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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가 사는 법 (창 3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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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는 법 (창 39:20-23)
   
요즘 저는 mbc tv에서 매주 토요일과 주일 저녁에 방영하는 드라마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뭐 그런 제목이 있나.. 제목이 좀 특이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산부인과에서 실수로 아이가 바뀐 것이지요. 부모가 뒤바뀐 채로 20여년을 살다가 뒤늦게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양쪽 집이 수준이 비슷하다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마치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한 쪽은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부자동네인 평창동에서 아주 안락하게 살고 있고, 한 쪽 집은 가난한 동네인 신림동에서 고시생들을 상대로 작은 식당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도박과 술에 빠져 있고, 어머니는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고, 형제들은 전혀 철이 없어 보입니다. 늘 바람 잘 날 없는 콩가루 집안입니다. 
   
제가 좀 단순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신림동에 살다가 평창동으로 가면 누구든지 다 천사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평창동에서 살 때는 천사처럼 살았을지는 몰라도 신림동으로 가면... 이제껏 그가 누리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빼앗기데 된다면... 부유함이나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나, 부모로부터 받던 사랑이나... 이런 것들을 다 빼앗기고 만다면... 비로소 그의 내면에 감추어졌던 본성이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까요? 

그런데도 천사같은 성품을 잃지 않고 있다면... 오히려 그가 가진 아름답고 고운 성품이 그 순간에 더욱 밝고 환하게 빛이 난다면... 그래서 모든 것이 낯설고, 누추하고, 생소하기만한 곳이지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함께하려 하고,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해 주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설혹 이제껏 자기를 사랑하던 주변의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 들여 주지 않아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거나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길을 걸어가려 한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좀 다른 눈으로 바라 볼 수밖에는 없습니다.   
   
드라마에선 한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한 젊은 여성이 가진 캐릭터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녀가 가진 개성과 아름다운 성품은... 그녀와는 반대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만족하거나 감사하기 보다는... 자기가 누리게 된 이 소중한 삶의 기회를 좀 아름다운 일을 위하여 사용하려 하기 보다는... 질투와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정원이가 누리고 있는 아주 작은 것까지라도 다 빼앗으려 하다가... 스스로 황폐하게 되고, 스스로 가난해 지고,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황금란에 비하면 정말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물론 드라마처럼 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기는 하겠지만, 우리도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인지... 비록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환경이 좋지 않게 변하기도 하고, 나를 향한 사람들의 따스한 시선이 차갑게 변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던 꿈이나 모든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결코 그것에 영향 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것! 마음속에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잃지 않아서 여전히 받기 보다는 베풀어 주려 하고, 항상 여유를 잃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주며, 그러한 와중에도 꿈을 잃지 않고 그것을 위하여 발돋움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의기소침해 지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지, 어떤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삶을 즐기며... 함께 나누며... 밝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멋진 삶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는 우리의 삶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에 대하여 함께 읽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그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짜임새가 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바로 요셉의 일대기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삶의 요소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한 소년이 어렸을 적에 가졌던 꿈과 비전이 어떻게 성취되는가... 요셉의 이야기는 꿈과 그것의 성취에 대한 이이갸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떻게 어머니를 다르게 해서 태어나서 서로 다투고 미워하던 형제들이 갈등을 넘어서서 마침내 화해를 이루게 되는가? 요셉의 이야기는 형제들 사이에 있었던 화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렸지만, 그 아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 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요셉이 보여주는 철이 없어 보이는 자신감과 여기에 대비되는 형들의 편협함과 무모함...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야곱이 보여주는 지나친 목적만을 지향하는 사고방식... 이런 어둡고 부정적인 삶의 요소들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형제가 다른 형제를 고자질하고... 죽이려 하고... 마침내는 동생을 팔아 치우고서는 죽은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이런 악순환이 거듭됩니다. 그런데 결국은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한 소년이 꾸었던 막연해 보이기만 하던 꿈은 이루어집니다. 또한 해결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형제들 사이에 갈등은 화해로 이어지게 되며,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픔을 평생 간직하고 살던 한 노인에게 그 아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믿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바로 요셉이 있는 것이지요. 

