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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 제사장 (민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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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제사장 (민 6:22-27)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이런 말을 나눴습니다. 
“가정예배는 우리 가정을 코팅하는 것이다.”
종이를 코팅하면 구겨지지 않습니다.
종이를 코팅하면 더렵혀지지 않습니다.
종이를 코팅하면 찢어지지 않습니다.
종이를 코팅하면 물에 젖지 않습니다.
종이를 코팅하면 원형 그대로 오래 간직할 수 있습니다.

가정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가정을 덮어서 코팅하는 것입니다.
애굽에 장자가 죽는 재앙이 임했을 때 문설주와 문 인방에 어린양의 피가 있는 가정은 그 재앙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문설주와 문 인방에 어린양의 피가 있다는 것은 그 가정에 예배가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예배가 드려진 가정을 하나님의 은혜가 덮었습니다.

1. 유대인의 가정예배

유대인들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금요일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어 그 다음날 토요일 저녁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금요일 저녁식사는 하나의 만찬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시장을 보러 갈 땐 자녀들을 꼭 데리고 갑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시장에 데리고 갈 시간이 있으면 공부시켜야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시장에 갈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시장 보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때 아이들은 장사하는 법을 배우고, 비즈니스를 배우게 됩니다. 
우편주문방식으로 홈쇼핑을 제일 먼저 창안한 사람은 유대인입니다. 

시어즈, 세계 최초의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만든 던킨 도넛, 미국 최초의 청바지 리바이스, 캘빈 클라인, 게스, 죠다쉬, 폴로, 모두 다 유대인이 만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려서부터 자녀들을 데리고 시장을 다니며 장사하는 법과 시장의 흐름을 터득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꼭 예배를 드립니다. 
식사 전에 예배를 드리면 참을성이 길러지겠지요? 
보통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을 보면 손이 먼저 갑니다. 
그러나 유대인 가정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예배드리고 나서 음식을 먹게 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를 가르칩니다.
아무리 배구파도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어릴 때부터 내면의 조급함을 다스릴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 때 식탁에 아버지의 의자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출장을 가시게 되면 식사자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아버지의 자리를 자녀가 차지할 수 없습니다. 
가정의 제사장은 아버지입니다. 
배우고 못 배우고를 떠나, 있고 없고를 떠나, 높고 낮고를 떠나, 아버지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가정예배를 드릴 때 꼭 헌금을 합니다. 
‘푸쉬케’라는 동전 항아리가 있어서 거기에다가 꼭 돈을 넣습니다. 
어린이들은 동전을 넣고, 어른들은 지폐를 넣습니다. 
그 헌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습니다. 
유대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누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5천명의 것을 혼자 먹어치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노력으로 5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성공한 사람일까요?
5천명을 먹이는 사람이지요!
여러분은 5천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들은 음식을 축복합니다. 
이것을 ‘하 모찌’라고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에모토 마사루’라고 하는 사람이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써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물에게 ‘감사하다, 고맙다’라고 축복하면 물의 결정이 육각형으로 뚜렷하게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우리 몸의 70%는 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좋은 말을 하면 우리 몸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불평을 하고, 남을 욕하면 몸이 이상해집니다. 
몸이 피로를 느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그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물과 음식에 축복을 합니다. 
우리나라 어른들도 벌써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음식 투정하면 체한다.’ 

이것이 과학적으로 맞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고, 이웃을 원망하는 것이다. 음식은 하나님이 주시고, 이웃의 수고를 통해서 우리의 밥상에 올라온 것이다. 그러니까 음식에 불평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요, 이웃의 배려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먼저 음식에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이라고, 귀한 음식이라고, 정성되게 마련한 음식이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식사를 한 다음에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가족 간에 대화가 없습니다. 
어른들은 TV를 켜놓고 밥을 먹습니다.
식사할 때 TV를 켜놓는 것은 독약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TV가 가족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주범입니다. 
아이들은 인터넷 하면서 밥을 먹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금요일에 예배를 먼저 드리고, 온 집안 식구가 함께 식사를 하고, 그리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대화 시간을 가집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들이 대화를 합니다. 
미국에서 그렇게 많이 팔리는 허쉬 초콜릿은 유대인이 만든 것입니다. 
하겐다즈, 베스킨 라빈스, 벤&제라 아이스크림도 디저트용으로 유대인이 만든 것입니다. 

