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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알의 밀 (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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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밀 (요 12:24)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그가 전개하신 하나님 나라 운동을 씨를 뿌리고 가꾸는 농사에 비유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씨 뿌리는 비유(3-8절)와 알곡과 가라지 비유(24-30절)가 거기에 해당됩니다. 사도 바울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를 적용하여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갈 6:8). 좋은 씨를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어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이 농부의 소망입니다(눅 13:6-9). 본문 말씀에는 땅에 뿌려지는 씨앗의 가치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씨라도 그냥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그것이 죽고 희생되어질 때 많은 비로소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복음의 진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1. 생명 있는 밀알입니다.

‘한알의 밀’은 생명체로서 그 존재 의미를 가집니다. 농부의 손에 의하여 땅에 떨어지는 씨앗, 곧 종자(種子)를 뜻합니다. 그 밀알이 자루나 항아리에 담겨져 있더라도 생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생명은 사람이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땅에 떨어진 씨는 적당한 습도와 온도에 따라 싹이 나고 자라게 됩니다. 그것은 그 속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세상에 나타난 생명체는 모두 창조주 하나님께서 ‘있어라’고 명령하심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창 1:24-28). 이 창조의 근원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3-4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세력으로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이를 ‘하나님의 씨’라고 표현하였습니다(요일 3:9).

2)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요한1서 1:1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서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히 4:12). 말씀의 본질은 예수님입니다(요 1:1). 예수님이 생명의 본체이기 때문에 말씀도 생명입니다. 말씀은 성령의 산물입니다(딤후 3:16-17). 성경은 성령을 ‘생명의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롬 8:2).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기 때문에 거기에는 언제나 생명의 능력이 행사됩니다(겔 37:10).

3)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생명의 기관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엡 1:22-23). 예수님께서 지상에 자기 교회의 설립을 선언하시고 죽음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16:18). 세상에서 교회가 아닌 그 어떤 집단도 생명이 없습니다. 지구상에 많은 나라와 왕들과 권세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다 풀의 꽃과 같이 쇠잔해버렸습니다(사 40:6-8). 그렇지만 예수님의 교회는 생명이 있습니다. 수천 년 역사를 통하여 많은 권력자들과 무신론자들이 폭력으로 교회를 쓸어버리려 하였지만 교회는 사멸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생명의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간들이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고 새 생명이 회복되는 것입니다(롬 3:23-24).

2. 희생되는 밀알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야 된다는 것과 죽어야만 된다는 것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희생되는 밀알은 예수님의 삶과 지상에 세워진 그의 교회를 특징짓는 것입니다.

1) 성육(成肉)하신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땅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신 것을 뜻합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기 위하여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하신 것입니다(눅 1:35). 이것은 예수님께서 한없이 낮아지신 모습이요, 자기희생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막 10:45). 이 말씀대로 그는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우리같은 죄인들을 살려 주셨습니다(빌 2:8). 
 
2) 세상속의 교회를 뜻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머리 되신 예수님께서 생명 있는 밀알이기 때문에 교회도 생명을 보유한 밀알입니다. 땅에 심겨진 밀알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자체가 죽어지고 완전히 희생되어야 하듯이 교회가 본연의 사명을 수행하고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세상 속에서 희생되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또는 “세상의 빛이니 ......”라고 하신 것은(마 5:13-16)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소금은 짠 맛을 통하여 음식의 맛을 내게 하고 또한 썩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편 빛은 어둠을 추방하기 위하여 밝은 빛을 발산하여야 됩니다. 여기서 소금이 맛을 내고 빛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는 자기가 녹아지고 타들어가야 되는 희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헌신적인 삶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에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적 소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시민의 자격이나 덕목은 예수님처럼 자기를 희생하는 마음으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두었습니다. 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도 돌려 대어 주고, 속옷을 가져가는 자에게 겉옷도 내어 주는 태도를 가르쳤습니다. 원수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면서 축복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하였습니다(마 5:39-42).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기독교의 진리는 죽어야 살게 되는 원리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자기를 희생시키는 십자가의 삶을 뜻합니다(마 10:38). 성경은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게 되고, 낮아지는 자가 높아지며 죽는 자가 살게 되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마 20:26-27).

3. 열매를 맺는 밀알입니다.

야고보서 5:7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과 희생한 것만큼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법칙입니다.

1) 구원의 열매입니다.

갈라디아서 6:8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이 땅에 생명의 씨를 심으셨습니다. 그 결과 죽음 아래 있는 인류에게 구원의 열매를 거두게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씨앗이 되어 땅에 떨어진 밀알은 반드시 죽어서 희생이 되어야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처럼 생명과 구원의 열매도 ‘전도’라는 희생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시대 이후 지구촌 곳곳에 수많은 전도자들이 희생되었고 그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최초의 전도자인 토마스(R.J.Thomas) 선교사의 피흘림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처럼 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2) 변화된 삶의 열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요 1:1-11).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최초의 이적으로서 기독교가 변화의 종교임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고후 5:17). 사도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에는 폭행자요, 훼방자요, 핍박자였지만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 사로잡힌 이후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딤전 1:13-14). 복음이 가는 곳에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은 썩을 것이 썩지 않는 것으로, 죽을 것이 죽지 않는 것으로 바뀌어지는 생명적인 변화입니다(고전 15:53). 이 열매는 회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성령이 주도하시는 새 삶의 열매입니다(갈 5:22-23).

3) 축복의 열매입니다.

시편 기자는 의인이 받는 축복을 ‘만사가 형통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3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이 진리이듯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열매가 돌아오게 되는 것 역시 진리입니다(시 128:1). 

한 알의 밀이 되어 자기희생의 삶을 실천하는 사람에게 많은 축복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그 맺은 과실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나누어 먹게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창 22:18). 진정한 밀알의 삶은 많은 열매를 맺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올바로 선용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그가 받은 복으로 많은 사람에게 나누고 베풀어 준 사람을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마 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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