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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엡 4:7-12) - 건강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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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엡 4:7-12)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우리 성도님들은 열린교회가 몇 번째 다닌 교회입니까? 저는 일곱 번째 섬기는 교회입니다. 아마 대부분 우리 성도님들도 열린교회가 신앙 생활하면서 처음 섬기는 교회는 아닐 것입니다. 태집사님 가정이나 오집사님 가정, 신집사님 가정 같이 처음 전도 받고 우리교회 등록하여 세례받으신 분들은 우리 교회가 첫 번째 교회이지만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다른 교회에서 세례받고 직분을 받았고 이곳에 이사 와서 열린교회에 등록했을 것입니다. 

교회성장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교회신자 100명 가운데 80명가량이 교회를 옮긴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균 2.4번 교회를 옮긴다고 합니다. 10% 정도는 5번 이상 교회를 옮긴다고 합니다. 도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직장 문제로 교회를 옮길 수 있고, 집이 이사하여, 또는 교회 내의 갈등으로 교회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삽니다. 

옮길 때마다 섬길 교회를 정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고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고, 차를 몰고 돌아다녀 보았을 것입니다. 내가 다니기에 적합한 교회를 정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소망하는 이상적인 교회를 찾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성경적, 교리적으로 건전한 교회,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교회, 설렘이 있고 경건한 교회, 따뜻한 돌봄이 있는 교회, 성장하는 역동적인 교회, 가족 같은 교회,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 투명성과 정직성이 있는 교회, 복음의 본질에 충실한 건강한 교회, 시대와 소통하는 열린교회, 끊임없이 건강함을 추구하는 교회,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영성과 지성, 교회 문화와 세상 문화 간에 균형을 잘 유지하는 교회, 목회자들이 겸손한 교회,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는 교회,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교회, 평신도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교회, 양육시스템이 잘되어 자녀를 안심하게 맡길 수 있는 교회가 어디 없는가 찾았을 것입니다.

아무 교회나 등록하지 않는 것은 좀 더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꿈꾸는 행복한 교회,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기에 흠모할 만한 교회를 만들고 싶어 하고, 또 다니고 싶어 합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떤 교회를 이상적인 교회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부부가 이사하여 새로운 교회를 정하려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예배 탐방을 하였답니다. 남편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부인 따라 교회에 나가시는 분이었는데 아내는 이번만큼은 남편이 원하는 교회를 선택하여 어떻게 하든 남편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남편에게 교회 선택권을 주었답니다. 수 만 명이 나오는 대형교회도 가보고, 목사님이 설교를 잘한다는 이름 있는 교회도 가보았답니다. 

그런데 남편은 가는 교회마다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싫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조금 멀지만 목사님이 설교도 잘하고,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건강한 교회라고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교회에 모시고 갔답니다. 아내는 ‘이제는 흡족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말했답니다. “어때요. 유명한 교회는 다르긴 다르죠. 이 교회에 등록할까요?”그러자 남편은 "이 교회는 안 되겠어. 차라리 지난주에 갔던 교회 목사의 설교가 더 나아."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내는 "아니 지난주에는 설교시간 내내 잤잖아요. 그런데 그 설교가 기억이 나요?"라고 반문했답니다. 그 말에 남편은 "아니, 그게 아니라 지난 번 교회 설교시간에는 푹 잘 수가 있었는데, 이 교회 목사는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잘만 하면 깨우고, 잘만 하면 깨우잖아. 예배가 끝나고 나면 개운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이 교회는 영 아니야."라고 했답니다. 

어떻습니까? 이상적인 교회는 개운한 맛이 있는 교회입니까? 좋은 극장처럼 안락한 시설이 있는 교회입니까? 사람들이 많아 서로 간섭하지 않고 부담 없이 익명으로 남을 수 있는 교회입니까? 좋은 영화 감상하듯 설교가 짧고 감동적이고 재미있고 유익한 교회입니까? 편한 교회, 유익한 교회, 부담 없는 교회, 기쁨있는 교회입니까?

