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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유산 쌓기 (수 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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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유산 쌓기 (수 22:10-12)
     

미국의 뉴욕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틸만이라는 목사님과 윌리암스라는 목사님 두 분이 함께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아놓고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부흥회 둘째날에 윌리암스 목사는 성경에 관한 설교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설교 한 다음에 성경을 주제로 함께 찬양을 하고 싶어서 찬양을 고르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고르다 보는데, 마땅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윌리암스 목사는 옆에 있는 틸만 목사에게 혹시 성경에 관해서 함께 부를 만한 적당한 찬양을 아는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틸만 목사도 한참을 찬양을 고르다가, “목사님, 아무래도 적당한 것을 찾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우리가 한 곡을 만들지요. 목사님이 한 번 작사를 해 보시지요. 제가 곡을 붙여 보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윌리엄스 목사는 어떻게 가사를 쓸까 하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 성경책은 윌리암스 목사의 어머니가 유품으로 남겨 주신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유품이던 그 성경책을 한참 들여다 보다가 문득 윌리엄스 목사에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윌리엄스 목사는 곧장 종이를 펼쳐 놓고 찬송의 제목을 “어머니의 성경책”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기를 무릎에 앉혀 놓고 성경 이야기를 들려 주시던 것을 떠올리면서 그 자리에서 곧장 가사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가사를 적어 가는 동안 윌리엄스 목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등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틸만 목사의 눈물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 가사를 적어 내려가는데 불과 15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틸만 목사는 곧장 그 가사에 곡을 붙였고, 그 찬송을 부흥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면서, 여전히 큰 감동을 안겨주고 있는 은혜로운 찬송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 찬송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네, 우리 찬송가 199장에 있는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는 찬송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 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라고 시작하는 이 찬양은 어렸을 때, 어머니께로부터 듣던 성경 이야기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함께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참 은혜로운 찬양입니다.

저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어머니의 성경책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6~7살 쯤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어디를 나갔다가 성경책을 사서 함께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지금 기억하고 있는 그 성경책은 요즘 나오는 성경책처럼 금테두리를 두른 그런 화려한 책이 아니라 빨간색 테두리의 성경책이었습니다. 또 성경책을 펼쳐보면 옛날 책들처럼 세로로 써져 있는 책이었습니다. 장과 절도 다 한자로 적혀 있어서 아직 어렸던 저는 성경을 찾으려고 해도 어디가 어딘지 찾지 못했을 정도로 참 복잡해 보이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왜 그렇게 두껍고 무거웠던지, 참 성경책이라는 것은 이렇게 이상한 책이구나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던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 성경책에 꽤 오랫동안 저희 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조금 크고 나서 다시 보니깐 어머니께서 오래도록 두고 보면서 읽었던 그 책이 참 귀하더군요. 이미 많이 낡았고, 지퍼는 제대로 채워지지도 않고, 페이지는 찢어져 나간 것도 있고, 닳아버린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머니께서 보시던 책인데, 이 책은 내가 잘 간직해야 되겠다, 우리 집 가보로 남겨야 되겠다, 그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깐 그 성경책이 없어진 겁니다. 그래서 이게 어디 갔느냐고 어머니께 여쭤보니깐 너무 낡고 무거워서 새 성경책을 사면서 없애버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어머니께서 보시기에 많이 불편하셨겠다 라는 생각도 들어서 잘 하셨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지금 저희 어머니는 인쇄도 잘 되어있고, 튼튼하고, 금테두리도 두르고 있는 요즘에 나온 성경책을 보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어머니와 함께 나가서 처음 사봤던 그 성경책, 낡고, 오래되었고, 투박했지만,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보시던 그 성경책이 제게는 여전히 어머니의 성경책으로 소중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 것은 나 혼자만의 노력의 결과가 결코 아닙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 주시고 구원하여주신 부르심의 은혜가 있었던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나보다도 먼저 복음의 말씀을 들어서 나에게 그 신앙의 유산을 물러 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 가운데 누군가를 통해서 지금 이 신앙을 물려 받았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친구나 아는 지인들을 통해서 이 신앙을 물려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았다면,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우리의 신앙을 물려주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특별히 가족 안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또 그 자녀가 다시 아이를 낳아서 다시 자기의 자녀에게 신앙을 대물려주는 것만큼이나 아름다운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풍이나 가업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우리 가문이 대대로 예수를 믿는 집안이다 라고 하는 것만큼 가정 안에서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예배 드리는 모든 분들의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믿음 가운데 세워지는 가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이 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은혜를 누리는 신앙의 명문 가정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수22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몇몇 지파들이 요단강변에다가 커다란 제단을 만들어 놓은 이야기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가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후세에 신앙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벌였던 너무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본문을 보면 요단 강가에다가 커다란 제단을 쌓아 올린 지파들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라고 합니다. 두 지파 반이 요단 강 가에다 커다란 제단을 쌓아 올렸는데, 왜 다른 지파들은 가만히 있었는데, 이 두 지파 반 만이 제단을 쌓았던 것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먼저 좀 알아야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나와서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랑했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결과로 불과 2~3달이면 갈 수 있었던 가나안 땅을 한 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을 광야에서 방랑하다가, 이제 그 40년이 거의 다 차가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차 조금씩 가나안 땅으로 향해 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방랑할 때는 그 땅이 워낙 메마른 땅이라서 그 광야에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그런데 가나안 땅에 가까이 갈수록 점점 그들의 발걸음을 막아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족속의 땅을 지나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왕 시혼에게 사신을 보내서 우리가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당신들의 땅으로만 통과하겠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아모리 왕 시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영토로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모리왕 시혼과 싸워서 그를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바산 왕 옥과도 전쟁을 벌였는데, 바산왕 옥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우려 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산 왕 옥도 물리치고, 그 땅을 또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모압 자손과도 전쟁을 벌이고, 미디안 족속과도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씩 요단 동쪽 편에서부터 땅을 점령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진격해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야 자기들이 거주할 땅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기 이전에,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에 그곳에 살고 있던 다른 족속들과 전쟁을 벌였고, 그들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자기들이 그 땅을 차지했으면서도, 거기에 터잡고 살 생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땅은 요단 강을 건너간 곳, 요단 서쪽에 있는 가나안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점령했으면서도 그 땅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가지지 않고 그저 가나안 땅만 바라보면서 계속 서쪽으로 진격해갔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점령했던 요단 동쪽의 땅을 굉장히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던 지파들이 있었습니다. 그 지파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르우벤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입니다. 이들은 다른 지파들보다도 유난히 많은 가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지금까지 점령했던 땅들을 보니깐 그 땅들이 가축들을 놓고 기르기에는 딱 좋은 땅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를 찾아가서 자기들에게 요단 동편에서 점령했던 땅들을 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그 모습이 민32장에 나오는데, 이 두 지파 반은 모세에게 가서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라고 부탁했습니다. 즉 지금까지 요단 동쪽 편에서 차지한 땅을 우리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가서 요단 서쪽에서는 땅을 차지하지 않을 테니깐 지금 여기에 있는 땅을 우리에게 달라가는 것입니다. 

