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 인생을 바꾼 그 한 번의 만남 (눅 7:11-17)

첨부 1


내 인생을 바꾼 그 한 번의 만남 (눅 7:11-17)


태초에 하나님이 이 땅에 만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태초에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 만남의 관계가 인류의 탄생을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만남에서 역사는 시작됩니다.  결국 역사란 만남과 헤어짐의 자취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만남입니다.  너와 내가 만나서 이루는 것, 그것이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만남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만남이 삶의 흥망성쇠를 좌우합니다.  아내는 좋은 남편을 만나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남편도 어진 아내를 만나야 인생의 꿈을 펼 수가 있습니다.  자식은 좋은 부모를 만나야 내가 갖고 있던 삶의 숨겨진 재능을 펴 볼 수가 있습니다.  부모도 좋은 자식을 만나야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가 있습니다.  국민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야 되고, 학생은 좋은 스승을 만나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세상에서 만남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축복도 만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은 나를 살리시고자 독생자를 버리신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아름답게도 합니다.  작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면 큰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을 용기 있게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삶에 두려움과 염려로 가득한 분들은 오늘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 보십시오.  하나님을 만나면 두려움과 염려는 아침의 안개처럼 사라지고 성령이 주시는 평안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남이 끝나는 상태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단절된 상태를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가 비록 살아 있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이 단절되어 있다면 그는 죽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끊어진 만남을 다시 연결하는 행위가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온 천하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이름으로도 참되고 진정한 만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만남의 길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인류 최초의 복된 소식, 죽은 자를 살리는 사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사건, 이것이 예수님의 사건이고 부활의 사건입니다.  죽음과 생명이 만나는 사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만남의 사건, 이것이 예수님의 사건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나도 모르게 하나님과의 만남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내 곤고한 영혼에 하나님의 영이 찾아오셔서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겨가는 만남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만남을 체험하고 성령의 뜨거운 만남을 체험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유레카!"   말은 "만났다, 찾았다"는 뜻입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 속에서 주님을 만나십시오.  곤고한 내 영혼을 찾아오셔서 나를 만져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도 이렇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레카!"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과 그 만남이 끝나야 하는 괴로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거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본적이 있습니까?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괴로움 중에 제일 아픈 괴로움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늘 함께 있고 싶어하는 감정입니다.  사랑의 방정식을 아주 복잡하게 쓰지 마십시오.  사랑의 방정식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함께 있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에 나인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나인'이라는 말은 유대인의 언어로 '즐겁다'는 뜻입니다.  동네가 즐거워야 합니다.  모름지기 사람이 사는 동네는 기뻐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집안은 기뻐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하나님의 교회는 즐거워야 합니다.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교회, 그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성도들이 행복해 하는 교회, 그 교회가 바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매 시간마다 때마다 즐거움이 가득한 교회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교회를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 재미있는 교회로 만들어주십시오.  그 일을 누가 해야 합니까?  내가 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라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도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교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나인이라는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아름다운 한 여인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들 두 모자는 아주 기쁘고 행복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소문이 났습니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와서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늘 그 집에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내막을 알고 보면 그 집은 그렇게 기쁨이 있을 만한 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도 없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본적도 없으니 당연히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 본적도 없습니다.  그 아이는 그렇게 슬프게 자랐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가 유복자인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태어나서도 아버지란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얻었을 때 그 아들에게 생명을 걸었습니다.  아들이 내 생명이고, 아들이 내 희망이었습니다.  아들이 내 의미이고, 아들이 내 가치였습니다.  이 아들이 나의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했습니다.  사랑을 다 쏟았습니다.

팔래스틴의 모래로 뒤덮인 농토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작열하는 태양 빛에 온 몸이 다 그슬렸습니다.  얼굴에 때구정물이 흘러내리고 온 몸이 찌들고 피곤에 지쳐도 어머니는 언제나 기쁩니다.  넉넉히 이깁니다.  왭니까?  어머니에게는 저녁 때 아들을 만난다는 그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저녁 때 내 아들을 안을 수 있다는 그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갔을 때, "어머니 조금만 참으세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 때까지 조금만 참으세요.  어머니, 힘드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내가 크면 어머니를 잘 모실게요."  아들의 그 말 한 마디에 하루의 모든 고통도 힘드는 것도 다 잊어버립니다.  이 어머니는 그 만남을 붙들고 어려움을 이겨나갑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런 아들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한마디 말도 못 남기고 덧없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믿겨지지 않는 사실, 이 분노, 이 반항….  처음에는 "아니다.  이것은 거짓이다."라고 현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사람들에게는 다섯 가지의 단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분노합니다.  "왜 내 집에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왜 하필이면 내 아들이냐?  왜 하필이면 내 기업이냐?  왜 하필이면 내 몸이냐?"  대체로 암에 걸렸거나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그렇습니다.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분노합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 항거합니다.  처음에는 막 날뜁니다.  옷도 싫고, 밥도 싫습니다.  금은보화도 다 싫습니다.  내 아들과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내 아들과 이야기하고 싶을 뿐입니다.  무슨 정성인들 안 쏟겠습니까?  아마 자기 숨을 불어넣으면 살 수 있을까?  숨도 불어넣어 볼 것입니다.

