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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의 우선순위 (마 8: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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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우선순위 (마 8:18-22)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선순위 없이 모든 일을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우리 삶의 구조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루에도 수 없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늘 자기에게 우선순위를 둘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이 우선순위를 공부에 두지 않고 TV시청이나 게임에 둔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습니까? 

그래서 우선순위는 모든 삶에 적용되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늘 우선순위 문제가 앞에서 명확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 사이에는 참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들 대부분은 긴급한 일 쪽을 선호한다는 것에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순위 문제는 모두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거나 같은 환경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렵습니다. 이 세상, 이 시대가 표방하고 있는 최우선 순위는 욕망입니다. 그 욕망은 돈에 대한 욕망, 정욕적인 것에 대한 욕망, 좀 더 높아지려고 하는 권력에 대한 욕망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시대정신에 합당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게 마련입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몰려들게 됩니다. 원조 교제와 같은 일도 가능하고 권력을 잡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시민권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천국 시민이라는 사고방식이 그의 삶을 지배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천국 시민권자들의 삶은 그 우선순위 설정에 있어서도 이 땅의 사람들과 많은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먼저 기억해야 할 것 

우선 우리는 다시 18절을 주목해서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그랬습니다. 지금 예수님 주변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기관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머리 둘 곳이 없는 순례자의 삶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는 삶이 그렇게 편안하고 장래가 보장되어 있는 일이 아니니 잘 생각해 보라는 무언의 교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순위 문제가 누구하고 연루가 되어 있습니까? 부모와 연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마8:22절)그랬습니다. 지금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예수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는 그를 메시아로 추앙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주님은 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더구나 당시 유대인들 사회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문제는 아주 보편적인 우선 순위였습니다. 탈무드에는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의무들, 그것이 종교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자들을 장사하는 일을 하나님의 목전에서 상급을 얻을 만한 사랑의 행위로 간주했습니다. 더구나 본문의 사람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하옵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우선 순위였습니다. 

더구나 십계명에는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절)그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계명을 "약속있는 첫 계명"(엡6:2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이것을 모르시지 않습니다. 더구나 주님도 고르반에 관해서 말씀하실 때 부모 공경에 대해서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7:10-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그랬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만들었습니다. 이 장로들의 유전은 어떻게 하면 율법을 잘 지킬까 고민하면서 율법에 덧 붙여 좋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장로들의 유전 가운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드려야할 것도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렸다고만 하면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아무것도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항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평가에 의하면 이런 이들의 행위가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유전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행위라고 비난하셨습니다. 어떻게 버립니까?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고 부모를 훼방하는 자는 죽일지니라고 했는데 부모를 공경하기는커녕 고르반을 빌미로 부모를 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각이 이렇다면 마땅히 주님은 부친을 장사하고 돌아오겠다는 제자에게 "그래 잘 생각했다 가서 장례를 잘 치르고 돌아오너라"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더구나 지금 예수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아마도 다 그렇게 답변하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주님은 이런 답변을 하신 것입니까?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 문제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좀 더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 보시면서 왜 주님이 이렇게 답변하셔야 했는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제자의 우선순위 

우선 눅 9:59절과 마 8:21절을 비교해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 복음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는 이 말이 "제자 중에 하나가 가로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앞의 서기관도 광의의 의미에서 제자이고 이 사람도 제자라고 말합니다. 21절을 원문대로 해석하면 "그의 또 다른 제자가"가 됩니다. 그래서 서기관이 제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 말은 그 반대의 의미가 됩니다. 오히려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또 다른 사람이"(NEB)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서기관과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를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는 것은 좋은 해석이 아닌 것입니다. 

어쨌든 본문에서는 이 사람이 제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서기관과 입장이 다른 것은 서기관은 지금 주님을 따르겠다고 나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주님을 따르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주님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말씀은 전혀 필요치 않은 것입니다. 그저 마땅히 부모를 장사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따라서 그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가 달라져야 합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의문이 생기실 것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은 부모님 장례도 치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여러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부인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본문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제자가 가서 부모를 장사지내고 오겠다는 말은 단순히 가서 장례를 치르겠다는 의미만은 아니었습니다. 연세가 많은 부친을 마지막까지 잘 돌보다가 부친이 사망하면 와서 주님을 따르겠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여기다가 하인시우스라는 분은 유대인들은 부친이 사망했을 때 매장하기 전에 칠일간의 슬퍼하는 기간과 장례식 후에는 일 년 동안이나 애통하는 기간을 의무적으로 가져야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제자가 부친을 장례 지내고 돌아와 좇겠다는 말은 지금 주님을 좇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주님은 지금 공생애를 사시고 계신 중입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3년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3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주님은 이제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시려고 합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 지셔야 하는 십자가의 길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을 볼 때 이 사람의 가족들은 아직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 하여금 부친을 장사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사람들에게는 이생에 속한 의식과 습관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죽은 자를 장사하는 일이 더없이 중요합니다. 제가 산소 이장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뼈를 채취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보물을 찾는 것처럼 정성을 들입니다. 그리고 손 없는 날을 찾고 명당자리를 찾는 일이며, 그 산소에 돌을 두르고 잔디를 입히는 일에 참 많은 물질과 노력을 쏟아 붓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저런 에너지를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우선순위가 다른 법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장사 지내는 일들을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또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에는 "너는 나를 좇으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이 좇는 일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로 바뀌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따르는 삶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삶인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안목을 가지고 제자에게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에게는 부친을 섬기는 일이 더 우선순위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 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는 아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습니다. 나는 아직 훈련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나는 아직 하나님 나라 사고방식으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이 부모를 잘 공경하고 노년을 잘 보살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우선순위에 두어야할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8절)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나게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말씀은 우선순위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그리스도인은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많은 무리들 앞에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일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이 부친을 장사하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를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아! 그리스도를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를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입니까? 날마다 전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까? 이것을 위해서라면 아버지의 장례도 가정사의 모든 일도 다 포기하고 참석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최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정상적인 직장 생활이 불가능해 집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형제나 자매들과 도저히 합할래야 합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관계를 무시하고 친인척을 무시하는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셨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최우선 순위에 모시고 산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깊고 넓은 것입니다. 그런 외적인 행위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주님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것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의 모든 삶의 영역이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일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최우선 순위에 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마음을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을 마음 아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배와 삶, 찬양과 생활을 분리시킨 것에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그리스도를 최우선 순위에 모시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헌신을 요구하실 때 머뭇거리지 않는 준비된 성도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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