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견고한 망대 (잠 18:10-11, 눅 13:4-5)

첨부 1


견고한 망대 (잠 18:10-11, 눅 13:4-5)

만리장성의 망대가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만리장성의 연장길이가 약 2,700,000m이고, 만리장성의 지선길이와 연장길이를 합하면 약 5,500,000m입니다. 망대는 약 100m 간격으로 세워졌으므로 망대의 개수는 약 28,000개 정도 됩니다. 이렇게 긴 성과 망대 때문에 중국이 평안했습니까?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이 있었습니다. 변방의 오랑캐들의 약탈이 수없이 일어났습니다. 성과 망대를 세우면 세울수록 전쟁도 많아지고, 사람도 더 많이 죽게 마련입니다. 
  
전쟁영화나 첩보영화를 보면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있습니다. 특공대원이나 첩보원이 야밤을 틈타 망대에 올라가 파수꾼을 뒤에서 소리도 없이 죽입니다. 그리고 안으로 침입하여 다 죽입니다. 그 사이에 적군에게 발각되고 총격전 끝에 아군 몇 명이 죽고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망대라는 것은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견고하게 만들어놓지만 인간이 만든 망대는 절대적으로 견고하지는 못합니다. 
  
망대란 적의 동정을 살펴보는 높은 대를 일컫습니다. 망루 혹은 관각이라고도 합니다.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세운 곳이 망대입니다. 인간 역사에 수많은 망대와 망루를 쌓아 적들의 위협에서부터 벗어나려고 하였지만 망대를 쌓는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고, 망대가 있다고 적들이 쳐들어오지 못한 것도 아닙니다. 
  
인간의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적하기 위하여 인간의 꾀로 대항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고 나서 자기들의 꾀로 망대를 만듭니다. 인간의 죄는 망대를 잘 못 만들게 한 것입니다. 망대를 하나님을 향해 만든 것입니다. 
  
창세기 11:4에는 “또 말하되 자, 성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고 합니다. 탑이란 망대를 말합니다. 망대를 만들어 서로 관찰하면서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망대를 만들고 나서 흩어짐을 면했습니까? 오히려 결과적으로 보면 바벨탑을 쌓다가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탑을 쌓으면서 하늘에 닿을 탑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벨탑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의 망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이 망대를 무너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허사로다”라는 말씀을 실감합니다. 하나님이 견고한 망대가 되셔서 지키셔야 안전할 수 있습니다. 망대가 적을 감시하지 못하면 망대의 역할을 잃은 것입니다. 망대가 무너지면 성이 무너집니다. 망대가 무너지면 민족이 무너집니다. 
  
현재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면 마치 망대가 무너진 것 같은 현실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고, 한국교회가 그렇습니다. 파수꾼이 잠들어 있어 망대가 적에게 침입을 당한 것 같습니다. 아군보다 적군이 더 강해 보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견고한 망대를 찾아야 하고, 강하신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시편 61:3에는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심이니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견고한 망대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견고한 망대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며, 기대감이며,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견고한 망대가 되셔야 사방을 바라보고 지키실 것입니다. 앞도 뒤도 다 살피실 것입니다. 그리스의 신 야누스는 양면을 본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모든 곳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지으신 하늘도 땅도 지키십니다. 견고한 망대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견고한 망대는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잠언 18:10 상반절에는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이라고요?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이고, 여호와는 그 자체가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호와 외에도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별칭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시는 표현입니다. ‘우리에게 계시된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적이 절대 넘나볼 수 없는 견고함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귀,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은 눈, 귀, 손,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하십니까?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의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만물, 특히 하나님의 가장 귀한 피조물인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의 눈과 귀와 손을 쓰십니다. 
  
“낮에 보기 위한 눈, 밤에 듣기 위한 귀”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눈을 만드셨습니까? 낮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귀를 만드셨습니까? 밤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사람이 듣기만 하면 됩니까? 보기만 하면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견고하게 살게 하시려고 인간의 눈도 귀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망대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눈을 부릅뜨고 계십니다. 역대하 16:9에는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라고 하십니다. 눈을 부릅뜨고 온 땅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귀를 쫑긋이 세우고 계십니다.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이십니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망대를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비둘기는 자면서도 눈을 뜨고 사방을 감시한다고 합니다. 자는 것 같지만 잠시도 주변을 감시하고 살피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미어캣이란 동물은 두 발을 들고 마치 보초를 서듯이 잠시도 주위를 살피는 눈을 떼지 않고 사방을 살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으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살피고 계십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오래 전 군 복무 시절에 간첩을 잡아 훈장을 탄 국가 유공자입니다. 목사님은 전방에서 군견을 관리하셨는데 야간 순찰 도중 개가 간첩을 발견한 것입니다. 개가 간첩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짖었습니다. 목사님은 간첩에게 총을 발사해서 간첩을 잡은 것입니다. 처음 간첩을 발견한 것은 목사님이 아니라 개였습니다. 개는 귀가 밝고 코가 발달하여 간첩을 잡게 한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개 덕으로 평생 유공자로 보훈 연금을 타고 있습니다. 개는 귀가 밝고 눈이 밝으므로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견고한 망대는 작은 소리도, 어둠 속에서 작은 빛도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망대’가 예루살렘에 가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성벽 ‘자파문’ 옆에 있는 망대입니다. 기원전 2세기에 처음 이 망대를 지었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오스만터키 등이 지배당하면서 그 때마다 예루살렘을 통치한 세력들의 군사요새로 활용 되었습니다. 다윗망대는 예루살렘 방어의 중요한 전략적 장소가 되었습니다. 아랍인들이 638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습니다. 1098년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을 때에 다윗망대에서 십자군을 막았습니다. 참 역사는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다윗망대에서 십자군에 참패를 당했습니다. 

