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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어찌하여 염려하느냐? (마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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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어찌하여 염려하느냐? (마 6:25-34)

시작하는 말

미국 콜로라도 주 “용의 봉우리” 지역에 400년 동안 14번의 벼락을 맞은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는 14번의 벼락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라고 푸른 잎을 피웠습니다. 그 나무는 실패와 좌절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손톱만한 딱정벌레가 그 나무속에 들어가서 뿌리 밑동을 갉아 먹고 새끼를 낳는 바람에 메말라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외부에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우리 외부의 환경과 어려움들은 절대로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환란과 고난은 도리어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들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내부의 적들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우리의 믿음을 없애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며, 신앙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염려가 도대체 무엇인가 ?

엘리자베드 1세는 알레콘의 새 출발에서 “나의 걱정거리는 태양아래 나의 그림자와 같다. 내가 도망가면 좇아오고, 내가 좇아가면 도망간다.”라고 말했습니다. 

염려란(Anxiety) “마음을 편히 가지지 못하고 걱정하는 일”을 말합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보존을 위해 ➀의식주(衣食住)를 비롯하여(마6:25,28, 31-32), ➁이 세상 일(눅21:34, 고전 7:34), ➂또는 미래에 대하여 (마6:34) 염려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염려”로 번역된 헬라어 명사는 “메림나(merimna)”이며 동사는 “메림나오(merimnao)”입니다. 이 말의 뜻은 “나눈다. 마음이 나뉜다. 몇 가지로도 나눈다.”는 등으로 번역되는 동사 “메리죠(merizo)”와 “생각, 마음, 지성, 판단”이라는 뜻의 “누스(nous)”와의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염려란 ➀마음이 나누이는 것 ➁감정이 나누이는 것 ➂생각이 나누이는 것 ➃판단의 기능이 나누이는 것 ➄결심이 나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마음이 나누인 사람의 불행한 상태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1: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염려의 또 한 가지 헬라어 어원은 “숨을 죽이게 만든다. 목 졸라 질식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자는 먹잇감을 죽일 때 다리를 물지 않습니다. 아픔을 줘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목이나 입을 물어 숨통을 끊어 질식시켜 죽입니다. 

염려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질식시켜서 무력하게 만들고 넘어지게 만듭니다. 염려는 불안과 걱정을 만들고 하나님을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염려는 옳지 않은 선택을 하게하며 신앙의 순수함을 타협하게 만듭니다. 

존 학개(John Haggai)는 염려란 “인류의 공공의 적 제1호이다. 그것은 수만 명을 살해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의 원인을 믿음이 적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6:25-34). 이것은 비난이기 보다 신앙의 격려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염려 하느냐 ?

심리학자들은 염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염려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들에 대한 염려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염려이며, 22%는 너무 사소해서 염려할 필요가 없는 일이고, 4%는 도저히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고작 4%만이 우리 힘으로 해결 가능한 일에 대한 염려이다. 즉 우리가 하는 염려의 96%는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4%만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즉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일어나는 모든 일의 96%는 염려해보아야 소용이 없는 일들이고, 나머지 4%는 우리가 힘써 해결하면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100%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두렵고 떨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신명기 28:15-68에는 율법의 가지각색의 저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저주아래서 두렵고 떨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염려와 근심 걱정으로 가득한 생활을 했습니다. ➀하나님의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이 나오면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혹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재앙을 당할까 염려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➁안식일이 되면 은 꼼짝달싹 못했습니다. 혹시 돌에 맞아 죽을까봐 염려가 되어서 말입니다. ➂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부정한 음식이나 우상의 제물을 먹고 부정탈까봐 염려가 되어서 말입니다. ➃옷도 제대로 입지 못했습니다. 남녀의 옷을 바꾸어 입어 총회에서 끊어질까봐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➄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율법의 저주에서 걱정과 근심, 두려움과 염려를 오지랖에 싸고 살았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우리 주님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평화와 안식을 주셨습니다. 

➀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3:1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라고 말했습니다. 

➁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했습니다. 

➂사탄의 결박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사탄은 우리들에게 우환질고를 몰고 옵니다. 우환질고는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안에서만 역사하는 사탄의 짓입니다. 사탄을 물리치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사야는 53:4-5절의 메시아 예언에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너희를 위하여 내가 속량의 은총을 베풀어 지금은 신천신지(新天新地) 즉 천지개벽(天地開闢)이 일어나 하늘나라가 지금 곧 세상에 임했는데도 옛날같이 “왜 의심하느냐? 왜 염려하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➀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➁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➂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➃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➄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➅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➆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➇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➈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➉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⑪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➀공중의 새는 염려는 하지 않지만 새벽부터 저녁까지 먹이를 찾아 수고하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➁들의 백합화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을 견디고 버티고 이겨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➂들의 풀 한포기(잡초)는 잡초의 근성을 가지고 누가 돌보아 주지 않아도 자생력을 가지고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질경이 같은 잡초 말입니다.

너희가 왜 믿지 못하느냐 ?

우리는 염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대로 실천하면 어떤 역경과 고난 속에서라도 궁상(窮狀)을 떨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스도인답게, 하늘의 백성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➀염려대신에 믿음을 가져라. 우리 주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6: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염려하는 일은 결국은 믿음이 작기 때문에 염려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귀신들려 간질 발작을 하는 아들을 데려온 아비에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고 말씀하시고 그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➁염려되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라. 사도 베드로는 벧전5:7-9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말했습니다.

➂염려대신 쉬지말고 기도하여라. 사도 바울은 빌4:6-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끝맺는 말

싯다르타라는 시인은 “너희 들판의 꽃들이여 누가 너희 보드라운 얼굴로 태양을 향하게 했느냐? 늘 부족함 없이 자라는 너희의 비밀은 무엇이냐?”

그 질문의 대답은 우리 주님이 마태복음 6:28,30절에서 명쾌히 대답해 주셨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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