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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교회를 넘어 안디옥교회로! (행 11:19-26, 13:1-3) - 선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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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교회를 넘어 안디옥교회로! (행 11:19-26, 13:1-3)
  

오늘은 선교주일로 제20회 선교축제가 있는 날입니다. 1992년에 우리교회가 처음 선교축제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집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교회, 신학교, 그리고 선교단체에서 선교축제라는 이름으로 선교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기록을 들춰보니까, 1992년 10월 25일~28일 제1회 선교축제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매일 저녁 400명씩 연인원 1,600명이 모였는데, 학생들로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참여하여 깊은 감동 가운데 새로운 결단을 했습니다. 오신 강사들도 놀랐습니다. 보통 선교집회는 기껏해야 100~200명 모이는데, 어떻게 개교회 행사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하나님께서 신반포교회를 선교의 도구로 크게 쓰시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렀고, 이제 신반포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선교에 친숙해졌습니다. . 혹시 “나는 아직 아닌데 ... ” 하는 분이 계시다면 간첩으로 오인될 수 있으니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오늘 온 종일 선교축제를 통해 다시 한번 선교 마인드로 충만해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보고 있는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란 별명도 있지만, ‘선교행전’란 별명이 붙어 있는 책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 뭐죠? 마28:19~20에도 있지만, 행1: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가까운 데서부터 먼데까지,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인들에게까지, 전 세계, 전 인류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라는 선교명령입니다. 가장 큰 명령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 The Great Commission)이라 부릅니다. 사도행전은 이 말씀이 1세기에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을 보면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먼저 외부적인 박해가 문제였습니다. 로마제국도 그랬지만, 특히 유대인 당국이 예수 믿는 성도들을 몹시 핍박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 자체도 힘든데, 복음 전파는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절 이후 급속도로 복음이 전파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해진 사도들이 나가 복음을 전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들이 모여 세워진 교회가 바로 최초의 기독교회인 예루살렘교회입니다. 

[1] 예루살렘교회 : 이상적인 교회, 그러나 선교하지 않은 이상한 교회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성도들은 박해를 무릅쓰고 동족 유대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공동체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역동적인 예배를 드렸고, 사랑으로 하나 되어 구제하고 봉사하고 전도했습니다. 놀라운 기적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민족적 편견 때문에 유대인 외에 이방인들에게는 전혀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을 짐승 취급을 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조차 없었습니다. 큰 잘못이었습니다. ‘이상적인 교회’인 줄 알았는데, 이방인 선교를 하지 않는 ‘이상한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만일 그대로 방치되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아직도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대 지방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에 대해 깜깜할 겁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교회의 편견과 태만을 깨뜨려주셨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보면 스데반 순교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는 예루살렘교회 집사 중에서 가장 귀한 일꾼이었는데, 복음을 전하다 체포됩니다. 유대인의 공회에 끌려가 문초를 당합니다. 그는 공회의원들 앞에서 담대히 증거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요! 그분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소. 그리고 승천하셨소. 회개하고 예수 믿으시오!”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를 갈며 길길이 뜁니다. 그리고 돌로 쳐 죽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천사 같고 예수님 같았습니다. 원수들을 용서하며 순교합니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행8:1 보면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입니다. 행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행1:8에 말씀하신 대로 흩어집니다.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모든 땅 즉 땅 끝까지! 

그래서 선교는 인간이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교’라고 말하죠. 때로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여 자발적으로, 때로는 강권적으로 비자발적으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그냥 할래? 맞고 할래? 누가 한 말입니까? 제가 한 말인데, 농담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한 진리입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이 선교의 주도권을 갖고 계십니다. 

한편 하나님은 세계 선교를 위해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바울 사도와 안디옥교회입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 현장이 있던 사울이 변화됩니다. 핍박자 사울이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 체포하러 갑니다. 그런데 웬걸,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납니다. 그는 예수님의 찬란한 빛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눈이 멀어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칩거합니다. 그 때 주님이 보낸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안수하고 기도해 주는데 눈이 다시 보입니다. 결국 그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 후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예수 믿는 사람 핍박하러 간 사울이 오히려 예수 믿으라고 복음을 전파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그가 나중에 이름을 바울로 바꾸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 사도 바울이 등장하게 된 겁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베드로의 고질적인 편견을 벗기십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니까, 고넬료(로마군 백부장)와 베드로가 각각 환상을 봅니다. 아직 고넬료는 예수님에 관해 듣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냥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을 뿐이었습니다. 고넬료는 환상 가운데 베드로를 불러 오라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에게는 짐승을 잡아먹는 환상을 통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암시를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이 만나면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변화시켜 놓고 새로운 대안교회인 안디옥교회를 세우십니다. 

