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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상명령을 주신 주님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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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명령을 주신 주님 (마 28:16-20) 
 
 
❚지상명령

여러분, 오늘같이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면 청개구리가 왜 서럽게, 그토록 애처롭게 우는 걸까요? 여러분도 다 아시는 이야기지요? 청개구리는 본디 엄마 말을 징글맞게 안 듣던 못된 아들이었습니다. 늘 엄마 말씀에 반대로만 행동합니다. 엄마가 산으로 가자면 냇가로 가고, 냇가로 가자면 산으로 갑니다. 엄마는 세상을 떠나면서 말 안 듣는 자식이 걱정이 됩니다. 이 녀석이 내 무덤을 산에 만들어 달라고 하면 틀림없이 반대로 냇가에 만들 테니 아예 반대로 유언을 남기자 싶어 자기 무덤을 냇가에 만들어 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 안 듣던 청개구리는 엄마의 마지막 유언만은 꼭 순종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마 유언대로 엄마의 무덤을 냇가에 만들고는 비가 오는 날이며 엄마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그렇게 서럽게 운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교훈은 아마도 청개구리처럼 후회하기 전에 부모님께 순종하고 효도를 다 하라는 뜻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효도에는 기한(期限)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언젠가 반드시 세상을 떠나십니다. 그러니 부모님 돌아가신 후 후회하지 말고 살아생전에 효도하고 순종하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저도 어머님 돌아가신 후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청개구리는 아니지만 부모님의 유언에 순종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부모님의 다른 말씀은 몰라도 돌아가시며 남긴 유언만은 꼭 순종해야겠다는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모님 유언에 순종하는 것은 똑같은데 결과는 정 반대입니다. 어떤 분은 평생 교회 안 다니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나 죽은 후에 너는 꼭 교회 나가라” 하는 유언을 듣고 순종해서 교회를 나오고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여기 계신 성도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신 것을 제가 압니다. 

그런데 정반대의 사람들도 만납니다. 부인은 교회를 잘 나오는데 남편은 아무리 전도해도 교회를 안 나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남편 분이 전에는 교회도 잘 나오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던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절대 교회 안 나오는 분이 되었을까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넌 절대 교회 가면 안 된다” 하고 유언을 남기셨다는 것입니다. 이 분의 지극한 효성을 탓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한 노릇입니다. 여러분, 그만큼 살아생전 남긴 그 어떤 말보다 유언(遺言)은 중요하고 꼭 지켜야 하는 소중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 떠날 때 마지막 남기는 유언인데 절대 쓸데없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런 말을 유언으로 남길 리 없습니다. 적어도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꼭 이것만은 지키라고 당부하고 싶은 그런 말을 유언으로 자녀에게 남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유언은 그 분이 세상에서 남긴 가장 소중한 말인 셈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유언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것은 몰라도 유언만은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기왕이면 좀 멋진 유언을 남기기 바랍니다. 자녀나 후배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가장 소중한 말을 남기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아직 건강할 때 내가 어떤 유언을 남길까 생각해 두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요즘 아직 젊지만 유언장을 미리 써두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오늘 유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온 말씀이 예수님의 유언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유언이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여 다시 사신 후 승천하시기 전 남긴 유언이라는 점입니다. 아무튼 제자들과 헤어지기 전 마지막 남기신 말이기에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마지막 당부의 말씀은 정말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이기에 예수님이 생각하실 때 가장 소중한 명령,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명령만은 꼭 지켜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명령으로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온 주님의 말씀, 특히 19절과 20절에 나온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은 별명이 하나 붙어있습니다. 바로 ‘지상명령’이라는 별명입니다. ‘지상명령’(至上命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어떤 분은 이 말을 잘못 이해해서 ‘지상’(地上), 즉 이 땅 위에 계실 때 내리신 명령이라고 해석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를 지’(至), ‘위 상’(上)을 써서 ‘지상명령’입니다. 

지극히 중요한, 가장 상위에 있는 명령이라는 뜻인데 이 ‘지상명령’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절대로 복종해야 할 명령.”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이 말은, 주님의 유언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이 명령은 우리가 반드시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주님의 절대명령인 것입니다.