이런 교회가 우리가 찾는 이상적인 교회일까요?
우리가 요즈음 살펴보고 있는 에베소서는 새로운 사회 교회에 대한 말씀이 중심 주제입니다. 교회론을 전개하고 있는 서신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3장까지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세상을 향한 비밀로서의 공동체인 교회에 대한 교리적인 설명이었습니다. 만세전에 선택한 백성들이 모이는 교회,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가족, 한 민족, 한 성전이 된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4장부터 6장까지는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에 속한 지체된 성도들이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4장부터 부름에 합당한 생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부름에 합당한 생활에 있어서 첫 번째가 교회는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연합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제 7절에서 16절까지는 어떻게 성도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를 통해 세운 신비로운 공동체 교회를 어떻게 성숙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하면서 가져야할 이상적인 목표입니다. 이상적인 교회가 되려면 우리 각자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실수하기를 내가 건강하지 못하며 교회만 건강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해집니다. 

교회는 부름받은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된 것입니다. 세포가 건강하지 못하면 몸이 건강하지 못합니다. 오염된 물이 유입되면 강물은 오염되게 되어 있습니다. 집의 재료가 부실하면 집은 쉽게 무너집니다. 내 한 사람이 건강해야 교회가 건강합니다. 내가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한 교회가 되어야 우리 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토는 “성숙한 성도,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가장 기본은 개인의 변화입니다. 나의 성숙 없이는 가정도 행복하지 못하고, 교회도 건강하지 못하며, 세상도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숙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이 모델을 잘 못 선정하여 교회 생활에 실패하고, 낙심하고 회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입니까? 장로님입니까? 우리교회 장로님 참 좋습니다. 그러나 모델은 아닙니다. 저만 부족하지 우리 교회 집사님들 교인들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가 온전한 신앙이이 되기 위한 모델은 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온전한 모델 교회가 어디있겠습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모델입니까?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에도 구제 문제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사랑이 식어 간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도 역시 선교 문제로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 온전한 모델이 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 첩을 두었습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모세도 혈기를 불여 살인하였고 바위를 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다윗도 살인하고 간음하였습니다. 바울도 마가의 문제로 자신의 맨토였던 바나바와 다투었습니다. 

온전한 신인인이 되기 위한 모델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델이 그리스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닮아가야 할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목사님 장로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인격에까지 이릅니까?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합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입니다. 담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인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13). 

신앙적인 것, 지식적인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다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에 대한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성숙한 신앙인,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15).
아는 것으로 믿는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인격의 분량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소극적으로 피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어린 신앙인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빳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이렇게 각 개인들을 성숙시켜 하나의 교회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각 지체가 되어 한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갑니다. 서로 도움을 받고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가 분량대로 일을 하여 사랑 안에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각 지체가 어떻게 하여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겠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십니다.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 한 부족하지만 은혜로 주십니다. 조건을 보고 세상은 선택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연약한 우리를 선택하여 각종 은사를 주십니다. 저같이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 목사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어제 이웃사랑 바자회를 하는데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천만원 이상의 물건을 아무 조건없이 내 놓았습니다. 수십만원의 물품을 아깝지 않게 기증하였습니다. 시골에 가는 수고를 감당하며 물건을 가져다 기증한 분도 있습니다. 밤을 새워 준비하고 하루 종일 봉사하시는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무엇으로 그런 것을 설명하겠습니까?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건강한 교회 이상적인 교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각 사람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은혜로 우리에게 각종 직분과 직책을 주십니다.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까? 

11절에는 그 선물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네 가지만 나와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입니다. 고전 12장 4-11에는 14가지가 나옵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 통역, 사도, 선지자, 교사, 돕는 것, 다스리는 것 등입니다. 

로마서 12장 6-8절에는 7가지가 나옵니다. 예언, 섬김, 가르침, 권위하는 것, 구제, 다스림, 긍휼 베품 등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한 인간에게 달란트와 기브트를 주십니다. 재능과 은사를 주십니다. 달란트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사는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달라트는 개발해야 하고 은사는 사모하여 받고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는 각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다양하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그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가를 설명하는 내용이 8절부터 10절까지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승리하신 분이십니다(8-10)

우리가 교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받는 은혜를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먼저 나 자신과 성도를 온전케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인들을 그냥 교회에 다니게 하시지 않고 은혜를 주어 교회에 다니게 합니다. 은혜로 구원시켜주시기도 하지만 은혜로 직분을 주시기도 합니다. 각자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십니다. 여기서 ‘은혜’란 ‘믿어 구원받은 자에게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주신 각양 선물의 은사’를 가리킵니다(고전 12:4-31). 

