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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을 살리고 희망을 주는 교회 (겔 47: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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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리고 희망을 주는 교회 (겔 47:5-12)


오늘은 우리교회가 창립 42주년을 맞이하는 매우 뜻 깊은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교회 창립 42주년을 맞아 먼저 42년 동안 우리교회를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42년을 한결 같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앞으로 50주년 100주년을 향하여 더 좋은 교회로 발전해 나가는 큰 꿈을 꾸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장로교의 창시자인 칼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들은 교회를 어머니로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까지 우리교회를 어머니처럼 받들고 잘 섬겨온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이분들의 땀과 눈물이 성전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모든 건강과 물질과 시간을 바쳐 지금까지 섬기신 어르신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는 줄 믿습니다. 부디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1970-80년대에는 하루에 개척교회가 6개씩 생겨났고, 당시 여대생들 사이에서 1등 신랑감은 단연 목회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해에 목사 안수를 받는 사람이 40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울에만도 목회지가 없어서 다니는 분들이 1만 명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또 한 해에 3000여개의 개척교회가 문을 닫는 이런 이야기가 들릴 때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하는 생각에 정말 고통스러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교회가 세상 앞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주전 597년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만여 명의 포로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에스겔의 나이는 약 25세 정도였습니다. 피가 끓어오르는 그 나이에 남의 나라 포로로 잡혀와 모든 희망을 잃고 지내던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그러니까 포로로 끌려간 지 5년 만에 칡 흙같이 어두운 한 밤에 어두움을 가르고 하늘이 열리며 한 줄기 빛이 절망하는 한 젊은 선지자 에스겔에게 찬란한 비전이, 이상이 내려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변화시켰던 이 위대한 비전, 이 찬란한 이상이 어느 날 그발 강가 포로수용소에 있던 젊은 포로, 제사장의 후예였던 에스겔에게 임하자 그는 이 환상을 붙들고 새로운 새벽을 향해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성소에서 스미어 흐르기 시작한 물이 점점 많아져 강을 이룬 장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발목이 잠기고 무릎에 오르고 허리에 차고 그러다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물이 점점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성소 문틈에서 스미어 흐르기 시작한 물은 미약하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흐르는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흐르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고 힘 있게 흐르더니 마침내 헤엄쳐도 건너기 힘든 강을 이루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물이 흐르는 곳마다 죽었던 것들이 살아나고 변화되는 심지어 죽음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해바다마져도 생명의 바다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된 것입니다. 어찌 그뿐입니까? 강물이 흐르는 주변에 숲이 우거졌습니다. 진귀한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는 이 벅찬 환상을 보고 견딜 수가 없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성소에서 흐르는 이 생명의 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뜻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흘려주신 피의 은총, 보혈의 능력, 그것이 바로 인류를 살려내는 생수의 강인 것입니다. 보혈의 은총에 적셔진 영혼들은 죄 사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덧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의 보혈의 은총이, 성령의 생수가 어디로부터 시작되고 발원되고 있습니까? 예! 성전으로부터 흘러나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곧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0:4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은 요7:37-38절에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라 하시니?라고 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배에서 생수의 강에서 흘러넘친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하여 차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성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미약하고 대단치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힘을 얻고 강력한 말씀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말씀은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힘이 되고 용기가 됩니까? 처음 믿을 때 가졌던 미약한 신앙이 시간이 흐른 지금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제 세상의 유혹도 이겨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신앙의 성장이 가능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메마른 심령 위에 넘치는 은혜의 단비와 같습니다. 그 말씀은 세상의 풍파와 싸우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곤고한 영혼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성도들의 삶 속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신뢰를 가지게 하여 이 땅위에서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넘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스겔에게 보여준 이 환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와 우리 교회는 에스겔의 이 환상 속에서 우리가 도전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교회가 날마다 새롭게 변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에스겔 때에는 이미 솔로몬의 성전은 불타 없어졌지만 성령님은 에스겔을 완전한 하나님의 성전으로 데려가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처음에 에스겔이 보았던 물은 조금씩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2절 끝 부분에 보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똑똑 떨어지다.? 