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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가 그렇게 중요한가!! (창 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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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가 그렇게 중요한가!! (창 22:1-19) 
 

어떤 목사님이 신장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 목사님에게 주일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친구 목사님은 설교 중에 담임목사님께 신장을 기증하실 성도들은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많은 성도들이 자원하여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구 목사님은 그 중에 한 명을 선발하기 위해 오리털 하나를 날려서 가장 먼저 안착하는 성도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오리털이 간 곳은 그 교회에서 가장 헌신을 잘하고 충성스런 장로님이었습니다. 

장로님은 자신에게 오리털이 오자 “주여!”하고 날려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그 교회에서도 가장 봉사를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 권사님 자리로 가니까 “아부지!”하며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여전도회 회장인 집사님에게 가니까 그 여집사님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오리털을 날려 보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 오리털은 지금도 안착하지 못하고 날아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예화는 말로만 헌신하고 행동이 없는 교인들을 꼬집기 위해서 만든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달랐습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은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사랑은 아들을 드리는 헌신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헌신 중에 예배에 관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3주 전인 5월 8일에 본문으로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오늘은 “예배가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 4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방인 왕이 바라볼 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확실했던 신앙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런 복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가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그랄의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지켜보니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약한 자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갈수록 강성해졌습니다. 아비멜렉은 점점 아브라함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서 상호불가침 조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이 때 아브라함은 정말 행복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 25년 전만해도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이 두려워서 아내 사라를 아내라 말하지 못하고 누이라고 했다가 아비멜렉에게 아내를 빼앗긴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사라를 다시 찾아왔지 그렇지 않았다면 영영 아내를 빼앗기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25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두 사람의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두려워하여 찾아와 엎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했겠습니까?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해 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충격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온갖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모리아산에 갑니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이삭을 묶고 칼을 잡습니다. 그 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아이에게 손을 대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신 후에 엄청난 복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번제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이 모리아산 아래에서 종들에게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가 번제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의 제사에서 신약의 예배에 관한 진리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둘 다 예배자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고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이 말씀을 잘 들으셔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 계시된 예배에 관한 진리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1. 예배에 최고의 가치를 두라.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당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보다 귀한 것이 있었을까요?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내를 사랑했지만 아브라함은 아내보다 자기 목숨을 더 소중히 여기던 사람입니다. 그는 아내 사라를 사랑했지만 자기 목숨을 위하여 바로 왕과 아비멜렉 앞에서 2번이나 사라를 아내라고 말 하지 못하고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는 아내를 빼앗기면서도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말도 못했던 사람입니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아내보다는 자기 목숨이 더 소중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자기 목숨과 사랑하는 독자 이삭의 목숨 중에 어느 것이 더 소중했겠습니까? 저는 당연히 독자 이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삭은 100세에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이삭의 성품으로 볼 때 그는 부모의 속을 썩인 일이 없고 늘 부모의 기쁨이었습니다. 이삭은 자기 이름의 뜻처럼 항상 부모에게 웃음을 주던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갈등은 있었겠지만 아브라함은 그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립니다. 이 아브라함의 행동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진리는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입니다. 100세에 얻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드릴만큼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을 힘을 써야 합니다. 바쁜 일도 많고 중요한 일도 많지만 그 어떤 일보다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할 일이 예배입니다.
성도들을 보면 믿음이 커갈수록 예배를 더 많이 드립니다. 믿음이 자라면 주일낮예배, 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등 모든 예배에 적극적이 됩니다. 예배에 적극적이 되는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전에 예화를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몽골의 이용규 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에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마음”이라는 글에 나오는 소녀 이야기입니다. 선교사님이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처소를 방문해 예배를 드리던 중, 벌러르라는 자매가 예배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돼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소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아마 상당수가 예배대신 소를 선택할 것입니다. 벌러르라는 그 소녀는 소대신 예배를 선택했습니다. 예배에 최고의 가치를 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잃었던 소가 집이 아닌 예배 처소를 찾아온 것입니다. 소가 아닌 예배를 선택한 이 소녀는 예배와 소 두 가지를 함께 얻었습니다. 예배에 최고의 가치를 두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에서 드리라.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리아 땅으로 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산에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남북이 나누어진 후에 남유다는 20명의 왕이 세워졌는데 그 중에 8명이 선한 왕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19명의 왕이 세워졌는데 이상하리만큼 단 한 명의 왕도 선하지 못했고 다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북이스라엘의 19명의 왕 중에 단 한 명도 선한 왕이 없었을까요? 저는 그 이유 중에 하나를 제사를 드리는 장소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유다에는 하나님이 제사의 장소로 명령하신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백성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8명의 선한 왕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은 자기 백성들이 남유다로 제사하러 가는 것이 정치적으로 마이너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남유다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제사를 하게 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제사를 드렸으니 선한 왕이 나올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예배의 장소가 중요합니다.
   
