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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 12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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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 128:1-29)  
 
 
1. 출애굽기 23:16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고 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5,6월경에 보리를 추수한 후,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인들은 보리농사를 짓지 않으니까, 지난 반 년 동안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것이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의 선물을 들고 인간을 찾아오신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 구원의 종교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힘도, 자격도,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고통에서 건져주십니다. 이런 구원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는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삶은 평생 감사의 삶입니다. 예수 믿게 된 것이 감사하고, 오늘까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 온 것이 감사하고, 천국 가기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속에 보호받으며 살게 될 줄 믿고 감사하며, 천국에 이르러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될 줄 믿고 감사드리며 사는 것이 우리의 일생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평생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드리며 사는 것입니다. 
아직 고난이 끝나지 않았어도,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도, 아직 아픔이 남아 있어도 감사드립니다. 나 혼자 고난당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고난당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졌지만 머리털 하나 거을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굶주린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 뜨거운 용광로 속에 다니엘의 세 친구만 던져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득실거리는 굴 속에 다니엘 홀로 던져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고백입니다. 

2. 이처럼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은 성도들이 드린 감사의 노래가 시편 118편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맨처음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시작한 시가 마지막 29절에도 동일하게 “여호와께 감사하라” 고 끝맺고 있습니다. 이것이 상징하는 의미는 우리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우리 인생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마무리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이 넓고 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파렴치한 인간도 용납할 수 있고 용서해주실 수 있을 만큼 넓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 모르는 나락으로 추락한 인생, 더 이상 내려갈 때 없는 데까지 내려간 사람, 그 밑바닥까지 내려가셔서 그를 품어주시고 위로해주실 만큼 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처럼 비천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 딸로 높여주실 만큼 높습니다. 
이 사랑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이렇게 감사 찬양드립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신 김용기장로님께 물었습니다. 
"장로님, 행복하십니까?" 
논두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 장로님은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감사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은총이며 선물임을 자각하는 사람은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습니다. 
행복한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입니다. 
오직 감사할 따름입니다."

3. 오늘 시편을 지은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니 오직 감사할 것 밖에 없다고 합니다. 고통도 감사, 이웃나라가 쳐들어와서 고생한 것도 감사, 죽을 고생한 것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왜 죽을 고생한 것도 감사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세 가지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6절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죽을 고생한 때에도 “하나님은 내 편이 되셨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원래 내 편입니다.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14절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나를 도우시니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 되시므로, 나는 어떤 형편에 처하더라도 하나님께 피하면 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8-9절)

지금도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는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편이 되시어 여러분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서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세계적인 신학자요 설교가인 메튜 헨리가 어느 날 밤 강도를 만났습니다. 
귀가 중이던 그를 덮친 강도는 피가 철철 흐르도록 구타하고 가진 돈을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먼저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가 강도당한 입장인 것을 감사합니다. 
돈을 빼앗겼으나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감사합니다. 
나를 괴롭힌 그 강도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가 다시는 강도로 살지 않도록 하옵소서.”
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의 기도입니까?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심을 믿으니 감사할 수 있습니다. 

4. 둘째, 시련을 통해 축복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18절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경책하다”는 말은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아주는 것을 말합니다. 잘 되도록 훈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시련을 하나님의 훈육으로 해석했습니다. 

야곱이 말년에 아들 요셉이 통치하는 애굽에 내려와서 바로왕 앞에 섰을 때에 바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야곱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실제로 그의 인생은 험악한 인생이었습니다. 딸이 세겜 추장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 보복으로 세겜의 남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형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사백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습니다. 형과의 관계가 깨어져버렸고 이제 형의 칼에 죽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허벅지뼈를 쳤습니다. 

절뚝 절뚝 절면서 야곱은 깨달았습니다. “내가 형님께 잘못하였구나.” 그리고나서 야곱을 축복해주었습니다. 야곱은 시련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형님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시편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죽을 고생해도 감사합니다. 시련이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5. 고난 속에서도 감사할 이유 세 번째는, 결국 승리할 줄 믿기 때문입니다. 
15-16절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여기의 “의인” 이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심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결국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권능을 베푸시며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10-12절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나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 같이 타 없어졌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있는 성을 아람 군사들이 에워쌌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종이 두려움에 떨면서 선지자에게 보고했습니다. 엘리사가 종에게 대답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엘리사는 종을 위하여 기도해주었습니다. “하나님,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종의 눈을 여시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하시니, 그들이 앞을 보지 못하여 엘리사의 인도로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엘리사를 잡으러 온 아람군사들이 도리어 적국의 수도에 붙잡혀와 포위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에워싸인 것 같아도, 결코 싸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둘러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죽을 고생을 해도 우리는 결국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은 결국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한, 여러분은 승리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능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맥추절에 참 좋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기를 원합니다. 
죽을 고생을 해도,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니 감사하고, 
시련이 축복의 통로가 되니 감사하고, 결국 승리하게 될 줄 믿고 감사합시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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