하나님은 교회를 다니는 우리에게 각종 은사를 주어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성가대원으로, 교사로, 주방 봉사로, 차량 봉사로, 목사로, 집사로, 구역장으로, 마을 교회 목자로, 장로로 각양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면 그 직분이 먼저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를 이라고 말할 때 자신을 제외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결국 교회를 온전하게 하여야 합니다. 

온전하다는 말은 본래 의학적인 술어로 "뼈를 맞추어 제자리에 있게 한다"는 뜻입니다. 외과의사들이 골절된 수족을 다시 맞추고 어긋난 관절을 다시 제자리에 꿰어 맞추는 경우에 사용된 말입니다. 뼈가 위골되었을 때 그 뼈가 붙어 있는 수족은 온전치 못합니다.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목적한 바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그 뼈를 다시 맞추어야 온전해집니다. 내가 성숙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짐거리가 됩니다.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 교회에서 드러난 직분을 맡으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됩니다.

목사님들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성장시켜 자식에게 상속합니다. 장로님들이 세상의 비난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직분자들이 세상의 비판과 비난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세상의 조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 혹은 '예수 없는 기독교'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십자가를 달아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사실은 바알 신을 섬기고 있다'고 혹평받고 있습니다. 거대한 자본과 기업이 약자를 삼키 듯, 대형교회가 점차 작은 교회들을 흡수해 가는 과정을 보며 뜻있는 신앙인들은 가슴아파하고 있습니다. '젖만 먹는' 단계의 신자들만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도 겉으로는 기독교의 미사여구를 덧붙여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싸움은 더 더럽고 치졸한 방식으로 전개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교회와 주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며 서글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행일치기 없다는 것입니다.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고 하듯이 현재 범람하는 사이비 말씀의 홍수 속에서 정말 마실 수 있는 말씀의 진수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원도 선물이지만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여러 기능과 직분의 은사들도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것을 받으면 그것으로 교만의 도구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됩니다. 우선 나부터 온전해 지고 다른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우리가 쓰임받아야 합니다. 
성도란 분리된자, 거룩한 자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새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 전에 소속되었던 곳에서 선택되어 구별된 자입니다. 소속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삶의 원리가 달라진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크게 세속사와 구속사가 있습니다.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속사와 교회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속사가 있습니다. 세속사의 중심 원리는 힘입니다. 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세속사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힘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 은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곳입니다. 교회 안에 세속이 침투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와 세속이 불분명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가 세속보다 더해서도 안 됩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교회 성도들에게 각종 직분을 주십니다.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힘에 의해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입니다. 서로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대로 부족된 점들은 보완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조정하여 온전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과분수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평발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애꾸눈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육손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온전케 합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교회 역사상 말씀이 빛을 일을 때 교회는 쇠퇴기에 도달합니다. 의식과 권위, 전통, 행사, 음악, 사회사업, 친교활동이 중심이 되고 말씀은 단지 행사와 의식 순서로 전락 된다면 교회는 제 기능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의 일을 하여야 합니다.

여러 직책을 두신 것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만족과 자기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봉사'라는 단어에서 집사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디아(dia)와 코니아(konia)두 단어의 결합인데 '코니아'의 뜻은 '먼지'란 말로 합하여 '먼지를 턴다'는 뜻입니다. 집사는 먼지를 터는 사람, 청소하는 종입니다. 계급이 아닙니다.

