정하신 결혼으로는 일부일처였다. 그런데 라멕은 일부다처를 취했다. (창16장)에서 아브람은, 자기 아내 사래의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첩으로 들였다. 이는 축첩이다. 자기 아내 사래를 두고서, 다른 여성과 동침했다. 

(창19장)에는, 소돔 사람들의 죄악이 나온다. 그들은 롯을 찾아온, 나그네들과 관계를 갖기 위하여 롯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동성애를 즐기려 했다. 그들에게서 이른바 "남색"이라는 말이 나왔다. (창34장)에는 강간이 등장한다.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마을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 

그때 하몰의 아들, 그 마을의 추장 세겜이, 디나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했다. 세겜은 폭력으로 디나의 몸을 짓밟았다. (창38장)에는 유다와 그의 자부, 다말의 매춘이 나온다. 유다는 그의 자부 다말이 창녀인줄 알고, 그에게 약조물을 주고 동침했다. 성 매매만 아니라, 근친 상간이다. 

온당치 못한 예들을 살펴보면, 모두 부끄러운 짓들이다. 이는 전적으로 타락한 결과였다. 우리는 결혼으로 이끄신 주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결혼을 귀히 여겨야 한다. (히13:4)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만일 찔림이 있다면 회개하자. 하나님은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부끄러운 죄를 용서해주신다. 하나님은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결혼을, 귀히 여길 수 있기를 바란다. 


2. 결혼의 요소(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의 주례사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에는, 3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1) 남자가 부모를 떠나 

결혼을 하면, 남자가 부모를 떠나게 된다. 그러면 "떠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남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더 이상 자기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아니다. 

사람은 결혼에 상관이 없이, 자기 부모님을 언제나 공경해야 한다. 남자가 결혼을 하면,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따로 살림을 차려야 한다는 공간적인 개념인가? 남자가 부모님을 떠나서, 처갓집에서 의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통적으로, 여자가 그의 부모를 떠나서, 남자에게로 왔다. (창24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자기 남편에게 왔다. 이는 하나님이 아내 하와를, 남편 아담에게 이끌어 오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자가 결혼하더라도, 그 부모를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았다.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결혼했지만, 아버지 야곱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생업을 하면서, 다 함께 모여 살았다. 따라서 '떠난다'는 말은, 이처럼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이 말의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 결혼의 두 번째 요소와 연결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이유와 목적은, 아내와 연합하기 위해서다. 사람은 결혼해서 남편과 아내가 연합해야, 그 혼자 사는데서 벗어날 수 있다. 

그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다. 아울러 그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복을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떠난다'는, 혼자 사는데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사람이 아무리, 그 부모나 형제들과 함께 산다고 해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혼자 사는데서 벗어나지 못한다. 

(2) 남자가 그 아내와 연합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일은, 그 아내와 연합하기 위해서다. 연합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달라붙었다."는 의미다. 사람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가장 가까운 관계가, 자기와 부모와의 관계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면, 그보다 더 강하고, 더 긴밀한, 부부관계가 새롭게 생긴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는 촌수로 따져서 일촌이라면, 부부는 무촌이 된다. 따라서 부모는 자기 자녀들의 결혼을, 결코 소홀히 여길 수 없다. 일단 결혼하면, 부모와 자녀관계보다, 더 강한 부부관계가, 새롭게 정립된다. 

따라서 자녀들이 결혼하기 전에, 부모는 최선을 다해, 그들을 지도해주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이, 하나님을 모르는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종을, 자기 고향으로 보내서,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여자, 리브가를 데리고 와서, 이삭의 아내로 삼게 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무조건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일단 결혼하면 뗄 수 없는, 강한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중에, 잘못 결혼했다고 후회하지 말고, 부모님의 지도를 잘 받아야 한다. 이삭과 리브가는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있었다. 

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여자들을 아내로 맞았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는 근심했다. 결국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아버지의 축복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다. 리브가는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서, 아내를 취하게 했다. 야곱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다. 

거기서 사랑하는 아내와, 축복도 풍성히 받았다. (잠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한다. 결혼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다. 슬기로운 아내와, 믿음직한 남편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다. 

(창24: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이삭은 그때 그곳에서, 자신의 아내를 구하러 간 종을 위해서 기도했다. 자기 아내를 맞이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위해, 묵상하며 기도했다. 

결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는 남자와 여자가 연합해서, 부모보다도 더 가깝고, 더 강하고, 더 긴밀한 관계가 확립되는 일이다. 따라서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들, 특히 청년들은 많이 기도하면서, 그 일을 하나님에게 온전히 맡기시기를 바란다. 

이미 결혼을 하셨는가? 남편은 슬기로운 아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또 아내는 믿음직한 남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자. 우리에게 귀한 배필을 허락하시고, 짝지어서 부부가 되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3)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일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흙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하와는, 흙으로 만들지 않았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셨다. 하와는 아담과 별개가 아니고, 아담의 몸의 일부로 만들어졌다. 

