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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곱 배의 햇빛 (사 30:23-26; 요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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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여자 축구 국가 대표전이 있었습니다. 두 팀으로 나누었는데 한 팀은 ‘아테나’였고, 다른 한 팀은 ‘가이아’였습니다. 그리스의 여신들의 이름입니다.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이고 가이아는 대지의 여신입니다. 가이아가 아테나를 9:6으로 이겼습니다. 여신들이 싸우는데 무서워요. 세계 정상급인 여신들의 장거리 슛도 일품이었습니다. 
  
1970년 영국 윌트셔 지방 어느 시골에 두 사람이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의 행성학자인 제임스 러브룩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골딩이었습니다. 러브룩이 골딩에게 물었습니다. “지구가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그 이름을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 골딩은 그 질문에 “가이아(Gaia)가 좋겠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지”라고 답합니다. 지구라는 생명체는 햇빛, 공기, 물, 흙의 움직임입니다. 건강을 온전히 지킬 수 있게 하며 흔하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건강자산은 햇빛과 공기와 물입니다.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세 가지 요소도 물과 공기와 햇볕입니다. 모든 생물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이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빛을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넷째 날에 해를 만드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밝게 하고 세상을 살게 하시려고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밝은 것이 사는 것입니다. 어두운 것은 죽는 것입니다. 빛을 만드신 하나님은 결코 어둡게 살고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녹색식물의 지배적 색소는 엽록소입니다. 엽록소는 잎을 초록색으로 만듭니다. 나뭇잎에 다른 색소도 있지만 엽록소가 많아 다른 색깔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을이 되면 낙엽수들은 햇빛을 받는 낮 시간이 짧아지므로 잎을 떨어드릴 준비를 합니다. 잎은 나무의 맥과의 관계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물과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합니다. 엽록소가 파괴되므로 초록 색소가 약해지고 노란색과 오렌지색 색소가 뚜렷해집니다. 햇빛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잎이 자라지 못합니다. 잎이 자라지 못하는 겨울에 나뭇가지의 생존방법은 잎을 떨어트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에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으니”라고 합니다. 참 빛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참 빛이 없으면 어두움이고 어두움은 죽음입니다. 빛이 없을 때 죽는 것입니다. 빛이 오므로 비로소 세상이 살아났습니다. 새 생명이 있습니다. 빛이 없으면 모든 생물이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가 없이는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캄캄한 방에 들어가 커튼을 걷으면 밝은 햇빛이 들어옵니다. 캄캄한 방을 밝게 한 것은 내가 아닙니다. 햇빛은 내가 커튼을 걷기 전 이미 있었습니다. 나는 다만 햇빛이 방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걸림돌을 없앤 것뿐입니다. 커튼을 걷은 것밖에 내가 한 것이 없습니다. 커튼을 걷으세요. 빛이 들어옵니다. 커튼을 걷으세요. 그러면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햇빛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케 하시려고 일곱 배의 햇빛을 주십니다. 일곱이란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빛을 주시고, 완벽한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빛, 참 빛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벽한 회복과 치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곡식과 재물이 풍성하게 됩니다. 
  
23절에는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네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본심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곡식과 재물이 풍성하기를 원하십니다.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농부의 수고에 하늘이 화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농부가 부지런히 농사를 짓는다고 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농사는 될 수가 없습니다. 결과는 땅이 먹을 것을 주고,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농업은 전적으로 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은 비를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천수답’이란 말을 아시지요?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자연강수만으로 충당하는 논을 말합니다. 즉 댐이나, 하천이나, 지하수 등 타 수원이 전혀 없이 농사를 짓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천수답 농사는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를 짓습니다. 농부들은 하늘에 의존하게 농사를 짓게 될 것입니다. 하늘이 비를 내리고, 하늘이 햇빛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느 제주도의 표고버섯 농사를 짓는 분이 “포고버섯 농사는 하늘 농사가 반이다”라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농사가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한라산의 청정 공기와 물과 햇볕을 이용하여 표고버섯을 제배합니다. 이제는 표고버섯 농사가 얼마나 잘 되는지 감귤의 대체농작물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농부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5:1에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합니다. 농부이신 아버지는 부지런하십니다. 씨 뿌릴 때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김맬 때를 잘 맞추십니다. 거둘 때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농사에 대해 너무 잘 아시기에 하나님은 일등 농부이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농사가 반이 아니라 전부입니다. 
  
