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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들이 안전합니까? (신 12:5-7, 딤전 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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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들이 안전합니까? (신 12:5-7, 딤전 5:7-8)  
 
가정에 대한 나라별 개념이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미국은 나, 아내, 자녀, 애완동물입니다. 일본은 나와 아내입니다. 한국은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삼촌, 고모, 외삼촌, 이모, 매형, 동서, 누나, 동생, 아참 그리고 나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가정 중심의 관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나보다 중요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나를 죽이고 살아야 합니다. 현대를 가정 중심주의시대라고 하는데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유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가족 제도를 가지고 있고, 이웃사촌이란 공동체의 친밀감도 있고, 콩 한 쪽도 나눠먹는다는 동정심을 가지고 있어서 참 훈훈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말들이 다 이제는 다 옛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전통적 가정관의 붕괴와 더불어 동시에 사회규범이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사회문제는 가정 붕괴에서 시작합니다. 가정이 안전해야 교회도 사회도 나라도 세계도 안전합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의 주인이 그리스도이셔야 합니다. 흔히 우리는 남편을 바깥주인, 부인을 안주인이라고 하는데 안팎주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는 가정의 기초가 성경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가훈이나 가문의 내력도 중요하고 사회윤리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아닌 성경이 가정의 기초이어야 합니다. 셋째는 가족 관계가 성경적 인간관계이어야 합니다. 가족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부, 부모이어야 하며 자녀, 형제자매가 성경적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합니다. 가족은 누구든 소유나 종속이 아닌 평등과 사랑의 관계로 형성된 가정잉어야 합니다. 
  
가정 파괴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죄의 결과입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 마귀가 개입하므로 가정이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것도 부부 사이에 개입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도 가정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가정해체원인을 보면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첫째는 소통부재라고 합니다. 자녀가 하루에 부모와의 평균 대화시간이 아버지와는 ‘없다’는 대답이 17.7%이고, 30분미만은 31.5%이고, 1시간미만은 27.9%라고 합니다. 어머니와의 대화는 ‘없다’가 6.8%, 30분미만은 20.1%, 1시간미만은 28.3%, 3시간이상은 9.8%라고 합니다. 교육학자 노만 라이트는 ‘건강한 가족에게는 건강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결혼의 의미상실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결혼기피 현상이 심하고, 이혼이 급증하고, 동성애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혼자의 동거가 10년 전 보다 72%나 늘었다고 합니다. 

셋째는 충동적 사고나 행동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부모를 살인하고, 자녀를 버리고, 친딸을 성폭행하는 일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넷째는 기존윤리와 질서의 파괴입니다. 요즘 성향은 친가에서 외가로 가족성향이 옮겨 간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고모나 삼촌보다 이모나 외삼촌이 더 좋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은 어머니 쪽 친척을 더 가깝게 여기고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등 기성세대의 의식이나 가치관과는 전혀 다릅니다. 
  
가장 아름다운 가정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정이며 이런 가정은 복이 있습니다. 시편 128:3에는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고 합니다. 아내가 복이고, 남편이 복이고, 자녀가 복입니다. 애물단지나 웬수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은 생명력이 있는 유기체입니다. 가정은 은혜의 기관입니다. 우리 모든 가정이 은혜로운 가정, 안전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손이 수고하고 복을 받아야 가정이 안전합니다. 

신명기 12:7에는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고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라는 말은 한해 추수 끝에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중 얼마를 구별하여 감사 잔치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 가족이 참여하여 기쁨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가족’이란 헬라어 ‘바이트’는 혈연 가족뿐만 아니라 종이나 나그네까지를 포함한 식솔들을 의미합니다. 
  
추수 후에 함께 먹고 잔치를 하고 즐거워하려면 손이 수고하고, 소산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추수 후에 잔치를 하려면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언제나 잔치는 부지런히 일한 결과입니다.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즐거운 잔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사람이란 개념 이후에 ‘호모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사람, ‘호모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쓰는 사람,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 서서 걸어 다니는 사람, 최근에는 ‘호모모빌리쿠스’(homo mobilikus), 휴대전화를 쓰는 사람, ‘호모오일리쿠스’(homo oilikus), 석유을 펑펑 쓰는 사람, ‘호모루덴스’(homo rudens), 놀이하는 사람 등이 개념이 발달했습니다. 그 중에 ‘호모하빌리스’(homo habilis), 손을 쓰는 사람이란 개념은 참 독특한 인간 개념입니다. 손을 쓴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손을 써야 도구를 씁니다. 
  
