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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사로야 나오라 (요 11: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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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야 나오라 (요 11:38-44)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1장 38∼44절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마음에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소득과 행복지수’에 대해 서던 캘리포니아대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나 미시간대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물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을 좌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빈곤국에 살면서 비록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신을 신발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낙천적인 자세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참 행복은 행복의 근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모셔 들일 때 다가오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는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베다니에 살던 주님이 사랑하시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였기 때문에 나사로가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오실 때 예수님은 종종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시며 그들과 가족처럼 지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사로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사람을 보내 주님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했지만, 주님은 곧바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주님이 오시기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예기치 못한 절망이 다가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사로의 가정에도 예기치 못한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1. 죽은 나사로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틀을 더 머무시다 오시니 나사로가 죽은 지 이미 4일이나 되었습니다(요 11:17). 나사로가 장사된 지 나흘이 되었다는 것은 시신이 부패해서 살아날 가망성이 없는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다니에 오신 예수님을 맞는 마르다의 마음은 원망과 반가움이 교차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계셨더라면 나사로가 지금 살아있으리라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떨쳐버리지 못하였습니다(요 11:21). 그녀는 죽음조차 생명으로 바꾸실 수 있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치유 능력은 믿었으나, 시공을 초월하여 능력을 행하시는 부활의 주님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마르다의 믿음의 실체는 ‘죽음은 인생의 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할까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히 9:27). 생명 있는 자는 영생을, 생명 없는 자는 영벌의 길로 가게 됩니다(마 25:46). 그러므로 죽음은 육신의 장막이 무너진 것이요 육신의 고통이 끝난 것일 뿐,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죽음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천국으로 이동하는 통로이며, 하나님께 내 영혼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거절감과 상처, 슬픔과 두려움, 우울과 불안 등을 겪었었던 『지금 기도할 때다』의 저자 스토미 오마샨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무덤과 같은 절망 속에서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끝나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절망의 무덤을 박차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계십니다(히13:8). 
 
죽은 나사로는 죄 지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죄 지은 인간은 살았다 하나 죽은 자입니다. 다시 말해 영적으로 이미 죽어있는 상태입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기에 죄 짓고 불의하고 추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셔 들일 때 영이 살아납니다. 이것을 가리켜 ‘거듭 난다’ ‘중생한다’ ‘구원 받았다’ 라고 표현합니다.

2. 다시 살아난 나사로

당시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굴을 무덤으로 사용했고, 짐승이 시체를 손상시키지 못하게 굴 입구를 돌로 막았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입구도 큰 돌로 막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하며 순종하지 않았습니다(요 11:39). 마르다는 눈에 보이는 3차원의 현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영적인 눈이 감겨 있어서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영의 눈을 떠야 합니다. 오직 믿음만이 영의 눈을 뜨게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마르다에게 나사로를 살리시겠다고 하신 자신의 약속(25,26절)을 상기시키셨습니다(요 11:40).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은 주님이시지만 그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믿음은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기적으로 나아가는 통로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롬 4:18).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에게 바로 이 믿음을 가지고 나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조건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순종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영의 눈을 뜨고, 믿음으로 불신앙의 돌, 의심의 돌, 부정적 사고의 돌, 고집과 교만의 돌을 옮겨야 합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를 무덤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 믿음과 순종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순종하여 돌을 옮기자 예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린 무덤 앞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요 11:41∼42).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구해 주십니다(시 50:14∼15).
예수님께서 감사기도 후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령하실 때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3. 자유케 된 나사로

나사로가 살아서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요 11:44). 그러자 예수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참 자유를 얻지 못하고 나사로와 같이 죄와 질병, 저주와 가난, 죽음과 절망의 공포, 잘못된 습관, 고집, 교만, 중독의 수의에 묶여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말씀의 권능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되려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요 8:32). 진리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적 원리를 따라 살아갈 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할 때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고,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되고, 마귀의 사슬에서 풀려납니다. 이 말씀의 권능으로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권능으로 명령하십시오. “죄와 흑암의 권세는 물러가라”, “질병은 떠나갈지어다”(사 53:5), “가난과 저주는 물러갈지어다”(고후 8:9), “예수님의 가난하심으로 나는 부요를 얻었다”  
 
예수님은 또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묶인 자를 풀어주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으로 눌린 자,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셨습니다(눅 4:18∼19). 성령이 임하신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고후 3:17). 살리는 영, 생명의 영, 부요케 하시는 영이신 성령님을 날마다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 들이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여러 가지 죄의 습관들과 패배의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을까요? 오직 말씀의 권능, 성령의 권능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여러 번의 실패와 패배로부터 자유함을 받아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된 에이브러햄 링컨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도움이 있는 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한 우리는 절대로 실패할 수 없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오라” 그리고 주님께서 명하십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우리는 무엇에 매여 있습니까? 부부 관계, 친구 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 이웃과의 관계, 물질문제, 자녀교육의 문제, 질병과 저주에 매여 있습니까? 내 힘으로 풀려하지 말고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믿음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미 예수 믿고 자유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이미 나의 모든 결박을 푸셨다. 이제 어느 누구도 나를 묶을 수 없다. 나는 이미 자유자다” 
주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자유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죽은 나사로처럼 썩은 냄새가 났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아 살아나게 하시고, 성령의 은혜로 자유케 하여 승리의 삶을 살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온 주님의 귀한 백성들 가운데 아직도 묶여있는 사람들을 풀어놓아 자유케 하여 주옵소서.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를 영접하여 그 인생이 변화되어 축복받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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