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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어요 (창 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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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어요 (창 26:1-6)

어느 한 집사님이 급히 길을 가다가 길에서 같은 교회 어느 나이 많은 권사님과 마추치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이 물었습니다. 
“집사님 !어디를 급히 가시는 길입니까?” 
“예, 학원 좀 알아보러 가는 길입니다.” 
“무슨 학원엘 다니시려고요?” 
“요즈음 우리 남편이 매일 매일 반찬을 못한다고 저를 구박하기를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래서 학원엘 좀 다녀 보려고 알아보러가는 길이예요” 

권사님이 또 다시 물었다 
“도대체 어떤 학원엘 다니시려구요?” 
“예 유도학원엘 좀 다녀 보려구요” 

여러분의 가정은 유도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복은 가정에 임해야 합니다. 그리고 갈수록 좋아지고 풍성해집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식 문제를 놓고 보면 아브라함의 가정은 자녀 생산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집안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몇 세에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80세가 넘어서 어렵게 이스마엘을 봤습니다. 100세가 되어서야 기적처럼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자녀 생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보다는 훨씬 나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은 결혼 후 20년 동안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는 어려웠지만 확실히 아브라함 보다는 수월하게 자녀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은 어떻습니까? 결혼 하자마자 자녀를 보기 시작해서 12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어렵게 자식을 낳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처럼 기도하여 자식을 낳지도 않았습니다. 결혼 후 바로 자식을 보기 시작했고 12 아들이라는 많은 자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외상황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신앙의 축복이 이런 것입니다. 신앙을 갖게 된 첫 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지만 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2대째가 되면 좀 더 수월해 집니다. 그리고 3대째에 들어서면 훨씬 쉽게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의 연조가 더해질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여러분 때보다 더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손자 시대에는 손자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신앙의 유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많은 복을 받았다”고 간증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이삭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삭의 인생에 몇 번의 큰 시험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가장 큰 시험은 창 22장에서 모리아산에서 번제단에 제물로 올라가야 했던 일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진짜 죽여서 번제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때 이삭은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순순히 번제단에 올라갔습니다. 그 때의 시험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이삭도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그 시험은 아브라함만 통과한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이삭 역시 시험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혹시 아십니까? 이삭에게 가장 큰 시험은 창 22장에서 모리아산의 번제단에 올라갔던 시험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본문의 시험이 이삭에게는 더 큰 시험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삭 시대에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드니 목축을 하는 이삭으로서는 도저히 가나안 땅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이삭은 물과 양식을 찾아서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삭과 식솔들이 애곱에 내려가는 중에 그랄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랄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에 내려가지 말고 그랄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실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이삭이 모리아산에서 번제단에 올라갔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에는 이삭이 그랄에 머무는 것이 쉬었을까요? 어려웠을까요? 여러분이 만약에 이삭은 믿음의 조상이니 하나님의 명령에 쉽게 순종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본문을 너무나 단순하게 바라본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삭이 그랄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모리아산에서 제물로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살펴봅시다.
   
이삭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랄도 흉년인데 그곳에 머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을 보듯 뻔한 것 아닙니까. 이삭이 이해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랄에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랄에는 물도 부족하고 풀도 말라가고 곧 양식도 바닥 날 것인데 어떻게 그랄에 있습니까? 애굽에 내려가면 물도 있고, 양들을 먹일 풀도 풍부하고, 먹을 양식도 구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까?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명령입니다.
   
