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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주어라 (마 1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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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어거스터스’라는 작품이 있다. 어거스터스가 출생했을 때에 이상한 노인이 산모를 찾아와서 “아기의 출생을 축하하는 뜻으로 이 아이를 위한 소원 한 가지를 이루어 주겠소”라고 했다. 어머니는 “이 아이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그 희망대로 어거스터스는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사랑에 취해서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른다. 결국 그의 말년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서 비참하게 된다. 늙은 어거스터스에게 이상한 노인이 다시 찾아와서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지 한 번 더 소원을 들어 주겠소”라고 말한다. 어거스터스는 서슴치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행복이란 사랑을 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을 주는데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복음을 전하러 보내셨는데 제자들이 전도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들을 데리시고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떠나 빈들로 가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마을에서 걸어서 예수님을 찾아왔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드셨다. 저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고 있는 것을 보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고 또 많은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저녁때가 다 되었다. 여기서 ‘저녁때’란 늦은 낮 즉 오후 3시 경부터를 가리키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저녁식사 때가 다 되었다는 뜻이다.

이 때 제자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15절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이 “우리가 가진 것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 뿐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시고 축복기도를 하신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예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인가? 오늘 본문은 단순히 예수님의 기적사건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통해서 나눔과 섬김의 원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제자들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먼저 날이 이미 저물었다고 했다. 즉 식사 때가 지났다. 그러니 빨라 저녁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이곳은 빈들이라고 했다. 즉 무엇을 사먹으려고 해도 사먹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사먹으려면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제자들이 이렇게 말한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자기들은 이 많은 사람들을 먹게 할 만한 음식도 돈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갈 것 없다”고 하셨다. 사람들이 음식을 사먹으러 마을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마을로 들어가서 음식을 사먹으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다. 무슨 뜻인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너희의 책임이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찾아왔는데, 하루 종일 말씀을 듣느라고 지쳐 있는데,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냥 돌려보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은 제자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왜 그것이 제자들의 책임인가? 사람들이 지금 지금 배가 고프다는 것을,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알고 있는 사람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아는 것은 책임이다. 아는 것은 사명이다. 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내가 그 일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가 그 사람들의 필요와 부족을 알았다면 너희가 그 문제를 책임지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에게 저녁때가 되었으니 마을로 가서 음식을 사먹으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이곳은 빈들이라서 음식을 사먹을 곳이 없으니 마을로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 사람들에게 먹을 음식을 주라는 것이다.

야고보서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만 한다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기억하자. 아는 것은 책임이다. 아는 것은 사명이다. 사람들의 문제와 부족과 필요를 알았다면 그 문제를 해결해주고 부족과 필요를 채워줄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들에게 가서 부족과 필요를 채우라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가서 사먹게 하소서.” “가서 밥을 먹으시오.” “가서 옷을 입으시오” “저런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에게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너희가 그들의 필요와 부족을 채워주어라.” “너희가 그들을 도와주어라.”

“내게로 가져오라.” 내 것을 내놓아야 한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크게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때 모인 사람이 남자만 5천 명이니까 여자와 아이들을 합하면 적어도 만 명 이상 많게는 2만 명 정도인데 가난한 제자들이 어떻게 이들을 먹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 걱정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열두 명의 제자들이 가진 것이 이것 밖에 안 되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이것도 제자들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안드레가 어린 소년에게서 받아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 한 사람이 먹으면 딱 맞는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이었다. 이것으로 어른 한 사람도 배불리 먹을 수 없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먹게 하겠는가?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런 사정도 모르시고 무조건 그들에게 강요하신 것인가? 예수님은 세상물정도 모르시고 제자들의 형편도 모르시는 분이신가? 그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명령하고 지시하기만 하면 제자들이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무책임한 분이신가? 내가 가진 것이 없는데, 나도 먹을 것이 없는데 무엇으로 누굴 돕는단 말인가? 내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 내 집 마당도 못 쓸었는데 남의 집 마당을 쓸어주게 생겼는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러나 예수님께는 다 계획이 있으셨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예수님께 드리자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둘러 앉혀서 식사할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음식을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것으로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게 되었다. 20절 “다 배불리 먹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18절의 말씀이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제자들이 가진 것을 주님께 가져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것으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하셨다.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음식을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드린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먹게 하시는 기적을 행하셨다는 사실이다.

제자들은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라고 했다. 이것 가지고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요한복음 6:9에서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것을 드렸기 때문에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님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으려면 적은 것이라도 내 것을 내놓아야 한다. 아주 적은 것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주님께서 그것으로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나 한 사람이 가진 것은 적지만 여러 사람이 조금씩 모으면 많은 것이 된다. 그래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가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기적을 이루신다. 내 것이 주님의 손을 거칠 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적은 것이 많아지고 작은 것이 큰 것이 된다. 우리의 가진 적은 것을 믿음으로, 사랑으로 주님께 드리고 다시 주의 손에서 받아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주님이 능력으로 일하신다. 

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오래 된 일이기에 말씀드린다.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에 경기도의 한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을 했다. 그 당시 13년 된 교회였는데 그 교회를 개척하신 목사님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사모님과 아들 둘이 남아 있었다. 그 가정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어떻게 도울까 생각을 하다가 답을 얻었다. 교회에서 성미를 다섯 말을 주는데 어린 아이 둘이 있는 네 식구가 먹기에는 많았다. 그래서 두말만 쌀로 주고 세말은 돈으로 달라고 해서 그 돌아가신 목사님의 큰 아들의 중학교 학비에 보태라고 주었다. 그랬더니 사모님이 무척 고마워하고 힘을 얻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니 제 마음도 흐뭇하고 기뻤다. 그렇게 도울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꼭 가진 것이 많고 넉넉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은 것이라도 내 것을 내놓을 때 사랑의 마음 때문에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어야만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섬기고, 적은 힘이라도 보태고 나눌 때 그 사랑의 나눔과 섬김을 받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의 그 적은 헌신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는 큰일을 행하신다. 