특별히 오늘의 이야기는 요셉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기에 그가 아니면 남길 수 없는 독특한 삶의 흔적을 우리들에게 남긴 것인가... 하는 것을 잘 말해 주는 대목입니다. 지금 요셉은 이제껏 살아왔던 가운데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을 만났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간신히 목숨만 건진 순간도 있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서 이집트로 가게 되었고, 그는 보디발이라고 하는 이집트의 파라오를 경호하는 사람의 집으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노예로 살게 되었습니다. 아주 비참한 몰락인 것이지요. 가나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던 요셉인데... 이렇게 남의 집에서 종살이나 하고 있다니...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곧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일을 다 맡아서 주관하는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노예이기는 했지만, 그로서는 이제 좀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바로 그 순간에 그에게 또 다시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젊고 준수한 그를 유혹하려 하던 보디발의 아내가 뜻대로 되지를 않자, 이번에는 그가 자기를 향해서 못된 짓을 했다고 모함하였습니다. 요셉으로서는 도무지 변명도 할 수 없고... 큰 위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일은 요셉을 감옥에 가두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요셉으로서는 가장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만 것이지요.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는 간신히 올라가려 하는데, 이번에는 그는 도저히 자기의 힘으로는 빠져 나올 수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누가 과연 파렴치한 짓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는 요셉을 생각하겠습니까? 이집트에는 그를 사랑했던 아버지나 형제들처럼 그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요셉은 이제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냥 그렇게 감옥에서 잊혀진 사람이 되어서 평생을 보낼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감옥은 요셉에게 이집트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을 맡게 하여 주는... 후에 이집트의 파라오는 요셉을 이집트의 국무총리로 세우면서 ‘내가 너보다 높다는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뿐이다.’(창41:40) 이렇게 그를 극찬하게 되는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만일 그 때 요셉이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날을 맞이할 수가 있었을까... 요셉에게 있어서 감옥은 결국 그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전환점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것인가요? 세상에 요셉처럼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는 사람들... 설혹 감옥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속상하고 가슴 아픈 일을 겪는 사람이 어디 요셉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하지만, 죄수로 살다가 일약 한 나라의 국무총리가 된 사람은 요셉 말고는 찾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감옥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그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가 세상을 사는 법은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을 하려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요셉에게는 이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에 요셉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요? 노예로 있을 때에 그가 입고 있던 옷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요셉하면 먼저 그가 어린 시절에 입었던 옷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옷은 독특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이 입고 있는 옷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어디서도 구별되는... 그런 옷을 입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특별히 사랑해서 아주 화려한 옷을 그에게 입혀 주었습니다.(창37:3) 

개역성경에서는 그것을 ‘채색옷’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옷은 아주 특별한 애정을 담고 있는 옷입니다. 작가 토마스 만은 그 옷은 세상을 떠난 요셉의 어머니...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여인 라헬이 생전에 입었던 옷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요셉의 그 옷을 지켜본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배를 아프게 하는 일이었지만, 요셉은 그 옷을 입었기 때문에 ‘나는 남다른 사람이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항상 그런 생각을 자기에 대하여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어렸을 적에 꾸었던 그 황당한 꿈... 그 꿈도 결국은 그가 입고 있던 아주 특별한 옷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옷은 마침내 그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던 형들에 의해서 참혹하게 벗겨지게 되지요.(창37:23) 형들에게는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요셉이 단신으로 찾아왔다는 사실이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 화려한 옷이 그에게서 벗겨지게 되었을 때... 그리고 목동들이 입는 땀내 나고 투박한 옷으로 갈아입게 되었을 때... 그 때부터 요셉에게는 고생문이 환하게 열린 시기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요셉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사람의 노예였고... 한 사람의 죄수에 불과한...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그저 평범한 노예가 아니라는 것... 처음에는 그냥 노예인줄 알았는데... 가나안에서 왔으니... 이집트 말도 못하고 풍습도 잘 모르는... 우리로 치자면 아주 어설픈 외국인 노동자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놓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서 있는 자리는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그가 하는 일은 항상 남다릅니다. 그는 곧 주인의 눈에 띠게 되고 마침내는 주인이 그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게 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노예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버지가 입혀 주신 채색옷을 벗지 않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아주 특별하다... 나는 남다른 사람이다...’ 그런 자부심이 그에게는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형편이 더 나빠졌습니다. 그나마 입고 있던 노예복도 못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주어진 옷은 죄수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는 또 다시 여러 죄수들 중의 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러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여러 죄수들 중에서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오늘 이야기에서처럼... 그는 아주 특별하고 유일한 죄수가 되었습니다. 죄수이면서도 죄수가 아닌... 그런 자리에 요셉은 서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틀림없이 죄수가 입는 옷을 입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내면에는 아주 특별한 옷을 그는 입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야... 나에게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멋이 있어... 나만의 자랑스럽고 독특한 색깔이 있어...’ 요셉은 항상 내면에 이런 자부심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나... 우리가 가진 돈이나... 내가 서 있는 자리나... 내가 사는 집이나... 내가 가진 직업이다... 이런 것들만이 나를 말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것에 영향을 받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혀 주신 아주 특별한 옷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화려하고 우리를 빛나게 하여 주는 옷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담긴 옷을 입혀 주시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너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다...’ 이러한 자기에 대한 하나님께로부터 와지는 자부심... 바로 그것이 요셉을 지탱해 주는 사람의 비결이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에게도 자기에 대하여 이런 확신과 자부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곳이 마지막은 아니다... 요셉에게는 이런 확신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물론 요셉이 젊어서 그런 생각과 기대감을 가졌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기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 이것이 요셉이 가진 엄청난 장점이자 매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셉은 감옥에 있으면서 당연히 억울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는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만난... 파라오에게 술잔을 올리는 일을 하다가 감옥에 오게 된 비서에게 그런 자기의 심정을 드러냅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 사는 땅에서 강제로 끌려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내가 이런 구덩이 감옥에 들어올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창40:15) 