안전의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이삭의 식솔들이 그랄에 머문다면 그랄 사람들이 이삭의 식솔들의 무장해제를 요구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랄 사람들은 블레셋 족속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블레셋 사람들은 공격적인 습성이 강한 민족입니다. 그들이 이삭의 부족을 공격한다면 이삭의 식솔들은 멸절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랄에 머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이 부족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삭의 부족은 최소한 3천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그보다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때에 집에서 훈련된 군사만 318명이었고 이삭 때는 하나님의 복이 더 커졌기 때문에 그들의 가족들을 생각해 보면 숫자가 나옵니다. 적게 잡아도 3천명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삭의 말 한 마디에 일치된 마음으로 “예” 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 중에는 그랄에 머무는 것에 대해서 심한 반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비멜렉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비멜렉의 입장이라면 이삭과 이삭의 식솔들을 받아드리겠습니까? 흉년으로 자기 백성들도 물과 풀과 양식이 부족할 판인데 이삭의 식솔들을 받아드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삭은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도저히 그랄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삭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져서 입맛도 떨어졌을 것이고 잠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부족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족원들의 반발에 대한 염려도 컸을 것입니다. 이삭의 온 몸과 마음은 흉년에 타들어가는 논바닥처럼 바짝 바짝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자기가 들은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해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하지만 분명하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삭은 기도로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 여기 머물러 있다가는 우리 부족원들 다 굶어죽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들인데 이대로 죽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제발, 저희들이 애굽으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이삭은 부질없는 기도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 구하고 또 구했을 것입니다.
   
리더는 위기의 순간에 정확한 판단력으로 올바르고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결국 이삭은 환경을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을 합니다.
   
먼저 이삭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지금까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을 믿고, 이번에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대로 좋은 결과를 주실 것을 믿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이삭은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식솔들을 설득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듭니다. 사실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한 두 명이 아니라 3천명 이상의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이삭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겠지만 이삭은 포기하지 않고 식솔들을 설득했습니다.
   
식솔들을 설득시킨 이삭은 그랄 왕 아비멜렉을 설득합니다. 이삭이 아비멜렉을 설득하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요? 정말로 어렵습니다. 어찌 보면 가족과 부족원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아비멜렉을 설득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비멜렉에게는 그랄 사람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기의 왕좌마저 흔들릴 수 있는 일입니다. 어쩌면 이 일로 인해서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포기하지 않고 아비멜렉을 설득했습니다. 아마도 이삭은 아비멜렉에게 “저와 저의 부족을 머물게 해주신다면 우리가 당신들의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해결해 주겠습니다. 그러니 척박한 땅이라도 우리들이 머무를 수 있는 땅을 주십시오”
   
이삭은 믿음으로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 그랄에 머물게 됩니다. 이삭은 부족의 존폐가 달린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맙니다.
   
이삭이 도저히 머물 수 없는 그랄에 머물게 됩니다. 이삭의 이런 순종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이 그랄에 머물 결심을 하고 그랄에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삭에게 머물 수 있는 용기와 신앙적 결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내가 결심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가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족뿐 아니라 부족 전체에게 이삭의 지도력에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부족들이 이삭의 말을 듣고 한 마음이 되도록 감동하신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부족 식구들이 이삭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그랄에 머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이 이삭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아비멜렉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아비멜렉이 미치지 않고는 이삭과 이삭의 부족을 받아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미치지도 않았는데 이삭의 요구를 받아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마음을 만져주셨다는 결론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넘치도록 풍성한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먼저는 경제적인 복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그랄에 머무는 동안 이삭의 장막도 그랄의 모든 백성들에게도 물과 풀과 식량을 다 책임져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것처럼 하셨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랄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기적적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이삭이 농사를 지으니 백배의 복을 주셨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이삭에게 풍성한 양식을 주심으로 이삭의 부족원들 뿐만 아니라 그랄 사람들까지도 먹여 살리게 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경제적인 복만이 아니라 안정의 복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반발을 막아주셨습니다. 어떤 데모도 없었습니다. 이삭의 부족원들 뿐만 아니라 그랄 사람들도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삭과 그랄 사람들 사이에 한 건의 충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이삭의 식솔들이 그랄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경제권, 안정권으로 이삭을 높여주셨고, 이삭이 그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들이 머물러야 하는 그랄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삭처럼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이 가라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신 그랄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인생에 풍랑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환경을 따라가고, 사람을 따라가고, 육신을 따라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삭처럼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랄은 위험해 보입니다. 그랄에 머물면 손해를 볼 것 같습니다. 그랄만 떠나면 모든 것이 해결 될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지금 그랄을 떠나려고 온갖 핑계거리를 찾고 온갖 방법을 찾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여러분의 그랄을 떠나지 머무십시오.
   
