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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내의 복 (약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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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복 (약 5:11)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는 고난과 아픔만이 반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먼 길을 묻고 물어 마침내 행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가 살고 있다는 산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산 속 오두막집 앞에서 한 천사가 앉아서 무언가를 산 아래로 던지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행복을 나누어 주는 천사를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던지고 있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것 말인가? 이건 행복이라는 것이네.”

그 사람은 다가가, 크기가 각기 다른 동그란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천사의 말과는 달리 그 동그란 것에는 각각 고난, 아픔, 시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니, 이건 행복이 아니라 고난, 아픔, 시련이지 않습니까?”

천사는 웃으면서 ‘고난’이라고 적힌 것을 하나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의 껍데기를 벗겨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떤가? 겉에는 ‘고난’이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 이것의 이름은 ‘행복’이라는 것이네. 행복은 양파 같은 것일세. 우리는 인간에게 그냥 통째로 행복을 주는 경우는 없네. 겉보기에는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혀 있지만 그것의 진짜 이름은 행복이지.”

“나는 요즘 심히 걱정되는 일이 있네.  인간들은 내가 던지는 행복을 겉모습만 보고 고난, 아픔, 시련이라고 믿어. 이걸 보지도 않고 그냥 내던져 버린다는 것이네.  신은 왜 내게 행복은 주지 않느냐고, 이런 것만 주냐고 불평만 해대는 것일세. 참 한심한 일 아닌가?”
깨달음을 얻은 그가 산을 내려가려고 하자 천사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한 마디 하였습니다.

“잊지 말게. 고난, 아픔, 시련과 행복은 알고 보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행복’의 겉에 ‘고난’, ‘아픔’, ‘시련’으로 적어서 주는 이유는 
 ‘행복’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임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행복을 던져주십니다. 
문제는 그 행복이 고난 아픔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포장지에 쌓여 우리 가운데 오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양파 같이 복잡하게 행복을 둘러싸고 있는 행복의 포장지를 계속하여 인내와 믿음과 기도로 벗겨내지 못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행복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그저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그토록 갈망하며 소망하지 않아도 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그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누구나 그 행복을 둘러싸고 있는 수 많은 고난과 아픔 시련의 포장지를 끝까지 벗겨내지 못한 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이 행복을 둘러싸고 있는 이 포장지를 우리는 홀로 벗겨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까고 또 까도 나오지 않는 행복을 결국 쉽게 포기하고 돌아서지만 우리는 지칠만하면 용기를 주시고 포기할것 같으면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굳세게 붙들고 있기에 결국 행복이라는 이름 두 글자를 우리의 품 안에 선물로 안게 되는 축복을 나의 나 됨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때문에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오직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축복이요,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고통이 없고 불행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불행과 고통속에서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알고 계속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행복을 사모하며 벗겨내고 또 벗겨낼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요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인생에 불어닥친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시험과 고난속에서도 오히려 갑절의 축복과 행복을 누린 믿음의 사람을 야고보 기자는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욥입니다. 
욥은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것처럼 동방의 최고 부자였습니다. 그런 욥이 한 번에 그 모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하는 자녀 10명을 다 잃었으며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는 심한 악창이 나 기왓장으로 박박 긁을 수 박에 없는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마 이쯤 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면서 돌아설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욥은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가 찬양을 받으실지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챦았습니다.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유일한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어야 할 자신의 아내마저 하나님을 원망하고 나가 죽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떠나갔습니다. 
이 어려운때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어야 할 그의 친구들이 와서 너 무슨 잘못했지.. 하나님이 너 미워하신다 임마 하면서 그렇게 공격하며 저주하며 떠나갈 때도 욥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은 이 최악의 상황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믿음의 고백을 드립니다. 우리 다함께 욥기23:10절을 찾아볼까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욥은 자기에게 왜 이런 말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이 닥쳐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고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보배로운 정금과 같은 시간을 허락해 주실 것을 그는 알고 있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욥은 그가 당했던 그 최악의 모진 시련과 아픔을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롬8:28절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최악의 고난과 아픔의 순간이 다가올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결단코 무너뜨리고 짓밟기 위한 고난과 아픔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한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픔과 시련도 다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픔과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여러분, 여기저기 모난 볼품없는 한 대리석 조각이 아름다운 천사조각이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정으로 깨어지고 부서져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여기저기 모난 󰡐나󰡑라는 볼품없는 대리석 조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만들어 가시기 위해 때로 고난이라는, 고통이라는 정을 사용하고 계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여기저기 고난의 정을 맞아 아프고 또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고통스러워도 그것이 나를 하나님보시기에 정말 아름다운 조각품을 만들어가기 위한 과정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오늘의 아픔에 불평하는 자가 아니라 내일의 아름다움을 위해 인내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계적인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가 있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음악인이라고 칭송을 받는 그가 그의 명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나이 41세에 백혈병으로 쓰려졌습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나이, 이 세상을 하직하기에는 억울한 나이였습니다.