이 기가 막히고 답답한 현실 앞에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사람이 따라 울기 시작하더니 이 나인 성이라고 하는 즐거운 동네가 즐거움은 다 없어지고 슬픔의 동네로 바뀝니다.  통곡의 동네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울기 시작합니다.  운다고 일이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운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할 수 없이 도성의 사람들은 장례를 준비하고 죽은 자를 메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도성의 모든 사람들이 죽은 아들의 행렬 뒤를 따라 갑니다.  이것은 절망의 행렬입니다.  패배의 행렬입니다.  죽음의 행렬입니다.  이별의 행렬입니다.  마지막 행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지금 우리 인간이 가고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길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잘난 척하고, 모든 인간들이 돈 있는 척하고 승승장구하지만 그 결국은 죽음의 대열을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슬픔의 대열, 절망의 대열, 마지막 대열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산언덕의 반대쪽에서 다른 행렬이 오고 있습니다.  이 산에서 두 행렬이 마주 쳤습니다.  죽음의 행렬과 생명의 행렬, 오열과 슬픔의 행렬과 감사와 기쁨의 행렬….  이것이 역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왜 전도를 해야 됩니까?
우리가 왜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바로 죽음의 행렬에서 생명의 행렬로 저들을 옮겨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행렬에서 예수의 행렬로 옮겨 놓아야 합니다.  절망의 행렬에서 소망의 행렬로 옮겨 놓아야 합니다.

이 두 대열이 부딪쳤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아라."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무슨 일을 당했던지 울지 마십시오.  슬퍼하지 마십시오.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슬퍼서 해결되는 일도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문제 앞에 울지 말고 먼저 주님을 만나십시오.  내 생명을 걸고서라도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관을 여기 내려놓아라."  이 죽음의 행렬, 절망의 행렬이 할 수 있는 것은 내려놓은 일밖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힘들고 곤고한 순간에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인생의 그 마지막 순간에 정말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 우리의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저 내려놓으십시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생 길에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지고 몸부림치지 마십시오.  나그네 된 인생 길을 혼자서 걸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가 힘들어 할 때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다.  혼자서 인생 길을 외롭게 걸어갈 때 말없이 함께 동행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당신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든, 그것이 질병의 문제든, 사업의 문제든, 인간관계의 문제든, 아니면 그것이 직장의 문제든 울지 말고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내려놓으면 우리 주님께서 대신 져 주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려놓는 순간 당신은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내려놓는 순간 내가 내려놓기를 정말 잘 했다고 자신을 위로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시더니 그 절망의 관 위에, 낙심의 관 위에 거룩한 손을 얹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주님의 이 엄숙한 명령 앞에 사람들은 울음을 멈추고 귀를 기웃거리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바라봅니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죽은 청년이 살아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제일 위대한 만남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도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죽음의 처지에 있는 나를 살릴 수 있는 것도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절망과 좌절에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것도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어떤 분들은 내가 비록 숨을 쉰다고 할지라도 내 삶이 관속에 남아 있는 것처럼 이미 몸도 마음도 굳어 버린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어떤 가족과의 관계에서 벌써 관속에 들어간 것처럼 모든 희망도 다 잃어버리고 절망 가운데 허덕이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져서 모든 것이 단절된 관속에 있는 것처럼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면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간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려놓아라.  내가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

사랑하는 여러분, 죽었던 청년이 일어났습니다.  어머니의 만남도, 동네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과의 소중한 이 한 번의 만남이 단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주님의 축복된 생명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주님을 만남으로써 그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좋으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우리 인생에 최고의 축복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좋으신 예수님과의 만남에 대한 열망을 가지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뀝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세상과 인생을 통째로 뒤바꾼 수많은 사람들을 주위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면 제일 먼저 사람이 달라집니다.  돈만 알고 온갖 불의를 행하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전혀 다른 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흉악한 십자가의 강도가 천국에 들어가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람으로 순식간에 변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만나면 무엇보다도 사람이 바뀝니다.  내 인생을 바꾼 소중한 그 한 번의 만남,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강하고 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바뀝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십니다.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해 주십니다.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우리들 가운데 보면, 예수님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없이 사람들을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사람을 통한 상처와 아픔과 절망으로 끝이 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뜻은 '큰 자'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스스로가 큰 자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가장 의로운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학벌을 자랑했습니다.  자신의 가문을 자랑했습니다.  자신의 종교적 열심을 자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섬김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했습니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습니다.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고 보니까 자신이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가장 똑똑하고 잘 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주님을 만나고 보니까 자신은 만삭되지 못한 가장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신이 가장 의로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주님을 만나고 보니까 자신이야말로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

