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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다에 불을 보내시는 이유 (암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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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에 불을 보내시는 이유 (암 2:4-5)

이스라엘은 대한민국처럼 남쪽과 북쪽으로 오랫동안 갈라져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갈라진 남과 북을 남한과 북한이라고 부르지만 이스라엘은 북쪽을 이스라엘이라고 하고 남쪽을 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이고 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혹은 유다와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갈라진 남쪽과 북쪽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있는 수많은 선지자들이 북 왕국과 남 왕국 중에 어느 곳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증거했냐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증거한 선지자는 호세아, 아모스, 요나, 나훔 이렇게 네 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 왕국 유다에서는 예레미야, 하박국, 미가, 스바냐,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요엘이 메시지를 증거했습니다. 아모스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대상입니다. 

그런데 북 왕국 이스라엘이 대상이면서도 주변 이방 여섯 국가 그리고 나아가서는 남 왕국 유다까지 메시지를 아울러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에 관해서는 딱 두절만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오늘 본문 아모스 2장 4-5절입니다. 이 두절을 가지고 어떻게 30-40분 동안 설교를 할 것인가 호기심이 생기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경의 본문이든지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다 보면 메시지가 길어지게 됩니다. 어떤 본문이든지 우리는 던질 수 있는 기본적인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육하원칙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 여섯 가지인데 앞에 다섯 가지에 대해서는 이미 아모스서 서론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마지막 질문인 ‘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왜 하나님께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메시지를 증거하면서 주변 이방 여섯 국가와 남 왕국 유다에까지 메시지를 증거를 하시느냐? 그리고 실제 메시지의 대상이 된 북 왕국 이스라엘은 왜 가장 뒷부분에 두셨느냐?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고 대답을 찾아볼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왜 하나님은 남 왕국 유다에 대해서도 벌을 내리시겠다고 하셨느냐? 또 남 왕국 유다의 죄는 도대체 무엇이냐? 이렇게 두 가지 질문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Ⅰ. 주변 일곱 국가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시는 이유 

먼저 하나님은 왜 곧바로 북 왕국 이스라엘에게 메시지를 직접 증거하지 아니하시고 주변 일곱 국가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셨느냐? 아모스 1장 1절로부터 2장 3절까지 왜 먼저 주변 국가에 대한 말씀을 하셨느냐?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른 견해를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올바른 신관을 갖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산지석으로 하나님이 다른 나라에 어떻게 역사하셨는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먼저 정확히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방국가에도 공의를 요구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진노는 삼키는 불과 같이 무섭다. 

하나님께서는 이방국가들이 강점으로 여기는 부분을 심판하시고 파괴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죄를 금방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한계에 달하면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다고 해서 죄를 안 보시거나 모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울부짖는 사자를 두려워하듯이 두려워해야 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증거하시는 이유는 인내하시며 기다리시다 회개하지 않으니까 회개하라고 강력한 메시지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하나님을 먼저 바르게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께서는 어떤 성품을 가지신 분이신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어떻게 대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올바른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옳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온갖 죄와 오류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올바른 하나님관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올바른 하나님관은 성경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책에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로 알기를 원하시지만 또 이스라엘 자신에 대해서도 올바로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방국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도 포함한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는 이방나라의 죄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셨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법을 주셨기 때문에 동일한 죄를 짓더라도 심판은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암 3:2) 

내가 이 세상의 수많은 족속이 있어도 너희를 특별히 사랑하고 너희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해서 이방국가보다도 더 큰 죄를 짓느냐? 그런데 내가 어찌 너희에게 보응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국방이 안정된 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시는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증거가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축복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것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관계가 없습니다. 아모스가 예언하던 여로보암 2세 시대의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최고의 국가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국경이 확장되고 경제가 부유하며 국방은 안정되어 전쟁의 위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기뻐하지 아니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모스가 예언한지 35년 만에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방 여섯 국가들도 모두 힘이 있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이 강점으로 여기는 궁궐에 불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번영하는 강자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습니다. 지금 번영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 이방국가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내신 것입니다. 


Ⅱ. 유다를 향한 심판의 메시지는 무엇을 의미하나? 

오늘 우리가 읽은 아모스 2장 4-5절은 아모스라고 하는 사람이 자기 고향 유다를 향해서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아모스의 고향은 드고아라고 했습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남 왕국 유다에 속한 마을이었습니다. 아모스는 자기 고향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충실하게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자기 고향 사람이라고 하면 잘못한 것도 무조건 잘했다고 감싸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자기 고향사람이든지 아니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충실하게 증거하였습니다. 복음 전도자는 부모든 가족이든 자식이든 혈육의 감정에 이끌려 복음의 요구를 희석시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부모님도 예수님을 믿어야 죄사함 받고 천국가는 것이고 우리의 자녀들도 예수님을 믿어야 죄사함 받고 천국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구원받고 천국에 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예수님을 안 믿으셨어도 착하게 사셨으니까 천국에 갔을 것이다. 이렇게 부모라고 해서 복음의 요구를 희석시키고 변질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우리 부모님, 자식들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있는지 정직하게 체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들의 영적인 현실도 정직하게 진단해야 됩니다. 가족들이 과연 거듭났는가? 구원받았는가? 그 증거가 진실하게 나타나고 있는가? 이것을 살펴봐야 되는 것입니다. 감정에 이끌려서 구원받지도 못한 사람을 구원받고 천국에 갔을 것이라고 안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모스는 자기 고향 사람을 향해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증거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태도가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고향 사람이라도 성경에 비추어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또 아무리 가족이라도 성경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Ⅲ. 유다를 정죄하시는 두 가지 이유 

