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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 (행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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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 (행 1:6-8)

어느 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을 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오랫동안 연약한 나라로 설움을 받던 그들은 어서 빨리 메시아가 와서 이스라엘을 강한 나라로 회복시키길 원했습니다. 구약성경 곳곳에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있고, 유대인들은 그 말씀대로 되길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 이 세상 나라, 땅의 나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흥청대고 살아가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우님들 모두가 비록 이 세상나라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살아가길 기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자,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강렬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와서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본래 바리새인들은 사사건건 예수님을 반대하고 시비하던 사람들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이 물은 것과 같은 내용의 질문을 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본문 6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에 관해 물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내용에 있어서 동일합니다. 표현상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라고 물었고,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라고 했지만 실상은 같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만이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세우신 참 나라였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로마의 억압에서 벗어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와 같이 영광스럽게 된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질문의 차이점이 있다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를 질문한 것이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믿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철저히 메시아로 믿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보았습니다. 과거에도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린 이는 있었지만, 본인이 부활한 예는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틀림없이 이 분은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바리새인들보다는 제자들이 심정적으로 더 간절하고 구체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눈앞에 메시아가 계시니, 조만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바리새인들이나 제자들이 <때>에 대해 물은 것일까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를 알아서 뭘 하려는 것입니까? <그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때를 미리 알면 그에 대비하여 준비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준비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매사에 준비를 잘하는 것이 중요하고, 준비하려면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우선 바리새인들에 대한 대답부터 살펴봅시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예수님의 대답이 나옵니다.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여러분, 이 대답은 적절한 대답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언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느냐>고 <때>에 대해 물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장소>에 대해 대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언뜻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때에 대해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오느냐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신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가 없었던 적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바리새인들이 이런 질문을 하던 당시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존재하고 있었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2장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에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그 후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12장 28절을 보면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여기서 <이미>라는 단어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은 게 아닙니다. 이미 와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께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씀을 듣고, 질병의 치유를 받고, 귀신들렸던 사람들이 온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있었고, 그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일까요? 왜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있게 될 텐데, 그 때가 언제입니까?>라고 생각했을까요?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바리새인들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가장 하나님을 많이 찾는 것이 바리새인들이었지만, 가장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사람들 역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보다 자신들의 만들어낸 전통, 소위 <장로의 전통>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떡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는데, 바리새인들이 이것을 문제 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안 계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에는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그들의 나라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오직 않은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대답하신 의미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않았다는 너희 생각은 틀렸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존재하고 있다. 단지 너희 마음이 문제다. 너희 마음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수 없는 상황이다. 너희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이런 마음으로 있는 한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도 너희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올 수는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의 처지가 얼마나 딱합니까?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고, 하나님의 나라를 맞을 준비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와 있는 하나님의 은총의 나라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를 묻고 다니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정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인간과 종교>라는 이름의 교양 과목 강의를 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단지 학점을 얻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한 학기 동안 인간이 무엇이며, 왜 종교가 필요한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강의실의 이야기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쳤고, 학점을 잘 받은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배우고 시험을 잘 친다고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 마음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루스 맥케이도> 목사님은 <예수 그 때에>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믿음은 어떤 종교를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옳은 일을 하실 것이라고 신뢰하는, 대담함과 용감함을 지닌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종교적 지식을 쌓는 것, 성경을 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고, 그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과 은총이 임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에 대한 맹종을 버려야 합니다.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에 대해 아는 것, 성경을 아는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그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고 순종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주장하지 마십시오. <난 다 알아>라고 말하면서 마음 문을 닫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의 모든 인도하심에 대해 탄성을 지르면서 기뻐하십시오. <유치원생의 머리는 느낌표이고, 대학원생의 머리는 마침표>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지식과 경험 등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부모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고 받들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길 기원합니다. 

자, 그럼 이제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제자들도 바리새인들처럼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대단히 강했습니다. 본문 7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알 것 없다!>, 대단히 무뚝뚝해 보이고 퉁명스럽게 들리는 대답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되는 때가 언제인지 알아서 뭘 하겠느냐? 왜 알려고 하느냐? 그건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달린 일이다. 너희가 알 것 없다. 지금 너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때를 아는 게 아니다. 너희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되는 게 중요하다> 이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처럼 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 결정적인 대답이 8절에 나옵니다.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영혼에 임하시고, 그 영혼에 능력이 임하고,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가 힘 있게 복음을 증거하고 생명의 열매를 맺고, 땅 끝까지 나아가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되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는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초막에 있으나 궁궐에 있으나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런 분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고 귀신들린 여종을 온전케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고, 착고에 온 몸이 묶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증인의 삶을 사는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이 찬송하고 기도하던 그 감방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구원의 기쁨이 넘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길 원합니다. 부부관계가 변하길 원합니다. 삶이 거룩해지길 원합니다. 능력 있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는 힘을 가지길 원합니다. 고난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길 원합니다. 눈앞의 일만 보지 말고, 원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읽는 눈을 가지길 원합니다. 새벽마다 기쁨으로 일어나고 찬송하면서 하루를 살고, 저녁마다 감사함으로 잠자리에 드는 성도가 되길 원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프게 할지라도 극복하길 원합니다. 삶으로부터 거룩한 향기가 풍기길 원합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는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 살고 있는 것이고, 그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된 것이며, 장차 궁극적 하나님의 나라인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을 절대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도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에 대해 기도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고 책을 썼어도 실제로 기도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성경 지식이 많아도 그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기쁨에 대해 알아도 실제로 기쁘지 않다면, 아무리 평화회담 대표가 된다고 해도 그 자신의 마음에 평화가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모습은 다음 찬송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전에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 힘입어 
그 발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즐겁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세상 모든 정욕과 나의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았네 
어두움이 지나고 무거운 짐 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여러분, 이런 삶,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그 분은 다름 아닌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찬송가 후렴을 보면 이렇습니다. <성령이 계시니 할렐루야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다음 주일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를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으시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기뻐 뛰면서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슬픔과 괴로움, 좌절과 실패, 연약함과 무능함, 두려움과 외로움 등을 이기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그 뜻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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