이 부탁을 받은 모세는 굉장히 곤란해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은 요단강을 건너서 있는 가나안 땅인데, 두 지파가 요단 강을 건너가지 않겠다니깐 모세는 처음에 이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르우벤과 갓 지파가 말하기를, 우리가 요단강을 아예 건너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준비를 다 갖춰 놓으면, 그 다음에는 다른 어떤 지파보다도 먼저 앞장서서 손에 무기를 들고 무장하고, 요단강을 건너가겠노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가장 열심히 전쟁을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너머에 있는 땅을 다 차지하게 되면, 그 이후에야 우리가 다시 이 땅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라고 약속합니다. 

이처럼 르우벤과 갓 지파가 모세에게 간청하자, 결국 모세도 이 지파들이 가나안 정복전쟁에 참여하고, 그 전쟁이 다 끝난 이후에야 요단강 동편 땅으로 돌아온다는 조건을 걸고 두 지파의 부탁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르우벤과 갓 지파와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절반의 사람들이 함께 요단 강 동편 땅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래서 르우벤과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들이 요단 강을 건너가지 않고, 요단강 동쪽 편에 자신들의 땅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두 지파 반은 자신들이 약속했던 것들을 철저하게 이행하게 됩니다. 모세가 죽고 난 다음,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도, 이 두 지파 반은 가장 앞장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성을 시작으로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 안에서 정복전쟁을 펼쳐갈 때에도,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전장을 누비면서 수많은 전공을 세우게 됩니다. 