여러분이 그랄에 머물면 이삭을 도우셨던 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삭의 적군이었던 아비멜렉과 그랄 사람들을 이삭의 편이 되게 해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의 대적을 여러분의 편이 되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삭 때문에 이삭의 식솔들과 그랄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그랄에 머무는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 주변에 기적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 때문에 이삭의 식솔들을 책임지신 것처럼 여러분의 식솔들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여려분의 사업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오늘날의 그랄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그랄은 많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면 감동에 순종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랄에 머무는 것입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에게 공통적인 그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교회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그랄 땅처럼 척박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 별 소망을 찾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떠날 이유는 많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회자의 설교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헌금문제, 헌신과 봉사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환경이나 시설의 불편함도 있을 것입니다. 목회프로그램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리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문제나 가족의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그랄인 우리 교회를 떠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랄에 머물면 망할 것 같고, 다른 곳에 가면 더 복을 받고 잘 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곳에서 할 일이 있어서 보내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보내 주셨다면 이삭처럼 순종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의 기쁨으로 감당하면 이삭이 받았던 100배의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교회는 여러분의 그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이곳에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시 16:6 말씀을 받았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이 곳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우리 교회에 보내신 것은 여러분의 흉년을 해결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의 흉년을 해결받기를 축원합니다.
   
흉년 문제 때문에 이곳, 교회를 떠나면 안 됩니다. 반드시 이 곳에서 해결하십시오. 이삭이 그랄에 머무는 동안 흉년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여러분이 비전교회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장기영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시흥제일교회에 교회 건축으로 인해서 생긴 간증입니다.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교세는 기울어지고 목사님은 힘이 빠졌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떠나니 목사님이 새벽기도 때마다 울었습니다. 어느 여집사님이 날마다 우시는 목사님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도 건축 헌금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몸을 팔아라” 집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몸을 팔라니, 내가 무슨 말도 되는 생각을 하나’ 그런데 다음 날도 동일한 음성이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하나님께 “하나님, 내 몸을 어떻게 팝니까?”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전에 강남 터미널에 갔다가 화장실에서 신장을 산다는 연락처 적어놓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기증하면 4천만 원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집사님은 교회를 건축하고 목사님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원해서 신장을 팔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신장을 기증형식으로 팔려면 가족의 동의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집사님의 남편은 주보헌금란에 아내 이름만 들어가도 화를 내고 욕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남편에게 장기를 팔아서 헌금을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된 감동에 집사님이 순종하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크게 화를 내면서 아내를 두들겨 패는 것이었습니다. 두들겨 맞은 집사님이 방 한쪽 구석에서 울고 있으니 포악한 남편이 아내에게 “네 맘대로 해” 하더니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님이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해있는데 목사님과 장로님이 가서 보니 집사님이 아파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교회에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교인들이 감동을 받고 헌금하기 시작해서 교회를 잘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집사님의 남편이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교회가 자기 아내가 피 흘려 지은 교회라고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고 늘 돌아본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의 축복이 남편에게 임하기 시작해서 청원경찰을 하던 남편이 청원경찰을 그만두고 의료기 상사를 시작해서 수십 개의 의료기 상사 지사를 가지고 있는 사장이 되어 그 교회에서 가장 십일조를 가장 많이 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그랄은 비전교회입니다. 이곳에 머무십시오. 여러분의 그랄을 떠나면 잘 될 것 같지만 오히려 흉년으로 더 큰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그랄인 비전교회에 머물며 이삭처럼 믿음으로 산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삭처럼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고, 자녀와 사업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랄을 통해서 복을 주신 것처럼 비전교회를 통해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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