세계적인 기업들이지요.
밥 먹고 앉아서 자녀들과 대화할 때 먹을 것이 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유대인들이 디저트를 개발한 것입니다.
그 제품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한 것입니다. 
가정예배를 드리고 나서 자녀들과 대화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씩이라도 30분, 1시간씩 대화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들 간의 대화가 막히니까 자녀들이 잘못되고,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가정예배는 자녀교육의 중요한 교육현장입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에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강보는 아기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간난 아기의 몸을 감싸는 천입니다. 
유대 여인들은 아기를 임신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수놓아 강보를 만듭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놓은 천으로 아기의 몸을 감쌉니다.

의미가 있지 않아요? 
유대인들은 세 살부터 열 살까지의 아이들에게 모세오경, 토라를 외우게 합니다. 
성경구절을 최소한 100구절을 외우게 합니다.
그러면 인생의 어려움이 닥쳐올 때, 성경구절이 그 사람을 구원해낸다는 것입니다. 시련을 당하고, 어려움이 오고, 환란이 와도 자기가 외우는 성경 100구절이 그 사람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2. 가정의 제사장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가정의 제사장인 부모님이 자녀를 축복해야할 내용입니다.
한 구절씩 살펴보겠습니다.

①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네게 복을 준다.’는 말은 ‘네가 복이다’라는 뜻입니다.
네가 복덩이가 된다는 말입니다. 
며느리가 들어와 집안이 잘되면 그 며느리를 복덩이라고 하잖아요?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자체가 복입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요셉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애굽 나라가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런 복덩이가 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복은 영적인 복과 현실적인 복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28:4-6절을 보십시오.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히6:14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② 24절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주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 재해로부터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경호원이 철통 같이 보호합니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은 결국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인간이 지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뭘, 어떻게 지키겠어요? 
따라서 하나님이 보호하고 지키신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신32:10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시91:7절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정예배는 여러분의 가정을 코팅하는 것입니다.

③ 25절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얼굴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 능력, 사랑, 지혜 등을 말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가린다는 것은 저주의 표현이었습니다. 
고난 중에 있던 욥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욥 13:24절 “주께서 어찌하여 얼굴을 가리시고 나를 주의 원수로 여기시나이까?” 

여러분, 다음의 고백에 ‘아멘’으로 화답하길 바랍니다.
(구약성경에 있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성도는 가로막은 홍해를 가르는 재미로 산다.’
‘성도는 방해하는 여리고성 무너뜨리는 재미로 산다.’
‘성도는 날아가는 메추라기를 떨어뜨리는 재미로 산다.’
‘성도는 성난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는 재미로 산다.’ 아멘. 
하나님께서 항상 여러분을 향하여 얼굴을 비추셔서 이런 재미를 맛보시길 축원합니다.

④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평강, 샬롬’입니다. 
이것은 전쟁이 없고 풍랑이 없는 소극적인 평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는 아주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평강을 말합니다. 
‘풍랑이 일지라도 잠잠케 하시고, 병들지라도 고쳐주시고, 주릴지라도 먹을 것도 주시고, 얽힌 문제가 있을지라도 해결해 주시는, 그래서 우리에게 평강이 임하도록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평안하지 않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음이 평안하지 않는데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음이 평안하지 않는데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시4:8절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24-26절을 다시 보십시오. 
‘네게’라고 하면 자녀의 이름을 거기에 넣어보십니다.
그리고 한번 축복해보십시오. 

“여호와는 OOO에게 복을 주시고 OOO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ㅇ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OOO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여러분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매일 자녀들에게 이렇게 축복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와 평강이 늘 넘쳐나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난번 ‘존 웨슬리 회심 성회’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습니다.
두 주먹을 쥐고, 파르르 떨면서 외쳐야 합니다. 
“더 이상 요 모양 요 꼴로 살 수 없다. 축복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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