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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라 (갈 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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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흔적을 가지라 (갈 6:11-17)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의 표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대인들은 할례를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라고 생각하여 할례를 받은 것을 자부심과 굉장한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나는 할례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특별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교회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복음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진리를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많은 박해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박해를 피하여 루스드라는 곳에 옯겨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적을 행함으로 많은 개종자들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끈질긴 방해는 이신칭의의 교리를 흐리게 만들고 율법주의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공짜로 선물로 받는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그래도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해야 구원을 받지 않는가라는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보내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굳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도 율법과 복음의 비교를 말하면서 율법은 복음이 오기까지 준비하는 기능이고 구원은 율법이나 할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육체의 할례는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참 자유인이 어떤 사람이고 예수님이 나와함께 하는 흔적이 있는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1.육체의 흔적을 자랑하지 마라(11-12)

바울이 받은 복음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로 받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율법에 바울은 능통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운 사람일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나 직접 복음을 받았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오직 애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라 이말입니다. 

그가 주장하기를 율법으로 할례를 받게하는 것은 자기를 자랑하고 나타낼 육체의 흔적을 가지려는 생각입니다. 첫째는 유대안인의 표를 가지고 육제를 자랑하려는 생각이고 무엇인가 남에게 보여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받지 아니함으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을 면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은 매우 심한 핍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무슬림이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자들은 가문에서 파문을 당하고 공동체에서 버림을 당한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나 할례로 구원을 받는 다고 믿는 사람들인데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하여 예수를 믿으면 많은 환란과 핍박을 각오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핍박을 면하기 위하여 거짓된 진리고 억지로 받아들여 할례를 받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문은 육체의 자유함을 따를 것인가 고난이 와도 생명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갈6: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지리가 아닌 것을 어떤 유익을 따라 굴복하는 것은 비겁한 일입니다.


2.예수님의 사랑의 흔적을 자랑하라(13-14)

할례 받은 사람은 할례를 자랑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육체를 자랑하는 자가되고 마는 것입니다. 할레는 자랑하려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는 잘라버림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롬2:25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육체의 할례는 무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할례는 자랑하면서 마음으로는 잘라버리지 못한다면 그는 이중적인 사람이고 그것은 아무 쓸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생활은 불신자가 같이 살면 이름만 신자이고 속은 불신자입니다. 우리의 자랑과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은 율법이나 할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믿음입니다. 연조자랑하고 직분 자랑하고 일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무익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육체를 자랑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습니다. 그들의 가문 자랑, 혈통자랑, 그러나 바울은 나도 자랑하려면 할 것이 많이 있지만 나는 예수님만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왜 십자가를 자랑하라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고 나니까 모든 것은 배설물로 여길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자랑하겠습니까?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로 내가 변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자랑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십자가는우리의 구원의 표이기 때문입니다. 

어는 여대상이 엄아의 흉측하게 이그러진  모습때문에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을 싫어 했다고 합니다. 친구들 보기에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여대생이 되어 입학식에도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쌀쌀맞게 대하였습니다. 어느날 엄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하여 한통의 편지를 딸에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 마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네가 알아야 할 일이 있는데 내 얼굴이 이렇게 된 것은 네가 새살때 우리집에 불이 났단다. 어느 것보다 잡들어 있는 너를 구출하려고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것을 내가 생명을 걸고 들어가 너를 구출하다가 너를 구출해지만 불이 몸에 붙어 화상을 입었단다. 이 편지를 받은 딸은 눈물로 엄마에게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엄마 제가 잘못햇어요 저는 지금부터 엄마 얼굴의 흉터를 자랑할래요 그것은 저를 살린 흔적이라고요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피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입니다.

3. 예수님의 흔적으로 세상을 이기라(15-17)

유대인들은 할례에 대하여 많은 무게를 두고 있고 할례를 받지 않으면 이방인이나 버리운자 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본문은 할레를 받거나 받지 않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받았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고 거듭나 새로운 사람이 되었느냐 아니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새롭게 된 사람은 예수의 흔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흔적이라는 말은 스티그마로 표적, 표식을 의미합니다. 소유에 대한 표식을 받았느냐 이 말입니다. 요즘 이단을 부르짖고 있는 사람들은 거듭남의 증거가 있느냐 고 질문을 합니다. 그것을 예수를 만난 표적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야곱이 형의 낮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모진 고난과 역경을 마치고 거부가 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얍복강에 이르렀는데 얍복강 건너에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기를 죽이려고 마주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가 한일은 자기가 가진 재물을 세뗴로 나누어 먼저 보내고 자신이 한일은 밤이 맞도록 천사와 씨름하는 작업이 벌어진 것입니다. 밤이 다가고 새벽까지 씨름하는 중에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치 않겠다는 결단으로 매어 달리고 드디어 야곱이 환도 뼈가 부러지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때 비로써 옛 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이 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야곱은 절룸발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몸을 절룩일 때마나 주님을 만난체험으로 세상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변화의 흔적 스티그마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난 변화의 얍복강이 있습니까? 

이후에 야곱은 욕심쟁이 야심쟁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것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0년 원수가 물처럼 녹아져 서로 목을 안고 통곡하는 화해가 일어난 것입니다. 흔적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과의 회복, 물질과의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흔적은 단순한 육체 표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너는 내것이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인침이며 화해와 회복의 선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끊을 것을 끊고 새 사람이 되었느냐가 문제이라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주님을 위한 수 없는 고난이 자신에게 주신 흔적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교인 중에 어떤 이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려는 자들이 있었어도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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