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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과 거룩한 안식 (출 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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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거룩한 안식 (출 20:8-11) 
 
<적극적 사고방식>이라고 하는 책을 저술한 [노만 빈센트 필]박사가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때가 되어서 열차식당을 들어갔는데 바로 옆자리에 초로의 부부가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식사를 하면서 계속적으로 불평조로 이야기를 합니다. “야채가 신선하지 않은 것 같다”고 불평을 하더니 좀 있다가는 “고기가 너무 오래된 거 같다.”고 불평을 하고, 조금 있다가는 “날씨가 왜 이렇게 변덕스럽고 좋지 않은가!”를 불평하고, 급기야는“아무래도 오늘 이 여행은 잘못 떠난 거 같다.”고 계속 불평을 합니다. 

남편이 옆에 앉은 필 박사에게 민망해서 안절부절 하다가 양해를 구합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 아내의 직업이 그래서요” 필 박사는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직업이 뭔데 이렇게 불평을 할까 생각을 해서 “실례지만 부인의 직업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대답하기를 “제조업입니다.” 그럽니다. “무엇을 만드는데요?”하고 재차 묻자 남편은 민망한 얼굴로 대답합니다. “죄송합니다만 불행 제조 공장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더랍니다.

세상에는 불행제조 공장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말과 행동, 사고 하나하나가 불만인 사람은 자기도 불행하고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은 불행을 제조하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 복인들 들어오겠습니까? 들어왔던 복도 다 나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불평들을 들어보면 각양각색입니다. 그 가운데 “나는 왜 이런 부모를 만났는가!”에 대한 불평도 있습니다. 몇 년이 지난 이야기입니다만 일본 청소년들의 60% 이상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때가 있었다고 충격적인 고백을 했습니다. 끔찍스러운 얘기입니다. 아무리 불만이 있고 불평을 한다고 해도 이 지경까지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불평과 불만은 할수록 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이고, 불만의 마음은 습관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애초에 불만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것이 제일입니다. 이 말은 불만과 불평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불평하다보면 나중에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불만하고 불평하는데 까지 이르고 맙니다. 주일 지키는 것이 죽을 만큼 괴로운 사람이 그럽니다. “왜 주일을 52번이나 되게 만들어 기지고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그리고 “왜 하나님은 주일을 꼭 지키라고 하셔서 이렇게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하냐!”고...

물론 처음 교회에 나왔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십일조해라! 기도해라! 전도해라! 봉사해라!” 그래서 실제로 안 나오고 싶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의 년 수도 쌓이고 직분도 받으면서 그 의미를 알게 되고 수용할 만한데도 여전히 이런 불평과 불만이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살라고 하신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겠습니까? 우리를 위한 것이겠습니까? 나를 위해서, 내 행복을 위해서, 내 자유를 위해서 주시는 소중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그리고 오늘이 바로 스승의 날입니다.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우리는 이런 날들을 잘 기억하고 잘 지킵니다. 여러 가지 행사를 통해서 그 날의 의미를 새기려고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허락하신 날이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야 할 날입니다. 무슨 날입니까? 안식일입니다. 이 날을 허락하시면서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복된 일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생각할 때 우리는 십계명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안식일에 대한 계명이 있습니다. 몇 번째 계명입니까? 네, 네 번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을 자세히 보면 하나의 계명이 아니라 두 가지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엿새 동안에는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는 것이 하나요, 일곱째 날은 온전히 쉬어라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일하라>, <쉬어라>는 두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엿새 동안 일 안하고 빈둥거리는 사람은 그 계명을 어기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하루를 온전히 쉬지 않는 사람도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고 쉬는 그 긴장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가장 건강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일하는 게 아무리 좋아도 쉬지 않고 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한 사람일수록 주일이 반갑고 은혜로운 법입니다. 왜요? 안식일이니까. 열심히 일하다가 정해진 하루 땀을 씻고 말끔하게 옷을 입고 예배당에 찬양하며 설교를 들을 때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고, 은혜가 있는 날입니다. 그런데 매일 똑 같이 놀고, 먹고, 쉬고, 자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날이 그날입니다. 이건 아니거든요. 주일이 그날이 그날 같은 느낌이어서야 되겠습니까? 구별된 날, 특별한 날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매일 늦잠 자는 사람은 주일도 늦잠 잡니다. 그래서 예배도 꼭 늦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주일이 안식일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매일이 푹 쉬는 날인데 굳이 따로 안식일을 떼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주일이 와도 반갑지도 않고, 교회 간다는 것은 하루 일과 중에 늦잠 실컷 자다가 잠깐 은행이나 다녀오는 일과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날이 그날인데 뭐 별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여기에 무슨 은혜가 있고, 무슨 감동이 있겠습니까? 일생을 그렇게 삽니다. 얼마나 불행한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먼저는 힘써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안식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열심을 다하여 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엿새는 열심히 일하는 날입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엿새가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힘써 일하는 사람에게만 안식일이 안식일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일곱째 되는 날에는 무조건 쉬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게 힘들게 땀을 흘리며 일하면서도 또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후에 안식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법칙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날에 대한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 중에 중요한 교육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 법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면서 실제적이고도 상징적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매일같이 만나를 주시면서 아침마다 나가서 만나를 거둬들이게 하지요. 그리고 꼭 하루에 한 번씩만 거둬들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좀 많이 거둬들이면 썩어버립니다. 

