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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 10:2-8) -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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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 10:2-8)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여러분들의 기도 가운데 한 주간 동안 한창욱 선교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캄보디아 사역현장에 잘 다녀왔습니다. 모두 열 한명이 다녀왔는데 선교의 현장에서 정말 많은 은혜와 한 선교사님의 사역에 놀라움을 경험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기회가 되면 우리 교회에서도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단기선교를 꼭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가서보면 다릅니다. 

정말 일정이 힘들었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곳은 세 곳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한 두 시간 걸리는 우동이라는 지역에 사랑의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는 유치원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곳이고, 또 다른 한 곳에는 생문교회가 건축되어 있어서 그곳에는 현지 사역자를 신학공부를 시켜서 사역하게 하고 있으며 배를 타고 왕복 두 시간 걸리는 곳에 우리말로는 작은 성이라는 한 곳에<조이 풀 처치>라는 이름으로 건축 중인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구리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지원하여 6천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매 주일이 되면 선교사님부부가 이 세 곳을 돌고 나면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 올 수 있는 곳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곳을 사역하기 위해서는 선교사님 부부가 감당하기는 힘들고 현지에 일하는 스텝들을 열세 명두고 사역을 하는데 그 스텝들은 모두 선교사님이 집에 데리고 살면서 교육한 스텝들입니다. 지금도 선교사님 댁에서 함께 먹고 자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스텝들 대부분이 시골 출신들로 도시인 프놈펜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공부도 시켜야하고 취직도 시키면서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가르치고, 성경공부를 시켜서 이들로 하여금 현지 아이들을 재교육하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러니까 제자 화하는 운동인데 한선교사님이 선교사역을 떠난 지 4년이 되었는데 잘 훈련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국민성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교육한다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어느 정도 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사역 지를 방문할 때마다 하여간 깜짝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현지스텝들을 보고 한선교사님 부부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이루어낸 사역인가를 실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매월 선교헌금을 작정한 대로 헌금하고 교회는 그것을 선교지로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선교지에서는 선교사가 이 헌금으로 현지사역자를 세울 수 있고, 그 사역자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이 과정이 선교현장입니다. 여러분들이 헌금하는 그 선교헌금이 이렇게 귀하고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기쁠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한국에서 좀 더 많은 선교 비를 지원할 수 있다면 현지에서 선교사는 얼마든지 더 큰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실은 돈보다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앞서면 물질은 얼마든지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로부터 오느냐 오늘 성경 본문입니다. 8절에 있는“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마음으로 산다면 해결됩니다. 그러니까 마음 이전에 신앙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어렵니 어떠니 해도 돌아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도 누군가에게 돌려 줄 것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신앙의 마음으로 선교를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초창기에 미국의 한 선교사가 한국선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서<한국인의 멋>이라는 책을 쌌답니다. 그 책에 보면 멋있는 한국인의 한 예로 김삿갓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시 한수 써놓고, 술 한 잔 얻어먹고 훌쩍 떠나는 사람, 아무리 붙잡고 한 수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아무런 미련 없이 훌쩍 떠나는 그 김삿갓의 멋이 한국인의 참 멋이라는 겁니다. 아무욕심도 바람도 기대도 없는 모습이 한국인의 멋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봅니다. 많은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중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그런 귀한 일을 하고 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하시고 훌쩍 떠나십니다. 그게 예수님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저 받은 것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입었다고 고백할 때는 거저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줘야지요. 이건 아주 합당한 논리요,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확실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종교개혁자[칼빈]은 5대 교리를 말하면서 그 가운에<불가항력적인 은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은혜는 무조건적이고,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내가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 하는 것도 아니라 내가 그 은혜가운데 서 있고, 내가 은혜를 받을만한 존재도 아니고 은혜를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은 은혜를 은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요,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은혜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거저 받은 것이니, 거저 줄 수밖에 없습니다.”하는 것이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의미입니다. 