❚지상명령의 배경과 구성

주님이 마지막 남기신 이 지상명령은 한 마디로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선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지상명령은 한 마디로 선교명령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명령이 일반적인 선교명령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단순히 가서 선교하고 열심히 전도하라는 명령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명령은 주님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지상명령이니만치 그만큼 너무도 중요하고 핵심적인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16절부터 나오는 지상명령의 배경을 살펴봅니다. 16절에 보면 열한 제자가(물론 주님을 배반한 유다는 제외한 열한 제자겠지요) 갈릴리에 가서 예수님이 지시하신 산에 이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신다는 말씀은 이미 예언된 바이고(마 26:32), 여기 나온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이란 어떤 산을 이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주님은 산 위에서 가장 주옥같은 산상수훈(마태복음 5~7장)을 주시고, 마지막 승천하시기 전에도 산 위에서 가장 중요한 지상명령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부활하신 주님을 경배하는데 그들 중에는 아직도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17절에 말씀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못 보고 못 믿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활하신 주님을 눈앞에 빤히 보면서도 못 믿는 사람들은 도대체 뭡니까? 참 이상한 일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충분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면 지난 시간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처럼, 또 그 지난 시간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와 제자들처럼 눈앞에 빤히 부활하신 주님을 보면서도 눈이 가려져서(눅 24:16) 못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 가려지고 영적인 눈, 영안이 가려지면 육신의 눈으로 아무리 보아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이 계시다, 예수님이 계시다고 해도 절대 못 믿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보고도 못 믿는 사람도 있는데 말입니다. 믿음의 눈이 열리고 영안이 열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튼 주님은 이 모든 사람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경배하는 사람들과 아직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나아와’ 친히 명령하십니다. 무슨 명령이요? 지상명령입니다.

이 지상명령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첫째 내용은 18절에 나온 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입니다. 둘째 내용은 그 다음에 나오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세 번째 내용은 맨 마지막에 나오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첫째 내용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는 지상명령의 근거입니다. 즉 주님이 지금 어떤 권세로, 누가 준 권세로 이 중대한 지상명령을 내리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근거와 권세입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란 온 우주의 권세로 전권(全權), 즉 모든 것을 명령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세를 뜻합니다. 주님은 지금 이 전권을 가지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이 지상명령을 내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권, 그 권세는 누가 주셨나요? 당연히 하늘과 땅의 창조주요 주인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이 절대권세를 가지고 명령하시는 주님의 명령, 지상명령은 하늘과 땅에 속한 자라면 누구나 다 지켜야 할,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내용인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바로 지상명령의 내용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 내용인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이 명령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약속입니다. 지금 비록 주님은 승천하셔서 제자들과 헤어지지만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함께 하시면서 이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을 지키고 도우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세상 끝날’이란 승천하신 주님이 다시 재림하시고 종말과 심판이 일어나는 날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지키고 도우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려면 반드시 이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명령에 순종해 전도하고 선교하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당해도 낙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세상 끝날까지 주님이 함께 하며 도우실 줄 믿고 이 선교명령에 순종하기 바랍니다.

❚지상명령의 내용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지상명령을 이해하려면 이 말씀에 나온 네 개의 명령을 찾아야 합니다. 동사로 된 명령, “뭐뭐 해라” 하는 명령 말입니다. 어떤 명령어 네 개가 나옵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네 가지입니다. 이 네 가지 명령만 잘 순종하면 우리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째 명령, “너희는 가서”입니다. 왜 가야 합니까? 왜 전도하고 선교하려면 가야합니까?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첫째,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앉아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교회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새신자가 저절로 찾아오고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스스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교회입니다. 상당히 문제가 있는 교회지요. 둘째는 그렇게 스스로 찾아오고 알아서 나오는 새신자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치고 마는 교회입니다. 최악의 경우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적극적으로 ‘가서’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물론 최선의 경우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말고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만나서 전도하고 선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효자교회와 성도들은 가는 교회,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과거의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교회거나 그나마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회였다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적극적으로 가서, 찾아가서,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전도하고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서’입니다.