포유류나 파충류나 양서류나 조류 가운데 손가락이 다섯 개 이상 가진 동물은 없습니다. 손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신비한 선물입니다. 일전에 텔레비전에 보니 고릴라가 큰 나무 구멍 속에 있는 동물을 잡아먹으려고 막대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릴라도 손을 가지고 도구를 쓴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고릴라가 손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람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손의 숙련은 두뇌에 달려 있습니다. 솜씨나 손재주가 비롯되는 곳은 바로 두뇌입니다. 손은 두뇌의 거울입니다.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수도사들에게 매일 손쓰는 일을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손으로 수고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주신 은총입니다. 요즘 백화점 화장품코너에 가보면 젊은 아가씨들이 화장하느라 야단입니다. 특히 손톱을 다듬는 네일코너에 가보면 손을 다듬는데 웬 학생들이 그렇게 많습니까? 요즘 여성들 아예 허드렛일 안하려고 작정했나 봅니다. 
  
잠언 10:4에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합니다. 손이 부지런한 자가 부하게 되고, 잘 될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질서이며 하나님의 공평하심이십니다. 
  
‘미다스’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탐이 많은 신입니다.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더 많은 부귀를 원하여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이 되게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습니다. 미다스는 정원수가 손에 닿으면 정원수가 황금이 되었습니다. 조각물이 손에 닿으면 황금이 되었습니다. 가구가 손에 닿으면 황금이 되었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자신 주위의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음식을 먹으려고 손에 닿으면 황금이 되어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갑자기 반갑게 달려온 딸을 안았다가 딸이 황금으로 변하였습니다. 이 때 비로소 미다스는 지나친 욕심을 반성하였고 디오니소스에게 황금으로 변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신화에 유래하여 ‘미다스’는 탐욕 혹은 과욕을 의미합니다. ‘미다스의 손’(Midas touch)이란 돈 버는 재주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손이 욕심의 손이나 해치는 주먹이 아니라 섬김의 손, 어루만지는 손, 베푸는 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 이유는 하늘에서 무엇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손이 부지런해져서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손이 부지런해야 합니다. 쌀이 우리 입에 들어올 때까지는 88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쌀 미(米)저를 한자로 팔십팔이라고 합니다. 짐승을 키우는 목축도 손으로 하는 일입니다. 손이 게으려면 절대로 짐승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합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부지런함을 칭찬하고 게으름을 책망하는 이유도 그 까닭입니다. 
  
손이 부지런한 사람은 창조적 뇌를 가진다고 합니다. 손이 부지런한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손을 많이 쓰면 혈액순환이 잘 되어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뜨개질을 잘 하는 여학생이 머리가 좋고 지혜가 많아진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뜨개질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요? 가정에서 남편의 미운 짓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많은 것들이 있지만 게으름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집에 와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꼼짝하지 않고 양말을 벗어서 양말로 발가락 사이를 닦고 아무데나 던져 놓는 것이 일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남편은 잘 씻지 않아서 냄새가 나서 같이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바지는 마치 뱀이 허물 벗듯이 벗어놓고, 이불에서 몸만 빠져나와 출근해 버리는 것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속 터져 못산다고 합니다. 
  
시편 128:2에는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고 합니다. 손이 수고한 만큼 먹는 것은 하나님의 복입니다. 손이 수고해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교회의 온 가족이 부지런하여 안전한 가정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자기 가족을 잘 돌아보아야 가정이 안전합니다. 

디모데전서 5:8에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합니다. 가족이 우리 다른 가족을 돌보는 것은 어떤 것을 돌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가족이 서로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명령이며 사는 이치입니다. 가인은 아우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께서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반항적인 소리를 질렀습니다. 형은 아우를 지키며 돌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죄를 짓고 나서 잊은 것입니다. 
  
‘자기 친족’이란 말은 헬라어로 ‘톤 이디온’이란 말로서 주위의 집안사람들을 말합니다. ‘자기 가족’이란 말 ‘오이케이온’은 직계 가족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가정에 주신 명령은 친족과 특히 가족을 잘 돌보라는 말입니다. 가족을 잘 돌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돌아보지’란 말은 ‘프로노에이’인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미리 생각하다’, ‘준비하다’, ‘공급하다’의 뜻입니다. 가족을 잘 돌보지 않는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고 합니다. 가족을 잘 돌보지 않는 사람은 복음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란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 봉사할만한 자세가 아닌 자를 말합니다. 인간의 기본 책무를 등한히 하는 사람은 정죄를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권면을 잘 들으보세요. 빌립보서 2:4에는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라고 합니다. 남의 일을 하기 전에 자기 집안의 일을 돌보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3:4의 감독자격에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라고 합니다. 3:12에서는 집사자격을 논하면서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라고 합니다. 

디도서 1:6에는 감독자격을 말하면서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라고 합니다. 자기 가족을 잘 돌보지 못하면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학’에 나오는 말입니다. 먼저 자신을 잘 가꾼 다음에 가정을 잘 다스리고, 그 다음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과 가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나라를 다스릴 자격조차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을 잘 다스려 하며 가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렵습니다. 
  
