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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가 되게 하소서! (고전 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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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되게 하소서! (고전 12:1-11)


고린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문제가 어떤 것이었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보면 신령한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는 자들 때문에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자들이 꽤 많이 있었던 것 같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고전 12:1) 매우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그 뜻은 아주 분명합니다. 신령한 것에 대하여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이 땅 위에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충만하게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가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교회와 성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때문에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성령의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무슨 말입니까?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예수를 저주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견디기 어려운 심한 핍박 때문이었겠지만... 또한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령의 은사들이 그 어떤 교회보다 풍성하게 나타난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그와 같이 풍성한 은사들을 자랑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풍성한 은사들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헛된 명성과 지위 따위를 얻기 위해서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서로 반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다투고 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심한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왜 그렇게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까? 여러 가지로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잘못 생각한 것이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자상하게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자기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서로 다른 것, 즉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받은 바 은사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 다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합니다. 맡은 바 직분이나 사역도 다 다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오해했습니다. 다른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것입니다. 같지 않다고 해서 틀렸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가진 자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까? 능력 행하는 은사를 가진 자가 예언하는 은사를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까? 또한 신유의 은사를 가진 자가 방언의 은사를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까? 같은 한 성령이 행하신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타난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 때문에 서로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성령의 은사들 때문에 파당을 짓고 서로 싸웠습니다. 그들에게 차라리 성령의 은사들이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옛날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오늘 한국 교회의 모습과 참 많이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물론 한국 교회는 아직도 자랑할 만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 부지런히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교회, 열심히 전도하는 교회가 한국 교회입니다. 교회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놀랍게 부흥한 교회가 바로 한국 교회가 아닙니까?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부끄러운 문제들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 부끄러운 문제들을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하루 빨리 해결하지 못할 것 같으면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절망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 교회가 그 어떤 희망도 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교회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과연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교회가 하나가 되지 못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서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린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개교회주의와 성장지상주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요 또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비정상적으로 살찌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의사들도 비만을 아주 무서운 질병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한국 교회의 상태는 비정상적인 비만 상태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교회가 되게 하는 결정적인 기준은 얼마나 다양한 성령의 역사가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성령의 사람들은 예수를 주님이라고 믿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 같습니까?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예수를 나의 삶의 주인으로 믿고 있는가?” “나는 과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예수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고 있는가?” 

그런데 왜 가정에서 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왜 교회에서 내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주님이라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것 같으면 그렇게 살아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언제 어디서나 나는 무익한 종에 불과하다고 고백하는 삶을 살 것 같으면 분열과 다툼은 더 이상 발생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어두운 세상을 걱정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걱정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이 비난하고 조롱하는 대상 정도가 아니라 안타깝게 걱정하는 수준까지 추락하지 않았습니까?

한국 교회는 오늘 분명히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먼저 위기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위기 의식을 갖고 교회가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지 못한 죄, 주님의 몸된 교회를 갈기갈기 찢어 놓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한국 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또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가 다시금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한국 교회가 다시금 하나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말한 것처럼 교회 분열에 대한 잘못을 회개하고 아울러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열심히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와 함께 우리가 또한 힘써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이 땅 위의 성도들 가운데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은 모두 다 성령을 받은 자들로서 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또한 더욱 힘써야 할 일은 이 땅 위의 모든 성도들이 각기 다른 성령의 은사들을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협력하는 일입니다.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 주고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과 기쁨도 함께 나눔으로써 특히 이 땅 위의 약자들을 위한 교회로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 성령의 역사 가운데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에 많은 상처를 입혔지만 그래도 교회만이 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본래의 모습을 다시금 회복해야 합니다. 때문에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또한 회개해야 합니다. 아울러 교회가 다시금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항상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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