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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대한 부모, 신앙의 부모 (삼상 1:10-20,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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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부모, 신앙의 부모 (삼상 1:10-20, 26-28)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 그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두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참회록을 남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였고, 다른 사람은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였다. 아그리피나는 아들 ‘네로’를 조속히 왕위에 오르도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편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암살시키고, 원하던 대로 네로를 즉위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아들 네로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남을 죽이는 것을 배운 자식은, 결국 어머니까지 죽이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배웠던 대로, 그대로 행하는 존속살인자가 되었습니다.

  모니카는 그의 아들 어거스틴이 16세부터 방탕과 방종의 생활에 빠져 방황하고 있었을 때, 20년 가까이 눈물로 자식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님께서 강하게 어거스틴에게 역사했습니다.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는데,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는 소리가 성령의 음성으로 들려왔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성경을 폈다. 롬13:13-14이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에 붙잡혀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옛 생활 옷들을 벗어버렸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 앞에, 다시 돌아왔고, 어거스틴은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반드시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 위대한 어머니의 배후에는 반드시 위대한 신앙이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고 위대한 어머니의 뒤에는 위대한 신앙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저와 우리 모든 성도들의 자녀들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위대한 어머니, 아버지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신앙의 부모로 서야 합니다. 

여러분,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위대한 부모요, 신앙의 부모로 설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삼상 1장 말씀에 나오는 한나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위대한 부모, 신앙의 부모가 될 수 있는 지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한나가 보여준 신앙의 부모의 자세는 바로 기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삼상1:10-11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여러분, 한나라는 여인은 왜 이렇게 통곡하며 기도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1장 전반부 즉 1-18절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1장 1절에 보면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아내가 둘 있었으며 그 가운데 한나라는 여인에게는 자식이 없었음을 2절은 말씀합니다. 
5절을 보면 아이가 없었음에도 엘가나는 한나를 갑절로 사랑했지만 한나는 또 다른 아내 브닌나에게 괴롭힘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음을 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인에게 있어 자녀가 없다는 것 만큼 치명적인 아픔과 괴로움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이런 치명적인 아픔과 괴로움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브닌나와 머리끄댕이 부여 잡고 싸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그 괴로움을 하나님앞에 고백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다시 한번 볼까요? 
마음이 괴로워서 기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의 심각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주변의 사람들 때문에 또 때로는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진 환경속에서 고민하고 가슴 아플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게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에야말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만나야 할 때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때임을 기억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왜요? 사람은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괴로울 때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마치 목마르지 않으면 물을 찾지 않듯이 우리는 우리의 인생속에서 괴로움과 아픔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으로 부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고통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호루라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 남편이 3남매를 남겨 두고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25세에 혼자되었다 합니다. 세 아이를 데리고 젊은 여인이 혼자서 산다는 것이 1960년대, 1970년대에 얼마나 어려웠든지 자식들하고 살아갈 방도가 없어서 한강에 빠져 죽으려고 소풍 나가는 것처럼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먹이고 세 아이를 품에 안고 그대로 한강에 뛰어들리라고 마음먹고 마지막 식사를 먹이는데 어머니의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집니다. 
큰 딸 아이가 눈치를 채고 도망을 갑니다. 
“엄마, 나는 죽기 싫어.” 둘만 안고 죽을 수 있었지만 '내가 죽고 나면 저것이 어떻게 살아…….' 하는 생각에 쫓아가다가 못 잡아 포기하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생사의 고통속에서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죽을 각오 대신 살 각오를 하게 되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 여인은 결국 3남매를 훌륭하게 믿음으로 잘 키워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게 된다면 오늘 한나와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통의 호루라기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결단코 그 고통 가운데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예비하신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고통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포장된 축복입니다. 

19-20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결국 한나의 간절한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생각하셨고 그에게 아들 사무엘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이 밤 어떤 고통이 어떤 괴로움이 여러분에게 있으시다면 그것을 통해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응답을 경험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기도하는 한나의 이 기도는 한나 한 사람의 기도로 한나 한 사람의 축복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한나는 이처럼 기도하는 여인, 기도하는 어머니였기에 결국 그냥 그저 그런 아들이 아닌 위대한 아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시라도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로 여길 정도의 신앙의 아들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삼상12:23 함께 봉독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어머니가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는 아버지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여러분의 자녀들이 기도의 사람, 신앙의 사람, 위대한 사람으로 이 나라와 민족가운데 사무엘처럼 쓰임받게 될줄로 믿습니다. 