몸의 지체들인 우리가 서로 서로 봉사할 수 있도록 모든 직책을 주셨습니다. 교회에 참여하는 것은 아무개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가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적절한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내 직책으로 내 형제에게 봉사하여야 합니다. 내 가진 것으로 형제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내 지식으로 형제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내 미모로, 내 건강으로, 내 지위로 형제를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병자를 위로하는 자는 위로함으로, 가르치는 자는 가르침으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전도함으로, 설교하는 자는 설교함으로, 찬양하는 자는 찬양함으로, 헌금드리는 자는 헌금함으로 봉사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특권의식을 가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봉사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셋째, 우리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궁극적으로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교회를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 대신에 내 몸을 세워서도 안 됩니다. 내 명예, 내 이름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입이 입의 유익만을 위하여 음식을 먹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손이 손만의 유익을 위해 물건을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체는 궁극적으로 몸을 세우기 위해 봉사하고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였던 니골라 집사처럼 직분을 받아 이단이 되어 교회를 파괴하는 데 쓰임받으면 안됩니다. 교회에서 으뜨임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처럼 악안 말로 사역자를 비방하고 봉사하는 자들을 쫓아내는 직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조그마한 일을 통해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섬기는 분들의 태도나 방식이 그릇되었을 때 교회가 한 사람의 부덕한 일꾼 때문에 온 교회가 흔들리고 몸살을 앓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온전하게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남겨놓은 위대한 표적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입니다. 교회는 생명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산돌로서 기초가 되어(벧전 2:4, 엡 2:20)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는 곳입니다(마 16:18).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딤전 3:15).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딤전 3:15). 또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엡 1:23, 고전 12:27). 성령의 전입니다.(엡 2:21, 고전 3:16, 고후 6:16, 벧전2:5).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어 이 집의 일꾼들로 세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남겨 놓은 세상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어떻게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거룩함은 영성과 도덕성이 흔들리지 않는 교회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눈으로 바라보며 큰고 작나가는 성공한 교회를 원하십니까?

한국 사회학회 기관지인 [한국사회학]에 발표한 서석재씨의 [중산층 대형교회론]이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그는 그 논문에서 최근 들어 기독교 신자들이 새로 교회를 선택할 때 교회의 유명도나 신도들의 사회 경제적 수준 등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목사의 설교 내용, 교단의 교리, 집과의 거리 등을 주로 감안해 교회를 선택했던 과거와는 달리 대형교회 신자들 중 상당수는 소속한 교회가 [수준 높은 식자층과 중산층들이 다니는 교회]로 사회에 알려져 있어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며, 이 교회 신자가 됨으로써 자신도 중산층으로 동일시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고, 비교적 편하게 다니며 이런 교회 정도는 다녀야 사회적 체면이 선다는 식의 [지위상승 욕구]나 [나도 중산층]이라는 소속감을 가지려는 신자들의 성향이 이런 교회를 찾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미국 교회에서 나타났던 [교회의 사회적 지위분리] 현상과 비슷한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느 국회의원이 다니는 교회, 어느 재벌, 어느 유명인, 어느 연예인, 어느 유명한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 어느 교수 등등으로 차별화시키고 계층화시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접근할 수도 없는 교회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교회 생활에 반영하려고 합니다. 

날로 비만해지는 대형 교회와 갈수록 빈곤해지는 빼빼한 개척 교회를 보며 비판만 하겠습니까? 교인들은 많지만 마치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같은 교회를 만들겠습니까? 주어진 재정으로 교회 치장과 유지·보수·관리하는 데 소진하고 소외된 이웃을 향해서는 눈을 감는 교회를 만들겠습니까? 암세포처럼 스스로 수많은 혈관을 만들어 가며 주변 건강한 세포들의 양분을 착취해 자기 배만 불리는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까? 

보수라고 안주하며 세상의 변화를 외면하며 영양실조의 교회가 되겠습니까?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통해 대형교회를 만들고 나이 들어 은퇴하면서 자기 자식을 후임자로 세워 그 막대한 종교 권력을 세습시키는 교회를 원하십니까?

재정난에 허덕이다가 더 이상 교회를 운영할 수가 없어 돈을 받고 교회를 파는 교회를 만들겠습니까? 가난과 비난 고난이 닦쳐도 끝까지 복음의 진리를 파수하며 은혜로 힘을 정복하는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까?
목회 성공을 위한 전략과 프로그램으로 차별화된 브랜드 교회를 원하십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알파'·'G12'와 같은 해외 유명 프로그램을 수입하여 시행하는 체인점 교회를 원하십니까? 릭 워렌의 새들백교회· 빌 하이벨스의 윌로우크릭교회· YM· CCC· 테제 공동체· 헨리 나우웬의 아르쉬 공동체 등 해외 유명 단체의 지점이 되거나 후광을 입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까?

먼저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인격의 분량까지 이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직분으로 나 자신부터 온전해지고, 세상을 향해 봉사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세워가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새로운 공동체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가 이 땅에 세워질 것입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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