호세 카레라스는 절망하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고난의 현장에서 그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손길을 붙들었습니다.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충성하겠다"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골수 이식 수술과 힘든 화학치료를 받았습니다.
힘겹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머리카락은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속에서도 찬송과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었습니다.
기적같이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팔아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의 공연 수익금을 모두 이곳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때로는 질병도 은혜가 될 때가 있습니다. 나는 백혈병과의 싸움을 통해서 나보다 남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 없이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인생보다 고난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결코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그 결말은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롬8:18절 말씀 다함께 찾아볼까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오늘 왜 야고보 사도가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욥을 우리에게 본으로 가르쳐주시겠습니까? 바로 다음 말씀입니다.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그의 결말을 보라는 것입니다. 
욥은 가장 최악의 비참한 상태에 내던져졌지만 최선의 믿음의 고백을 함으로 그의 결말은 최상의 인생의 축복을 받은 사람임을 성경이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욥42:10-17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믿음의 고백 그대로 그를 정금과 같은 인생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를 가장 큰 축복의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의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시험을 받기 전 동방의 최고 부자였습니다. 이제 그는 최고 부자중에서도 더 큰 부자가 갑절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 그를 떠나갔던 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와 그를 위로하며 금을 가지고 옵니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용서를 빕니다. 잃어버렸던 자녀들을 회복하되 그의 딸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미스 이스라엘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고 성경이 말할 만큼 출중한 미모의 딸들이 되었습니다. 그는 백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으니 그는 지금 5대손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그가 겪었던 악창의 모든 고통에서도 완전히 해방되어 건강한 몸으로 장수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음을 분명히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곤두박질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밑바닥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죽을 것 같은 고통속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라 결말입니다. 모든 운동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입니다. 모든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입니다. 운동경기나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결말입니다. 어떤 인생으로 우리의 인생을 종지부 찍게 되느냐 이것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결말짓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만약 욥과 같이 가장 아름답고 축복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생애로 여러분의 인생을 결말짓고 싶으시다면 욥의 그 신앙의 고백을 여러분의 고백으로 삼으실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내게 당하는 어려움이 아무리 크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정금인생, 보석인생으로 만드실 것이라고 하는 그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인내하는 자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목사님 나도 알죠. 그런데 지금 당장이 너무 힘드니까 그렇죠. 결말은 놔두고라도 지금 당장 눈앞의 현실이 너무 캄캄하고 막막하고 답답하니까 그렇죠. 라고 말씀하시고 싶을 실 수도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저는 미국의 헤비급 챔피언인 제임스 콜벳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콜벳은 어떻게 해서 챔피언이 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 회만 더 싸우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복싱에서 한 경기가 12회 13회 15회라고 생각하면 지금 얻어맞고 있는 이대로 그대로 얻어맞을 것을 생각하면 아무도 버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콜벳은 이 회만 더 싸우자, 한 회만 더 싸우자고 생각하고 견뎌서 챔피언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의 그날에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멀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하루, 그리고 내일 하루만 더 참고 버티자고 생각하며 인내하십시오. 그러다보면 반드시 우리에게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게 될 영광의 날이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시는 에디슨 역시 발명에 성공하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만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점은 평범한 순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말 큰 인생의 위기와 시험을 만나게 되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누구인지? 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끝내는 거기에서 끝내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입니다. 