에이. 목사님 다른 애는 몰라도 내 아들은 글렀어요. 에이 목사님 다른 애는 몰라도 내 딸은 가능성이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성도님들이 계십니까? 

여기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태리의 한 예배당에 대낮부터 한 부인이 들어오더니, 교회 안에 앉아 막 흐느끼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너무 크게 흐느끼면서 울고 있는 그 모습을 그 교회의 감독이 지나가다가 보았습니다. 
그 감독은 울고 있는 부인의 어깨를 치면서 
“부인,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제 아들이 방탕아입니다. 죄악에 빠졌어요.” 
그 감독은 이 어머니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부인,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중에 17살에 사생아를 낳은 방탕아가 있습니까? 아무리 속 썩이고 아무리 말 안들어도 그정도는 아니겠죠? 바울 이후 기독교 역사의 획을 그은 성어거스틴은 17살에 사생아를 낳을 정도의 방탕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방탕아가 변하여 성자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을 줄로 ale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이러다가 망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가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라도 결단코 포기 하지 말고 계속하여 아들을 품고 딸을 품고 기도하는 성도들 되심으로 결국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로 변화되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한나가 보여준 신앙의 부모의 자세는 바로 드림 즉 헌신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응답해주셨습니다. 왜 응답해주셨을까요? 
11절을 다시 볼까요? 그는 자신을 위해 아들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아들을 주시면 평생 하나님께 드리겠다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인가 나를 위해 달라고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달라고 할 때 기쁜 마음으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위해서 달라고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달라고 할때 기쁜 마음으로 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이 하나님에게 유익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것에 좌우되거나 흔들리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많이 드리면 하나님이 많이 일하실 수 있고 적게 드리면 이번달은 헌금 걷힌게 적어서 너희를 도울 수 없겠구나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를 드리느냐? 어떻게 드리느냐와 상관없이 당신의 사역을 당신의 계획을 펼쳐나가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왜 우리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달라고 하는 기도를 기뻐하시고 응답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기도하는 그 사람, 그렇게 헌신하는 그 사람이 복 받길 원하셔서입니다. 
그래서 사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달라고 하는 그것이 결국은 나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사무엘을 보십시오. 
여러분, 사무엘은 젖을 떼자마자 약속대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28절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한나와 사무엘의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나와 사무엘이 영원히 못 보고 마치 슬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로를 보고 싶어 하며 평생 가슴 앓이하며 그렇게 살고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평생 하나님이 주신 귀한 아들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지도자로 크고 훌륭하게 쓰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충분히 했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자랑스러운 아들을 평생 보며 살아가는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없어지고 사라지고 그래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렸다면 그것은 내게서 사라져버리고 없어져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가차 없이 빼앗고 모른척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렸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을때 보다 얼마나 더 가치 있고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는 지, 성장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일수록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일수록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드림으로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얼마나 풍성하고 의미 있고 행복한 것인지를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축복과 은혜로 반드시 우리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922년 봄 어느 목사님의 부인이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Rhea Miller라는 여인의 신앙 시 한편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은 그녀는 그 시를 갖고 집에 옵니다. 아들은 출중한 음악(보이스, 피아노)의 재능을 타고 났고 평생 목사 아들로 교회 안에서 살아왔지만 아직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종이에 그 시를 옮긴 후 아들이 애용하는 자기 집 피아노위에 그 시를 놓았습니다. 얼마 후 아들이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가 
어머니의 필적으로 쓴 그 시를 읽게 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작곡을 시작합니다. 그는 얼마 후 미국 NBC방송에서 전속가수로 오퍼를 받습니다. 
파격적인 계약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퍼받은 방송 사역보다도 그리고 그 사역으로 얻게 될 재물보다 더 영원하고 더 의미 있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차 어느 날 한 무명의 전도자(키가 크고 매력적으로 생긴)가 자기 집에 찾아와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자고 말합니다.

