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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도신경(9) : 보혜사 성령 (요 1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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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9) : 보혜사 성령 (요14:16-20)
  

오늘은 사도신경 강해 아홉번째 시간으로 “성령을 믿사오며” 이 대목을 살펴봅니다. 사도신경은 세 문단으로 되어 있죠. 성부에 대한 고백, 성자에 대한 고백, 그리고 성령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신앙 고백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적잖은 사람들이 성부와 성자에 비해 성령에 대해 친밀하게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령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신앙생활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 이후 신약 시대를 가리켜 ‘성령의 시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성령과 친해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성령과 친하다고 느끼십니까? 혹시 성령에 대해 잘 모르거나 멀게 느껴지신다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게 아닙니다. 부디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에 대해 잘 이해하시고, 성령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과 더불어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때 하신 말씀입니다. ‘다락방 설교’(요한복음 14장~16장) 중의 일부입니다. 예수님이 이제 죽음 이후 부활 승천하심으로 육신적으로 떠나지만 그 대신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성령에 관해 살펴봅니다. 

[1] 성령의 정체 : 제3위 하나님, 또 다른 보혜사 

① 제3위 하나님 :

흔히 성령을 하나의 힘이나 에너지에 불과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니죠. 하나님 자신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y) 하나님 가운데 제3위입니다. 혹시 제3위라는 표현 때문에 성부와 성자에 비해 열등하다고 오해하면 곤란합니다. 구분을 위해 제1위, 제2위l, 제3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일 뿐, 성부 성자 성령 모두 동등하시고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한 분이면서 세 분으로 계신다”는 게 인간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인지 모르죠. 무한 광대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의 작은 머리로 다 이해되고 설명된다면 이미 하나님이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마치 하나님을 다 알 수 있을 것처럼, 머리를 짜내고 나름대로 설명해 보려고 애를 씁니다. 문제는 그런 설명들이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로 지나치게 설명하려 드는 것은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설명을 한 신학자도 있었습니다. “태양은 본체가 있고, 거기에 발산되는 빛이 있고, 또 열이 있다. 삼위일체는 마치 이런 것이다.” 어떻습니까? 그럴듯한가요? 하지만 우리 수준에서 고개가 끄덕여질지 모르나 사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을 제한하고 우스운 모습으로 전락시키는 불경죄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동일한 하나님으로 믿고 경배하면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므로 가급적 ‘성령님’이라고 부르는 게 좋습니다. 오늘 본문을 잘 보면, 성령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중성이 아니라, 인칭 대명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 “그(He)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Him)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Hm)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Him)를 아나니 그(He)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인칭대명사로, 그리고 대문자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성령이 하나님이시란 암시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이시란 증거는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구절이 창1:1~2입니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실 때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창조하신 겁니다. 하나님이란 단어가 원어로 엘로힘(복수)이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했다는 표현을 통해 성령이 함께 하셨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인 동시에 예수의 영입니다. 서로 통하고 하나인 것입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한 구절 안에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란 표현이 등장하는데 둘 다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영입니다. 

물론 성령은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십니다. 마치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존재하는 것처럼 성령은 보이지 않지만 항상 우리 곁에 와 계시는, 나와 아주 가까운 하나님이십니다. 

② 또 다른 보혜사 :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본문에 보면 또 하나 중요한 명칭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뭔가요? 

‘보혜사’입니다. 16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인데, 보혜사(保惠師)라고 부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paravklhto")입니다. 이 단어는 ‘곁에’(para)라는 단어와 ‘부르다’(kalew)라는 단어의 수동형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곁으로 부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즉 성부와 성자 예수님이 성령을 우리 곁에 보내서 우리를 도와주도록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영어성경 역본에 따라 Helper(조력자), Counselor(상담자), Comforter(위로자), Advocate(대언자) 등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모든 단어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풍성한 의미를 가지는 게 보혜사(保惠師)입니다. 일반 사전에 나오지 않는 조어인데,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입니다. 성령이 우리 곁에서 보호하시고, 은혜 베풀어 도우시고, 가르치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보혜사’ 앞에 ‘또 다른’이란 말이 붙어 있습니다. 이 말은 완전히 다른(different) 게 아니라, 동일한 다른 하나(another)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도 보혜사이신데, 성령도 보혜사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성령은 예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며 예수님의 대리자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지난 3년간 제자들 곁에 동고동락하면서 도와주셨는데, 그 역할을 성령이 대신 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은 우리 곁에 계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속에 와 계십니다.