하나님께서 유다를 정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것에 미혹하였음이라” (암 2:4) 
 
첫째, 4절 중반에 “저희가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했다.”고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사랑해서 선한 법을 주셨지만 그것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법을 주실 때에는 너희가 이랬으면 좋겠다고 하는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은 내가 싫어하고 이것은 내가 좋아한다는 명백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좁게 생각하면 십계명을 가리키고 넓게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 전체를 가리킵니다. 20세기에 만연하던 세대주의 종말론은 율법과 은혜를 원수같이 적대적인 개념으로 소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인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제사법 같은 것은 인간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은혜의 길을 예표로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법은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이웃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고 이웃도 사랑하지 않고 누가 날 건드리기만 해봐라 내가 그냥 안 놔두겠다는 식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반발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갖고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죄는 반드시 누군가 대신 죽어서 죗값을 갚아야 하는데 구약시대에는 예표로서 짐승이 대신 죽었지만 이제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으니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을 멸시하는 것은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굴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 나에게 왜 이런 멍에를 주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기차가 다닐 수 있도록 철로를 만들어줬는데 왜 나에게 철로 위로만 다녀야 하는 멍에를 주었냐고 하면서 나는 논길로 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한 바다 물고기에게 너는 바다 속에 살아야 자유가 있다고 말하자 왜 나를 바닷물로 억압 하냐고 하면서 육지로 나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이 자유인 것 같아도 사실은 그것이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이 고통이 아니라 도리어 기쁨의 근원이고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복 받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성경을 읽는 것이 재밌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시편 119편만 보아도 하나님의 법을 성도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시 119:35)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시 119:70)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시 119:92)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시 119:174) 

여러분 하나님의 법인 성경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유다 백성들을 왜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어 심판하시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멸시하고 업신여기며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취급했기 때문에 불이 온 것입니다. 
 
둘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4절 후반에 “그 열조에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고 나와 있는데 거짓 것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된 신과 우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상들은 신도 아닌 것이 신 인척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 사람의 영혼은 공백상태가 아닙니다. 공백상태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 물이 있는데 제가 물을 마시면 이 컵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마는 물이 빠져나간 빈 컵에는 공기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도 참된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으면 귀신들이 들어옵니다. 하나님으로 채움 받지 않는 사람은 귀신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중립된 지점은 없습니다. 만약 내 영혼에 아무 것도 없다면 그것은 더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나가면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남 왕국 유다의 역사는 조상들이 끊임없이 거짓 신을 따르고 우상숭배를 했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객관적인 계시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들이 만들어 내거나 이방나라가 만들어 낸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우상숭배한 적이 없고 목석에 절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우상숭배는 먼저 사람의 영혼과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각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성령을 거부하면 우상을 만드는 것은 자동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상들을 거짓 것이라고 부르느냐?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것들은 신이 아닙니다. 신으로서 존재양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석을 만들어놓고 신이시여 해봐야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째, 그들은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라” (시 135:15-18) 요즘은 우상을 일 년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준다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목욕도 못하는 그런 것이 무슨 신입니까? 가서 한번 욕하고 때려보세요.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맞아도 가만히 있는데 그것이 무슨 신입니까? 

셋째, 그들은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아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렘 2:27) 평소 잘 먹고 평안할 때는 우상에게 다 갖다 주다가 어려우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하면 자기들이 섬겼던 목석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난을 당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평소에 섬기던 신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라면서 조롱하신다는 것입니다.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렘 2:28) 여러분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상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기도하면 들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이 환난을 만나게 되면 큰 도움이 되어주십니다. 요새 말로 하면 내 “빽”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지난주에 청와대에 가셨다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인사했더니 같이 사진을 찍어주셨답니다. 그래서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얼마나 영광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빽”이라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보다 더 대단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빽”인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죄가 많아 양심이 괴로운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내 죄를 그 피로 씻어달라고 하면 죄사함과 평강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께 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낫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인간의 가장 큰 환난은 죽어서 지옥가는 것입니다. 죽어서 지옥가는 환난의 문제에 있어서 세상의 돈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의 권력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사야서에 보면 지옥에 가면 세상 권력자들이 많이 와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히틀러도 있을 것이고 무솔리니, 스탈린, 김일성도 앉아있을 것입니다. 서로 너도 여기 왔냐고 하면서 지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환난에 돈도 권력도 지위도 지식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환난에서 건지시는 유일한 도움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로 존재하시면서도 한분이신 여호와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를 요구하십니다. 첫째, 내가 말씀을 다 했으니까 너희는 성경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세장 읽으시고 주일날 여섯장 읽으시면 1년에 성경전체를 한번 읽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형통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시면 성경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어려우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서 늘 도움 받고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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