[2] 안디옥교회 : 예루살렘교회를 넘어선 진짜 이상적인 교회

안디옥교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성경을 통해 추적해 보죠. 행11:19~21을 보세요.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흩어져서도 여전히 동족에게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무명의 개척자들이 구브로(키프러스)와 구레네(리비아)로부터 안디옥에 와서 헬라인 즉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회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면서 함께 해 주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 소문이 예루살렘교회에까지 갑니다. 주님께서 이미 베드로의 편견을 깨뜨려 놓으셨죠. 안디옥의 소문을 들은 베드로가 신실한 일꾼 바나바를 파견합니다. 그가 급히 가서 복음을 전하고 목회를 하는데 손이 달립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어떻게 하죠? 고향 다소에 가 있던 사울(후일 바울 사도)을 스카우트해 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계속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예루살렘교회에서 하던 모든 프로그램을 그대로 했겠죠.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행13:1~3 보십시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안디옥교회의 지도부(leadership)의 면면을 보십시오. 각계각층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금식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택하여 선교사로 보내도록 지시합니다. 안수한다는 것은 직분을 맡기는 의미도 있지만 공동체가 위임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가 함께 선교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선교는 선교사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불가능합니다. 교회의 파송과 후원이 필수적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후원으로(나중에는 다른 교회들의 후원도 받게 되지만) 선교여행을 합니다. 그게 바로 바울의 1차 선교 여행(행13:1~14:28 A.D. 47~49), 2차 선교여행(행15:40~18:22 A.D. 49~52), 차 선교여행(행18:23~21:19 A.D. 53~57), 

그리고 로마 여행(행27:1~28:31 A.D. 59~61)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 각처로 복음이 전파되는데, 그가 마지막 로마에 간 것은 죄수의 모습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한 죄 아닌 죄로 인해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했는데, 당시 로마 시민권자는 황제에게 직접 상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까지 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묘한지 보십시오! 로마 군인이 바울을 맡은 후로는 안전합니다. 유대인들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그 전에는 살해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었습니다. 그러니까 무료 경호, 무료 수송, 무료 숙식 제공 다 받은 겁니다. 

마침내 로마로 간 바울이 재판을 받는데 이번에도 묘한 일이 벌어집니다. 사도행전 맨 끝부분 행28:30~31을 보십시오.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로마 시민권자의 특혜로 감옥에 가지 않고 2년간 가택 연금 상태로 재판받습니다. 그 동안 이런 저런 사람들을 다 만나 복음을 전합니다. 그 후 복음을 전하다 다시 투옥되어 A.D. 67 결국 참수형으로 순교합니다만, 어쨌든 바울은 이렇게 해서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까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유럽의 역사가 바뀌고 세계의 역사가 바뀐 겁니다. 

사도행전 2장 끝 부분을 보면 참 이상합니다. 끝나는 것 가지 않게 뚝 끝납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암시입니다. 말하자면 릴레이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세계 구석구석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것도 다 이런 과정 즉 ‘복음의 릴레이’를 통해서 된 것입니다.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이 한국 땅에 전해졌고, 그 다음 전도자들이 이어지면서 나에게까지 복음을 다가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역사는 엄밀하게 말하면, 구원의 역사요 세계 선교의 역사입니다. 마24:14 보면,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 중 가장 분명한 것으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재림의 그 날까지 이 땅의 모든 지역교회들은 안디옥교회처럼 당연히 선교를 지향해야 합니다.

[3] 모든 지역교회가 지향할 교회의 모습 : 선교적 교회 

선교를 위해 헌신하며 애쓰는 교회를 가리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세계의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선교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하고도 중요한 일을 놓치는 교회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교회가 소속된 교단은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합동측)입니다. 전국에 소속 교회가 1만 2천개로 한국교회에서 가장 큰 교단입니다. 해외선교도 가장 많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1만 2천 교회 중에서 1명 이상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는 500교회밖에 안 됩니다. 타 교회나 단체에서 파송한 선교사를 후원하는 협력 선교를 하는 교회를 전부 합쳐도 2,000 교회 남짓합니다. 20%도 채 안 되는 셈입니다. 다른 교단들은 이보다 더 못합니다. 그러니까 선교에 깜깜한 교회와 성도들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한국교회 전체로 보면, 2만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2위라고 자랑하지만 아직도 멀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선교는 당연한 성도의 책임이고 이 일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기쁨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맛을 보면 맛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상급 심판을 받게 되는데,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됩니다.

C식품회사 건강음료 광고를 보셨나요? 회장님이 직접 나와서 광고하는데, 카피가 아주 “XXX, 남자한테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마셔봐야 안다는 뜻이죠. 이 광고를 qau 혼자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신앙도, 선교 헌신도 맛을 봐야 되는데 ... 

그렇습니다! 선교에 참여해 보면 압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 단기선교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장년들이 다녀오셨는데, 복도에서 만나 “수고하셨죠? 어떠셨어요?” 이렇게 인사를 드리면 모두 좋아하시고 싱글벙글하십니다. 돈 들여 시간 들여 고생하고 왔는데, 좋은 관광 코스 다녀온 것도 아닌데 참 이상하죠. 맛을 봐야 맛을 아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모르니! 참 답답하고 안타깝고 ...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나중에 후회가 됩니다. 