그런데 안식일 전날은 두 배를 내리고 두 배를 거둬들이라고 합니다. 왜 입니까? 안식일은 쉬어야하니까 이틀 치를 한꺼번에 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그것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비한 일은 이날 두 배로 거둬들인 만나는 썩지 않습니다. 다른 날에 거둬들인 것은 하루가 지나면 썩는데 안식일 전에 거둬들인 것은 다음 안식일까지 멀쩡합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게 하시고, 안식일 법을 가르치시고 거기에 따른 복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인지 아십니까? “안식일을 지켜서 손해나는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그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장사하는 분들이 참 갈등을 많이 합니다. 주일에 가게 문을 열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시는 이 안식일 법과 그 교육과정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손해 안 나게 해주신다.’ 믿고 <주일은 쉽니다>하고 써 붙입니다. 그런 사람치고 망해서 문 닫은 사람 없습니다. 이미 그 사람의 기준에는 하나님이 채워주셨다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쉴까 말까”갈등하면서 가게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거기까지가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심지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돌로 쳐 죽이라고까지 하면서 이토록 강하게 안식일에 대한 법을 지키도록 하시느냐 하면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안식일을 통해서 큰 믿음을 주시려고 하시는 겁니다. 먼저는 일에서 떠나는 믿음을 주시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사람은 일에 노예가 되면 물질에 노예가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일에 빠질만할 때 쉬라는 것입니다. 

<워커홀릭(Workaholic)>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 중독증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 중독증 환자인지 아십니까? 3단계입니다. 첫째는, 일거리를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일은 밖에서 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쉬어야 되는데 이걸 못하는 사람이 일 중독증 환자입니다. 

두 번째는, 휴가 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중독된 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이 사람도 일 중독중 환자라고 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일 중독증 환자라고 합니다. 이 정도로 일에 노예가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안식일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노력과 수고를 많이 하긴 하지만 그것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게 하시려고 “쉬어라!”하시는 것입니다. 쉬어보고 그래도 안 살아지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일곱 째 날까지 일해야 살아지는 게 아니라 안식일에 쉬어도 충분히 살아진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차피 내가 먹여주고, 내가 살려 주는 건데 너희들의 힘으로 사는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는 것을 안식일 법을 통하여 배우게 하십니다. 즉 수고와 노력으로 산다기보다 오직 은혜로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안식일을 주시고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막연히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건강을 위해서 좋은 음식 먹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보약만 찾아다니다가 보약 중독증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건 아닙니다. 또 갖가지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육체가 건강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영혼이 자유 해야 됩니다. 영혼의 자유로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주일에 예배를 빠지고 휴식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음을 발견하면서 영혼이 깨끗해 질 때 그것이 건강해지는 길입니다. 일에 노예가 되고, 죄에 노예가 되어서 영혼이 자유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건강이 있겠습니까! 일과 안식에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엿새 동안 열심히 힘써 일하되 무엇을 위한 일인지를 생각하며 일해야 할 것이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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