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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2) (마 5: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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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2) (마 5:27-32)

예전에 청년들을 지도할 때 가치관에 대한 토론을 위해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 『악어의 강』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나라에 악어가 득실대는 강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강에는 두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다리로 두 마을은 서로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그 강을 사이에 둔 두 마을에는 각각 ‘그레고리’라는 청년과 ‘에비가일’이라는 아가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자주 서로 다리를 건너며 만나서 사랑을 속삭였는데, 불행하게도 어느 날, 큰 비가 내려 그 다리가 끊겼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 에비가일은 그레고리를 만나기 위해서 강을 건너가고 싶어했는데, 그 강을 건너는 방법은 유일하게 나룻배를 갖고 있는 ‘신밧드’에게 가서 부탁하는 수밖에 없어서 에비가일은 신밧드에게 가서 청했습니다. 그러자 신밧드는 자기와 하룻밤을 동침하지 않으면 배를 태워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에비가일은 신밧드의 청을 거절하고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친구인 ‘이반’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하고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반은 그런 일에 끼어들 수 없다고 청을 거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비가일은 할 수 없이 신밧드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배 주인 신밧드는 에비가일과 함께 하룻밤을 잠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에비가일이 강을 건너게 해주었습니다. 

강을 건너간 에비가일은 그레고리를 만나 자신이 이 강을 건너기 위해 얼마나 참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야 했는지를 울면서 고백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레고리는 정조를 잃은 에비가일을 몹시 경멸하면서 그녀를 버렸습니다. 

에비가일은 자신이 버림받은 것이 너무나 분하고 서러워서 동네 건달, ‘슐탄’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건달 슐탄은 에비가일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그레고리를 찾아가서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둘러 죽지 않을 만큼 때려주었습니다. 에비가일은 그레고리가 슐탄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을 보고 속이 후련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다섯 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그레고리, 에비가일, 신밧드, 이반, 슐탄, ... 여러분, 이들 중에 누가 제일 나쁜 사람입니까? ... 사실 다 나쁜 놈들입니다. 

이 이야기를 해 주고 누가 가장 나쁜지 순위를 매기라고 하고, 그룹으로 토론을 시켰습니다. 그러면 장시간 침을 튀기며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토론을 합니다. 

그레고리는 율법주의자입니다. 간음은 죄이기에 무조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에비가일은 상황윤리주의자입니다. 율법도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밧드는 쾌락주의자입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반은 이기주의자요 개인주의자입니다.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는 무관심하겠다는 것입니다. 
슐탄은 비윤리주의자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 가치관게임을 25년 전, 청년들을 지도할 때와 15년 전, 청년들을 지도할 때, 두 번을 실시했는데, 그 10년 간의 약간의 변화는 에비가일이라는 여자의 사고방식에 대해 10년이 지난 시점에 더 관용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약 오늘날 청년들에게 이 게임을 다시 한다면 아마도 25년 전과는 더욱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라 여겨집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다양한 매체의 영향으로 점차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을 찾아 나서고, 젊은이들은 성적 순결을 경시여기고, 결혼한 부부들이 결혼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여 쉽게 이혼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마지막 시대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산상수훈의 말씀 중 한 말씀인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십계명 중의 제7계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7계명이 무엇입니까? ‘칠, (칠보단장한 여인과) 간음하지 말라’, (27절)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여러분, 십계명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십계명은 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사람을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법입니다. 십계명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칙이며, 기준이며, 원리입니다. 그 십계명 중, 제7계명이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간음이란 무엇입니까? 간음이란 부부 사이 외에 다른 이성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결혼 전의 성적 관계나 결혼 이후 남편이나 아내 이외의 다른 남성이나 여성과 성적 관계를 나누는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간음 

(28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간음의 범위를 더욱 넓히셨습니다. 단순한 몸만이 아니라 음욕을 품고 이성을 대하는 것도 간음이라고 규정하십니다. 비록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을지라도 마음속의 상상을 통해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까지 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에 대해 지적하시면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말씀에서도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드러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생각하기를, 여자를 보고 마음속에 더러운 음욕을 품든지 또는 남의 아내를 탐내든지 간에 겉으로 간음행위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계명을 범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은 하나님 앞에 죄가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거룩하게 성전에 나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쩌다가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실수하고 간음한 사람들을 보면 혹독하게 그들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허위와 위선을 무섭도록 정확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행위와 동기를 똑같이 보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죄에 대한 관점은 언제나 행위 자체보다 내면적인 것, 곧 그 동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더러운 생각과 나쁜 동기를 갖는 것이 죄의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생각을 실제적으로 적용한 사건이 요한복음 8장의 사건입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여자를 돌로 치려고 손에 손에 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물론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것은 분명한 죄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만나신 것을 보면, 그 여자는 말할 수 없는 후회와 수치 속에서 죽을 것만 같은 가난한 마음의 상태가 되어서 내면에 깊이 뉘우치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겸손해져서 회개하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할까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이 말은 예수님이 돌로 치려는 사람들의 양심을 향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말씀을 듣고 자기들의 내면의 죄를 보게 되었던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 여자 홀로 남았습니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주여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 예수님이 반면에 외적으로 하나도 죄를 짓지 않고 율법적으로 흠이 없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복음서에서 “화 있을 진저”라고 여러 번 반복하며 저주를 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비록 겉으로는 깨끗하나 속으로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고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살인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십니까? 습관적으로 예수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겉으로 나타난 종교적인 열심 때문에 나는 괜찮은 신앙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내면을 보고 계십니다. 