16세기부터 400년간 오스만터키가 예루살렘을 지배하였을 때 다윗망대는 군대병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세계 제1차 대전이 발발하여 터키가 영국에 패하므로 영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다윗망대를 보수하였습니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때 요르단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다시 다윗망대를 군사목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이 점령하므로 다윗망대는 다시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가 지금은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다윗망대란 이름은 좋지만 절대 견고한 망대는 아닙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없이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성군의 이름을 붙여 놓는다고 해도 사람이 주인인 망대에 불과합니다. 
  
11절에는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같이 여기느니라”고 합니다. 이 절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내용과 대조하는 말입니다. 이 말에서 ‘여기느니라’란 ‘베마스키토’란 말인데 상상 속에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자는 돈을 견고한 성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건 상상일뿐이라는 말입니다. 재물, 건강, 어느 것도 견고한 성이 되지 못합니다. 돈이 나를 지켜줍니까? 절대로 그렇지 못합니다. 돈이 제일 먼저 나를 배반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켜주시는 견고한 망대이십니다. 
  
기드온의 다른 이름은 여룹바알입니다. 그의 큰 아들 아비멜렉은 70명의 자기 동생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가 데베스 성읍을 점령하려 하자 성읍의 견고한 망대에 성읍사람들이 다 올라갔습니다. 아비멜렉이 망대를 공격하고 불사르려 하자 어떤 여인이 맷돌 위짝을 던져서 아비멜렉의 두개골을 깨트려 죽게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의 부하 청년을 불러 “칼로 나를 찌르라. 여자가 나를 죽였다 할까 하노라”라고 합니다. 여자한테 죽었다는 말은 듣기 싫어서 그렇게 했는데 그는 망대를 점령하지 못하고 결국 망대 앞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형제 70명을 죽여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렇게 갚으셨습니다. 견고한 성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그 이름에 맞게 우리를 살리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벌하십니다. 
  
여러분의 망대를 하나님께 맡기세요. 망대지기 하나님은 잠시도 졸지 않고 지키십니다. 눈이 밝고 귀가 먹지 않는 하나님께서 망대의 주인 되셔야 우리의 삶이 견고합니다. 견고한 망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견고한 망대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동서남북을 맡기고 평안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견고한 망대에서 의인은 안전함을 얻습니다. 

잠언 18:10 하반절에는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견고한 망대가 되시면 우리는 편안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숨어 있으면 안전합니다. 여호와께 피하여 숨는 자는 안전합니다. 
  
시편 71:1에는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고 합니다. 시편에는 “주께 피합니다”라는 말이 12번 나옵니다. 여호와의 망대에 피하는 자는 안전함을 얻습니다. 
  
예루살렘 성 동북쪽에 예수님시대에 로마의 요새인 안토니오 요새가 있었습니다. 이 곳에 예루살렘 망대가 있었습니다. 이 망대는 로마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내려다보며 유대인들이 혹시 폭동을 일으키나 감시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빌라도 총독의 집무실이 있어서 그 곳에서 예수님을 재판하였습니다. ‘비아 돌로로사’(고난의 길) 초입에 있는 이곳은 지금 아랍인 학교가 서 있습니다. 
  