비가 적당히 와야 모심기를 하고 모내기를 합니다. 모내기 때에 비가 안 오면 농부들은 시름이 깊어집니다. 벼가 한참 자랄 때에는 적당한 비가 와야 합니다. 벼가 익기 시작하면 뜨거운 햇빛이 필요합니다. 벼가 익을 때는 비가 오지 말아야 합니다. 결실할 때가 되어 추수를 앞두고 있는데 홍수나 태풍이 와 보세요. 한해 내내 땀을 흘려 지은 농사를 망칩니다. 하나님이 농사를 지으셔야 확실합니다. 하나님이 농부가 되셔야 농사를 풍성하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할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십니다. 예레미야 5:24에는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비가 언제 와야 할지 언제 오지 말아야 할지를 알고 계십니다. 때를 따라 비가 적당히 와주면 농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오랜 우리 경험으로는 우리나라에 비가 오지 않아 ‘한발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양수기 보내기 운동을 합니다. 조금 지나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 위원회가 ‘홍수대책위원회’로 둔갑을 합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문제지만 너무 많이 와도 문제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비를 적당히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45에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고 합니다. 해를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해가 없으면 살 수 조차도 없습니다. 적당한 햇빛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의 복이 어떠합니까?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습니다. 소와 어린 나귀도 맛있게 먹이를 먹습니다. 고산과 준령에 개울물이 흐를 것입니다. 빈틈이 없는 완벽한 자연 혜택을 받습니다. 완벽한 흙과 물과 햇볕과 공기를 얻습니다. 이런 자연의 완벽한 혜택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왜 우리에게 가뭄이 있습니까? 왜 홍수가 납니까? 왜 곡식이 안 익습니까? 왜 깜부기가 생깁니까? 왜 소가 낙태합니까? 왜 양의 새끼가 없습니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신 진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욥기 21:10에는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현실적 복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햇빛을 비추시면 우리의 삶이 풍성합니다. 우리의 곡식과 가축이 잘 됩니다. 비와 햇빛이 늘 적당히 우리에게 내립니다. 모든 것이 형통하고 잘 됩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비추셔야 하고,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형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지금도 옛 무덤을 발굴하는 중에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옛 왕족의 무덤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 4천년동안 잠자던 밀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밀을 땅에 심었더니 자라서 밀이 열렸습니다. 땅과 공기, 햇볕만 있으면 오래 된 씨앗도 싹이 나고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햇빛을 주셔서 자라게 하십니다. 씨의 생명이 있는 한 햇빛은 자라게 합니다.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햇빛을 비취게 합시다. 참 빛이신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우리의 소산이 풍성할 것입니다. 우리의 직장과 사업이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참 빛 외에는 우리의 삶이 잘 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햇빛과 함께 우리 삶이 형통하고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상처를 싸매시고 고치십니다. 

26절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이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하나님의 햇빛은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햇빛을 비춰주시면 모든 병이 낫게 될 것입니다. 일곱 배의 해는 일곱 배나 병을 잘 치유할 것입니다.    상처를 싸매고,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것은 하나님의 본능입니다. 우리의 상처를 누가 고치십니까? 하나님이 치유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고 아픈 것을 고치십니다. 
  