마침내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고,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난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 지파별로 제비를 뽑아서 그들이 정복한 가나안 땅을 나눠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12지파들은 모두 다 가나안 땅 안에서 자기 지파들이 터잡고 살아갈 땅을 모두 분배받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모두 다 마무리 되자, 드디어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다시 요단강을 건너서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갈 때가 온 것입니다. 수22:4절을 보면 여호수아는 이제 두 지파 반을 그들의 땅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이 지파들을 돌려보내면서 여호수아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들에게 권면의 말을 덧붙입니다. 5절에서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여호수아는 이제 이들이 요단 강을 건너서 저 동쪽 땅으로 떠나가게 되면,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하고는 떨어져 살게 되니깐 혹시라도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이 우상 앞으로 떠나가 버릴까봐 염려가 됐던 것이지요. 그래서 마지막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두 지파 반은 가나안 정복전쟁을 모두 마치고 영예롭게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모든 이스라엘 지파들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고, 또 많은 선물을 받으면서 커다란 축하 속에서 아주 기쁘게 그들은 자기들의 땅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바로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지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요단 강 가에 커다란 제단을 쌓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 제단은 당장 보기에도 엄청나게 큰 제단이었습니다. 아주 멀리서도 잘 보일 정도로 커다란 제단을 만들어 놓고 간 것이지요.

신12장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에 지켜야 할 규례를 한 가지 말씀합니다. 그것은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 곳에서나 제사를 지내지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한 곳에서만 제사를 지내라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막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에서만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것이지, 아무 곳에서나 자기 마음대로 번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사장과 하나님께서 택하신 제단이 놓여 있는 단 한 곳에서만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하나님의 성막에 세워져 있던 곳은 실로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단 동쪽 편으로 돌아간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들이 요단강가에다 커다란 제단을 쌓아 둔 모습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너무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곳에서나 제사를 지내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저기에다 저렇게 큰 제단을 쌓아 놓다니, 저 사람들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들 마음대로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가 보구나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려고 하는 저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따끔하게 혼을 내주어야 하겠다 하면서 군대를 불려 일으켜서 그들에게 쳐들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작정 쳐들어가기 이전에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제단을 쌓아 놓은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아론의 손자인 비느하스를 보내서 그 이유를 파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비느하스가 요단 동쪽 지파들에게 가서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커다란 제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냐고 물어보게 됩니다. 

비느하스는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했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던 여러 일들을 열거하면서 만약 너희들이 하나님을 떠나가려고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만일 요단 동쪽 편이 너희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면 차라리 이쪽으로 건너와서 우리랑 같이 살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요단 동편 지파들은 굉장히 억울해합니다. 자기들은 결코 하나님을 거역하려고 이런 제단을 쌓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수22:26-2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6 -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7 -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요단 동쪽 지파들은 자신들이 이 제단을 쌓은 이유에 대해서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해서 이 제단을 쌓은 것도 아니고, 성소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 말고 이 제단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제단을 쌓은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제단을 쌓은 이유는 27절에서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혹시라도 너희의 후손들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라고 그들은 대답합니다. 이 말은, 오랜 세월이 흘러서 요단강 동쪽 편의 지파들과 서쪽 편의 지파들이 서로 왕래가 뜸해져서 각각 다른 민족들처럼 살아가게 되는 그런 때가 오더라도, 그 때라도 요단 동쪽에 있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 후에 혹시라도 요단 서쪽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동쪽 땅의 사람들을 보고,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도 아니다 라고 말하는 일이 혹시라도 있을까봐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 제단을 쌓아서 우리의 후손들도 이스라엘의 한 일원이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하는 일이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지요.

요단 동편 지파들은 자신들이 제단을 쌓은 것은 지금 우리들을 위해서 쌓은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쌓았노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이 제단을 쌓았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살게 하기 위해 주변의 위협과 오해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이 제단을 쌓아 올린 요단 동편 지파들의 믿음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지가 않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 나 혼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내 뒤를 이어 태어나는 우리의 모든 후손들이 그와 동일한 은혜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믿음의 유산을 남겼던 것입니다. 