작년에 우리교회에서 선교세미나가 열렸습니다. 100여명의 선교사들이 모였습니다. 토의 시간에 나이가 지긋하신 평신도 선교사 나와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교에 눈 뜨고 나니까, 목사님에게 화가 났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말해 주지 않았는지 따지고 싶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목사 선교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한테도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 자리에 신학교 교수가 없었는데, 만약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자못 궁금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누구도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 말씀해 주셨잖아요. 마28:19~20과 행1:8만 알아도 선교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요? 게다가 성경을 보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선교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눈이 멀고 귀가 막혀 몰랐던 겁니다. 그러니까 선교에 눈을 뜨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선교의 중요성은 딴 게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은 게 바로 선교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셨어도 그 복음을 듣지 모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십자가 없이 구원이 없지만, 선교 없이도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고 천국 백성이 됐나요? 우리 한국이 어떻게 이처럼 축복을 받았나요?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왔고, 그들을 파송해 준 선교하는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당연시 하고 발전됐다고 자부심을 갖고 살지만, 불과 1백 수십년 전까지 한민족은 미전도종족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이 간다고 선교부에서조차 위험하다가 가지 말라고 말렸던 나라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이었는데, 목숨 걸고 이 땅에 온 선교사들이 있었고 그들을 보내준 교회가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토마스 선교사(Robert Thomas 1840~1866)는 어땠습니까? 본래 중국 선교사인데 조선에 관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 신분으로 조선 입국이 불가능하자 조선어를 배워 통역관으로 취직합니다. 그리고 1866년 미국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입국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입국도 못하고 대동강변에서 포졸들에게 목이 잘려 피를 토하며 순교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포졸에게 성경을 전해주고 숨을 거둡니다. 그때 나이가 만26세였습니다. 

그가 전해 준 한문 성경으로 여러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를 파송한 영국의 웨일즈 하노버교회의 목사인 아버지와 성도들이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민족을 원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눈물로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부모님의 기도가 이랬습니다. “하나님! 내 아들을 목 베어 죽인 민족이지만,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조선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또 의료선교사 제임스 홀과 그 아내 로제타의 이야기도 감동적입니다.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1860∼1894)은 제임스 홀은 본래 캐나다 출신이고 중국 선교사 후보생이었는데, 미국에서 수련의를 하면서 로제타를 만납니다. 결혼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조선 선교사로 파송 예정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로제타를 먼저 보낸 후, 제임스

홀은 조선어를 배우고 천신만고 끝에 조선에 옵니다. 로제타와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년 후 환자를 돌보다 전염병에 감염되어 어린 아들 셔우드와 복중의 딸을 남겨 둔 채 순교합니다. 로제타는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자 잠시 캐나다에 있는 남편의 파송교회를 방문합니다. 시골에 위치한 작은 그렌비엘 교회였습니다. 교인들은 로제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남편 때문에 조선을 가슴이 품었습니다.” 새 힘을 얻은 로제타는 조선으로 돌아와 평생 헌신합니다. 그 아들도 며느리도 헌신합니다. 그래서 온 일가가 지금 양화진에 묻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이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교회와 성도들의 눈물어린 기도와 물질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겁니다. 

이제 우리가 이러한 복음의 릴레이를 이어가야 합니다.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교회는 선교 지향적 교회입니다. 혼자 하기 어렵지만, 가든지 보내든지, 기도로 하든지 물질로 하든지 선교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 교회에 소속된 게 축복이고 영광인 줄로 깨닫게 되는 날이 분명이 올 것입니다. 생애 가운데, 아니면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4] 신반포교회의 선교 20년, 그리고 미래 

제가 오늘 선교주일을 앞두고 지난 20여년의 선교를 회고해 보았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20여년 선교축제, 단기선교학교, 단기선교여행, 선교훈련 등을 통해 많은 헌신자들을 배출했습니다. 77명의 장단기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현재로 선교지에 30여명의 선교사들이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56명의 협력선교사, 26개 단체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시적으로 이룬 것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회를 20개쯤 건축했네요. 탄자니아, 중국, 인도, 차드, 미얀마,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에 교회가 섰습니다. 그 외에도 선교선, 선교 차량, 선교센터, 신학교, 학교, 병원 등이 세워졌습니다. 

그 동안 꽤 했구나 생각하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오늘 제20회 선교축제를 계기로 더 열심히 진실하게 감당해야 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물론 지역 전도를 해야 되고, 국내 선교(농어촌, 장애인, 교도소, 학원, 군대 선교 등)도 해야죠. 그리고 이주자 선교도 해야죠. 그러나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고 힘들어도 해외선교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가든지 보내든지!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이 나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그 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교회와 함께 하면 쉽습니다. 함께 기쁨과 축복을 누리고, 장차 천국에서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디 우리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넘어 안디옥교회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멋진 생애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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