아담은 본래 하와와 한 몸이었는데, 둘이 되었다. 따라서 아담은 결혼을 통해서, 자신의 뼈와 살을 되찾은 일이다. 그러기에 아담은 하와를 보면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결혼은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갈빗대, 곧 자신의 뼈와 살을 되찾는 것이다. 

둘로 나뉘어졌던 몸이, 본래의 하나로 되돌아감이 결혼이다. (마19:6上)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예수님의 말씀대로, 결혼하면 더 이상, 두 사람이 아니다. 부부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한 몸이다. 육체만 아니라, 삶의 목표와 방향, 생각과 마음까지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 

이제 부부는 둘이 아니다. 한 몸이요 하나다. 따라서 부부는 나누어질 수 없다. 부부가 나누어지면 자기 몸을 둘로 쪼개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19:6下)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기서 둘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1) 하나님과 사람이다. (2) 짝짓는 것과 나누는 것, 곧 결혼과 이혼이다. 예수님의 요점은, 결혼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고, 이혼은 언제나 사람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따라서 어떤 이유와 경우든지, 하나님이 짝지어 부부가 되게 하심을, 스스로 나눌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모든 결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모든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뜻이다. (마19:7-8)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오늘날처럼, 예수님 당시에도 이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마치 모세가 이혼을 명했던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면서 이혼을 정당화시켰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분명하게, 이혼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혼을 단 한번도, 권장하신 적이 없다. 

(말2:16上)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기에, 예외적인 경우에는, 이혼을 허락하셨다. 예컨대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여자가 음행을 행할 경우, 돌로 쳐죽이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를 베푸셔서, 그런 경우 죽이지 않고 이혼을 허락하셨다. 또 남자나 여자가 바람이 나서, 도무지 남편과 아내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혼을 간접 허락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하셨다. 

이혼은 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지금도 이혼은 아니다. 미래에도 하나님의 뜻이 결코 될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뜻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어, 종신토록 함께 사는 것이다. 이혼의 아픔을 겪으신 적이 있나요? 이는 이미 한번 죽은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게 되었다. 한번 죽은 것으로 족하게 여기라. 두 번 다시 죽지 말라. 과거의 아픔을 경험 삼아, 남들보다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부부가 됐는가? 결혼을 주관하신 분은, 하나님임을 잊지 말라. 따라서 좋은 배필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라. 

이제는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잊지 말라. 자기 몸을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라. 부모님을 아직 떠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가? 많이 기도하라. 하나님이 짝지어 주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가정에 감사가 넘치고, 기쁨과 행복이 넘치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결혼의 허물을 약점을 감싸줘야 한다(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즉 부끄러움 없이, 친밀하게 살라는 말이다. 약점이나 허물이, 결코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욥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의 말같이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태에서, 알몸으로 태어난다. 아담과 하와가 창조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알몸으로 창조되었다. 짝을 이루고 난 뒤에도, 알몸으로 살았다. 에덴동산은 기후도 덥거나 추워서, 옷을 입고 벗을 필요가 없는, 최상의 상태였다. 사람도 벌거벗고 살았다. 짐승들도 벌거벗고 살았다. 아담과 하와는, 몸을 따로 치장할 필요가 없었다.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완벽했다. 

두 사람은 벌거벗었지만, 전연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향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서도, 부끄러워하지를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향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선악을 구별하기 전에는, 자신의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아담과 하와는, 아직 악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벌거벗음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를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숨길 것이 전혀 없었다. 

얼굴을 붉힐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아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기 이전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이 하나님과 자유롭게 교통했다. 

자기 짝을 사랑했고, 자신의 장점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렇지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그것을 먹었다. 그 때부터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창3:7-8)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난 뒤, 눈이 밝아졌다. 그들은 자기 몸이, 벗은 줄을 알았다.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옷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렸다. 그리고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다. 죄를 짓게 되자, 그들의 벌거벗음을 부끄러워, 수치를 스스로 가리려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숨으려고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떳떳하지 못한 감정, 죄악 된 일이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도 부끄럽고, 다른 사람에게도 부끄럽고,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기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악이 아니라면, 허물을 서로 덮어줌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바란다. 우리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죄를 멀리 하고, 서로 허물을 덮어주는 가정이 되기 바란다. 가정에서는 자존심과 가식, 체면을 벗어버리고, 다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이런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일본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건설업자들이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그 주변의 지은 지 3년 된 집을 헐게 되었다. 이때 인부들이, 한 집의 지붕을 뜯다, 몸 안쪽 꼬리에 못이 박힌 채, 벽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살아 있는 도마뱀을 발견했다. 집주인을 불러 "이 못을 언제 박았느냐"고 물었다. 

"3년 전에 박았다" 주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 도마뱀은, 꼬리에 못이 박힌 채, 3년을 살았다는 말인데, 너무나 신기해서 인부들이 공사를 잠시 중단하고, 그 도마뱀을 지켜보았다.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고 와, 못에 꼬리가 박힌 도마뱀에게 먹여주었다. 이 모습이 결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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