이렇게 자기의 불편하고 억울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후에도 그는 2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구덩이 같은 감옥 속에서... 모두에게 잊혀진 사람처럼 되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만일 그에게 이곳이 나의 마지막이다... 그러 마음이 있었더라면... 어떻게 그 답답한 시간을 견디어 낼 수가 있었을까요? 
   
요셉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소설로 만들었던 독일의 작가 토마스 만... 그가 요셉에게서 읽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라는 소설을 보면 그런 대목이 있습니다. 요셉이 이스마엘의 상인들에게 팔려서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게 되었을 때... 지혜롭고 민첩하기 이를 데 없는 요셉이기에 도망칠 마음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도망을 할 수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럴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요셉은 일부러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물로 아버지나 사랑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나 희망이 더 강열하였습니다. ‘이 길의 끝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요셉을 움직이게 한 것은 이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이었다고 토마스 만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저도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강렬한 호기심! 비록 오늘은 이렇게 캄캄함 구덩이에 던져져 있지만... 내일이면 나에게 새로운 빛이 비추어 오게 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하는 기대감... 그것이 바로 비록 깊은 구덩이 속에 던져 졌지만, 요셉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 것이지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마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세대학을 세운 언더우드 가문의 4세대에 해당하는 원한광 박사가 30여년을 봉직하던 학교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하지요. 한국 사람들은 너무 부정적이고 내일을 어둡게 본다는 것입니다. 그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에 사람들에게서 잘 된다... 희망적이다... 그런 말을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 된다... 틀렸다... 그런 말만 많이 하더라는 것이지요. 아마 그가 들었던 대로 되었다면 한국은 벌써 망했어야 하는데... 멀쩡하다는 것이지요.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요즘은 한류 바람을 세계 곳곳에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비록 오늘 내가 답답하고 힘든 현실에 직면해 있다고 하더라도... 내일 나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래를 긍정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며 내일을 준비하는 것... 우리를 항상 건강하고 밝게 하여 줍니다. 

요셉 가진 미래에 대한 기대감은 막연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신비한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가운데서 거듭해서 나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 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v.21) 이렇게 표현하였고,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요셉을 돌보셔서...’(v.23) 이렇게도 표현하고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미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창39:2) 이렇게 그 때의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신비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나... 이곳 구덩이와 같은 깊은 감옥 속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이미 요셉은 그를 알고 있는 가족들로부터 멀리 벗어나서 이집트에 머물고 있습니다. 요셉의 가족들 중에서 그가 이렇게 감옥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를 가장 아끼는 아버지조차도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요셉이 이집트에 머물러 있으니까... 거기까지 찾아 오셨고, 그가 감옥에 머물러 있으니까 거기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요셉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섭리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 함께 하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모든 일들이 다 우연히 일어나게 되고 제멋대로 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만히 삶을 돌아보면... 그것은 마치 하나하나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차근차근 하나하나 풀어가다가 보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게 되고 내가 볼 수 없었던 커다란 그림이 그려지게 됩니다. 그 그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요셉도 처음에는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냥 형들이 자기를 미워해서... 자기에게 그러한 불행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록 꿈도 자기가 형들에게 미움을 사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꿈을 통해서 자기로 하여금 수많은 생명들을 기근에서 살리려 하시는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요셉은 후에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형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고백합니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창45:5) 참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것은 형들이 했던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요셉은 그 일을 통해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섭리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시며,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가지고 계신 독특한 목적과 꿈이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이러한 믿음과 확신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이란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문제를 간신히 해결하고 나면, 더 힘든 문제가 닥쳐옵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다가 지쳐버리고...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가 가는 것이 나의 인생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 지금도 우리를 선하고 분명한 목적을 향하여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의 삶 속에 임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마지막 순간에 이런 멋진 말을 하였습니다.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바꾸셔서, 오늘과 같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창50:20)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삶도 하나님의 섭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믿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이고... 나를 위하여 멋진 그림도 그려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은 지금도 내 곁에서 나를 붙잡아 주시며,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악한 현실과 어려움을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혹시 나에게 억울하고, 고통스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것조차 선하게 바꾸셔서 좋은 길이 열리게 되고, 좋은 열매가 맺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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