망대를 누가 지키느냐에 따라 백성이 안전할 수도 있고, 안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망대를 지키는 사람에 따라 평안일 수도 있고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망대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셔야 안전합니다. 망대의 지킴이가 하나님이 되셔야 절대 평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절대로 안전한 망대가 있습니까? 절대로 안전한 요새가 있습니까? 절대로 안전한 곳이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위험하다고 비행기를 안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다가 위험하다고 배를 안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땅은 안전합니까? 절대 그렇지 못합니다.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 때 어느 시인은 “어머니 같은 대지의 반역이여!”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같은 대지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대로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데 천당 갈래요, 분당 갈래요? 밴쿠버 한인들은 ‘천당 밑에 999당’이 밴쿠버라는데 밴쿠버는 안전합니까? 어디에도 우리의 마음을 둘 만큼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스텔스’ 기술이란 운반체나 미사일이 적의 레이더나 그 밖의 전자 탐지기에 거의 탐지되지 않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 군사과학기술을 말합니다. 미국이 처음으로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한 다음 세계가 다투어 스텔스 기술을 군사 목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이 자체 개발한 ‘젠-20’이라는 스텔스 전투기를 시험비행하고 세계에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스텔스라고 절재 안전합니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알카에다의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숨어 있었지만 미국은 훤히 드려다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지구상에 숨을 데가 어디 있습니다. 미국의 특공대는 두 대의 스텔스 헬리콥터를 앞세워 갔지만 한 대는 추락했습니다. 모든 것이 절대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망대를 지키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숨겨야 합니다. 
  
‘난공불락’(難攻不落)이란 말이 있습니다. 공격하기 어렵워 함락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세계의 난공불락 요새들, 성들도 다 함 
락된 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나바론 요새’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로 만든 2차 대전의 실화라고 합니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머리로는 함락될 수 없는 곳인데 결국 나바론 요새도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고 맙니다.  
  
이스라엘의 ‘마사다’는 문자 그대로 천연요새입니다. 기원전 37년부터 31년까지 헤롯대왕이 자신의 악정에 반란을 일으킬까 대비하여 피난할 요새 겸 왕궁을 세웠습니다. 66년 제1차 유대와 로마의 전쟁에서 유대 저항군이 로마의 수비대를 몰아내고 요새를 차지하였습니다.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에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유대인과 그 가족들이 마사다에 피난하여 2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하였습니다. 72년 로마의 실바장군이 이끄는 로마 제10군단이 마사다를 진격하여 결국 73년에 성공하였습니다. 마사다를 정복하고 올라와 보니 시체만 있었습니다. 유대 법에는 자살을 금지하기 때문에 제비를 뽑아 서로 죽이고 최후에 2인이 남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고 마지막 사람만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불태우고 식량창고만 남겼습니다. 식량이 모자라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던 집에서는 십일조 주머니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함락되지 않는 견고한 성은 없습니다. 
  
티베트의 ‘간체’라는 도시는 티베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해발 5000미터나 되는 천연의 요새입니다. 14세기에 이 지역을 다스리던 토호가 궁을 건축할 때에 성과 함께 지어 ‘간체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성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정복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900년 영국군이 신무기를 가지고 왔을 때 강력히 항거하였지만 결국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간체 시민들은 영국에 굴할 수 없다고 하여 투신자살하고 말았습니다. 함락되지 않는 성, 망대는 세상에는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스겔 26:4에는 “그들이 두로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그 망대를 헐 것이요 나도 티끌을 그 위에서 쓸어버려 맨 바위가 되게 하며”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견고한 성을 사람들은 서로 무너뜨리고 망대를 헐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망대만 견고합니다. 하나님의 망대만 안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평안을 줍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 의지하며 피난처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성경에는 “용사들이 망대에”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망대는 용사들이 지키고, 용사들이 망대를 지킬 때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3:4에는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라고 합니다. 망대가 적을 지키기는커녕 자기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허술한 게 인간의 망대입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이 찬송을 들을 때마다 힘이 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견고한 망대, 견고한 성, 함락되지 않는 피난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든든히 살기를 바랍니다. 

  
결론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이 많이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길을 가다보면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남편의 고개는 따라가며 봅니다. 안 보는 척 하지만 눈동자가 돌아갑니다. 이것이 남성의 특징입니다. 아내는 멋있는 남자가 지나가면 고개가 따라가거나 눈동자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원래 남자는 하나만 봅니다. 새도 수컷은 먹이를 잡기 위해서 목표물 하나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순식간에 낚아챕니다. 그런데 암컷은 둥지 안에 있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서 한 눈에 모든 걸 다 봅니다. 여자는 안 보는 척 하지만 이미 다 봤습니다.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남자의 눈일까요? 여자의 눈일까요? 하나님은 남녀의 눈입니다. 나만 뚫어지게 보시듯 모든 것을 두루 다 보십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다 보고 계십니다. 풀잎의 작은 움직임을 보시고, 바람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지킴이가 되십니다. 
  
여호와는 견고한 망대입니다.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십니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아주 세미한 소리를 들으실 만큼 귀가 나팔통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동쪽으로 일본을 잘 지켜주셔서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하지 않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쪽으로 점점 공룡처럼 커가는 중국이 우리민족과 통일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묶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북쪽으로 북한이 역사를 오판하지 않고 무력 도발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남쪽으로는 무엇일까요? 이번 여름에 남쪽에서 오는 태풍이 우리나라에 오기 전에 동쪽이든 서쪽이든 비켜가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네가 밟는 땅이 네 땅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우리의 동서남북이 견고한 망대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견고한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