그럼 이 시대의 신자들이 예배를 드려야 할 장소는 어디입니까? 당연히 내가 등록한 교회, 내가 출석하는 교회입니다. 세상에 교회가 많다고 다 내교회가 아닙니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지만 내가 출석하는 내 교회가 있습니다. 내가 등록한 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세상에 집들이 많습니다. 많은 집 들 중에 내가 들어가서 자야 하는 집은 한 곳입니다. 내가 사는 내 집에 들어가서 자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내 교회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는 본교회 즉 자기가 등록하고 출석하는 교회에서 드려야 합니다. 명절에도 본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고,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그래야 합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목사님들 모임에 회원인 어느 목사님 교회에는 매주일 십일조를 4백만 원씩 드리고 건축헌금을 천만 원씩 하는 집사님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은 사업처가 한국과 일본 홍콩 등 여러 나라에 있답니다. 이분은 세계를 다니지만 주말이 되면 무조건 한국으로 돌아와서 주일예배는 등록한 교회에서 드린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교회에도 그런 성도들이 많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3. 준비된 예배를 드리라 
   
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제사하기 위하여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납니다.
   
모리아산 까지 사흘 길입니다. 사흘 길은 가까운 길이 아닙니다. 더구나 그 지역은 무더운 곳입니다. 그런데 번제에 쓸 나무를 준비해서 갑니다. 모리아산 근처에 가서 구해도 될 것인데 집에서부터 준비해서 가지고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들에게 준비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준비된 예배를 배워야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보겠습니다. 
   
① 토요일에는 일찍 자야 합니다. 몸이 피곤하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예배시간에 졸리지 않도록 토요일 밤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합니다. 밤새 사람을 만나고, 영화를 보고, 컴퓨터를 하고 주일 예배를 온전하게 드릴 수 없습니다. 정신이 산란하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토요일 밤에는 예배를 위하여 일찍 자야 합니다.
   
② 예물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 없이 앉아 있다가 헌금함이 지나갈 때 급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나오는 대로 헌금하는 모습은 하나님 앞에 아름답지 못합니다. 미리 돈을 찾아놓고 기왕이면 신권으로 준비하는 정성도 필요합니다.
   
③ 기도로 준비합시다. 은혜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 준비기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교회는 10시 15분에 예배전 기도회가 있습니다. 미리 오셔서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면 은혜가 더할 것입니다.
   
④ 복장도 준비해야 합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공식적인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에는 예배시간에 걸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⑤ 애경사는 미리 챙겨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애경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애경사를 통해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과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는데 의의를 두기도 하지만 품앗이의 개념도 강합니다. 축의금과 조의금을 품앗이의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경사를 챙기지 않으면 큰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일 개념이 없기 때문에 주일에도 애경사를 치르는 분들이 많고 그분들은 우리가 주일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주일에 예배를 포기하고 애경사를 챙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경사는 미리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미리 찾아갈 수 있으면 미리 찾아가시고, 미리 찾아갈 수 없다면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송금하고 전화를 드리고 또 후에 인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일예배까지 포기하고 애경사를 챙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다.
예배는 미리준비해서 시간이 늦지 않게 해야 합니다. 주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예배시간이 지난 후 허겁지겁 와서 예배를 드리지 않도록 합시다. 
 