제자들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자기들이 먹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로 가져오라”는 말씀을 따라 예수님께 드렸다. 그랬더니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게 되었다. 사랑을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일은 나 쓸 것 쓰고 남으면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 쓸 것 안 쓰고 적게 쓰고 덜 쓰고 아끼고 절약해서 나누고 섬기는 것이다. 적은 것이라도 주님께 가져다 드려서 주님께서 그것을 통해 기적을 행하시도록 사랑의 헌신에 동참하라.

“가져다가 나누어 주라.” 믿음으로 순종하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지고 온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다. 19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제자들이 나누어 주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떡과 생선이 아무리 나누어주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었다. 주면 또 나오고 주면 또 나오고 계속 나와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 20절 “다 배불리 먹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제자들이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앉혀 놓고 작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면서 나누어주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나누어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났다.

믿음은 순종이다. 그리고 순종이 기적을 일으킨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신다.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면 기적을 내가 가장 먼저 체험한다. 믿음의 순종이 기적을 체험하는 비결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을 생각해보라.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 일을 알렸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신 후에 그 물을 떠서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하셨다. 그랬더니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 요한복음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어떻게 알았는가? 순종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하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라는 대로 순종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기적을 체험하고 기적의 비밀을 알게 된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철학, 신학, 음악, 의학 등의 네 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다. 그런 그가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흑인들 속에 묻혀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한 방문객이 물었다. “당신 같은 사람이 꼭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야 합니까?” 이때 슈바이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동정적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랑의 손길을 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하나님의 손으로 쓰임 받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은 아주 적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기꺼이 믿음으로 순종해서 주님의 손으로 쓰임 받고 기적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라. 

“남은 것을 거두라.” 내게도 넘치는 은혜를 주신다.
20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놀랍게도 그 적은 음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을 뿐 아니라 남은 것도 열 두 바구니나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족함이 없이 넘치는 것이다.

그런데 남은 것이 왜 열두 바구니였을까? 간단하다. 제자들이 열 두 명이었기 때문이다. 즉 제자들 모두가 한 바구니 가득 남은 것을 모아 가졌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은 것을 거두라”고 명하셨다. 왜인가? 믿음으로 헌신하고 순종하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넘치는 상급을 주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먹을 음식을 먹지 않고 주님께 드려서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했다. 물론 그들도 사람들과 함께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다 집으로 돌아간 후에 제자들은 생각지도 않게 한 바구니씩 가득 더 받게 되었다. 이 ‘남은 조각’은 사람들이 먹다가 흘리고 남긴 조각들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넉넉히 나누어주고 남은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주시려고 미리 준비해 놓으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인 사람들만 배불리 먹이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헌신하고 순종한 제자들에게 더 주실 것까지 넘치게 준비해 놓으셨던 것이다. 

내 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어려운 이웃에게 먼저 나누어 주면 나도 배불리 먹게 된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나의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 마태복음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사도행전 20:35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고린도후서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하나님은 심는 자에게 뿌릴 씨와 먹을 양식을 함께 주신다. 남을 도와줄 뿐 아니라 나도 먹고 살게 해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기꺼이 헌신하면 계속해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넉넉하게 공급해 주신다.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기에 망했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것을 털어서 남을 도와주다가 망하거나 굶어죽었다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제자들은 몰랐었는데 이미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줄 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실 몫을 준비해 놓고 계셨던 것이다. 내가 덜 먹고 덜 쓰고 사랑의 손길을 펼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는 나에게 주실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일은,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일은 내가 많이 가지고 있고 넉넉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려면 평생을 기다려도 못한다. 수입이 늘면 지출도 그만큼 늘어난다. 많이 가질수록 점점 더 많이 가지고 싶어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드리고 얼마나 많이 나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 언제나 나누며 섬기며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눔과 섬김은 믿음으로 그리고 사랑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가진 것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하지 말라. 적은 것이라도 사랑으로 드리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능력으로 일하신다. 하나님은 여유가 있어서 많이 나누는 것보다 없는 중에 절약하고 희생해서 드리고 나누는 것을 더 귀하게 보신다.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상사의 아들인 13세의 Bobby Hill이란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아프리카 밀림에서 병원을 세우고 선교와 봉사를 하고 있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에 관한 책을 읽고 유럽지역 미공군사령관 리처드 린제이 장군에서 편지를 썼다. “제가 산 아스피린 한 병을 보냅니다. 이 약을 아프리카에 계신 슈바이처 박사의 병원에 낙하산으로 떨어뜨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린제이 장군은 이 소년의 이야기를 방송국에 전해 주었고 이 이야기가 방송에 나가자 유럽 사람들은 40만 달러어치의 약품을 모아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제공한 비행기 편에 바비 군까지 동승시켜 슈바이처 박사에게 보냈다. 슈바이처 박사는 이 약품들을 받고 “어린 아이가 이런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어린 소년이 자기가 가진 작은 것을 내놓았더니 그것이 시작이 되어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주어라.” “내게로 가져오라.” “가져다 나누어 주라.” 사랑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이다. 가진 것이 적어도 드릴 것이 적어도 믿음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헌신을 받으시고 큰일을 행하실 것이다. 우리가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남은 것을 넘치게 거두게 해주실 것이다. 그래서 계속 사랑으로 나누고 섬기는 믿음의 삶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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