또는 ?졸졸 흐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성소로 말미암아 나오는 물은 아주 조금씩 스미어 나오는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하니 물이 발목에 오르고, 또 일천 척량하니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니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스미어 나온 물이었는데 나중에는 창일한 강을 이루었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큰 강도 발원지에 가보면 마찬가지로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거나 스미어 나옵니다. 지난해에 제가 섬기는 동성교회에 북한 선교를 하면서 단동에서 저 북쪽 백두산까지 다니면서 압록강 물줄기를 거꾸러 타고 백두산 지역까지 올라가면서 두만강 발원지까지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두 강의 발원지는 너무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의 발원지에서 끊임없이 물을 보내 줄 때 결국 큰 강을 이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스겔 역시 이 환상을 볼 그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은 거의 무용지물에 가까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 번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거의 모든 기구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렇게 황폐화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에서 샘물이 솟아 나오는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 물은 가장 먼저 성전 주변을 가득 채웠습니다. 성전에 먼저 생명을 심은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먼저 변화되지 않으면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변화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교회의 생명은 생수를 마신 자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을 해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야 되고 인격이 자라야 됩니다. 이는 너무너무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자라지 않는 발육부진의 자녀를 둔 가정에 둔 부모는 얼마나 고통이 큽니까? 발육이 멈춰버린 교인들만 그득한 교회에 가 보세요. 기도하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목회자로부터 어린이까지 계속 영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엡4: 13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보십시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성장합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자라게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건강하다면 자라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예수 안에 있으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면 자라나게 됩니다. 나의 믿음이 예수님의 믿음처럼 되는 것입니다. 생각도, 인격도, 생활도,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를 보세요. 처음에는 다 잘 자랐습니다. 처음엔 양질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목회자도 병들고 자라기를 멈춰버리고 교회 안에 중직을 맡은 직분자들도 다 배가 불러 성장을 멈춰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사데 교회처럼 죽은 교회가 안 나오나, 버가모나 두아디라교회처럼 세속화를 받아들여 문란하고 물질의 노예가 되고 자기 쾌락을 즐기는데 정신이 팔린 성도들만 득실 득실거리는 교회가 되버리지 않나 또 영적으로 죽어버리니까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스스로 배가 불러 자만하며 나는 이만하면 됐다는 열심히 다 식어버려서 주님이 보실 때는 다 토해내고 싶은 역겨운 교회가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장이 멈춰버렸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미국 ABC 방송국에서 특이한 병을 충격으로 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프로제리아(Progeria)'- 길포드 증후군(Gilfordn Syndrome) - 라는 병이었어요. 아마 사람 이름을 딴 병명 같습니다. 이 병은 아이들에게만 생기는 병이었어요. 성장을 멈추는 병이지요. 그러나 신기한 것은 성장이 멈추는 것에 반해 세포조직은 빨리 늙어버리는 겁니다. 그 당시 TV에서 이 병에 걸린 아이들과 부모들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참담했어요. 한 아이를 집중하여 조명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의 몸집이 유치원생인 6살 정도 되어 보였어요. 그러나 얼굴은 40대였어요. 이 아이들은, 성장은 멈추지만 급속도로 세포조직이 빨리 늙어가서 대부분 2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다 20세 정도가 되면, 몸집은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이나 얼굴은 환갑을 넘긴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아이 부모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몸집은 자라지 않고, 모든 기능은 빨리 늙어서 자신들보다 먼저 죽어 가는 아이를 둔 부모, 그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 그 날 방송에 나온 부모들은 한결같이 흐느껴 울었어요. 저도 안타까운 심정으로 같이 울었어요. "세상에 저런 병도 있구나, 정말 처참한 병이구나!" 만약 그 병에 여러분의 자녀가 걸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저는 생각해 보았어요. 우리 아이가 18세가 다 되어 가는데 몸집은 초등학교 2학년만 하고 얼굴은 저보다 더 늙었어요. 이제 2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무덤을 향해 달려간다고 하면 여러분의 심정이 어떨까요? 

여러분! 묻습니다. 성장하고 계십니까? 나는 주님이 서 계신 곳까지 가기 위해서 얼마나 성장합니까? 성장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얼마나 준비하고 열심히 기도합니까? 성장하기 위해서 여러분 얼마나 은혜를 사모합니까? 은혜를 받기 위해서라면 천리만리라도 달려갈 만큼 갈급한 심령이 있습니까? 여러분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 여러분 자신을 쳐서 날마다 복종시킵니까? 아예 그런 노력 안하면 문제가 일어나요. 특별히 교회 안에 중직을 맡은 분들, 내가 직분만 맡으면 다 된 줄 알고 그 다음엔 성장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다른 교회를 가면 그런 사례를 너무 너무 많이 봅니다. 직분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모두가 자라나야 합니다. 