구원이 은혜요, 용서가 은혜요, 사랑이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를 알고, 은혜에 감격했으면 베풀 줄 알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거저 받았으면 거저 줘야지 거저 받은 것을 가지고 나가서 팔겠다고 하면 됩니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거저 받은 건 거저 주는 게 옳은 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선교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거저 받은 구원을 거저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일을 위해서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면 당연히 사용해야 하는 것이 선교비용입니다. 우리가 하는 선교헌금이 바로 그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거저 주라는 것에는 그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당연한 것으로 알고 주라 이겁니다. 줘놓고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거 마땅한 거 아닙니까? 공짜로 받았으면 공짜로 줘야지 거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우리 선교 팀이 마지막 날 비용을 정산하고 남은 돈은 현장에서 모두 선교사님한테 주고 돌아왔습니다. 원래 그러는 겁니다. 선교 팀이 현지에서 일정동안 사용할 비용을 최소화하고 남은 비용은 선교비로 내놓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총무를 담당했는데 돈 안 쓴다고 핀잔도 들었습니다만 식사는 동행한 목사님들이 한 끼씩 돌아가면서 사라고 하면서까지 비용을 최대한 아끼고 거저 받아 온 것 거저 내놓으라고 윽박질러서 정산을 하니까 $980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제 주머니를 뒤져보니까 $20이 있어서 채워서 $1000을 만들어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목사님들이 선교 지를 방문하면 이럽니다. 주머니 다 비우고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비자체가 선교비용입니다. 

거저 주라는 또 하나의 이미는 보상을 바라지 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선행의 최대 보상은 한 번 더 선행을 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다.”자, 내가 선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내가 행한 선행에 대한 가장 큰 보상이라는 말입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계속 줘야 하나님은 또 계속 줄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내가 보상을 바라고 멈추면 하나님의 그 소중한 복도 거기서 멈추는 겁니다. 

첫 번째 방문한 사역지가 우동이라는 곳에 있는 사랑의 교회와 유치원입니다. 그 유치원 부지는 구리에 있는 한뜻감리교회에서 사준 부지에 지어진 곳입니다. 그 유치원에 정원은 30명인데 주변에 소문이 나서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그곳에 보내려고 줄을 선답니다. 인원이 한정 되어 있으니까 더 받을 수는 없고 수업료는 $0.5받는 답니다. 형식적으로 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곳에는 아직 남은 땅이 많이 있었고 남은 땅 한 구석에는 이미 어떤 외국 사람이 기술학교를 건축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캄보디아에는 유치원을 졸업하면서 학교교육은 거의가 불교사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원 안에 학교들이 있고 그 교육기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걱정이 아무리 유치원 교육을 기독교교육으로 시켜놓아도 학교만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불교문화에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그 나라의 종교가 불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선교사님도 지금 유치원 교육을 받고 있는 이 아이들도 앞으로는 불교사원에서 교육 받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 때문에 마음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교 팀이 그곳에서 기도회를 열고 그 사랑의 교회 유치원 옆에 남아 있는 부지를 각 교회가 협력해서 조금 더 사주는 것이 어떨까를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한 필지라고 하는 5M×15M(약25평)의 땅을80-100만원이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5개 교회 정도가 한 필지씩 감당해서 구입하게 하자고 해서 두어 분은 가지고 간 선교비로 100만원씩을 이미 주고 왔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 필지를 구입해 줘야 하는데 저는 주지 못하고 왔습니다. 가지고 간 선교비가 없어서... 장로님들과 의논해서 우리교회도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 땅이 더 필요하냐하면 그곳에서 건물을 넓히고 초등에서 고등학교까지는 교육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교육의 연장이 될 수 있으니까 얼마나 필요한 것입니까? 선교사님이 마음으로야 얼마나 원했겠습니까마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인데 목사님들이 여러 명 가서 상황을 알고 힘을 모으니까 해결 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역의 힘이기도 하고요. 

그 계획된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가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준다는 마음으로 동참하면 됩니다.
시인[괴테]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평생을 바칠 수 있을 만한 일이 있다는 것이요, 가장 존귀한 일은 봉사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평생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그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봉사하고 보답을 바라지 않는 자유인, 선교하며 기뻐할 수 있는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과 번민이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거저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저 주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불만이고, 고통이고, 걱정인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오늘 주님의 이 말씀 앞에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철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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