4. 방해 요소를 제거하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데 방해가 될 만한 요소는 제거했습니다.
먼저 사라가 모르게 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일을 사라와 의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라가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라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아브라함과 부부싸움 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라가 이삭을 숨겨버릴 수도 있습니다. 숨기는 것이 여의치 못하면 아브라함을 죽여서라도 이삭을 지켰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사라의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에 사라와 의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종들의 방해도 대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산 바로 밑에서 종들을 떼 놓았던 것이 아닙니다. 4절에 보면 모리아산이 멀리 보였습니다. 산 바로 밑이 아닙니다. 5절에 보니 종들에게 그곳에서 기다리게 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종들과 함께 번제의 장소에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아식을 죽이려고 할 때 종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필시 종들이 아브라함을 말려서 번제가 실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종들의 방해를 예상하고 방해 요소를 제거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배를 드리는데 방해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사람들과 잘못된 관계가 예배의 방해요소입니다. 잘못된 관계는 해결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예배를 드리면 예배가 잘 드려지겠습니까? 속에서 불이 올라옵니다. 성령의 불이 아니고 울화통의 불이 올라오는데 예배가 잘 되겠습니까? 부부간의 관계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평하십시오. 불화가 예배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② 핸드폰도 예배의 방해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핸드폰은 끄든지 진동으로 해놓아야 합니다. 예배 중에 전화는 받지도 말고, 문자를 주고받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③ 예배 후에 있을 일도 방해요소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에 식사당번들의 수고 때문에 맛있는 점심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식사당번들에게는 점심식사가 예배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일점심식사가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조금 더 부지런히 서둘러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방해되지 않도록 합시다. 예배 후에 있을 일 때문에 예배시간에 옆에 앉은 사람과 주보에 글을 써가며 대화를 한다든지 서로에게 눈짓을 하는 것도 예배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예배가 끝나기 전에 미리 나가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축도까지 받아야 합니다. 축도시간에 두 손을 드는 이유는 안수의 의미가 있습니다.
   
④ 예배순서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는 것도 큰 방해요소입니다. 찬양시간에 기도는 것이나 설교 시간에 성경을 읽는 것도 예배의 방해요소입니다.    공예배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과 몸과 시간과 정성을 하나로 모아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누가 기도시간에 찬양을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찬양시간에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물론 찬양하다가 큰 은혜가 있어서 잠간 감사의 기도나 찬양의 기도를 하는 것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절제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은혜가 임한 경우에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절제가 가능한 상태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설교시간에 성경을 읽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성경을 읽는 것은 설교를 듣지 않겠다는 교만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에는 예배순서에 집중해야 합니다. 
 
5. 믿음으로 예배하라. 
   
우리는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우리가 돌아온다는 말은 이삭이 죽지 않거나 죽어도 다시 살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이지 않을 것이고 혹 죽이신다고 하더라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 아버지여...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8절에서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번제할 제물을 준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예배자의 자세 중에 가장 중요한 자세가 믿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이 없다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기도도 찬양도 헌금도 믿음이 없다면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모든 것에 믿음이 포함되어야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히 11:4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신 이유를 밝힙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믿음의 차이입니다.
   
히 11:6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비밀을 공개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들은 두 가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적용해서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① 임마누엘의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 이곳에 주님이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와 이 시간 이곳에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마 18:20에서 약속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의 눈으로 주님을 볼 수 없어도 주님은 이 시간 이곳에 함께 하십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공기가 이 시간 이 곳에 가득한 것처럼 주님은 영으로 오셔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이 시간 이곳에 충만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② 하나님이 복 주신다는 믿음입니다. 히 11:6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우리에게 상 주신다고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예배시간에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응답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17,18절을 보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숫양으로 번제를 드린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말씀이 임합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예배시간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배의 승리자가 되셔서 예배를 통해서 주시는 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주일예배에 가서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배드리며 은혜 받고 기도하다가 '예배는 국력이다'는 영감을 받고는 모든 군대에 주일예배를 시행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군목제도의 시작입니다. 예배가 국력입니다. 함께 해봅시다. “예배가 국력이다” 예배가 우리의 재산이요 삶의 활력입니다. 함께 해봅시다. “예배가 우리의 재산이요 삶의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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