왜 우리가 사람들이 다 포기하고 끝내는 그 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까? 우리 혼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절대절망의 막바지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반드시 이대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다시 축복하실 것을 믿는 믿음 때문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랍 속담에 "태양만 비추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삶에 밝은 태양만이 가득 비추는 삶을 살기 원하지만 사실 태양만 계속되면 우리 인생은 사막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촉촉하고 푸르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폭풍우와 장마도 경험해야 우리의 인생이 더욱 아름답고 푸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지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 화사하고 아름다운 무지개는 소낙비가 없이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아름답고 찬란한 무지개와 같은 인생을 원한다면 때로는 아픔과 고통의 소낙비를 맞아야 하고 견디어내야 합니다.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기다리고 인내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제 대답은 모릅니다. 입니다. 왜냐하면 그 대답은 오직 하나님께서 해주실 수 있는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달라고 1년 동안 기도했는데 응답을 안 주시니 이제 포기해도 되겠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1년이요? 1년이면 하나님께는 1초밖에 안되는데 그건 너무 짧네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으니 우리가 1년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1초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기에 지금까지 얼마나 기도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날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은 100도에 이르지 않으면 결코 끓지 않습니다. 증기기관차는 수증기 게이지가 212도를 가리켜야 움직입니다. 99도, 211도에서는 절대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작 1도 차이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시험도 1점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갈리고 올림픽은 더 해서 불과 0.01초 차이로 메달 순위가 바뀝니다. 다 끝났다 싶을 때 한 번 더 살펴보고, 더 이상 길이 없다. 싶을 때 한 걸음 더 나가야 '변화'가 시작되고 축복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결국 포기하지 않은 마지막 1퍼센트의 인내가 우리의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 1%의 인내임을 기억하시고 축복의 날, 영광의 날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1% 인내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왜 1%의 인내를 하나님앞에 보여드려야 할까요? 
11절 마지막 말씀을 보십시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가장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영어성경에 보니까 the lord is full of compassion and mercy 즉 주는 자비와 긍휼로 가득 찬 분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가득한 긍휼과 자비를 쏟아 부으실 준비가 늘 되어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가득 준비해놓으시고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의 잔이 크면 클수록 거기에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더욱 많이 준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잔이 다 차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잔이 다 채워지게 되면 우리에게 다 채워진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와 축복이 넘치도록 결국 부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탈리아 화가[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어느 날[프란체스코 델 조콘다]라는 사람이 찾아와 작품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다름 아닌 자기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이었고 얼마의 시간이 걸리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개월로도 안 되고 1년으로도 안되니 그냥 맡겨두고 다 그리면 연락하겠노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는 다빈치는 장장 4년이나 걸려 초상화를 그립니다. 그리고 그도 모자라서 그림을 [조콘다]에게 건네면서"이 그림은 아직도 미완성입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그림이 그 유명한<모나리자>라는 작품입니다. 모나리자는 그런 사연이 있는 작품입니다. 
여러분, 명작은 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작은 완성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명작인생 , 명품 인생이 되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의 신앙생활은 100m달리기가 아닙니다. 크리스천의 신앙생활은 100m단거리 달리기가 아닙니다. 조만간에 결과가 보이고 열매가 맺어지는 그런 도깨비 방망이식 삶이 아닙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삶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마라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42.195km나 되는 먼 목표를 향하여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주저 앉아버리고 싶고 나 몰라라 내동댕이 쳐 버리고 싶은 그러한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서 인내함으로 해 나가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처럼 우리의 믿음의 삶은 바로 포기하고 싶고, 그만두고 싶고 주저 앉아버리고 싶은 수 많은 고난과 고통과 힘겨움의 자신과의 싸움에서 언젠가 맺어지게 될 믿음의 열매들을 바라보며 주님 만날 그 날을 사모함으로 달려가는 길고 긴 인내의 달음박질인 것입니다. 
그 달음박질속에서 우리는 왜 하나님이 이토록 지체하시는가? 왜 이 싸움은 끝나지 않는 것인가? 언제쯤 이 고통은 사라지게 될 것인가? 언제쯤 나의 눈의 이 눈물이 닦여질 것인가? 언제쯤 나의 이 가슴에 응어리진 이 고통의 멍에가 사라질 것인가? 하는 수 많은 질문들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런 질문들 앞에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왜 지체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갑절의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기도에 지체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은 지체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부어주실 긍휼과 은혜의 잔을 갑절로 가득히 채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어 주실 그때가 되면 부어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입니다. 
오늘 이 밤 고난과 고통의 밤을 보내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조금만 더 참아라.. 때가 되면 열매를 맺을 것이다. 때가 되면 네 눈물에서 눈물이 닦아질 것이다. 때가 되면 네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고통의 멍에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때가 되면 욥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금과 같이 나오게 될 것이다. 갑절의 축복이 함께 할 것이다.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밤 하나님의 그 음성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앞에서 1%만 더 인내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럴 때 반드시 저와 여러분의 남은 생애는 욥과 같이 아름다운 인생의 결말, 가장 아름다운 명품인생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보석과 같이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여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인내함으로 이 놀라운 축복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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