호세아 6:1에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치료자이십니다. 성경에는 “내가 고쳐주리라”는 말씀이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고치실 수 있고 고치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치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달빛을 햇빛같이 만듭니다. 햇빛을 일곱 배가 되게 하십니다. 성경의 ‘달’이란 히브리어 ‘할레바나’로 흰 것을 뜻합니다. ‘해’는 ‘하하마’라는 히브리어인데 뜨거움을 의미합니다. 흰 것과 뜨거운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태양광이 일곱 배나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죽습니다. 일곱, 7이란 숫자는 완전수로서 치유하기에 충분한 완전한 빛을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햇빛을 잘 쬐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고, 심장병이나 색전증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암 발생 위험을 줄여주고, 뼈의 건강에 도움을 주며, 행복지수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일본의 노무라 마사키가 쓴 ‘내 하루의 도둑맞은 58분’에 보면 ‘선 라이즈 파워’라는 말을 씁니다. 아침 햇빛을 받음으로써 뇌 활성화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는 긴장과 흥분을 일으키는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가 가장 활발하여 지식이나 정보의 흡수, 논리적인 사고, 아이디어나 발상을 얻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해가 뜰 때의 시간은 많은 것을 버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햇빛의 대표적 기능은 살균작용입니다. 햇빛 자외선의 살균작용은 1분간 쬐면 대장균, 디프테리아균, 이질균 등은 99%가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햇빛이 쨍쨍한 날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두고 옷과 이불을 널었습니다. 햇빛의 강력한 살균작용을 생활 속에 이용한 것입니다. 햇빛이란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 조상들은 지혜로 사용했습니다. 
  
말라기 4:2에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합니다. 태양은 그 자체가 치료하는 힘이 있습니다. 태양은 하나님의 힘입니다. 햇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힘으로 치유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병 고치시는 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을 예수님은 고치셨습니다. 38년 동안 베데스다 못 가에서 물이 움직일 때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병자를 예수님은 고치셨습니다. 한 편 손 마른 사람의 손도 예수님은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소리 지르던 시각장애인들을 고치셨습니다. 아무 희망이 없고 부정하다고 자신을 멸시하던 한센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가 칼로 친 말고의 귀까지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의 하나가 치유였습니다. 마태복음 9:35에는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합니다. 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까? 하나님은 못 고칠 병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못 고칠 병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물었답니다. “하나님, 암도 고치십니까?” 하나님은 “암, 고치지”라고 하시더랍니다. 물과 공기와 햇빛은 한 결 같이 대체의학에서 탁월한 자연 치료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치료방법은 바로 자연입니다. 햇빛이야말로 정말 좋은 지료제입니다. 
  
태양은 1평방미터 면적에 13만 마력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13만 마력이란 8기통 자동차엔진 450개와 맞먹는 힘입니다. 태양의 능력은 인간이 역사상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1초 동안에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현재 속도로 태양이 탄다고 하더라도 300억년은 더 타오를 수 있습니다. 
  
이솝우화에는 ‘바람과 태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람과 태양이 누가 더 힘이 세냐를 두고 내기를 했습니다. 바람과 태양은 지나가던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쪽이 힘이 센 것으로 했습니다. 바람은 트라키아의 폭풍으로 사람에게 세게 불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불자 사람은 외투를 더 감싸 벗겨지지 않게 했습니다. 다음 차례로 태양이 햇볕을 비췄습니다. 처음에는 따뜻합니다. 그런데 점점 더워지니 나그네는 외투를 벗어 던졌습니다. 설득이 강압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의 우화입니다. 햇빛은 어떤 것보다 더 강한 힘이 있습니다.  
  
해는 비처럼 홍수를 내지 않습니다. 바람처럼 태풍을 몰고 오지 않습니다. 바다처럼 쓰나미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눈처럼 눈사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는 가장 강합니다. 해는 사람을 치유하고, 자연을 고치는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은 해가 가지는 힘이 아니라 사실은 그 힘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해를 병을 고치는데 이용하십니다. 일곱 배의 햇빛은 사람을 완벽하게 치유할 것입니다. 
  
찬송가 138장에는 “햇빛을 받는 곳마다 주 예수 다스리시고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 나라 왕성하리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햇빛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치료하십니다. 햇빛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이 뜨겁게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결론 

결혼을 앞둔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부부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편히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네 엄마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산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다시 묻습니다. “아버지, 적당한 거리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입니까?” 아버지는 주위를 살펴보고 아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네 엄마가 때리려고 할 때 맞지 않고 도망할 수 있는 거리가 적당한 거리란다” 그러더랍니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는 적정한 거리가 있습니다. 흔히 너무 멀리도 말고, 너무 가까이도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더 가까이 가야 하고, 늘 멀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은 멸망이고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며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빛이신 그리스도와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일곱 배의 풍성한 빛, 하나님의 완전한 빛으로 우리 삶이 풍성하고 우리 몸의 모든 병이 치유되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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