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꿈 (느 2:11-20)

첨부 1


꿈 (느 2:11-20)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에너지 중의 하나가 꿈입니다. 
꿈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의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dream’입니다 .
우리가 힘들고 외로울 때 꿈(dream)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습니까?
다른 하나는 우리의 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vision’입니다. 
애굽의 감옥에서 관원들이 꾼 꿈은 드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환상은 비전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보았던 꿈은 dream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꿈은 vision이었습니다.
요엘 2장 28절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꿈’, ‘이상’이 곧 ‘비전’입니다.

성공의 비결은 언제나 비전입니다. 
배경 좋은 사람이 아니라, 학력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재능이 특출한 사람이 아니라, 비전 가진 사람이 성공합니다.
비전 가진 사람이 만난을 극복하고, 장애물을 넘을 수 있습니다.
비전을 성경적인 말로 하면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소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비전을 주실 때에 우리 마음에 생겨나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이루시기 원합니다.

1. 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느헤미야가 보여준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 1장은 눈물을 주제로 합니다. 
조국의 멸망과 예루살렘성의 황폐함으로 인하여 울었습니다. 
그 눈물은 기도를 낳았습니다. 
2장 1-10절까지는 기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기도한 후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 왕 앞에 나아가 조서를 요구했습니다. 
조서는 왕의 도장이 찍힌 통행 증명서였습니다. 
그러나 이 조서는 영적인 의미에서 하늘의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도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기도의 조서를 내밀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기도하면 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얻는 최고의 복은 우리 안에 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체험하셨지요?

절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다 놓았다가, 기도하면 나도 모르는 의욕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는 것을 체험하셨지요? 
기도하던 느헤미야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소원을 주셨습니다. 
그 소원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신 것을 내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여러분, 이 말씀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 '내 마음'에 주셨습니까? 
'내 하나님'이지요!
비전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야망과 비전은 다릅니다. 
야망은 나로부터 나와서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야망은 자기의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비전을 가진 사람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온 지 삼 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느헤미야가 살던 페르시아의 수산 궁은 지금의 이라크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1,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비행기, 고속버스가 없던 시절, 낙타를 타고 산 넘고 강 건너 왔을 테니까 아마도 몇 달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느헤미야는 몹시 피곤합니다. 

온 몸이 쑤시고 다리가 아픕니다. 
도무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얼마 동안은 꼼짝하지 말고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11절,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머무른 지 사흘 만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삼 일 동안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비전은 느헤미야를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비전의 힘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비전이 사람 속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견딜 수 없습니다. 
사그라지지 않는 여름 같은 열정이 그 속에서 타오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꿈이 있습니까? 
잠 못 이루게 하는 꿈, 꿈과 함께 자고 꿈과 함께 일어나 꿈꾸듯이 살아가게 하는 삶. 
그래서 성경의 사람들은 꿈의 사람, 비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없이 넘어질 수 있는 환경에 있었고 또 실제로 넘어졌지만 그들이 다시 일어나 위대한 삶을 살았던 한 가지 이유는 꿈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한 가지 꿈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바울의 꿈은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오직 한 가지에 목숨을 건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에 집중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찬송가550장-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2. 꿈은 대가를 지불해야

느헤미야의 마음속에 예루살렘을 재건하리라는 비전이 임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전은 하루아침에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성취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 준비가 필요하고 대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재건을 위해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합니다. 
여러분, 준비의 실패는 실패의 준비(Failure to prepare is prepare to failure)라는 말을 아십니까? 
언제나 세상 일이 다 그렇습니다. 
준비 없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영적인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도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성공적인 열매는 철저한 준비와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것은 없습니다. 
언제나 갈 만한 데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장을 시찰하는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그의 순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첫째, 밤에 갔습니다. 