또 하나는 이 생수의 강이 온 땅을 적신다는 것은 이 땅에 수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교회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라고 한다면 교회가 더 이상 사회를 변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한국 교회는 우리 사회가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서 흔들어대고 있기 때문에 멀미가 날 지경입니다. 사회가 흔들 때마다 교회는 비명소리를 내고,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수치를 당할 때 성도로서 아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교회를 조금만 흔들어도 왜 그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는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거룩성의 상실입니다. 세상 앞에 다름이 주는 감동을 잃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세상 앞에 교회는 더 이상 희망일 수가 없고, 오히려 맛을 잃어버린 소금처럼 밖에 버리워져 사람들에게 짓밟힘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여러분은 위대한 영향력을 나누며 살아가게 될 하나님의 위대한 백성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세상을 바꿀 위대한 백성 거룩한 백성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표가 어디 있어요? 복음을 전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충성 된 분들의 뜨거운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고 살아야 합니다. 

좋은 교회는 이 사명을 함께 공유하는 충성된 사람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다 각오도 다짐도 하지만, 정말 변함없는 믿음을 가진 자인지는 평소에는 판가름나지 않습니다. 오직 결정적인 때에 드러나는 법입니다. 내 건강이, 내 재물이, 내 생각이, 내 뜻이 찍히고 떨어지고 빼앗기고 부서지고 깨어져 나갈 때, 바로 그 순간에서 마저 우리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충성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그 결정적일 때를 위해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일 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믿음이 필요할 때에 비 신앙적인 길을 걷는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참된 충성된 신앙인 일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향나무와 가짜 향나무의 차이가 언제 드러납니까? 도끼에 찍히는 순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향나무는 찍힐수록 향기를 더욱 진동하지만, 가짜는 찍을수록 도끼의 날만 상하게 할 뿐입니다. 겉모습은 똑같아 보일 수 있지만 찍히우므로 비로소 진위가 판가름나는 것입니다. 생화와 조화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진짜 꽃의 잎은 떨어지지만 인조 꽃잎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진짜 꽃은 벌이나 나비에게 기꺼이 자신의 꿀을 빼앗겨 주고 나누어주지만, 모조 꽃은 떨어지거나 빼앗길 것을 아예 소유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요즈음 조화를 얼마나 잘 만듭니까? 구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떨어짐과 빼앗김의 유무에 따라 생화와 조화 여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이미 만세 전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나하나를 위해 저주와 고통의 십자가를 마다하지 않고 거기에 달려 죽으실 만큼 결코 예수님이 놓칠 수 없는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누구입니까? 오늘도 보혜사가 되신 성령께서 어디로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나를 은혜로 붙잡으시며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말씀하신 가장 소중한 존재가 여러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살맛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교회가 건강한 교회되면 그 모든 축복이 우리 자신에 게로 돌아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지금 조국 한국은 나라를 바르게 섬겨야 할 위정자들이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금융 사고는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납니다. 돈이 있어도 은행에 맡길 수 없는 세상, 사랑스러운 내 자녀들을 학교에 맡기기 힘든 세상입니다. 건강한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많아야하는데 실업자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신용불량자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아직도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세계는 지진과 전쟁, 그리고 기아와 굶주림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사탄이 그저 제철을 만난 듯 미친 듯이 날뛰고 있습니다. 이곳 저곳에서 우상들이 판을 치고 있고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려는 영적 어두움이 우리를 덮으려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앞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당신의 교회를 이곳에 세우신 것입니다. 이제 42주년을 맞는 우리 교회는 무엇보다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하나는 내적인 변화입니다. 성장입니다. 또 하나는 선교하는 교회로 주님의 지상 명령을 받들고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게 되면 교회는 세상에게 아무런 희망을 줄 수가 없습니다.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적은 물이 흐르고 흘러서 큰 물이 되어 사막과 죽음의 바다까지도 생명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말씀과 은혜의 강물이 우리를 통해서 우상과 미신으로 가득찬 우리 광진구에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 한강의 물줄기를 거룩한 보혈의 강으로 만들어 이 땅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하는 생명의 역사를 힘있게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우리가 이루어가야 할 하나님의 꿈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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