19절~20절.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될 일들을 설명합니다. 부활, 승천, 성령 강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었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후에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재림하실 때까지 예수님을 육신으로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다시 온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오신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육신으로 보는 게 아니죠.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봅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영적 관계를 맺습니다. 여기서 ‘그 날’은 성령 강림(행2:1~4)을 가리킵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와 계십니다. 성령의 내주(內住 Indwelling, Residence)라고 하죠. 또 성령과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를 가리켜 신비로운 연합(Mystical Union)이라 부릅니다. 고전3:16 보면, 심지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아예 우리 몸을 성전 삼고 내 안에 들어와 천국 갈 때까지 영원히 계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나와 아주 가까운 분입니다. 그분과 친밀하게 관계를 맺고 교제하고 함께 하는 게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겁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나 자신과 가장 가깝고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남편보다도, 부모보다도, 자식보다도, 친구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성령님과 가깝게 지내야 합니다! 성령님과의 교제 관계가 얼마나 깊은가에 따라 신앙생활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이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한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2] 성령이 하시는 일 : 구원, 인도, 보호, 권능, 변화

성령을 통해 구체적인 도움을 받으려면 성령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잘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 너무 너무 많은데,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해 드립니다. 

① 구원 :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제일 먼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죄인이냐고 화를 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면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은 죄, 의,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십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그냥 보면 멀쩡한 음식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대장균이 득실거립니다. 인간이 의인인 척 하지만 성령의 빛이 비춰지면 죄가 가득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회개하고,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통하지 않으면 절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수 없습니다. 고전12:3 “ ...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일제 때 일본의 앞잡이 한국계 순사 박광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순사보다 악질이어서 사람들이 그를 보면 입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길선주 목사님이 평양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서장에게 지시를 받고 교회를 향하게 됩니다. 교회에 도착한 그는 문을 발로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그를 본 교인들은 벌벌 떨었습니다. 

그때 길선주 목사님이 박광덕 순사를 향해 외칩니다. “이 더러운 마귀의 자식아, 거룩한 땅에 어찌 더러운 발을 내딛느냐! 네가 당장 회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펄펄 끓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갑자기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후 사표를 내고 순사를 그만 둡니다. 나중에는 매상교회의 창립 멤버로 가장 충성된 집사가 됐다고 합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겁니다. 롬8:15~16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그리고 아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 갈 때까지 어떤 경우에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음을 확증합니다. 고후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② 인도 :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해 주십니다. 17절. “그(He)는 진리의 영이라 ... ”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배울 때도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성경을 읽어도 검은 것은 글씨, 흰 것은 종이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는 분들은 혹시 설교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가요? 한국말로 설교하는데 ...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할 때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승리의 축복을 얻게 해 줍니다. 성령의 인도는 나 자신의 생각보다 더 큽니다. 내가 생각대로 인생을 사는 것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게 훨씬 더 유익합니다. 흔히 바울을 가리켜 세계 복음화의 주역이라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 모든 것을 이루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바울은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지역)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자꾸 길을 막습니다. 고민하며 기도하던 바울이 환상을 보게 되는데,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빨리 와서 도와 달라고 손짓을 합니다. 그 환상을 보고 바울이 비로소 유럽으로 건너갑니다.(행16:6~10) 그래서 서구의 복음화, 더 나아가 세계의 복음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내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 가운데 성령의 인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③ 보호 :

성령님은 또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16절,18절.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해도 성령이 우리 곁에 동행해 주시면서 보호해 주십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할 때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출14:19~25) 그런데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는 아예 몸 안에 성령을 내주하게 하심으로 항상 인도와 보호를 받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군대 갈 때 아들 팬티 속에 호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 만 원짜리 몇 장을 비상금으로 넣어줍니다. 요즘은 군대가 많이 좋아졌지만 옛날에는 배고플까봐 PX에 가서 단팥빵이라도 사 먹으라고 비상금을 주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신앙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자녀들을 위해서나 성령의 보호하심이 꼭 필요합니다. 