그 결과 자신은 간데 없고 오직 십자가의 주님만을 자랑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낮은 자리에로 내려갔습니다.  섬김의 자리에로 내려갔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고, 더 많이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더 겸손한 삶을 살았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고백할 줄 아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님 없이 사람을 만나려고 하니까 자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접받으려고 하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상처받고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만나십시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어두운 삶은 밝은 삶으로 바뀝니다.  절망적인 인생은 소망적인 인생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언제나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진정한 섬김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절망 가운데서도 언제나 밝은 세상을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밝은 세상에서 빛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보는 것입니다.  세상이 밝기 때문에 인생이 밝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과 상관없이 빛 되신 얘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인생이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어떠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늘 희망을 가지고 소망 중에 살아갑니다.  불안함이 사라지고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특징은 그 마음에 넘치는 평안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넘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먼저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예수님은 없이 세상을 바꾸려고 하니까 폭력과 파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은 화평한 가운데서 달라집니다.  그래서 지옥과 같은 세상이 천국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받는 최고의 축복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든지 다 죽어서 천당에 들어가게 됩니다.  죽어서 천당에 갈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도 천국의 삶을 살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예수님을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만나고 그것을 소유하며 산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예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천국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혹여 여러분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신다면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늘 하늘의 평화를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은 평안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은 혹시 풍랑 휘몰아치는 바다가 아니십니까?
순간 순간 밀려오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절망 가운데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혹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은 다 잃어버리고 세상이 주는 수고와 무거움으로 지쳐 있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은 그와 같은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십니까?
세상 사람들과 같이 돈으로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십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와 같은 삶의 자리에서 구원 얻기를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랑의 주님을 만나는 순간, 기쁨을 잃어버렸던 나인성 과부가 경험했던 놀라운 은혜를 여러분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웃음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꿈과 희망을 다시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행복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친구와의 만남, 남편과 아내와의 만남, 부모와 자식간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좋은 목사와 좋은 성도와의 만남, 그리고 직업과의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와 같은 만남이 없이 우리는 절대로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 팀웍을 이루십시오.  하나님의 역사는 진실한 팀원들이 만든 역사입니다.  때문에 팀웍이 깨지면 하나님의 역사는 깨지고 맙니다.  하나님의 팀웍이라고 하는 것은 막연한 친구 이상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인간관계나 친교 이상입니다.  이것은 돈보다도, 이익보다도 하나님의 사명에 뭉쳐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명 때문에 나무를 뽑아 옮겨 심은 것처럼 어디서 뽑아서 하나님께서 이곳에 심겨놓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흔들 수 없는 강한 하나님의 팀웍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공동의 사명에 미쳐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시대를 향한 공동의 사명의 환상에 다 미쳐 녹아진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나도 너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사명에 미쳐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을 막을 권세도 없습니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하나님의 열린 문을 우리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경을 넓히십시오.  땅으로 뻗어 나가십시오.  하늘 문을 여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복된 만남을 위해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통하여 이 모든 만남과 믿음의 팀웍을 단 번에 다 이룰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갈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들을 잃어버렸던 어머니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잃어버렸던 아들도 찾았고, 꿈과 웃음과 기쁨도 찾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은 다시 즐거움이 가득한 행복한 마일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절망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그 절망이 변하여 희망으로 바꾸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고 하여도 예수님을 우리의 삶에 모셔드리지 않는다면 그 예수님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을 만나면 슬프던 마음이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거친 풍파가 잔잔해 질 것입니다.  절망과 한숨을 내 던지고 영광의 찬송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남에 대한 거룩한 욕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노력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은 우리가 욕심을 내고 노력을 하여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많지만 예수님을 만나는 것만큼은 진정으로 욕심을 내고 기도하면 누구나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만 다니지 말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하여 예수님을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 그분을 구주로 모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은 그 날로 그치고 여러분의 삶은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오열하던 한 여인을 찾아오셔서 만나주셨던 주님, 죽었던 나사로를 찾아오셔서 만나주셨던 주님, 이웃을 잃어버리고 세관에 홀로 앉아서 외로워하던 마태에게 찾아오셔서 만나주셨던 주님, 그 주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사랑의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의 소중한 한 번의 만남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바뀌어지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