12절 하반절입니다.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갈새.......” 
왜 느헤미야는 밝은 낮에 순찰하지 않고 밤에 갔겠습니까? 
느헤미야가 밤에 순찰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부지런했는가를 보여줍니다.
항상 부지런한 사람이 승리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어떤 아파트의 경비원이 말했습니다. 
‘항상 좋은 차는 일찍 나갑니다.’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은 부지런하다는 말입니다. 
‘거지도 부지런해야 따뜻한 밥을 얻어먹는다.’라는 일본 속담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경영인 치고 해가 중천에 올라올 때까지 잠을 자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들이 잘 때 안 자고, 어두울 때 새벽을 준비한 사람만이 내일의 주인공이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지런하길 바랍니다.

2) 다음은, 고난의 골짜기에 먼저 갔습니다.

13절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불탔더라.”
느헤미야가 순찰한 지역을 순서대로 보면 의미가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곳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낮은 골짜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용정, 곧 뱀의 우물을 지나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분문을 통과하고 샘문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왕의 샘으로 갔습니다. 
처음부터 왕의 샘물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고난의 골짜기를 갔습니다.

세상의 좋은 일도 이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 일어납니다. 
자동차의 대명사라 부르는 헨리 포드도 각고의 노력 끝에 871대의 자동차를 만든 후에야 겨우 사람이 탈 만한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공기 타이어를 개발하는 데에도 무려 4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성병의 치료약을 개발한 애를리히도 무려 606번의 실험 끝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606번 만에 성공이란 말은 605번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실패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성공도 없습니다. 

성경의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살리려고 요셉을 애굽의 감옥에서 훈련하셨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모진 고난을 이기고 나온 후에 이스라엘을 흉년에서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정탐꾼을 살리려고 여리고의 창녀 라합을 준비하셨습니다. 
라합은 그의 부끄러운 삶 속에서 모질게 연단된 후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고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조를 이루기 위해 외롭게 들에서 양을 치던 다윗을 준비하셨습니다. 

다윗이 20년 동안 유다 광야의 훈련을 마친 후에 이스라엘에서 전무후무한 왕조를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비전은 고난을 통해 이루어지고 골짜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느헤미야처럼 골짜기를 통과하십시오. 
그래야 왕의 샘문에 다다릅니다. 
그냥 이루어지는 비전은 없습니다.

어제 저는 젊은 전도사님들께 부탁했습니다.
“젊었을 때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면 어려운 것을 선택하라. 젊었을 때 잘나가면 그거 좋은 게 아니다.”
그러면서 저의 얘기를 했습니다.
“선교지를 선택할 때 스리랑카와 이집트가 나왔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스리랑카는 아시아권이고, 이집트는 아랍권이다. 그 당시 아랍권 22개국에 감리교 선교사가 나간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이집트를 택했다. 지금도 그 선택을 잘 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비전은 고난을 통해 이루어지고, 골짜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3) 그리고 세 번째는, 혼자 갔습니다. 

16절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아니하다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하려고만 했으면 얼마든지 군대도 동원하고, 종들의 호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혼자 갔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갖는 고독한 밀월입니다. 
아무도 하나님과 나 사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은 남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는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내가 예배해야 합니다. 
밤에 혼자 하나님 앞에 선자만이 낮에 많은 사람들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교회는 교회학교 여름철 행사를 위해 ‘1만 시간 기도운동’을 전개합니다.
지난 심령부흥회 때 저는 강하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전 교우들이 1만 시간의 기도 시간을 채우는 것입니다.
장로님들로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기도에 동참하길 바랍니다.
많은 교우들이 동참하면 그 기간은 짧아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자리를 마련하기 바랍니다.
밤에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자만이 낮에 많은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습니다.
1만 시간의 기도가 채워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지난 서울연회 감리사 해외연수로 스페인을 방문했습니다.
스페인은 카톨릭 국가입니다.
이탈리아도 카톨릭 국가입니다.
그런데 차이점을 발견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성당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관광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성당에는 예배가 살아있었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고난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은 800년 동안 이슬람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고난의 영성을 가질 수 있었으며, 오늘도 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하는 것은 모든 것이 잘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삶이 힘들지라도, 이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해야 비로소 비전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