이 음악가 아들은 마침내 <모든 것을 버리고>그와 함께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헌신을 결단합니다. 
그 전도자가 빌리 그래함이었고 이 작곡가 겸 바리톤 가수가 
빌리 그래함과 평생을 동역한 조지 베버리 쉐아였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세계 22억 앞에서 복음의 찬양을 부르고 70개의 앨범을 간행한 그는 
102살의 나이로 오는 열 번째 대상 그래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기자가 소감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상보다 주 예수님이 더 귀하지요”(I’d rather have Jesus)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드려지면 내가 가지고 있을때와 비교할 수 없이 가치있게 되며 아름답게 되며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네 보물을 땅이 아닌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도 뚫을 수 없고 도적질도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밤 여러분에게 있어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가장 귀중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간 그 가장 귀중한 그것이 더욱 귀중하고 보배로운 보배요,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귀중하고 소중한 보물이 많겠지만 그중 가장 단연 으뜸은 바로 우리의 아들이요, 우리의 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사무엘을 한나가 약속대로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성전에서 키우지 않고 스스로가 키웠다면 오늘 구약에 기록된대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사무엘을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아들이었기에 그는 그 아들이 이스라엘의 민족의 지도자로 신앙의 지도자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잘 키우고 바르게 키우고 행복하게 키우고 위대하게 키우기 원하면 원하는 만큼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드려서 키워야 함을 깨닫습니다. 성전에서 자라야 함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보다 우리 아들과 딸을 더 사랑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나보다 내 아들과 딸을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 분은 내가 세고 있지 못한 내 아들과 딸의 머리카락을 세고 계시며 내 아들과 딸에 대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가장 정확하고 세밀하게 준비하시고 인도하실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에게 우리의 자녀들을 드리는 것은 결코 잘못된 선택이 아닙니다. 
내 품에서 크는 자녀는 기껏해야 나만큼 성장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에서 자란 자녀는 하나님만큼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기대를 초월하고 상상을 넘어서서 위대하게 쓰임 받는 이 시대와 민족 가운데 쓰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어떻게 이 자녀를 떨어뜨릴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어도 그저 하나님의 품에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전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맡기시는 성도님들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버리지 않고 반드시 그 아들과 딸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오래 전에 미국으로 집회를 가셨는데, 그 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어느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다고 합니다. 해변에 있는 아주 근사한 식당인데, 그 식당 입구에 어떤 여자사진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강사 목사님께 그 식당 주인을 자기교회 집사라고 소개해 주시면서,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는 분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입구에 걸린 그 사진은 그 집사님의 어머니인데, 남편이 일찍 돌아가신 후 플로리다로 와서 해변 도시에서 작은 식당을 경영했는데 정성껏 손님을 섬기다 보니 식당이 번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랜 노력과 계획 끝에 저축한 돈으로 드디어 바닷가에 아름답고 큰 식당을 개업할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오픈 직전에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어 오픈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가 아들에게 두 가지 유언을 남겼는데 
“첫째는 사업보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더 귀히 여기는 믿음의 삶을 살아라. 
 둘째는 이 식당에서 술은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순종했는데, 
처음에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해서 협박을 받는 등 말썽이 있었지만, 그 협박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사진을 가리키며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라고 하니 
그냥 가더랍니다. 
목사님이 감동을 받아서 식사 후에 그 사진을 물끄러미 보니까 
그 사진 밑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미소는 저의 추억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저의 용기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저의 등불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저의 능력입니다. 
  어머니의 주님은 저의 주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우리 아들과 딸의 영원한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우리는 그들을 영원히 지켜줄 수도 돌보아 줄 수도 없습니다. 또 함께 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을 잘 돌보아주지 못할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품이 아닌 하나님의 품에서 그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복된 곳이 어디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곳이 어디일까요? 그 곳은 엄마인 아빠인 내 품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품임을 기억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의 품에서 자랄 수 있게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나를 통해 우리가 어떤 위대한 부모에서 위대한 자녀가 나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위대한 부모는 다른 어떤 부모입니까? 신앙의 부모입니다. 

한나는 오늘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 기도를 선택하는 그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의 선물, 응답의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밤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심으로 하나님 예비하신 놀라운 응답과 축복을 경험하게 되길 여러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자녀들도 사무엘처럼 기도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됨으로 이 나라와 민족 가운데 귀하게 쓰임받는 축복의 자녀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드린 어머니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아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사용하십니다. 
내 품에서 크면 나만큼 밖에 못 크지만 하나님의 품에서 크면 하나님만큼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이 밤 우리의 자녀들은 내 딸이요 내 아들이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마음대로 키워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 그 인생을 드려 그 평생을 드려 사무엘처럼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께 드려진 인생, 그렇게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자라난 인생은 마치 사무엘이 이스라엘 역사의 획을 긋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았듯이 한 나라와 민족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쓰임 바 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밤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이 밤 우리의 자손들이 이런 민족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대대손손 드러내는 복된 믿음의 자손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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