④ 권능 : 

성령님은 우리에게 권능을 부어주십니다. 세상에 살다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권능이 필요합니다. 슥4:6 “ ...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곤란하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권능이란 말(행1:8 참조)은 헬라어로 ‘뒤나미스’(duvnami")인데, 여기서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가 유래했습니다. 그 정도로 성령의 권능이 강력합니다. 

여러분,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을 아시죠. 그분은 이북에서 피난 나온 분인데, 성경책 하나를 들고 탈출한 부모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새벽기도회에 가고 하루에 두 번씩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고 있었을 뿐, 찬송가를 불렀을 뿐, 예배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생생하게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마에 피를 흘리신 예수님, 두 손에 못 자국이 있는 예수님, 흰 옷을 입고 나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 후로 완전히 새 사람으로 달라졌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목회를 시작한 후로는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이게 모두 성령님이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 평생의 도우미가 계시는 한 절망은 없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늘 성령을 의지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⑤ 변화 : 

성령이 임하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새로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가정이 변화되고, 주위가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변화는 나 자신의 변화입니다. 인격의 변화입니다. 

갈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을 가리킵니다. 성령과 동행하다 보면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됩니다. 그렇게 되면 새 사람이 되어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과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음주는 조선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였습니다. 선교사들이 와서 보니까 너무 한심한 겁니다. 이 민족에게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술을 얼마나 마셔대는지, 그리고 술만 마시면 싸움질을 하고 욕설을 하고 난리입니다. 가정 파탄이 납니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금주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블 선교사는 금주가를 지어 금주 운동을 펼쳤습니다. “ “술은 어린 영혼을 죽게 하니, 먹는 자 결단날 줄 아나니, 만지지 마라, 만지지 마라, 잔을 만지지 마라 ... ” 특히 부흥회는 술을 끊는 좋은 계기가 되곤 하였다. 술만 먹으면 부인과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던 사람들도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성령을 체험하고 큰 은혜 받으면 술을 끊고 새 사람이 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합니다. 한국사회가 이 정도라도 변화된 게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다고 과언이 아닙니다. 

[3] 성령 충만을 받는 비결 : 회개와 성결, 말씀의 충만, 간절한 기도 

하나님은 성도 각자에게 성령을 주셨는데 성령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영원히 내주하시지만 우리 자신이 잊어버리고 살면 성령이 소멸됩니다. 성령의 내주는 영원하지만, 성령 충만은 간헐적입니다. 때로는 성령의 은혜가 사그라집니다. 소멸이란 불이 꺼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재만 남아 있는 상태처럼 삽니다. 혹은 바람 빠진 타이어처럼 ...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내 생각과 내 힘으로 살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개하고 깨끗함을 받는 것입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해질 때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수원지에서 맑은 물을 공급해줘도 수도관에 녹이 슬어 있으면 녹물이 나오는 것처럼, 죄를 품고 있으면 순수한 성령의 은혜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말씀을 담아야 합니다. 골로새서는 에베소서와 쌍둥이 서신입니다. 엡5:18과 쌍둥이 구절이 골3:16인데,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 ” 성령 충만이란 말 대신 말씀 충만을 언급합니다. 그러니까 말씀 충만이 곧 성령 충만이라는 겁니다.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 역사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잘못된 영에 미혹될 수 있고 왜곡된 신비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말씀 충만하심으로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됩니다. 눅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미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기도하면 성령 충만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성령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영이므로 이미 받았어도 계속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속 부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고, 성령의 다양한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 ” 이 대목을 고백할 때마다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해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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