2.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29~30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매우 엄격하고, 엄중하며 단호한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지옥에 갈 죄라고 하시는 무시무시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단호하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이 계명을 범한 죄인들의 죄의 심각성을 깨우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간음은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고, 나 개인의 건강을 파괴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을 지옥으로 몰고 가는 죄라고 우리에게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현대인에게, 특별히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절실한 말씀은 없습니다. 도시 곳곳은 온통 간음하는 도시 같습니다. 

요즘은 TV, 영화, 신문, 잡지, 광고, 등의 매체를 보면 얼마나 음란풍조가 만연되어 있는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TV 드라마를 보십시오. 정상적인 가정보다 비정상적인 가정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인터넷을 통한 성적인 부패와 타락은 청소년들에게도 무방비로 노출이 되어 있어서 이제는 누구도 막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 나라가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이나 경제적인 타격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 성적 부패 때문에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나 유럽, 등 민주화된 선진국들을 보십시오. 민주화되고, 경제적인 부를 쌓은 나라들이 걷잡을 수 없는 마약과 AIDS, 도덕적 타락 앞에 그들의 국민정신을 다 잃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이러한 도덕적, 영적 타락을 막는 것임. 민주화를 이루고, 경제적인 부를 이루는 것보다, 이 나라의 학생들이 데모하거나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도덕적 순결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사고의 순결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지체를 희생해서라도 우리의 심령과 영혼의 순결은 보존되어야 할 값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깊은 곳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안목 앞에서 내 동기는 순결한가, 내 사고는 순수한가, 사고의 순결성, 우리의 내적인 속사람의 성결성, 신실함, 깨끗함, 이것을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강조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 묻습니다. 길을 가는데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이 오고 있습니다. 눈길이 갑니까? 안갑니까? 그것이 죄입니까? 아닙니까? 그런데 눈에 보인 그 여성에 대해서 계속 묵상하면... 

새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가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건강한 남자나 여자가 순간적으로 욕망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둥지를 틀게 되는 것은 우리를 마귀에게 내어주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성경적인 바른 태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육신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정욕을 위하여 우리의 육신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그대로 두면 한없이 버릇없게 되는 아주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육체를 잘 다스리고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빼고, 손을 자른 것처럼 행동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2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이 말씀은 결혼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신성한 법입니다. 결혼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사람이 함부로 나누어서는 한 되는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의 모습은 결혼의 신성함을 가볍게 여기고 쉽게 결혼하고 너무나 쉽게 이혼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이혼율은 50%에 이른다고 합니다. 두 쌍 중에 한 쌍은 이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상당히 높아져서 이혼은 이제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의 문제요, 우리 형제의 문제요 아니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매 단락마다 말씀하시고, 오늘 본문에서는 두 번이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창천교회에서 사역하던 시절. - 창천교회는 우리 교회처럼 1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는 오랜 동안 신앙을 지키며 살아온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대문 밖(신촌)은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거기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세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복음이 왕성한 것 같은 교회 바깥은 음란과 쾌락이 만연된 세상이 있습니다. 

이렇게 음란이 판치는 세상 한 가운데 교회가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음란한 문화와 가치관이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세상 한 가운데 교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돔 고모라에 대한 우화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고 멸망하기 전, 어떤 노인이 성에 서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외쳤답니다. “이 성은 망합니다. 여러분 회개하세요. 이렇게 음란하면 안 됩니다. 회개하세요.”, 그런데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노인에게 물었답니다. “할아버지! 아무도 듣지도 않는데 날마다 혼자서 소리를 지르면서 고생을 하십니까?”, 그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이 소돔 고모라 사람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날마다 와서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사람들처럼 되어 버릴까 두려워서 나는 날마다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세상에서 복음을 외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보다 거룩하게 오직 한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렇게 강력한 윤리의식, 주님의 명령이 우리를 지배하지 않으면 세상 도처에 놓여져 있는 선악과는 우리 입 안에 들어와 있게 될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마음으로 음욕만 품어도 이미 간음하였다” 이렇게 강력한 주님의 명령을 따라 오늘도 거룩하고 성결하게 주님만 섬기며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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