둘째 명령,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입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에게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유대인만 아니라 헬라인과 이방인에게도, 그리고 불신자와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전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모든 민족을 전도하라”고 하지 않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도하는 것과 제자 삼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인’(敎人)입니다. 그저 어느 교회에 나가 등록하고 교적부에 이름만 올리면 다 교인이 될 수 있지요. 둘째는 ‘성도’(聖徒)입니다. 이름 그대로 거룩할 성(聖), 무리 도(徒),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즉 교회만 단순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거룩하게 살고 열심히 믿으려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제자’(弟子)입니다. 제자란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자세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어부가 배와 그물을 버리고, 세리가 돈 상을 버려두고, 가족조차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때 제자가 된 것처럼 모든 삶에서 주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헌신도가 10%, 20% 일부분인 사람이 아니라 헌신도가 100%인 사람들입니다.

모든 신자는 이 교인, 성도의 단계를 거쳐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제자 삼는 것, 제자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이 제자화입니다. 사람들을 많이 교회로 데려오고 믿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교회만 출석하는 교인 수준에서 머물면 안 됩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성장해서 성도가 되고, 나아가 반드시 제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명령대로 여러분 모두가,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가 언젠가 다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 목표입니다. 여러분, 단 열두 명의 제자가, 아니, 유다 빼면 단 열한 명의 제자가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가 제자가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엄청난 일을, 얼마나 놀랍고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지금 주님은 그것을 꿈꾸며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너희 자신도 반드시 제자가 되고, 나아가 다른 사람도 제자로 삼는 사람이 되라”는 뜻인 것입니다.

셋째 명령,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입니다. 물론 세례를 주고 신자 삼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세례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2:20에 나온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뜻입니다. 즉 전에 죄인이었던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란 물에 푹 빠져 옛 사람이 죽고 물에서 나오는 순간 새 사람으로 다시 사는 것을 뜻하지요.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은 그를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바꾸어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완전히 새 사람으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넷째 명령,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여러분도 이 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말씀 위에 든든히 선 건강한 교회’인데 어떻게 말씀 위에 든든히 서느냐? 주보 첫 면 맨 밑에 나와 있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효자교회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효자교회는 말씀을 잘 가르칩니다.” “효자교회는 늘 말씀대로 삽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교회가 말씀 위에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모토는 오늘 20절에서 “주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 즉 그분의 명령과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에서 따온 것입니다. 우리는 늘 말씀을 잘 배우고 가르치되, 반드시 그 말씀대로 지키게,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게 해야 합니다.

❚제자가 되려면...

결론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적극적으로 가서, 모든 사람들을 교인을 넘어, 성도를 넘어, 제자가 되게 하고, 물세례와 성령으로 뜨겁게 세례를 받게 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면 우리는 주님의 유언, 주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엄히 명하신 지상명령을 지키는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지상명령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귀한 명령이기에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남기고 승천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반드시 이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교회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성도요 제자 되기 바랍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처녀로 살았습니다. 미국의 버지니아는 처녀(virgin)인 엘리자베스 1세를 기려 붙인 지명입니다. 당시 유럽은 정략결혼이 성행해서 왕이나 여왕이 수없이 결혼을 많이 했는데 그녀는 15번이나 청혼을 물리치며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이런 선언까지 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한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유럽의 해상권을 제패했으며, 신대륙으로 길을 열어 해가지지 않는 대제국 영국을 세우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개인의 행복을 포기한 대신 영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번영을 이룬 존경받는 왕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와 결혼했습니까? 물론 우리는 이미 지금의 남편과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분도 계시겠지요? 그런데 우리 육신의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고 그에게 헌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제자’란 진정 주님과 결혼한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과 결혼했다면 정말 그분만을 사랑하며,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오직 그분께만 헌신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무엇인가를 위해 진정 헌신하려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엘리자베스 1세가 결혼과 가정을 포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제자들이 배와 그물과 가족을 포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내게 아주 소중한 것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내가 결혼한 그 분께 충성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버리고서라도 따라야 할 그분의 절대명령, 지상명령, 여기에 순종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이 다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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