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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형제를 사랑하라 (창 50: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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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를 사랑하라 (창 50:19-21)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 50:19-21) 

I. 본문해설 

본문에는 믿음의 사람, 요셉이 형제들과 진심으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한 사람이었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사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고, 죽을 고생을 한 끝에 그는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을 모두 불러 애굽에서 함께 살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 형들은 두려워 떨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아버지가 죽은 후 자신들이 동생에게 행한 그 악을 기억하고 보복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믿음의 사람 요셉은 두려워하는 형들을 위로하며 오히려 용서하고 자기의 사랑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형제에게 어떻게 대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Ⅱ. 상처의 사람, 요셉 

1. 형제들의 시기 

요셉은 원래 상처의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기 전까지 요셉은 부족한 것이 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살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이 형들의 눈에는 밉기만 하였습니다. 그날도 아버지의 분부를 따라 형들이 가축을 잘 치고 있는지 안부를 알아보기 위해 형들에게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형들은 멀리에서 오는 요셉을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라고 하며 시기하여 애굽 상인에게 팔아버리게 된 것입니다. 형들의 시기로 인해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와 결별하고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생을 하며 이국땅에서 비참한 노예살이를 했습니다. 

2. 모함과 시련 

그뿐입니까? 노예로 팔려 와서도 변함없이 주인의 집에 충성하고 봉사하였으나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신앙의 행동 때문에 오히려 옥 속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일어난 비참한 시련들이 우리 인생 가운데 몇 개만 일어났어도 아마 우리는 그 상처로 말미암아 인생 전체가 멍들었을 것입니다. 


Ⅲ. 상처가 영광이 된 사람, 요셉 

그러나 성경은 요셉이 상처로 말미암아 영광을 누리게 된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요셉도 인간이었기에 상처는 쓰리고 영광은 즐거웠을 것입니다. 그 쓰라린 상처와 고통을 당하면서 이 상처가 영광이 되도록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신앙을 굳게 붙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 

1. 형제를 용서함 

그리하여 오늘 보면 형제들을 용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형들에게는 큰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자신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팔려가도록 일을 꾸몄기 때문에 요셉은 어린 시절에 부모와 헤어져 그 많은 날들을 종살이를 했으며 이제는 자신들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신들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자신들의 악행을 생각하며 보복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발 아래 엎드려 두려워 떨며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때에 요셉은 형제들을 진심으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형들의 죄가 작았기 때문이 아니라 요셉이 애굽 생활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요셉은 흠이 많은 인간이었고, 예수님은 흠 없으신 하나님이셨지만 오늘 우리는 이 요셉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보게 됩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에 내려오신 것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 때문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부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오셔서 누구에게도 잘못하신 것이 없었건만 그분이 진리이시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모함하고 시기하고 박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불쌍한 인간들을 끝까지 당신의 형제로 생각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계신 그분에게 끊임없이 악을 행하였으나 주님은 오히려 그것을 상처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형제처럼 여겨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형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들에게 준 상처와 거짓, 미움을 받을만한 일들로 인해 형제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멀어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의절하며 사는 사이가 될 수 있습니다. 형제를 보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요셉도 형제들이 자신에게 행한 끔찍한 악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허물이 많은 우리의 형제들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고 선을 베푸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람을 보는 대신 모질게 악을 행하고 원수처럼 행했음에도 우리를 용서해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께 사랑에 빚진 사람임을 기억할 때마다 그 분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중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 

요셉이 상처 때문에 영광스러운 인물이 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의 앞에 엎드려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일 뿐입니다”라고 울부짖었을 때 요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자신은 이 상황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인생의 불행한 일들을 하나하나 엮어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큰 섭리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붙들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도 도구로 사용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보여주셨던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였고 형제처럼 대하였던 제자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은 30에 노예의 몸값에 팔았지만, 예수님이 그들을 원망하지 않으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은 단지 도구일 뿐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속에서 당신이 고난 받음으로 죄 가운데 있는 수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시는 일들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박해하는 사람들을 원망하기는커녕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면서까지 저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며 저희들을 위해 아버지께 구원을 빌 수 있었습니다. 

3. 선하신 섭리를 믿음 

마지막으로 요셉의 상처가 영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굳게 믿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한 토막, 한 토막 요셉의 생애를 잘라놓고 보면 주님이 선하신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토막을 모두 연결할 때 오히려 요셉이 고통을 당한 것은 다음에 있을 축복을 위한 준비가 되었고, 외로움 속에 몸부림쳤던 요셉의 괴로운 나날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에 있어서 꼭 필요한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요셉은 하나님께 훈련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도 그러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랑하셨지만 사람들은 그 사랑을 배반으로 갚았고.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먹이시고 입히시고 병을 고치심으로 선을 행하셨으나 그런 은덕을 입은 많은 죄인들은 표독스럽게도 주님께 악을 행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원수처럼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당하는 이 모든 고난을 통하여 평소에 자신이 늘 아버지께 올리던 기도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성취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내게만 선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심을 굳게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굳게 믿으며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힐 때조차도 아버지의 이름을 친근히 부르며 당신의 기도의 소원을 아버지께 올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복수로 되갚아지고 우리의 선의가 악으로 되갚아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형제의 고움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악한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 주셨던 주님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이 선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Ⅳ. 상처를 사랑으로 갚음 

요셉, 이 사람은 상처를 사랑으로 갚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모질고 포악스럽게 자기를 대적했던 인간들에게 그 많은 미움과 그리고 반역을 사랑으로 어떻게 품고 용서하실 지를 보여 주시는 예표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거나 쓰라린 상처를 입을 때마다 그들의 악을 기억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오히려 주님이 이제껏 베풀어주셨던 그 큰 은혜가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형제들을 용서하고 품고 사랑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주님 앞에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상처를 준 사람의 상처는 상처로 남아도 그것을 받았을 때에 용서하고 사랑으로 갚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영광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본성으로는 이런 용납하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달라고 그래서 우리가 용서할 수 없는 우리 형제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힘든 우리의 형제들을 더 많이 사랑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우리는 주님 앞에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용납할 수 없는 우리의 형제들을 용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더 큰 사랑을 부어주심으로 오히려 이 상처를 영광이 되게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 더 많이 의지하고 믿음으로 여러분들의 가정을 고치는 도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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