렘35장의 말씀을 보면 레갑 자손이라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레갑 자손은 레갑이라는 사람을 조상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한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너는 레갑 자손에게로 가서 그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해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레갑 자손에게 가서 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서 그들에게 주면서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레갑 자손들은 한사코 포도주 마시가를 거절했습니다. 왜 그런 것이냐고 물어보니깐 이 레갑 자손이 하는 말이, 우리의 선조 중 요나답이라는 사람이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라”라고 유언을 남겼다라는 것입니다. 선조가 남긴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 자손 대대로 결코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살아오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레갑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라는 명령을 내렸던 요나답이라는 사람은 왕하 10장에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왕하 10장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가가 바알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자, 하나님은 아합 왕가를 무너뜨리고 예후라는 사람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셨고, 곧장 예후는 아합 왕가에 반역을 일으켜서 아합 왕가를 무너뜨렸고, 북이스라엘 안에서 바알 숭배를 모조리 뿌리 뽑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예후를 도와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을 진멸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던 사람이 바로 요나답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요나답은 예후를 도와서 예후의 반역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을 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예후가 왕이 된 이후에, 뭔가 높은 자리 하나 정도는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는 예후가 왕이 된 이후에는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숨어 살면서 자기 후손들에게 포도주를 입에 대지도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요나답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이 바알 숭배에 온통 빠져 있었을 때에도, 그 광기에 휩쓸리지 않고 재야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오던 믿음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이 온통 바알 숭배에 빠져버려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이제 나 혼자 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한탄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 두었다라고 말씀하셨었는데, 어쩌면 이 요나답이라는 사람은 그 7,000명 중의 한 명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요나답은 권력이나 재물에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고, 그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만 매진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후손들에게 세속적인 권력이나 물질적인 욕심에 물들지 않도록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 요나답의 후손인 레갑 자손들은 그 후로 거의 200여년 동안 요나답이 내렸던 명령을 꼼꼼하게 지키면서, 조상의 유언을 이어나갔던 것입니다. 
요나답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결하고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지만 그는 홀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신앙의 유산은 그의 후손들에게로 이어져서 그의 후손들이 조상의 믿음의 본을 따라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한 사람이 남긴 신앙의 유산으로 말미암아서 그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게 만듭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이처럼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남겼던 대표적인 가정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첫 번째 선교사로 들어왔던 언더우드 선교사의 가정이 바로 그런 가정입니다.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는 정식으로 파송받은 선교사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후로 3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 머물면서 기독교 선교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교육, 문화, 심지어는 정치적인 부분에 있어서까지 지울 수 없는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1916년에 발진티푸스에 걸려서 요양차 미국으로 떠나갔다가 결국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5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언더우드 가문이 우리나라와 맺은 인연이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후로 4대에 걸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후손들은 계속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됩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아들인 원한경 박사는 특히 우리나라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북선의 설계도를 직접 그리기도 하고, 또 백두산의 천지의 깊이를 최초로 측정하기도 했습니다. 일제시대 때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도 바로 원한경 박사였습니다. 그러다가 일제의 미움을 사서 미국으로 추방되게 됐는데, 나중에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후에 민간고문단의 자격으로 다시 우리나라에 입국해서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됩니다. 

언더우드 가문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은 바로 6.25전쟁 때였습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전쟁을 피해서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갔습니다. 하지만 언더우드 가문의 후손들은 군대에 자원입대해서 이 나라를 위해 싸우게 됩니다. 원한경 박사의 아들들, 그러니깐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들은 모두 군대에 입대해서 각각 군목이나 통역요원으로 근무하면서 6.25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전쟁이 마친 후에도 원한경 박사의 아들들은 연세대학교 교수나 선교사로 이 땅에서 활동하면서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 사랑을 계속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지난 2004년 언더우드 선교사의 증손자이자 언더우드 가문의 4대손인 원한광 선교사가 “한국에서 우리 언더우드 가족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라고 하면서 미국으로 영구 이주했습니다. 그러면서 무려 119년 동안이나 이어져 왔던 언더우드 가문의 한국 사랑이 드디어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게 된 것입니다.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는 이 나라에 처음 들어와서 이 땅 위에 수많은 신앙의 유산을 남겨 놓았습니다. 지금도 이 나라 안에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웠던 수많은 교회와 학교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에게도 그 신앙의 유산이 흘러내려가서 4대, 119년에 걸쳐서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봉사하면서 귀한 삶의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너무도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은 바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처음 쌓았던 신앙의 유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자신들의 후손을 위해서 커다른 제단을 만들었던 요단 동편 지파들의 모습이나, 자기 후손들을 위해 신앙의 유언을 남겼던 레갑 자손의 요나답의 모습이나, 또 언더우드 선교사의 모습은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깨우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도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서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쌓아가야만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재물입니까? 명예입니까? 그런 것도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겨 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뿌리를 남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견고하게 세워진 믿음의 조상이 되어서,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우리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하는 신앙의 귀한 유산들이 오늘 우리가 이 땅에 남길 수 있는 가장 귀한 유산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예배하는 모든 분들이 요단 동편 지파들이 품었던 것과 같은 마음을 품기를 원합니다. 후손들에 다른 무엇을 남기기 이전에, 너희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신앙 유산을 남길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가정들이 레갑 자손과 같은 가정이 되길 원하고, 또 언더우드 선교사와 같은 가정들이 되길 원합니다. 바로 우리로부터 시작해서 흘러가는 신앙의 유산을 통해서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고, 또 그 자녀의 자녀들이 그 신앙을 본받고 배워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세워지는 귀하고 복된 가정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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