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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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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의 사람아 (딤전 6:11-16)


강화의 안디옥으로 불리우는 홍의감리교회는 복음의 불모지이던 강화 구석구석에 말씀 전하기에 앞장서며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았던 초대교회입니다. 기독교를 토착화하고 성경말씀을 삶으로 체질화하며 선교사의 도움 없이 교인들의 힘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홍의교회 교인들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고 검은 물을 들인 옷을 입어 크리스천임을 표시하였습니다. 믿음안에서 반상을 뛰어넘어 한 가족임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여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될까?’ 생각하다 자신들의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부모들이 지어주신 이름도 귀하여 간직해야 하지만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예수 믿는 것이기에 어떤 이름이 좋을까를 의논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이름, 네 가지를 찾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으니 신(信)자, 둘째는 하나님을 늘 바라보자는 의미에서 경(敬)자, 셋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순(順)자,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으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되니 능(能)자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한 날 한 시에 믿었으니 한 형제요, 믿음의 첫 열매이니 일 (一)자를 붙여 신일(信一), 경일(敬一), 순일(順一), 능일(能一)이라고 이름을 지어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강화지역 초대교회 전도인의 이름을 보면 박능일(朴能一), 김경일(金敬一), 권신일(權信一) 등이 나옵니다. 이들이 바로 어떻게 하면 이름답게 살 것인가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 믿는다면 믿는 사람답게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위대한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고 하였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은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 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사용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 역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호칭은 하나님 백성의 신분이며 존재양식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인의 존귀함을 일깨워 이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구원받은 감격으로 섬기며 복된 소식을 전할 의무가 있습니다, 세속적 가치관을 가진 불신앙의 사상을 멀리하며 과도한 욕망을 피하고 성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 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려면 신분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행할 바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본문에서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이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첫째로 따르라 

1700년대 영국 사회는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산업화로 인하여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로 어지러운 세상이었습니다. 정치는 물론이고 교회 지도자들까지 타락한 상태였습니다. 영국 교회 더햄(Durham)의 대주교는 수억의 연 수입을 성직판매로 올렸다고 하고, 사람들은 완전히 술독에 빠진 것처럼 살았습니다. 독한 술인 진(Gin)이 4,400만 리터나 팔렸고 양조업이 번창하여 교회가 양조업에 투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런던의 중심가 가일(Gile)에는 500호가 술집이었다고 합니다. 도박 싸움, 여자들의 권투시합, 닭싸움, 극장가가 곧 사창가였습니다. 이처럼 타락의 극치를 달리던 영국을 구해낸 것은 바로 요한 웨슬리(John Wesley)의 감리교 운동이었습니다. 

회심을 통한 자기 변혁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세속적인 것들을 멀리하며 영적 가치를 따름으로 자기를 바꾸고 나라와 민족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교회에는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고자 거룩함을 추구하고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이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여기의 ‘따르며’ 라는 말은 개역성경의 ‘좇으라’ 의 번역된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믿으라’는 말보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이 따라야 할 덕목을 여섯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의와 경건’입니다. 의가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라면, 경건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이어 바울은 ‘믿음과 사랑’을 따르라고 합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라면, 사랑은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인내와 온유’를 말합니다. 인내가 어려운 상황에서 참는 것이라면, 온유는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참는 것을 가리킵니다. 상황과 사람을 참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꼭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부탁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부정적으로는 모든 악에서 떠나는 것이며 긍정적으로는 의와 경건과 영적 덕목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악을 멀리하고 의를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덕목을 따르는 것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 주시길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악한 것으로부터 피해 선한 영적 덕목을 적극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둘째로 싸우라

강원도에 위치한 예수원 공동체를 섬기는 대천덕(Reuben Archer Torrey III) 신부의 글입니다. 사단이 한국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해 작전을 세웠는데 첫 번째 작전은 핍박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인들이 핍박을 받을수록 오히려 핍박을 기뻐하면서 신앙이 성숙해졌습니다. 두 번째 작전은 면역화였습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신앙에 깊이 빠지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깊은 신앙을 ‘광신적이다, 정통적이지 못하다, 이단’ 이라고 말하여 적당히 믿게 만들었습니다. 한때 작전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교인들의 열심을 막을 길이 없어 실패하였습니다. 세 번째 작전을 택했는데 타락화입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방송설교, 설교집, 신학 서적과 경건 서적, 교인들로 하여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관심을 세상으로 향하며 나태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한국 교회는 이 작전에 말려들어 완전히 타락해 버렸습니다. 영적 세계, 영적 싸움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과 가정과 교회를 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영적싸움을 싸우며 승리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여기의 ‘싸우라’ 는 헬라어 ‘아고니조마이’로서 ‘시간을 보낸다, 허비한다' 인 ‘아고’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즉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은 믿음을 위해 자기의 생애를 전적으로 소비하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특히 하나님의 사람이 수행하는 싸움이 선한싸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역시 선한싸움을 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부름을 받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성령에 민감하여 진리를 위한 선한 싸움을 계속해서 싸워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한 영적 싸움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교만, 투기, 정욕, 거짓 교훈, 악한 분노와 같은 죄악의 요소들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선한 싸움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싸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따라서 내 능력이나 처지를 생각하면 싸움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내 능력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취하라 

여류 영화배우 캐서린 햅번(Katharine H. Hepburn)에게 한번은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찍는 영화마다 성공하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녀는 한 마디로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에너지입니다.” 성도들에게도 에너지가 있어야 합니다. 신령한 힘과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생애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취하여 에너지의 근원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만 만나면 살맛이 없던 사람에게 살맛이 나게 하시고, 열정이 없던 사람에게 열정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믿음의 사람을 만나면 살맛이 납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뜨겁게 해야 합니다. 영적가치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가장 중요한 영생을 취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여기의 ‘취하라(take hold of)’는 동사는 ‘확실하게 붙잡다’ 라는 의미입니다. 영생이란 생명의 시간적 개념만이 아니라 그 생명이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평안과 기쁨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영원토록 교제의 삶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확실하게 붙들되 계속하여 붙잡아야 합니다. 능력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생을 취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더 풍성한 은혜 가운데 성장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일에 힘쓰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은혜를 계속 경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미 얻은 영생을 굳게 붙잡고 계속적으로 그 안에 있는 생명의 부요와 풍성함을 누리려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Himalayas)의 고산족들은 양을 팔고 살 때 그 크기에 따라 값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의 행동에 따라 값을 정한다고 합니다. 양을 가파른 산비탈에 놓아두고 살 사람과 팔 사람이 함께 지켜봅니다. 이때 양이 비탈 위로 풀을 뜯으러 올라가면 마른 양이라도 값이 오르고 비탈 아래로 내려가면 살이 쪘더라도 값이 내려갑니다. 위로 올라가려는 양은 현재는 힘이 들더라도 넓은 산허리의 미래를 갖게 되지만, 아래로 내려가는 양은 현재는 수월하나 협곡바닥에 이르러서는 굶주려 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가치는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든지, 물질이라든지. 직분이라든지 신앙의 경력으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보여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진 것의 무게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행동의 무게를 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행함으로 보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이름을 ‘개동(開東)’이라고 지었습니다. 동쪽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태양이 뜨는 것을 생각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이름답게 살지 못하자 그 이름이 변하여 “개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름처럼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얻기 위한 선한 싸움을 계속하여 싸우시기 바랍니다. 부디 체험적 은혜를 통해 영생을 누리며 언제나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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