가정폭력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합니다. ‘2010 가정폭력실태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성인남녀 53.8%가 부부폭력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여자친구문제로 아버지와 다툰 후 아버지와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상습적인 범행과 행패 때문에 아들을 살해하고 자수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친 딸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하였다고 합니다. 일전에는 어느 교수가 부인을 살해하였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문화가정의 폭력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난주간에는 우리나라에 시집 온 필리핀 여성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다 남편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가정폭력이 매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 미국에서는 14세 소년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확정받았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오머 닌햄이란 소년은 동갑내기를 옥상에서 아래로 던져 죽게 하였습니다. 이런 패륜아들의 배후에는 부모의 문제가 있으며, 결손가정이며, 파괴된 가정의 유산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파괴가 가족파괴로 이어지고 가족파괴는 대물림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주에 우리교회 어느 집사님 사업장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아주 공기도 좋고 넓은 곳에 맛있는 채소도 심어놓고, 개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있었습니다. 닭장에 들어가 보니 닭들이 넓은 닭장에서 먹이를 파먹고 있었습니다. 병아리들이 제법 많아 어미 암탉이 데리고 다니며 먹이를 쪼아 먹습니다. 가까이 가니 어미 닭이 얼른 경계하며 병아리들을 모읍니다. 급하면 날개 안에 병아리들을 다 품기고 한다고 합니다. 어미 닭은 20일 동안 알을 품고 있는데 제가 옆에서 사진을 찍고 왔다 갔다 해도 꿈적도 안 합니다. 밥 먹을 때만 잠깐 일어나 먹고 얼른 다시 가서 알을 품는다고 합니다. 닭이 사람보다 나은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에 대한 성경의 원리는 닭하고는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닭보다 훨씬 낫지만 요즘은 그렇지 못한 가정도 많습니다. 우리 가정들이 죄짓기 이전의 가정, 가족을 회복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 나니 아담이 하와를 원망합니다.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입니다. 기드온의 큰아들 아비멜렉은 동생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파괴된 가정이 얼마나 인간의 추함을 드러내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어릴 때 가정환경과 성인이 된 후의 건강 상황을 조사한 결과 어릴 때 애정결핍이 어른이 되면 질병이 된다는 것입니다. 18세 이전에 심각한 가정위기를 만나면 성인이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질병이 43%나 많다는 결과 보고가 있습니다. 
  
새벽 3시 들어오는 남편 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왜 매일 3시에 들어와요?”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때 남편은 “이 시간에 문이 열려 있는 데가 여기 밖에 없는데 어쩌라구” 그러더랍니다. 집은 새벽 3시 전에도 물이 열려 있거든요. 가정에서 충실한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아빠’는 아주 바빠서 아빠라고 부른다네요. 아주 바쁘신 분들 많지요? 바쁜 건 절대로 자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장 바빠야 할 곳은 가정입니다. 가족은 모름지기 가정에 대한 책임을 다 해야 합니다. 

  
결론 

정트리오라 불리는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씨의 어머니 이원숙여사가 지난 15일에 노환으로 93세에 별세하였습니다. 이 분을 흔히 한국사회 교육의 신화라고 불립니다. 1948년에  빚을 내어 산 피아노 한 대로 세계적 음악가 남매를 길러내었습니다. 슬하에 7남매를 두셨는데 교수로, 사업가로, 의사로 모두 자기 적성에 맞는 일에 성공하였습니다. 이원숙여사는 1970년에는 장한 어머니상, 1990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교육철학은 자녀가 소질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진로가 정하면 전폭으로 지지하는 것입니다. 정명훈씨는 “우리 어머니 기다리는데 명수입니다. 제가 어릴 때 발레, 노래, 피아노, 안 해 본 게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하지 못할 것이 없는 어머니였습니다. 자녀의 연주회 때는 가방 속에 못과 망치를 가지고 일찍 연주장에 가서 객석을 일일이 점검하였다고 합니다. 연주 중에 삐걱거리는 의지가 있을까봐 미리 고치는 것입니다. 공연장 근처에 기찻길이 있으면 철도청에 미리 양해를 얻어 연주 시간에 기차가 지나가지 않도록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1980년에 작고하셨는데 1984년에 미국의 신학대학에 입학하셨습니다. 그 때가 66세이셨는데 5년 동안 공부하면 10년은 써먹을 수 있겠지 하면서 공부를 하셔서 70세에 목사안수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한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희생과 사랑이 위대한 가정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 연동의 모든 가족들, 우리 모두 손이 부지런한 가정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 가족을 잘 돌보아 가정이 든든하고 안전한 그리스도인의 모범적인 가족이 다 되시고 늘 주의 은혜로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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